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코딱지 사랑

첫사랑부터 지금까지

by 프니

7등신의 몸, 그 시절 누구나 부러워했던 짱구 머리, 지식인의 상징 뿔테 안경, 건강하게 시커만 흑빛 피부, 나는 그 아이를 남몰래 흠모했었다. 다른 남자아이들과는 다르게 경박스럽게 복도를 뛰어다니지도 않았고,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며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지도 않았다. 그 아이가 교실에서 가장 많이 하는 일은 책을 보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늘 책상 모서리에 놓아두었던 파란 필통. 1/2층으로 나누어 정돈이 잘 되어 있던 정갈한 필통이 그 아이의 성격을 보여줬다. 그게 참 좋았다. 마치 지우개를 한 방향으로만 사용할 것 같은 고집스럽지만 깔끔한 이미지랄까.

다른 아이들과는 지식수준도 남달랐던 그 아이는 선생님의 칭찬을 받는 우리 반 대표 똘똘이였고, 나는 첫 짝사랑 상대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손을 잡아 본 것도 아니고, 야 우리 사귀자 라고 말한 적도 없었지만 그저 한걸음 뒤에서 말없이 바라보기만 해도 좋았다. 누군가 짝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아서 더 아름답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이 왠지 좋았다.

나는 그렇게 갑작스레 사랑에 빠져버렸고, 책상 자리를 바꾸는 날이 올 때마다 마음을 졸였다. 혹시라도 짝이 돼버리면 심장이 나대서 들켜버릴 거 같았기 때문에 나는 짝보다는 같은 조원이 되고 싶었다. 내 목표는 그의 마음을 얻는 게 아니라, 그를 가까이서 지켜보고 싶은 것이었으니. 어릴 때부터 소탐대실의 삶을 깨달은 탓이었다.


그리고 곧 나의 꿈이 현실로 이루어졌다. 이전에는 저 멀리서 뒤통수나 봤었는데 가까이서 볼 수 있게 된 거다. 대각선 방향으로 조심스레 눈길을 돌리면 창가에 비친 햇빛이 그 아이에게 쏟아진 탓에 눈이 부셨다. 자연광까지 가미되니 티브이를 뚫고 나온 만화남주인공 같았다.

수업이 시작됐다. 선생님을 보다가 힐끔 그 아이를 보고, 교과서를 보다가 그 아이를 또 본다. 아무도 내 눈알이 빠르게 굴러가는지 모를 나 혼자만의 시간. 그 아이는 파란색 뿔테 안경다리를 한번 손가락으로 올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아아, 공부에 집중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저 아이는 우리나라를 이끌어나갈 박사가 되겠지, 아니면 대통령이 되어도 참 어울리겠다는 생각으로 경외감이 들려던 차였다.

그 아이는 잘 잡고 있던 연필을 갑자기 내려놓더니 고개를 기웃한 채로 손가락을 코에 갖다 대자마자 코를 파기 시작했고 손가락에 고이 올려진 코딱지를 보고는 입으로 넣어버렸다.

아, 믿을 수가 없었다. 코딱지를 정성스레 파는데 5초, 응시하는데 3초, 입으로 넣는데 1초, 오물오물하는데.. 아 모르겠다. 내게는 슬로모션에 걸린 것처럼 잔인할만틈 느리고 느리게 펼쳐졌다. 내가 몇 개월을 지켜보던 그 아이가 코딱지를 먹는 취향을 가졌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이건 정말 믿기 힘든 일이었다. 고작 10년의 인생을 살아낸 내가 감당하기에는 벅차고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 아이가 공부에 집중한 나머지 정신이 팔려 무의식에 한 행동이 아닐까 싶어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코를 파고 심지어 먹기까지 한 그 광경을 모른 체 해주기로 한 거다. 하지만 나의 믿음이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걸 알려주려는 듯 주기적으로 당당하게 코딱지를 먹기 시작했다.그 후로 나는 그를 잊기 위해 노력했다. 그 아이에게 너 코딱지 좀 그만 파, 아니 그만 먹어라고 할 용기도 없었고, 만약 잘 되더라도 손잡을 때마다 오늘은 코딱지 어느 손으로 팠어?라고 물어볼 수 없으니까..

나의 첫 짝사랑은 참 깔끔하게 끝이 났다. 신기하게도 미련 따위 없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으니 누군가가 좋아지면 혹시 코딱지 드시진 않으시죠?라고 물어보고 싶어 진다는 거다. 그런 질문은 해보지는 않았지만 괜히 취향이 그쪽일까 걱정은 됐다.

10살의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 결혼을 했다. 잠에 들기 전 갑자기 코딱지 짝사랑이 생각나 혼자 웃음이 터졌다. 나는 이 웃긴 이야기를 옆에 누워 게임 삼매경에 빠진 백에게 말해보려 운을 띄었다.

"자기야, 코딱지 먹는 사람 본 적 있어?
아니 내가 초딩때.."

"나 가끔 먹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대화는 흘러갔다. 마치 부산행인줄 알았는데 이건 강원도 가는 버스라고 알려주는 아저씨의 말을 들은 것처럼 당황스러우면서 당혹스러웠다.



"아니 나랑 만나면서도 먹은 적 있어? 언제??"
"정확히 기억 안 나는데 초등학교 때까진 가끔 먹었어."


백의 말에 너무 어이가 없으면서도, 동시에 백과 나는 운명이구나 싶었다. 내가 경기도 남부지역에서 코딱지 먹는 남자를 좋아하고 있을 때, 경기도 광주에서는 백이 코딱지를 파먹고 있었다니. 그리고 시간이 흘러 바로 우리가 둘이 만났다니. 부부는 끊어지지 않는 실로 연결된다더니 우리는 그전에 코딱지로 뭉쳐진 것이 아닌가! (의미부여)



문득 갑자기 백이 내 앞에서 그 두꺼운 손가락으로 코를 신명 나게 판다면 나는 어떤 표정을 짓게 될까 궁금해졌다. 그깟 코딱지가 뭐라고, 난 그래도 백을 사랑할 거야.라고 외쳐보지만 뜬금없는 백의 코딱지 양심선언으로 당황스러웠던 밤이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삶이란 모두 태어나면서 각자 역할을 부여받고, 그 역할에 맞게 충실히 연기를 하며 살아가게 되는 연극판이 아닌가 하는 생각. 그렇다면 아무래도 이번 생에 내게 주어진 역할은 코딱지가 쏘아 올린 사랑이야기의 여주인공이 아닌가 싶다.


잔인하게 끝난 내 첫사랑부터 마지막이 될 사랑까지 구수한 코딱지의 냄새가 난다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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