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빅, 남편이 빡쳤을 확률이 99%입니다.

새벽 한 시에 집을 나온 이야기

by 프니

결혼목표: 화나도 집을 나가지말자 글을 쓴지 한달만에..집을 나왔다.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고, 가끔은 스스로를 이해 못하는 일도 많을 거라던 엄마의 말이 맞았다.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방금 전까지 툴툴 댔던 나를 두고 갑자기 쿨쿨 거리며 잠을 잔다고? 하지만 더 이해 가지 않는 사실은 남편 이기전에 나였다. 왜, 배달의 민족 가지고 화를 냈을까? 기껏해야 12,000원의 쫄면, 만두 때문에 목요일 밤 12시에 남편에게 성을 냈다.


간단히 말하자면, 아니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잘못했다. 이건 길 지나가는 사람들을 불러 세워 물어볼 수고조차 필요 없을 만큼 내 잘못이었다. 12시가 다 되어 배가 고파진 나는 남편에게 만두를 먹고 싶다 했고, 남편은 만두와 쫄면을 시키자 했지만 나는 너무 늦었으니 괜찮다고 했다. 시키자, 참자를 핑퐁 하다가 남편은 잠이 고팠는지 스르륵 잠에 들었다.


남편의 숨소리를 조용히 듣고 있자니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내가 먹지 말자고 하긴 했는데 괜히 섭섭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감정이 날 집어삼켰다. 이게 설마 권태기인 것인가? 결혼 반년만에? 갑자기 남편이고 뭐고 갈비만두고 뭐고 다 꼴배 기도 싫었다. 만두부터 시작된 이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대로 있다가는 코 고는 남편의 코를 꼬집어버릴 것만 같아서 검은 후드 집업을 뒤집어쓰고 집을 나왔다.




새벽 한 시에, 남편을 두고 집을 나왔다.

혹시나 나가는 소리에 남편이 후다닥 깨서 쫒아오지 않을까 싶어 정말 조용히 조용히 문을 닫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1층, 문이 열렸고 검은색 후드 집업을 뒤집어쓴 남자와 문이 마주쳤다. 그는 타고, 나는 내리는 순간 아주 지독한 담배냄새가 내 콧구멍에 안착했다.


그때부터 내가 정리해야 될 건 나의 감정과 찌든 담배냄새였다. 담배냄새를 지워버리기 위해 열심히 걸었다. 5분을 걸어가면 편의점이 있지만 거기까지 가기는 왠지 무서워 지하주차장 앞까지만 걸었다. 그리고 걷고 걷고 또 걷다 보니 내 앞에는 작고 큰 나무들이 서 있었다.


새벽은 사람을 참 이상하게 만든다.


평소 궁금해하지 않던, 관심조차 없던 나무가 궁금해졌다. 얘는 도대체 무슨 나무일까? 언제부터 심어졌을까? 혹시 조선시대부터? 시작된 생각은 화가 나 있던 내 머릿속을 요리조리 휘저었다. 며칠 전 우연히 알게 된 꽃 검색 기능을 써보기로 했다. 카메라를 켜고 검색 버튼을 눌렀다.


"이 꽃은 개나리일 확률이 84%입니다."


꽃을 알아내는 기능이지만, 그냥 일단 들이댔다. 그랬더니 확률을 말해준다. 인간인 나보다 낫네 싶어 큭큭 거리다 보니 쿨쿨 대고 잠을 자던 남편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내 마음속 확률 버튼을 가동했다.


비빅

남편이 빡쳤을 확률이 99%입니다.



어휴, 나 같아도 화나고 또 화난다. 나는 왜 이럴까. 극동의 사춘기를 겪는 것도 아닌데, 자식처럼 툴툴대고 삐쳤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 이건 무조건 나의 잘못이다! 잘못을 깨닫는데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당장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돌아와 쿨쿨 자는 남편 옆에 누워 속삭였다.


"여보, 미안해요. 내가 또 억지를 부렸어. 그냥 배고파서 예민해졌었나 봐.. 미안.. 사랑해..."

남편은 내 말을 듣기라도 한 듯 더 우렁차게 코를 골았다.



결혼하면 무진장 행복한 일만 가득할 줄 알았다. 연애할 때는 100만큼 행복했으니, 결혼하면 두배로 행복하지 않을까. 도대체 짜증 나고 열 받는 일이 뭐가 있을까 궁금해하던 날도 있었는데 그날처럼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한 번에 몰려드는 날이 간혹 생긴다.


결혼이라는 건, 단순히 한집에 산다는 그 이상의 일이었음을. 연애 때는 그냥 넘어가던 사소한 습관들도 새롭게 보이게 될 수 있음을. 그러니까 연애 때의 장점이 결혼 후에 단점으로 변화되는 그 모습을 지켜보는 과정에 익숙해지는 것과 나 스스로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놀라게 되는 일이 많아지는 것이 결혼이었다.


그날도 난 나의 밑바닥을 훤히 보여주었다. 나조차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을 내뱉어버리면, 남편은 그 외계어를 듣고 해석하려 애쓴다. 이건 반대의 경우도 같다. 우리 모두 한평생 각자의 언어를 가지고 살아왔으니, 가끔은 말이 안 통할 때도 있다는 건 참 당연한 일임을 이제는 안다. (나는 영어로 말하고, 남편은 아프리카어로 말하는 것과 같지. )

가끔은 처음 써보는 말레이시아어로 화를 내는 날도 있는 법이다.


그러니까 서로의 언어를 습득하고, 배워나가고, 적응하며 이해하는 것이 우리의 영원한 숙제다.





만두 때문에 새벽에 집을 나간 것은 위험한 행위였지만, 10분 만에 본인의 잘못을 깨닫고 먼저 사과를 한 행동은 스스로 칭찬해주고 싶다. 그리고 앞으로 나의 황당한 행동으로 남편의 콧구멍이 발랑거리며 미간이 점점 좁혀지더라도 나는 집을 나가지 않기로 약속했다.









(비논리적은 악플은 받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