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생 부부싸움을 하지 않으신 아버님

시가에 가야 하는 이유-2

by 프니

<시가에 가야 하는 이유-1> 다음 편





다음날이 되었다. 힘겹게 뜬 눈으로 끔뻑끔뻑 방 안을 둘러봤다. 낯선 풍경, 싸한 느낌. 아, 여기 우리 집이 아니구나, 아니 그럼 여긴 어디??? 시가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10시. 하하 하하하 이른 시각에 아침밥을 먹는 문화가 있다고 했는데, 나는 우리 집에서 하던 대로 늦잠을 자버렸다.

변명을 하자면 그 전날 새벽 5시까지 일을 하고, 9시에 일어나자마자 시가에 왔고, 아버님의 환갑잔치를 하고 머니건을 쐈으며, 과일 4종류를 먹고, 닭개장까지 먹었으니 안 피곤하면 그것이 인간일까. 싶었지만 분명 민망한 일이었다. 평소 아침밥을 안 먹지만, 여기서는 먹어보고 싶었다..


정신을 차리니 거실에는 쇠젓가락 부딪히는 소리가 불규칙하게 들렸다. 소리만으로 추측하자면, 거의 다 드신 것 같았다.


주먹으로 베개를 치며 남편에게 나 민망해서 못 나가겠다고 소리 없이 외치니, 남편은 괜찮다고 날 끌고 거실에 나갔다. 퉁퉁 부은 눈과 정돈되지 않은 모습으로 시부모님께 인사를 하고 화장실로 튀었다. 찬물로 셀프 따귀를 때렸다. 곧 정신이 들었고, 너무 늦게 일어나 죄송하다 말하고 아침밥을 먹었다. 역시 맛있었다.


뒷정리를 하고 나니 정신이 들었다. 그때 아버님이 가장 좋아하신다는 서프라이즈의 음악이 흘러나왔고, 가족 모두 모여앉았다. 사실, 프로늦잠러는 서프라이즈를 볼 수가 없었다. 본방으로 보는 게 십 년 만인가, 9년 만인가 속으로 계산기를 두드길 대 어머니가 내게 말하셨다.




"싸우지는 않니?"

가만, 이 질문 어디서 많이 들어봤다 싶었는데 우리 아빠가 남편에게 자주 물어보던 질문이었다. 몇 개월 전에도 그랬다. 친척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남편은 "예,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습니다."라며 혼자 웃었고, 모두 그럴 리가 없을 텐데? 하는 표정으로 바라볼 때였다. 아빠는 일 년이 다 돼가는데 안 싸운 게 이상하다고 나를 쳐다봤다. 나도 아빠와 같은 표정을 지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남편에게 물었다. 아니 따졌다. 우리가 한 번도 안 싸웠다고? 도대체 왜 그런 거짓말을 하는 거야! 싸우는 게 나쁜 게 아니라고!! 그러자 남편은 정말 본인은 한버어어어언도 싸운 적이 없다며 허허 웃는데, 그럼 우리의 전투는 전투가 아니었던 것인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런 아들을 30년간 키워주신 어머님께서 내게 물으셨다. 그래서 난 진실을 말하기로 했다.

"어머님, 근데 이상해요. 저랑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대요. 솔직히 저는 몇 번 싸운 것 같은데.."


안녕하세요에 출연한 사연자처럼 어머님에게 이 답답한 사정을 말씀드렸다. 그러자 조용히 서프라이즈를 보시던 아버님이 풉 하고 웃으셨다. 아니 나 빼고 다 웃고 있었다. 어머님이 말씀하시길, 아버님도 평생 그 소리를 하신단다. 본인은 한 번도 아내와 싸운 적이 없다며..



"저.. 정말요? 한 번도 안 싸우신 게 맞아요?"

"아니지, 얼마나 고래고래 많이 싸웠는데.."


아버님: "아니 그게 나는 싸운 게 아니지요~~"

어머님: "나는 이 소리를 33년을 듣고 있어."



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제야 나도 웃을 수 있었다. 싸우지 않았어 병에 걸린 남편의 원인을 알아낸 사람의 통쾌한 웃음이었다. 남편이 항상 본인은 싸운적이 없다고 말할 때마다 굉장히 얄미운 감정이 들었다. 결국 화를 내고 성을 낸건 나 혼자고, 본인은 태평양같은 마음으로 화를 내지 않았다는 걸 말하고싶은 건가? 남편의 진짜 마음을 알 수 없어 답답할 지경이었는데 답을 찾은 것 같다.



남자를 볼 때 남자쪽 집을 방문해서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어떻게 대하는지를 잘 지켜보라는 조언을 들은 적이 있다.

자식은 부모의 모습을 보고 자라기에, 아빠의 모습이 곧 본인이 된다는 소리였다. 또 다시 이해할 수 없는 요상한 행동을 한다면 시가에 와야겠다고 남편에게 말했다. 좋다고 웃었다.



한평생 어머님과 싸워보신 적이 없으신 아버님과, 아버님과 자주 싸워보신 어머님의 집을 떠나며 나는 앞으로 평생 싸울 예정이 없는 남편을 조금 더 알게 된 것 같았다. 시가에 다녀오길 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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