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얼마 전까지 말이지

작년의 일이다.

매미가 목청 높여 울어대던 때였는지, 마룻바닥에 발을 내 딛일때마다 나도 모르게 움찔하고 마는 아침 이불속 따뜻한 온기가 기분 좋던 때였는지, 이도 저도 아니면 선선한 바람에 다음 계절이 기다려지는 때였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아마도 관심이 없어서 당시의 기억이 머릿속에 선명히 남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시누네가 살던 아파트가 공사를 하게 되어 베란다에서 키우던 메다카가 우리 집으로 왔다. 메다카란 일본에서 한국의 송사리를 개량한 것이라고 한다. '일본 송사리'라고 하면 되려나. 더 간단하게 물고기라는 말이다.


나는 물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불러도 오지 않고 맘대로 만질 수도 없는 물고기의 어디가 매력적인지 알 수가 없다. 아, 먹는 것은 이야기가 다르다. 날것부터 지지고 볶기까지 어떤 요리를 하건 잘 먹으니까. 언젠가 구피라 불리는 열대어를 키우던 친구는 나에게 수조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위로받아서 좋다며 몇 시간이고 들여다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우리 집에 온 메다카는 나의 기억 속에 있는 물풀과 자갈이 가득 담기고 공기 방울이 뽈뽈 올라오는 소리가 나는 사방이 유리로 된 수조에 들어있지 않았다. 물건 담는데 쓰일 것 같은 상자에 담겨 정원 한 구석 시엄마가 빨래를 널 때 쓰는 건조대가 딱 버티고 있는 공간에 놓였다. 시엄마는 커다란 화분같이 생긴 통에 자갈을 깔고 물풀도 넣어 메다카들을 옮겨주었다. 숨을 공간이 있어야 알도 낳는다고 하며 머리카락처럼 가느다란 뿌리를 늘어뜨리며 뽈록한 배를 내밀고 동동 뜨는 부레옥잠도 챙겨 넣었다. 메다카가 작아서인지 먹이도 꼭 빗자루로 방바닥을 쓸었을 때 나오는 먼지처럼 쬐그만했다.


아이들이 어찌나 좋아하던지 틈만 나면 쪼르르르 달려가 수조를 들여다보고 먹이를 준다고 난리였다. 둥이들은 정원 한쪽에 깔아놓은 작은 돌멩이를 던져 넣기도 하고 메다카의 몸집에 몇 배나 되는 손으로 수조 속을 휘젓기도 하는 꼴이 꼭 작은 괴수 같았다.


메다카는 자세히 보면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알을 풀 그늘 속에 낳아 놓기도 하고 수가 늘었다가 웬일인지 줄었다가 하다가 어느새 서너 마리만 남아버렸다. 컬러풀하다고 하기는 뭐했지만 이런저런 색을 가진 아이들이 있었는데 그늘 속에 숨으면 녹아들어서 보이지 않는 거뭇한 녀석들만 있었다.


밥도 잘 안 먹고 어딘지 팔팔해 보이지 않는 녀석들이 걱정이 되었는지 시엄마는 여전히 메다카를 키우고 있는 시누네 집에서 컬러풀한 아이들을 여럿 데리고 왔다. 빨갛고 하얗고 반짝반짝 빛나는 등을 가진 메다카가 수조 속을 신나게 헤엄쳐 다녔다. 작은 괴수들의 횡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요리조리 헤엄쳐 다니는 모습이 듬직하면서 귀엽기까지 했다. 어느새 현관을 나갈 때면 빠짐없이 들여다보고 말까지 걸게 되어버렸다. 이런 게 물고기와의 교감이라는 건가?


어느 아침, 여느 때처럼 둥이들을 데리고 시엄마가 계시는 1층으로 내려갔다. 계속되는 더위로 에어컨이 틀어져 있지 않은 곳은 찜통처럼 가만히만 있어도 땀이 절로 나왔다. 둥이들은 너무 더워서 현관 앞 그늘 속에서만 놀렸는데 물놀이가 하고 싶은지 수조 속에 손을 담고 놀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먹이를 주면 어딘가에서 몰려들어 작은 입을 뻐끔대던 메다카가 보이질 않았다. 물풀을 뒤적대다가 그늘 속에서 움직이던 거뭇한 녀석 한 마리를 찾은 것이 다였다.


"메다카가 다 어디로 가버렸어."


어제까지만 해도 팔팔하던 녀석이 종횡무진 헤엄을 치고 다녔는데 하룻밤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시엄마는 밤사이 길고양이가 잡아먹은 건 아닌가 하셨다. 너무 더워서 증발해버린 것 아니냐는 말씀을 덧 붙이면서. 더 신기한 건 서로 사는 곳이 멀리 떨어져 있는 시누네서 키우던 메다카도 어디론가로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다 크면 흔적 없이 꼭꼭 숨는 것이 메다카의 특징인가?


다 어디로 간 건지 찾는 사이 남아있던 한 마리도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다. 여전히 둥이들은 메다카 밥을 주겠다고 밖에만 나가면 먹이가 든 봉지를 찾아와 흔들어댄다. 작은 물고기들이 오가던 수조 속은 부레옥잠들의 뿌리로 가득 찼다. 둥글둥글한 배를 뽈록 내민 풀은 새파란 잎을 이리저리 올리더니 보랏빛 꽃을 활짝 피웠다. 물풀인지 흙 속에 뿌리를 박고 있는 풀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만큼 푸릇하고 단단해 보이는 잎들로 빼곡해졌다.


시엄마는 이제 더 이상 메다카는 키우지 않으시겠다고 선언하셨다. 요즘은 수조 한편에 작게 자리 잡은 연꽃잎에 눈이 간다. 연꽃이 활짝 피면 그것도 참 이쁘겠다 싶은 것이 물풀과 교감을 나눠볼까 싶기도 하다.


몸집이 작고 날쌔어서 깜짝 놀라는 일이 있을 때 바닥에 깔린 자갈 사이로 들어가 못 나오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 되돌아나갈 생각도 하지 못할 만큼 급한 일이 있었던 건지. 너무 많아 수조가 좁아진 탓에 서로 잡아먹지 않도록 다른 통에 나눠 담아두기도 했는데 아직 남아있는 먹이만 아니면 꿈이었다 해도 그런가 보다 할 것 같다.


퐁퐁 샘솟던 색색깔의 메다카들을 향한 애정(?) 은 금세 사그라들었다. 어느 뜨거운 여름 형체도 남기지 않고 증발한 그때 나의 애정도 함께 날아가버렸다. 기껏 정이 붙나 싶더니 이모양이다. 그러니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물고기와 한 교감 나누던 사이었는데 말이다.


실패한 그때가 성공 바로 직전의 순간일 수도 있다고 했는데... 메다카를 더 데리고 와서 길러보자고 말해야 하나... 아니 뭐야. 나 물고기에 미련이 남은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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