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의 날이 밝았습니다. 결혼 후 첫 번째 명절은 2020년 , 설날이었는데요, 그때 처음으로 남편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두 번째 명절, 추석이 돌아왔는데요. 이번에도 어김없이 우리는 싸우고 말았습니다. (남편에게 물어보면 또 절대 싸운 적이 없다고 할 테지만요).
시가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남편이 저지른 잘못을 하나 둘 내뱉기 시작했는데 그 양을 따지자 하면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가사 뺨치는 명곡이 나올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서 또 이야기를 하고, 남편이 해명하고, 서로 끌어안고 이해하기로 하고 해피엔딩으로 끝내고 잠을 잤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바로 오늘. 이상하게도 일어나자마자 또다시 어제의 그 기분 나쁜 감정이 튀어나오기 시작했고, 곧장 거실로 뛰쳐나왔습니다.
여러분 거실에는 무엇이 있나요? 보통 티브이, 컴퓨터 등이 있을 텐데, 저희 집도 그렇습니다. 수백 개의 채널이 나오는 티브이, 게임을 할 수 있는 컴퓨터가 있죠. 그리고 몇 걸음만 가면 부엌으로 갈 수 있는 최고의 입지조건, 이게 바로 부세권!
즉, 배고플 때 당당하게 밥 먹을 수 있고, 심심할 때 티브이를 볼 수 있는 최고의 공간이죠. 저는 이 때문에 남편 때문에 짜증 난다? 하면 벌떡 일어나 거실로 뛰쳐나왔습니다. 언젠가 부부싸움을 하거든 거실을 차지해야 한다는 말을 들은 게 생각이 난 거죠.
그래서, 오늘은 들기름에 전을 부쳤습니다. 굳이 굳이 들기름을 넣은 이유는 방구석에 누워있는 남편의 코를 찌르게 만들어서, 터덜터덜 백기를 들며 나올 남편을 본다면 얼마나 짜릿할까, 통쾌한 승리감을 맛보고 싶었죠.
하지만, 역시 인생은 원하는 대로 흐르지 않습니다. 그냥 기름도 아니고, 고소한 들기름 냄새가 남편에게 닿지 않았는지 남편은 전을 김치에 싸서 다 먹을 때까지 방에서 나오지 않더라고요, 왜 나오지 않을까? 이 유혹을 물리칠 만큼 화가 난 건가? 내가 너무 끈질기게 말했나? 아니 그렇다고 이렇게 안 나올 일이야? 우리는 한 시간 동안 서로를 보지 않은 채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나중에 보면, 이 과정이 화를 삭이는 과정이더라고요.
성질이 급한 저는 결국, 남편이 누워있는 방으로 두발로 들어갔고, 남편의 동태를 살폈습니다. 이불을 얼굴까지 덮고 있던 남편의 눈에는 흐릿한 눈물자국이 있었고, 까치집으로 부풀려진 머리와, 그 몰골을 보자니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습니다. 참, 허무하게 풀려버린 마음. 남편과 함께 또 한 번 깻잎에 전을 싸 먹으며 웃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진중히 대화를 했고, 이번 명절의 난은 끝이 났습니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이 있죠, 정말 그 말을 하루하루 체감하며 사는 요즘입니다. 그리고, 저는 신혼이라면 더더욱 싸워봐야 되고, 싸우면서 정들기도 하고, 싸워야 서로가 어떤 포인트에서 화나는지 발견할 수 있는, 싸워야 더 잘 살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 그리고 싸움이 시작된다 하면 거실을 장악해야한다는 생각은 여전히 변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