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버섯은 아닌가요, 선생님?"
"아니 나이가 몇인데 검버섯이 나요, 검버섯은 아닙니다."
피부과 진료실에 앉은 엄마는 초조한 듯 검버섯이 그려진 손을 어루만지며 의사 선생님에게 물었고, 선생님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한마디의 말로 엄마를 안심시켰다. 엄마는 내 오른쪽 광대에 불쑥 생겨버린 거무스르한 것을 보자마자 나를 피부과에 끌고 왔다. 23살 때의 일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엄마는 다행이다, 다행이다. 검버섯이 아니라 다행이다라는 말을 되내었다. 하마터면 검버섯 하나에 엄마가 울 뻔했던 날이었다.
어릴 적부터 늘 궁금해하던 것 중 하나, 나는 아빠를 닮았을까, 엄마를 닮았을까. 둥글고 넓적한 얼굴은 아빠 같은데 이목구비는 또 엄마 같지만 작은 입은 아빠 같고, 목과 허리가 긴 건 또 엄마 같지만 뒤통수는 아빠 같기도 하고. 확률상으로 아빠와 엄마 모두를 닮은 것이 당연한 것이지만 그때의 나는 확실하게 구분 짓고 싶었다.
"엄마 때문에 허리가 긴 거 같아, 아빠는 안 길잖아."
"그래, 네가 나 닮아서 허리가 길긴 해."
"그리고 목도. 목도 너무 길어. 꼭 학같아."
"목은 긴 게 이쁜 거야."
"종아리도 짧고....."
나는 그중에서 기다란 사탕 막대 같은 목과, 다리가 짧아보이게 만드는 긴 허리가 싫었다. 그래서 자주 엄마에게 투정을 부렸다. 잦은 투정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던 엄마, 그런 엄마가 검버섯에는 왜 덤덤하지 못했을까. 엄마는 할머니의 작은 몸에 퍼져버린 검버섯을 보고, 나중에 본인도 그렇게 될까 무서웠다고 했다. 세월은 흘렀고, 엄마의 몸에는 할머니의 흔적이 새겨졌다. 하나의 징표처럼.
엄마의 얼굴에는 검버섯이 두어 개, 그리고 종아리에는 열두 개 정도가 있다. 언제부터 엄마의 희고 고운 다리에 검버섯이 생긴지는 모르겠다. 엄마는 할머니를 닮아 이렇게 되어버렸다며 양말을 최대한 올려 신는다. 그러고 보니 할머니의 얼굴, 손, 팔에는 엄마의 것보다 더 진한 검버섯이 있었다. 엄마는 엄마의 엄마를 닮은 검버섯을 보며, 엄마의 딸의 얼굴을 걱정했다. 혹시 그게 검버섯일까 봐.
몇 년 전에는 숨 쉬는 것이 힘들어서 엄마와 함께 병원으로 검사를 하러 갔었다. 병원을 가는 내내, 도착하고 나서도 엄마는 별 말이 없었고, 그런 엄마 옆에 앉아 핸드폰을 하던 중 내 이름이 불렸다. 외투를 벗어 엄마에게 맡기고 검사실로 들어가다 뒤돌아 본 엄마의 모습을 보고 순간 눈물이 날 뻔했다. 엄마는 내 외투를 무릎에 올려두고 눈을 질끈 감고 손을 모으고 있었다.
엄마는 매번 그런 식이다. 직접적으로 본인의 걱정을 보여주는 것 대신 늘 뒤에서 조용히 기도를 하면서 그렇게 딸을 지킨다. 그뿐만이 아니다. 나이를 먹으니 정수리가 휑한 거 같다는 장난스런 투정 한마디에 엄마는 나 몰래 탈모 어플을 깔았고, 결혼하는 내게 탈모방지 샴푸를 사주기도 했다. 그런 엄마의 마음을 목격할 때마다 나는 덜컥 겁이 난다. 아이를 낳으면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진짜? 나밖에 모르는 나도 엄마를 닮을 수 있을까. 확실한 것은 피부 위로 검버섯이 피어오르더라도 나는 엄마에게 탓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엄마를 닮을 수 있다면 그깟 검버섯쯤이야. 글을 쓰다보니 엄마 다리에 피어오른 귀여운 검버섯들이 보고 싶어 졌다. 아니 사실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