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가끔 천둥이 치고 기차소리가 난다.

부부의 생리현상

by 프니


생리현상(방귀)에 관한 이야기로, 냄새가 날 수 있는 글입니다. 식사 중에는 읽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남편이랑 함께 이 집에서 보낸 계절은 겨울, 봄. 단 두 계절.

때아닌 벼락과 강풍을 동반하는 천둥번개의 계절, 여름은 이번이 처음인데 나는 이미 수십 번의 천둥소리를 들었다.


아 깜짝이야!

퇴근하고 춤을 추며 신발을 벗던 남편이 갑자기 방귀를 뀌었다. 그 소리는 정말 놀라울 만큼 우렁찼는데, 방귀에도 자아가 있다면 이번 방귀는 아마 자존감이 하늘을 뚫을 놈이었다. 한걸음, 한걸음 템포에 맞추어 리듬감을 내뿜는 저 대찬 소리를 듣고 있자니 당황스러운 맘에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남편은 황당해하는 내게 미안하다며 헤헤 웃고는 샤워하러 화장실로 슝 하고 들어갔고, 거실에는 나와 무거운 방귀의 공기만이 가득했다.


결혼하고 한 달도 되지 않은 날이었다. 아니, 아무리 부부라지만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않나? 한소리를 해야 하나, 참아야 하나 고민을 하며 남편이 화장실에서 나오기를 기다렸다.






나보다 1년 전에 결혼 한 친구는, 여전히 방귀나 트림을 남편 앞에서 해결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지 그렇지, 부부라도 에티켓은 지켜야지"


고개를 끄덕이다 생각해보니 우리는 이미 연애를 하면서 모든 걸 튼 사이였다. 그것도 고백을 받은 지 3개월 만에. 낭만이 흐르던 선선한 가을밤, 손잡고 공원을 걷다가 포문을 연건 다름 아닌 나였다. 경쾌한 소리가 발사되어 나도 모르게 "혹시 소리 들렸어?"라는 쓸데없는 질문으로 탄로가 나버렸던 어이없던 순간, 구남친(현 남편)은 그게 뭐 미안한 일이냐며 웃었고, 그 날 이후로 우리는 약속했다.

방귀는 참지 말고 시원하게 끼고, 미안해하지 말자고.



그렇게 서로의 방귀에 익숙해진 상태에서 우리는 결혼을 했지만, 연애와 결혼은 정말 달랐다. 내가 알던 남편이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남편의 가스 배출 횟수는 연애 때와는 분명 달랐다.


처음에는 그저 웃겼다. "아니 무슨 방귀대장 뿡뿡이도 아니고 왜 이렇게 자주 끼는 거야??? 원래 방귀 잘 뀌어? 연애할 때는 껴도 내가 꼈지, 여보는 많이 안 뀌었잖아? " 물으니 머리를 긁적이며 말한다.


"원래 많이 꼈는데, 못 들은 거 아니야?"

"아, 그랬나? 사랑에 귀가 멀었었나.."




방귀를 참다가 응급실에 실려갔던 친구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래,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끼리 그깟 방귀가 무슨 대수랴, 참을 수 없는 건 참지 말아야지. 나도 끼고 너도 끼고, 아름답게 생각해보자. 그렇게 나는 2020년의 겨울, 때아닌 천둥소리를 들으며 살았다. 그래서 난 이제 는 정말 방귀 내성이 생긴 줄만 알았다.


하지만, 그날은 참을 수 없었다. 티브이를 끄고, 스탠드만 켜놓은 거실 테이블에 앉아 미래를 계획하며 에이포 용지에 서로에게 조언의 글을 쓰고 있을 때였다. 바로 그때, 어디서 웬 기차가 들어오려고 준비 중인지, 쿠루르르으웅 하는 소리가 들렸고 곧 어김없이 불길한 냄새가 퍼졌다.



정성스레 남편을 생각하며 한 글자, 한 글자를 써 내려가던 펜을 탁 내려놓고, 눈을 질끈 감은 후 깊은 한숨을 들이켜고 한 박자 마저 쉬고 남편에게 소리쳤다. "아, 쫌!"


고개를 드니 허겁지겁 방문을 열고 손으로 풍차를 돌리며 허우적거리고 있는, 이번에는 정말 미안하다며 울상을 한 남편이 보였다. 그 꼴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나서 하마터면 나도 힘없는 방귀가 터져 나올 뻔했다. 우리는 그렇게 오랫동안 배를 부여잡고 뎅구르르 구르며 웃고 또 웃었다. (아마 냄새가 나지 않아 웃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나 진짜 기차가 우리 집 들어오는 줄 알았잖아, 다음엔 그냥 천둥소리로 부탁해. 그게 맘처럼 되진 않겠지만, 차라리 그게 듣기 편하다."


너그러이 남편의 방귀를 인정하고 잠에 든 나는, 그날로부터 며칠 뒤 남편 앞에서 기차 통을 삶아 먹은 듯한 소리를 배출했다. 그리고 우리는 또 웃었다.





결혼을 하고 참 많은 조언을 들었다. 각자가 맡은 역할과 해야 할 일들, 하지 말아야 할 것들, 지켜야 할 것들을 듣고 있자니 결혼생활 매뉴얼이라는 게 있나 싶었다. 그래서 방귀나 트림은 서로를 위해 참아야 하는 인내의 열매라 생각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였고, 그 열매는 한 달도 되지 않아 땅으로 뿅 하고 떨어졌다. 우리의 매뉴얼은 달랐다. 만약 냄새가 날 경우에는 즉시 조치하고, 냄새가 없다면 서로의 소리를 맘껏 즐기기로 했다.



언젠가 서로의 방귀를 듣고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순간이 온다면 어떻게 하냐고 물었더니, 절대 그럴 리가 없다는 싱거운 대답을 하는 남편과 함께 사는 우리 집에는 가끔 천둥이 치고 기차소리가 난다.

재미있는 냄새가 지독하게 가득한 신혼생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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