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를 방문하고 깨달음을 얻은 며느리의 글
"아버님 환갑인데 100만 원 드리는 거 어때?"
코로나 덕에 여행은 개뿔, 잔치도 못하게 돼버린 아버님의 환갑을 맞이하여 백만 원을 드리자고 했다. 가 "혹시 61만 원은 조금 그러려나..? 의미 있는 돈이긴 한데.."라고 남편을 떠보았다.
그래도 100이면 100이고 50이면 50이지, 61만 원은 조금 건방져 보이는 금액 같아 조심스레 물었다. 근데 남편의 반응은 달랐다. 물개 박수를 치며 그거 좋겠다고 동의를 하더니, 그럼 돈을 "머니건"에 넣어서 쏴보자고 한술 더 뜨기 시작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머니건은 조금 그렇지 않냐, 아들놈아?라고 아버님이 말씀하실 것 같았다. 그냥 이쁜 봉투에 넣어드리자 하니, 우리 아빠는 무조건 좋아한다며 점심시간을 반납하고 대형 문구점에 가서 머니건을 기어이 사 온 남편과 함께 시댁에 방문한 어느 날이었다.
점심을 거하게 먹고, 각자의 자리로 흩어지려던 차 작전이 시작됐다. 빨간 머니건을 가방에서 꺼낸 남편은 아버님에게 한번 쏴보라며 손에 쥐어주었다.
아버님이 총을 발사하는 그 순간, 가짜 돈과 진짜 돈이 공중에 흩날리고 있는데... 이건 마치 영화에서 콩이 팝콘이 되어 날아다니던 그 장면과 흡사했다.
이게 뭔 돈이냐며 허허 대신 하하 웃으시던 아버님은 환갑 기념 61만 원 금액이라는 사실에 더 활짝 크게 웃으셨다. 혹시나 분위기나 싸해질까 봐 뒤에서 쳐다보던 나는 나를 제외한 시댁 식구들의 농도 짙은 웃음을 코앞에서 관람했다. 남편 말이 맞았네..
머니건의 소동이 끝나고 과일 타임이 시작되었는.. 데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토마토, 청포도에 복숭아 그리고 파인애플까지. 뷔페에 힘없이 늘어져있는 과일들보다 오백 배는 더 맛있어 보이는 과일 대잔치가 열린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처음 시가에 갔을 때에도 나는 밥보다 과일을 더 많이 입에 넣고 나왔던 기억이 있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식탁에 모였는데 닭 한 마리가 소금과 사이좋게 놓여있었다.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이건 애피타이저야". 닭 한 마리로 입가심을 하고 닭개장을 저녁으로 먹자는 말씀이셨다. 애피타이저는 정말 말 그대로 애피타이저였다. 얼큰하게 끓여진 닭개장을 대하는 시가 식구들, 특히 남편의 모습은 정말이지 경외감이 들 정도였다. 언제나 음식에 최선을 다하는 남편처럼 식구들도 그러했다. 신기한 것은, 맛있게 잘 드시는 분들과 먹으니 슈퍼 최고 입 짧은 나 또한 맛있게 그리고 즐기며 먹게 된다는 것..!
부엌에서는 익숙한 남편의 냄새를 맡았다. 10여 종이 넘는 양념들이 줄지어 정렬되어있었고, 수많은 수납공간들의 속은 모두 동일하게 깔끔했다.
부부 성토의 날에 남편이 한 말이 생각났다. 서로가 서로에게 하고 싶었던 (참아왔던) 말이 있다면 오늘 다 지껄여보자! 하는 취지의 날이었다. 나는 선빵을 날렸고, 바로 뼈를 맞았다. 남편은 내가 생각보다 정리정돈을 잘 못한다고 했다. 너무나 맞는 말에 할 말이 없어서 반박할 수 없었다.
고개를 끄덕일만한 깔끔한 부엌을 보며 스스로 반성하고 동시에 남편을 이해하게 되었다.맨날 깔끔한 부엌만 보다가 어질러진 부엌을 보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오죽하면 부엌일은 본인이 다 하면 안 되냐고 부탁했을까.
이불을 덮고 누웠다. 남편은 먹방 유튜브를 보며 군침을 다시고 있었다. 닭개장을 먹기 전에 닭 한 마리를 애피타이저로 먹은 오늘, 나는 공중에 흩날리는 돈을 보며, 다양한 과일을 먹으며, 배부르게 음식을 맛보며 남편의 역사를 돌아봤다. 맛있는 하루가 끝나가고 있던 아쉬운 밤, 나는 남편을 조금 이해하게 된 것 같았다.
(그리고 그다음 날 먹은 비빔국수, 비빔국수+계란 3개를 국롤로..!)
<시가에 가야 하는 이유-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