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가 좋겠냐, 귤이 좋겠냐?

결혼은 어쩌면 귤이냐 사과냐의 연속이 아닐까

by 프니

사과가 좋겠냐, 귤이 좋겠냐.


작년의 일이다. 아빠는 토요일에 등산을 간다고 했다. 58년 개띠 아빠는 등산모임에서 막내였다. 어르신들 등산 간식을 만들어야 한다며 나를 불러 물었다. 음, 당연히 귤이지. 포장하기도 쉽고. 그때, 안방 침대에 누워있던 엄마가 어느새 거실로 나와 아빠에게 말했다.

엄마- 사과보다는 귤이지. 요즘 귤 맛있어.
아빠- 아니 그래도 사과가 좋지, 등산 갈 때는.
엄마- 귤이 낫다니깐
아빠- 아니 나는 사과가 좋아.

엄마는 아빠에게 고집이 왜 이렇게 쎄냐며 귤이 백 번 천 번 낫다고 하면서 자기주장만 강조한다고 소리를 쳤다. 가만히 듣던 나는 귤을 고집하는 엄마도 똑같은 거 아니냐고 물었더니 그건 그런데 아빠가 더 심하다고 했다. 귤이냐, 사과냐를 가지고 평생을 싸우면 어떡하냐고 하니 싸운 게 아니라 의견을 나눈 거란다. 어쩌면 결혼생활은 귤 아니면 사과 같은 일들의 연속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처:다나와dpg

엄마와 아빠의 사랑으로 가득 찬 귤과 사과를 왕창 먹은 나는 결혼을 했다. 그리고 곧 11월이면 우리가 함께 산 지도 1년이 되는데 우리에게도 귤과 사과 같은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전기밥통의 뚜껑을 바로 열 것인지, 조금 두고 열 것인지, 밥을 먹고 바로 치울 것인지, 조금 쉬었다 치울 것인지부터 시작한 귤과 사과는 어째 날이 갈수록 더 많아지는 기분이다.


예를 들면, 삼다수냐, 코스트코 물이냐, 김치찌개를 끓일 때는 고기를 넣을지, 참치를 넣을지, 잘 때는 핸드폰을 침대 위에 올려 둘지, 침대 옆에 올려 두고 잘지, 10만 원 이상을 구매할 시 무이자 할부로 할지, 일시불로 할지 등이 있다.


"자기야, 수건은 세로로 길게 접는 게 낫지 않아? 꺼낼 때도 편하고."


나의 자기는 언젠가부터 호텔에 놓인 수건처럼 동그랗게 접기 시작했다. 물론, 보기에도 이쁘고 더 많은 수건을 한 곳에 놓을 수 있었지만 샤워를 하고 빠르게 수건을 휙 빼서 몸을 닦기에는 수건의 매듭을 푸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빨래 접기 담당인 그의 영역을 더 이상 침범하고 싶지도 않았고, 좁은 수납공간에는 이 시스템이 최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크게 별말을 하지 않았다.


그럼 그럼, 이 정도의 일은 귤이냐 사과냐도 아니지, 그럼 그럼. 우리에게 다가올 더 많은 양의 사과와 귤을 덤덤히 기다리며 오늘도 조용히 수건을 풀어 몸을 닦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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