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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니 Mar 28. 2021

아름다운 이별의 장소는 존재하는 것인가

이별을 하는 장소에 대한 단상

“우리 이제 그만하자, 그게 좋을 것 같아.”

한창 순댓국을 좋아할 나이, 서른 때의 일이다. 순댓국이 먹고 싶다는 나를 위해 직접 차를 몰고 우리 동네까지 데리러 온 B와 함께 찾은 순대국밥집. 따뜻한 마룻바닥에 앉아 보글보글 끓고 있는 순대국밥 한 수저를 뜨려던 차, 나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뭐라고? 그만하자는 게 뭐야? 순댓국 그만 먹자고? 아니, 그만 만나자는 말?


수저를 내려놓고 왜 내게 이별을 고하는지 물었다. 답은 아주 단순했다. 그냥 그게 좋을 것 같단다. 2월에 차였다가, 3월에 다시 만나고 4월, 지금 순댓국집에서 또 차였다. 재회를 하고 뜨뜻미지근했지만 그래도 다시 내 옆에 있음에 감사를 하며 지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별이라니?


순대국밥을 먹고 근처 롯데리아에 가서 소프트콘 아이스크림에 감자튀김을 찍어 먹을 생각에 하루 종일 들떴던 나는 온통 사람들로 꽉 찬 그 좁은 순댓국집 그 한복판에서 이별을 당하는 여자로 전락했다. 예상하지 못한 장소에서,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를 들은 나는 이상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꼬여 있던 다리를 풀어 B의 발을 툭하고 쳤다. 뭐하냐고 장난하냐고 한마디 하고는 “내가 더 잘할게. 내가 너무 연락에 예민하게 굴었나? 미안해. 내가 더 잘한다니까.” 비굴하게 B에게 읊조렸다. 지나간 나의 잘못과 후회되었던 일을 하나하나씩 짚어가며 사과를 했다. 자존심 따위는 지금 내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순댓국이 B와 나의 마지막 식사가 될 수 있을 거라는 불안감. 지금 B의 마음을 돌려놓지 못한다면 나는 평생 이 순댓국을 먹지 못할 거 같았다.


초등학생 때는 잘못을 해도 깊게 뉘우치지 못했었는데, 눈 앞의 순댓국이 있어서인지. 방바닥이 너무 따뜻해서인지. 배가 고파서인지 제발 노여움을 풀고 다시 만남을 허락해달라고 매달리는 내 모습은 내가 봐도 너무 처참했다.



“나랑 진짜 헤어지고 나한테 연락 안 할 자신 있어? 저번에 헤어졌을 때도 먼저 연락한 건 너였잖아.”



B는 자신은 없지만 헤어져야 한다고 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두 달간 연속으로 두 번 차임을 당한 나는 당장 B의 멱살이라도 잡고 흔들며 정강이를 차주고 싶었지만, 여전히 그럴 힘은 내게 없었다. 어쩔 수 없다는 B의 말에 온 몸에 힘이 풀려 순댓국을 뜰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본인도 하루 종일, 밤새, 꿈에서도 생각을 해보았는데 나랑 계속 만난다 해도 끝은 좋지 않을 거라고 했다. 서빙을 하시던 주인아주머니도 내 눈치를 살피는 듯싶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진 나는 그 뜨거운 순댓국보다 더 뜨거웠을 눈물을 흘렸다. 세상살이 인력으로 안 되는 것도 있다던 아빠의 말이 떠올랐다.



B는 그러면서도 제발 따뜻할 때 밥 한번 먹으라며 내게 숟가락을 쥐어주었다. 진짜 어이가 없고 가증스러웠다. 왜 마지막까지도 착한 척이냐, 너나 처먹어라. 하고 쿨하게 숟가락을 던지고 그 애의 뺨을 후려갈기고 싶었지만 그것도 절대 절대 할 수 없었다. 더 이상 순댓국집에 있을 명분이 사라진 B와 나는 16,000원짜리 순댓국을 버리고 나왔다. 창밖으로 보이는 가게들, 공원의 사람들, 길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하나하나 다 부러웠다. 저 사람들은 지금 이별당하지 않았을 텐데. 나는 진짜 차인 건가? 이게 진짜 마지막일까?라는 생각이 들 때쯤 우리 집에 도착했다.


B는 한번 안아보자고 했다. 친선경기를 끝낸 선수들처럼 쿨하게 서로를 안고 격려했다. B의 쿨한 태도에 질수 없던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헤어지고 바로 다른 여자 만나면 안 돼! “


확실히 제정신이 아니었다. 나를 떠나는 것보다, 나를 떠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새로운 여자에게 다정한 모습, 로맨틱한 말들을 할 B가 행복해지는 꼴은 도저히 볼 자신이 없는 나의 찌질한 속마음. 웃으면서 그러겠다고, 나의 웃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던 B는 알고 보니 나와 재회를 하면서 바람을 피우고 있던 중이었다. 미안하다고 눈물을 흘리며 제발 헤어져달라고 애썼던 그 모습이 떠올라 괴로웠다. 그런 놈에게 저딴 말을 했으니.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된 나는 기가 찼다. 죄 없는 이불을 몇 번이나 걷어찼는지 셀 수가 없을 정도로 쪽팔렸다.


B는 대체 왜 그제야 이별을 고했을까, 바람을 피우면서 왜 다시 만나자는 말을 한 것인가, 결국 한 달도 못 갈 거면서, 본인의 마음을 본인도 몰랐으면서 왜 그랬을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동네 순댓국집에서 이별을 고할 만큼 빨리 헤어지고 싶었던 건가. 아, 진짜 이건 참을 수 없었다


나는 B 바람을 폈다는 것보다, 내게  번이나 헤어지자고  것보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식당에서 이별을 말한   화가났다.   엿먹으라고 순댓국집 데려갔냐???라고 카톡을 보내고싶었지만 참았다. 거친 숨을 고르며 유교의나라의 젊은이들의 이별에 대해 생각했다. 어디에서 헤어져야 깔끔하게 헤어졌다고 소문이 날까? 대한 답도 나는 찾지 못했다. 그게 길거리든, 고급 레스토랑이든, 사람이 많은 쇼핑몰이든, 손님 없는 작은 카페든 이별은  자체만으로 깔끔할 수가 없지 않은가. 그렇게   동안 나는  순댓국집에 가지 못했다. B 뭐라고, 아니 이별이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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