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역할분담은 조별학습처럼 합니다.
회사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나의 일과 다른 사람의 일의 구분이 불명확할 때였다. 나는 내게 주어진 A일만 하면 된다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옆에 있는 B의 일도 내가 해야 한다고 하고. 가끔은 A일만 하고 B 일을 도와주지 않으면, 매몰찬 사람이 되기도 했다. 정확한 매뉴얼 없이, 정해진 체계 없이 이일, 저일 다 하라고 하는 것은 멀티플레이가 불가능한 내게는 참 어려운 일이었다.
때문에, 결혼을 하고 집에서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책임의 소재를 따지고, 한 사람에게만 떠넘기는 책임감도 싫었다. 그래서 일단 우리는 서로에게 역할을 고정하지 말고, 유동적으로 한번 살아보자.라고 약속했다.
그 결과, 한 두 달 정도 되었을 때부터 우리의 역할은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아갔는데, 이를테면 설거지는 남편, 식사 준비는 나의 영역이 되었다. 그리고 그 외의 일들(청소, 빨래, 분리수거 등등)은 여전히 어느 누구의 일이 아니다.
눈에 먼저 보이는 사람, 거슬리는 사람, 지금 해야 하는 사람이 한다.
다만, 설거지와 식사 준비 외에도 확실하게 정해져 있는 역할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음식물쓰레기 처리다.
내가 생각하는 올바른 설거지의 기승전결의 결은 배수구에 쌓인 음식물쓰레기를 처리하는 것이지만 설거지 머신 남편은 그 일을 끝까지 해내지 못했다. 초반에는 음식물쓰레기가 잘 안 나왔던 것인지, 내게 도움을 요청한 적이 없어 나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는데 고기를 굽고, 된장찌개를 끓였던 그날이었다. 남편은 설거지를 끝내고는 조심스레 티브이를 보고 있는 나를 불렀다.
"혹시, 이것만 처리해 줄 수 있어? 차마 이건 못하겠어서.. 미안."
남편의 얼굴은 곧 눈물이 터질 것 같이 죄스러워 보이는 표정까지는 아니었지만, 민망이라는 글자를 얼굴에 쓰고 나를 쳐다봤다.
순간, 나는 아차 싶었다.
아, 이건 내 주특기인데, 내가 먼저 나섰어야 했는데!
우리 엄마도 믿기 어려워하는 사실인데, 나는 사실 음식물쓰레기를 좋아한다. 아니 좋아한다기보다 거부감이 없고, 쓰레기를 만지고 봐도 토할 것 같고 역하지도 않다. 때문에 대학시절 엠티에 갈 때마다 나는 싱크대를 집어삼킬 것 같던 그 수많은 음쓰(음식물쓰레기 줄임)들을 직접 처리했었다.
음식물쓰레기를 배수구에서 꺼내어 봉투에 버리는 행위는 단순한 것이 아니다. 사람을 반성하게 만든다.
30분 전만 해도 군침을 돌게 하던 반찬들이었는데,
30분 만에 이렇게 정체모를 쓰레기가 되어버렸다니.
다음에는 조금만 덜어서 먹어야겠다.라는 체크도 되고.
물컹물컹한 음쓰를 쓰레기봉투에 쏙 하고 집어넣을 때의 쾌감은 또 말도 못 한다.
"그런 일이 있으면 말을 해야지, 내가 해줄게."
싱크대 앞에 서있는 남편을 옆으로 보내고, 장갑을 끼고
배수 구안에 촘촘히 붙어 있는 음쓰들을 치우고, 봉투에 넣어 곧장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렸다. 쓰레기 통문을 여는 것은 할 수 있다는 남편의 도움을 받아 입이 벌어진 쓰레기통에 음쓰를 던져버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부터 그렇게 나는 우리 집 음쓰 담당이 되었다.
설거지는 남편이 해도, 음쓰는 내가 한다.
만약, 나 또한 음쓰공포증이 있었다 한다 해도 또 살아내야 하기에 우리 둘 중 한 명은 눈을 꼭 감고 일을 해냈을 테다. 그런데, 이렇게 한 명이 그 일을 해내는데 어려움이 없고, 심지어 즐겨하는 일이라니 얼마나 다행인가!
결혼은 마치 교수님 없는 조별 학습과도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이왕이면 내가 잘하는 것을 하면 된다.
PPT를 잘 만들면 발표자료를 만들고,
발표하는 것을 좋아하면 발표자가 되면 되고,
자료 조사하는 것을 잘하면, 그것을 하면 되는 것처럼
청소하는 것을 좋아하면 청소를 하고,
쓰레기 처리하는 것을 잘하면 쓰레기를 분리하고
나처럼 음식물쓰레기를 좋아하면 음쓰를 버리면 된다.
대신, 나의 노력을 점수로 매겨주는 교수님이라는 존재가 없고, 업무능력을 인정받는다 해도 연봉을 더 얹어주는 사장님도 없는 우리 집에서는 서로에게 피드백을 하고, 아낌없는 격려가 폭발한다. "여보! 잘했어! 오늘 설거지 속도는 더 빨라졌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