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부부의 밤은 낮보다 시끄럽다.

침대위에서의단상

by 프니

요즘따라 골골 거리는 백을 위해 비타민을 사러 약국에 갔다. 큰맘 먹고 3일만에 한 외출, 7만원짜리 비타민을 4만원에 판다니 내 소중한 40분의 시간을 투자할 만 했다. 총 세달치의 비타민을 사고 결제를 하려는데 약사님은 무서운 눈빛과 더 무서운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꼭! 아침, 점심에만 드세요! 저녁에 먹으면 그날 잠 못 잘 수도 있으니까.."

"아, 네. 알겠습니다."


나는 백에게 비타민을 샀다는 소식과, 저녁에 먹으면 안된다는 말을 잊기전에 카톡으로 보냈다. 저녁에 집에 돌아온 백은 오자마자 쇼파에 누워 기력을 못 추더니 벌떡 일어나 비타민을 먹어야겠다며 부엌으로 갔다. 지금 먹으면 절대 잠에 못들거라고! 좀만 참고 내일 아침에 먹으라고 멱살을 잡고 뜯어말려도 백은 절대 그럴리가 없다며 야무지게 그 큰 비타민을 꿀꺽 삼키고는 웃음을 지었고, 정말 예상대로 그는 얼마안가 코를 골고 잠을 자기 시작했다.


아, 역시 본인 몸은 본인이 가장 잘 아는 것인가...!



나는 야행성~너는 아침형.


결혼을 한지도 어언 반년이 다 되어가거늘 둘이 같은 침대에 누워 잠을 자는 건 여전히 적응이 안 된다. 백과 나의 가장 다른 점은 나는 잠에 쉽게 못 든다는 것이고, 백은 눕자마자 잠드는 수면 천재라는 사실. 한마디로 나는 야행성, 백은 아침형인간인 것이다.


마이너스 8.5의 시력인 나에게 안경이란 빛이요, 생명이다. 때문에 아무리 침대 위라고 한들 안경을 벗고 눕는다는 건 내게 쉬운 일이 아니다보니 안경을 쓴 채로 핸드폰을 만지작만지작 거리게 되는데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새벽 3-4시까지 잠에 못 들기를 여러 번. 매일 늦은 시간이 되어 일어나 피곤해하는 내게 백은 항상 말한다.


"오늘은 안경 좀 일찍 벗는 게 어때?"

"아니~안경 벗으면 안 보인다니까?"


tvN-삼시세끼

백은 어차피 자려고 불 껐는데 볼게 뭐 있냐며 묻는다.

백의 논리는 침대 위에서는 안경을 벗어야 하고, 안경을 벗으면 쉽게 잠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 진짜 속이 꽉막힌 사람같으니라구.

아니 어떻게 이 황금같이 근사한 밤공기를 즐기지 못하는 거지? 뭐가 급하다고 일찍 자려는걸까? 양가부모,친인척앞에서 서로를 항상 이해하고 아껴주겠노라 약속했던 우리는 침대에서만큼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잔소리 그만하고 주무셔요"

"넵, 먼저 잘게요"


이때부터 나는 백이란 인간에 대해 관찰을 하기 시작한다.

"와... 어떻게 이렇게 바로 코를 골지? 설마 코 고는 척하는 거 아니야? 어떻게 이러지?"

과연 군대 훈련소 첫날에도 눕자마자 바로 잠들었다던, 심지어 숙면을 했다던 숙면장인답다.



1. 수면프리토킹


게다가 그는 무려 수면프리토킹이 가능한 사람이었다. 어느날은 너무 너무 심심해서 쿨쿨 자는 백의 귀에 대고 "나 심심해" 라고 말해봤더니 "아우~잠을 자야지, 밤은 원래 심심해."라며 대답을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깜짝 놀라 백의 뺨을 아주 약하게 살짝 쳐봤다. 그랬더니 이번엔 아무 미동이 없다. 이번에는 발바닥을 간지럽혀봤다. 역시 이번에도 큰 움직임이 없다.


다시 백의 귓구멍에다 대고 말을 해봤다.

"자기야 너무 심심하다고!!!!!!"라며 아까보다 조금 더 소리를 높여 말했더니 이번에는 옆으로 돌렸던 몸을 돌려 날 안더니 "그럼, 뭐하고 놀까?"라고 하는데..

도대체 지금 제정신인건지, 제정신이 아닌건지 모르겠는 백이 무서워 안겨있던 백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2. 이동능력


그의 놀라운 (수면)능력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코를 골며 자다가도 갑자기 벌떡! 일어나 거실로 걸어나가 쇼파에 눕는 짓거리까지 하는 그는 정말 침대를 뒤집어 놓으신 수면단 선생님!이 아닐 수 없다.


처음에는 몽유병인가 싶어 무서웠는데 단순히 덥다는 이유였다. 그럼 온수매트를 끄고 자라니까 그건 또 춥다고 한다. 정말 이게 뭔 무더운 여름날 패딩입고 덥다고 하는 소리인가.


하지만 가장 신기한 건 그 시끄러웠던 새벽의 모든 일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연애할 때는 몰랐던 점이다.


백에게 혹시 본인이 몽유병 있는 거 아냐고 물으니 그럴 리가 없다고 팔짝팔짝 뛰었다. 그러더니 예전에는 일어나면 항상 개운했는데, 언젠가부터 잠만 자고 일어나면 팔다리가 아프다는 둥, 머리가 아프다는 둥의 말을 하기 시작했고, 그 피로함이 심해지더니 결국에는 내게 혹시 밤새 자기를 괴롭히는 거 아니냐며 물었다.


"헛소리하지 말고 주무셔요" 라는 말에 코고는 것으로 대답하는 백. 오늘도 누구보다 일찍 하루를 마감하는 백을 옆에 두고 이제 나의 하루를 시작한다. 즐겨듣는 라디오를 들으며 인터넷 웹툰을 몰아보다보면 어느새 훌쩍 지나버리는 시간, 난 이 여유로운 어두운 밤이 좋다.


우리는 미처 알지 못했던 서로의 모습을 발견해주고 있다. 백은 나를 통해 본인의 새로운 모습을 알게 되고, 나 또한 그렇다. 나도 가끔은 그를 놀래키고 만다.


오늘도 백은 쇼파에서 잠을 자고, 혼자 넓은 침대에 누워 라디오를 듣고 있다. 거실에서 코 고는 소리가 불규칙하게 들린다.


우리의 밤은 낮보다 더 시끄럽다.

이러라고 있는 밤이 아닐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