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괜찮을까? 가족끼리?"
오늘 수학 문제 뽑아왔어!
된장찌개를 끓이고 있는 내게 회사에서 돌아온 남편이 말했다. 아 정말? (아하하 이런 젠장)
남편은 20대 때 용돈벌이로 수학 과외를 했었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게 그를 처음 만난 날이었고, 나중에 나도 수학 가르쳐달라고 했던 게 지금으로부터 한 이 년쯤 된 일이라 내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것도 기억이 안 나는데 말이다.
그때는 진심이었고, 지금은?
가족끼리, 특히 남편에게는 운전도 배우지 말라는 세상 속에서 수학을 배워도 될까? (내게는 수학의 어려움이 운전급이다) 나는 바로 남편에게 물었다. "우리 정말 괜찮을까?" 이 말에는 정말 수학 1도 모르는 나를 보며 답답해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설마 이것도 몰라?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게 될 남편의 눈빛을 감당할 자신이 내게도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남편은 그런 게 어딨느냐며 주섬주섬 작은 상을 피고 종이를 펼쳤다. 수학책을 열고 한숨이 나오던 20년 전의 그때와 나는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강산은 두 번이나 변했고, 돈도 벌고 결혼도 하게 되었지만 수학은 여전히 내게 골치 아픈 대상이었다. 엄마를 졸라 수학 단과학원을 세 달 정도 다녔지만, 늘어난 건 수학 실력이 아니라 수학을 포기해야겠다는 마음의 크기였다. 때문에 고등학생 2학년이 되었을 때는 내 인생에서 수학 종말을 선언하게 된다. 여기까지가 나의 눈물 없이도 들을 수 있는 별거 없는 수학스토리.
반면 남편은 수학을 참 사랑했더랬다. 복잡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유일하게 변하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는 그 우직함이 좋다나 뭐래나.. 이해할 수 없지만 그의 취향이므로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첫 번째 문제부터 막혔다. 유진이와 민우가 각각 4천 원, 2천 원을 들고 똑같은 노트(가격은 모름)를 샀더니 유진이의 남은 돈은 민우가 남은 돈의 3배, 그렇다면 구매한 노트의 가격은 얼마인가? 하는 문제였다. 중학생 때 이런 걸 배운 적이 있었나 기억이 나지를 않았지만, 답은 쉽게 찾았다. 그냥 보기 5개의 숫자들을 하나씩 대입해서 결과를 찾아가는 방법으로 답을 찾고, 문제 2번으로 넘어가려는데..! 그는 내 연필을 볼펜으로 막으며 이런 식이면 곤란하다는 표정을 내비쳤다.
"아니, 왜 어차피 답 찾았잖아!"
"아니 답 찾으려고 하는 게 아니죠~~ 식을 만드는 게 중요한 거예요. 결과보다 과정! 과정이 빠지면 수학이 아니죠"
그래, 네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대충 찍어서 풀 거면 우리가 저녁에 시간을 내어서 수학 문제를 마주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싶었지만 그래도 알지 못하는 공책의 값(미지수)을 구해내야 하는 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고개를 숙이며 자신감이 결여된 나를 보며 그는 문제에 힌트가 다 숨어있다며, 내게 식을 만들어볼 것을 재차 요구했다. x, y.. 오랜만에 만난 미지수 친구들이 반가우면서도 계속 보고 있자니 머리가 아파왔다.
"아, 나 모르겠어. 포기"
"그래도 일단 5문제까지는 풀어보자"
"나 배울 때는 이 정도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수학이 조금 변했나 보다. 아 교과과정이 다르니까 호호"
"아니, 이거 우리 다 배운 거예요. 수학은 정말 요만큼도 안 변했어"
그는 분명 평소와 달랐다. 평소 같았으면 수박주스를 만들다가도, 갑자기 오렌지주스가 먹고 싶다 하면 웃으며 컵에 주스를 따라주던 그였는데 수학 문제 앞에 앉은 그는 단호박 주스를 족히 10잔은 먹은 듯 단호했다.
그렇게 첫 번째 수학 과외? 는 무사히 끝이 났고, 그는 내게 별 세 개의 점수를 주었다. 다음에는 몇 개의 미지수를 만나고 몇 개의 별을 받게 될까.
남편이 미적분을 배울 때, 나는 장자고자 맹자를 배웠고, 남편이 군대를 갔을 때, 나는 학교를 다녔고, 남편이 고깃집에서 고기를 굽는 일을 할 때, 나는 첫 번째 직장에 들어갔고, 남편이 취업을 했을 때, 나는 첫 번째 직장을 퇴사했다. 그렇게 다른 인생을 살아온 남편과 나는 만난 지 1년 만에 결혼을 했고, 함께 살고 있다. 같은 해에 태어났지만 다른 삶을 살다 만난 우리.
학창 시절의 나는 어땠는가. 제대로 식을 구하기도 전에 보기에서 답을 대충 추리고, 정확하게 풀어내려 노력하기보다 답지를 뒤져 답을 먼저 찾아보곤 했다. 반면 그는 답안지를 보게 될까 봐 문제만 인쇄해서 답이 나올 때까지 푸는 사람, 한마디로 나와 참 다르다.
어쩌면 결혼이란 미지수를 구해내는 그 과정이 아닐까?
답이 없는 문제보다, 답은 정해져 있는데 서로의 의견을 좁혀가는 과정이 오히려 더 어려울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수학 1등급을 맞아서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는 목표가 있는 공부가 아니라, 하나의 문제를 같이 이야기하고, 상의하며 해결해 나가는 것이 중요한 거니까, 조금 더 인내를 가지고 수학 과외를 받기로 다짐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