2W 매거진 26호
첫째와 둘째의 여름방학을 한 달 남짓 남겨둔 주말. 아침부터 웬일로 컨디션이 좋은 아이들이 함께 모여 노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며 흐뭇한 미소가 절로 떠올랐다. 전날 사온 생전 처음 보는 작고 동그란 과자를 찜! 해 뒀던 둥이들은 그걸 기억해내고는 느지막이 일어나 나온 아빠에게 받아먹으며 신이 났다. 덩달아 간식시간도 아닌데 과자를 받아먹는 첫째와 둘째도 입에서 함박웃음이 떨어질 줄 몰랐다.
달갑지 않은 손님은 불현듯 찾아왔다. 외출하는 차 안에서 선둥이가 자꾸만 눈을 비벼대길래 이상하다는 생각에 자세히 살펴보니. ‘헬로-‘ 두드러기였다. 눈가에 나는 것을 시작으로 접히는 곳이 벌겋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살펴보는 손이 자꾸만 차가워지고 기저귀를 들춰보는데도 몇 번이나 미끄러져서 한참이나 걸렸다. 나는 전투태세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혹시 모를 경우들을 죄다 머릿속으로 떠올려보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무엇이 필요한지를 생각했다.
후둥이에게선 두드러기가 보이지 않아 안심하던 것도 잠시 이번엔 둘 모두 장염 같은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티슈를 뽑아 쓰듯 기저귀를 갈았다. 갈고 뒤돌면 또 갈고. 음식을 잘못 먹어서 난 두드러기인 줄 알았건만 진짜 얼굴은 장염이었다. 이 손님은 뻔뻔하게 숨겨놓았던 얼굴을 드러내고 제 멋대로 속을 뒤집어 놓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수분이 부족하지 않게 아이들에게 물을 챙겨주고 엉덩이를 닦을 때 쓴 물티슈와 갈고 난 기저귀를 최대한 깔끔하게 처리하는 것뿐이었다. 초대하지 않았건만 왜 와서 난리란 말인가. 우리 집에 왜 왔냐고 야무지게 따지고 싶은데 이 눔의 손님은 들을 귀를 갖지 못했으니 속만 타 들어갔다.
씻으러 데리고 갈 여유가 없어 있는 데로 꺼내 쓴 물티슈는 어느 날 갑자기 똑! 하고 떨어졌다. 맘에 안 드는 손님과 싸우려면 필요한 몇 안 되는 도구 중 가장 중요할 수도 있는 그것이 없어지니 어찌나 불안하던지. 하지만 질 수 없었다. 주문한 물티슈가 올 때까지 대충 휴지로 처리하고 욕실로 데려가서 씻기는 것으로 방법을 바꿨다. ‘방법은 많다 이거야!’
아무도 원하지 않는 곳에서 이제 좀 졌다는 것을 인정한 손님이 떠날까 싶을 무렵 이번엔 첫째와 남편에게 들러붙었다. 잘 달궈진 프라이팬에 떨어진 달걀이 순식간에 익어가듯 뜨겁게 내려쬐는 햇빛에 통구이가 될 듯한 주말이었다. 잠에 취한 선둥이와 큰 아이 둘을 데리고 남편이 산책을 가겠다며 나갔다. 오래도록 들어오질 않아 자꾸만 창밖을 내다보고 엉덩이를 들썩일 때쯤 얼굴이 흙빛이 되어 비틀대는 첫째를 필두로 남편과 아이들이 돌아왔다. 땀에 젖은 생쥐꼴을 하고 1층 소파에 들어 누운 첫째를 걱정스럽게 쳐다보고 있자니 밖에서 남편이 무어라 하는 소리가 들렸다. 오는 길에 길바닥에서 게워 올리고 만 첫째의 흔적을 치우러 가야 한단다. 하아… 이번엔 또 뭐란 말인가. 더불어 남편도 더위를 먹었는지 주말 내내 맥을 못 추고 틈만 나면 잠을 잤다. 에어컨 바람 탓인 것 같다며 뜨뜻한 바람이 불어오는 방에 대자로 드러누워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번엔 더위와 냉방병이 함께 온건가 싶었다. 나는 이번 싸움을 위해 그때 그때 빠르게 상태를 체크할 수 있는 매의 눈을 장착했다.
이주 연속 부르지도 않은 손님 덕에 나를 뺀 우리 가족들은 햇빛을 받지 못한 콩나물 마냥 비실댔다. 이쯤 되니 ‘이따위 주말 아예 안 왔으면 좋겠네!’ 하는 말이 절로 나왔다.
우리 집에 숨겨놓은 꿀단지라도 있는지 한번 온 손님은 떠날 줄을 모르고 방학을 코앞에 둔 3일 연속 휴일로 들떠있던 지난 주말 드디어 본성을 드러냈다. 내내 비가 오고 날씨가 좋지 않더니 쨍! 하니 맑아진 연휴 마지막 날이었다. 커다란 공원에 가기로 한 아침부터 둘째가 열이 나는 것 같다며 몸이 뜨겁다고 해서 같이 외출하기가 싫어 농담하는 줄 알았다. 아무 생각 없이 겨드랑이에 찔러 넣은 체온계에 표시된 숫자는 ’ 37.5’. 평소 열이 잘 나지 않는 아이라 순간 몸이 굳는 것이 느껴졌다. 잠시 후 다시 재 본 체온은 ’ 38.5’. 열은 계속해서 올랐다.
팔다리가 아프다는 말에 어릴 적 이빨이 날 때 그랬던 것처럼 성장통인가 싶었다. 하지만 오후가 되도록 떨어지지 않는 열에 뭔가 싸- 함을 느낀 나는 쓸 일이 없을 거라며 구석에 처박아둔 코로나 검사 키트를 집어 들었다. 그렇다. 이번에 찾아온 손님은 그 이름도 유명한 코로나였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늘 준비하고 있던 소독용 시트와 마스크 등을 다시 살펴보고, 온 가족이 마스크를 썼다. 아직 2살인 둥이들은 마스크도 쓰지 않았지만 격리 역시 할 수 없어 최악의 경우를 떠올리며 전투준비를 했다. 이번 싸움은 가족들 머릿수가 많은 만큼 오래갈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음날은 평일이었으나 우려하던 대로 첫째와 둘째는 학교를 쉴 수밖에 없었다. 우레 같은 환호성을 지르던 첫째도 그날 오후부터는 열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T짱이 쓰러지면 우리 집은 정말 큰일 나.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힘내야 돼!”라는 시엄마의 응원(?)을 받으며 정신없이 오라고 한 적도 없는 손님과 처절히 싸우고 있다.
시도 때도 없이 문 손잡이와 물건들을 소독하고 집안일은 물론 틈틈이 가족들의 리퀘스트에 대응한다. 월요일부터는 날짜가 어떻게 가는 줄도 몰라 수요일인 오늘, 당연하다는 듯이 집안의 타는 쓰레기들을 모아 밖으로 가지고 나갔다. 찢어질 것처럼 부풀어 오른 쓰레기봉투를 4개나 들고 계단을 내려오는 나를 이상하게 보며 ‘플라스틱 쓰레기 가지고 나온 거지?’라고 하시는 시엄마의 말에 화요일로 날짜를 착각하고 있던 것을 겨우 깨달았다.
충격적임과 동시에 전투의지가 불끈! 샘솟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 끝까지 버텨서 반드시 내 손으로 이겼노라 승전보를 올리는 거다!’ 나는 절대로 쓰러지지 않을 것이다.
'남의 집에 올 때는 양손이 무겁게’ 이런 당연한 것도 모르고 집안을 휘젓는 손님을 향해!
소독 티슈와 마스크를 양손에 들고 전진!
뭘 쓸까 고민하다가 한창 고민 중인 아이들의 X춘기 분투기가 떠올랐다.
'이거다!' 싶은 마음에 끄적이다가 맞닥트린 코.로.나.
맘 속 어딘가에서 우리는 안 걸릴 거라고 혹은 이미 무증상으로 걸리고 넘어갔을 거라고 안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디서 묻어온 건지 둘째를 시작으로 아이 넷 사이좋게 차례대로 열 치레를 하고 넘어갔다. 이럴 때는 각자의 페이스에 맞게(?) 열이 안나도 되고 아프지 않아도 되건만 어쩜 이리 똑같이들 앓는 건지 신기하다. 하나가 괜찮아지면 기다렸다는 듯이 다음 녀석이 열이 나고, 이걸 네 사이클 반복했다. 어른들은 가볍게.
그전부터 다들 상태가 메롱이었는데 징하다. 징해. 이 참에 면역력 키우기 특훈이라도 하는 걸까.
'엄마도 좀 쉬자!'를 수도 없이 외쳤던 몇 주간의 울분을 글로 뱉어냈다. 목까지 치밀고 올라온 답답한 것들을 글자로 토해내고 나니 참 시원하더라.
그러니까 간단히 말해서 분노의 끄적임이란 이야기다.
덕분에 나는 스트레스를 날리고 좋아진 컨디션으로 어둡고 긴 터널을 뛰쳐나올 수 있었다. 이제 와서 다시 읽어보니 좀 더 스펙터클 하게 써볼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뭐, 어째되었든 '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