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캠프 입소 수기 ② 동반입소
입소 일자: 2026.02.03
입소 장소: 동네 물류센터/잡화
입소 준비물: 커터칼, 장갑, 마스크, 초콜릿, 사탕, 두루마리 휴지
인간에게 가장 큰 축복은 무엇일까. 생각할 수 있다는 것? 발전할 수 있다는 것? 오늘은 어제보다 더 치밀하게 준비물을 챙겼다. 휴지까지 야무지게 챙겼는데, 휴지를 돌돌돌 돌려 비닐팩에 넣은 이유는 물류센터 내 화장실에는 휴지가 없기 때문이다. 아니 휴지 정도는 당연히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가도 또 이렇게 된 데는 이유가 있었겠지.. 싶다가도 그래도 휴지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며 버스에 올라탔다.
오늘은 어제보다 가방이 무거워졌지만 마음은 두루마리휴지에 올라타도 찢어지지 않을 것처럼 가벼웠다. 왜냐? 오늘 나에게는 동반입소라는 이벤트가 있기 때문인데, 그것도 무려 2명이나 된다. 물류캠프 경력이 다양한 A, 물류캠프 경력이 거의 없다시피한 B. 휴지를 챙겨오라는 말도 A가 해준 말이었다. 정말 든든하다.
B는 2년 전에 옆 동네로 이사를 온 뒤 일을 쉬고 있는 상태였다. 때때로 같이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자는 말을 했었기에, 노동의 참맛을 느껴보자는 달콤한 말로 B를 꼬드기기 시작했다. 캠프 일이 힘들지 않다고는 말할 수 없던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오직 이 뿐이었다.
"네가 가진 옷 중에서 제일 편한 옷 입고 와."
친구의 편한 옷은 형광빛이 도는 연두색 운동복 세트였다. 검은 운동복, 검은 패딩이 가득한 블랙세상에 나를 구원해 주러 온 나의 친구. B의 존재는 생각한 것보다 컸는데, 스티커를 붙이는 작업에 매진하다가도 B가 계속 보였다. 시야에 뭔가 빛이 많이 보인다 싶으면 패딩을 벗어 재낀 뒤 날다람쥐처럼 움직이는 연두색 운동복을 입은 친구의 모습이었다.
점심시간에는 다 같이 편의점으로 갔다. 편의점 안에는사람들이 꽉 차있어 어쩔 수 없이 야외 테라스석에 앉을 수밖에 없었지만, 우리는 추운지도 모르고 열심히 먹었다. 옆옆 테이블에서 담배냄새가 몰려왔지만 코를 막고 먹었다. 점심을 먹고 돌아오자 입금 알림이 왔다. 와! 96,000원이다! 이 기쁨을 친구들과 함께 나누니 두 배로 뻥튀기한 돈을 받은 기분이 들었다. 기쁜 마음으로 화장실을 가려는 내게 A가 종이비누를 꺼내 빌려주었다. 정말 든든하다. (그곳에는 비누도 없다)
오후가 되자 업무는 영양제 포장 업무에서 라인 업무로 변경되었다. 그곳의 라인은 성인 3명이 따닥따닥 서 있으면 끝날 정도로 아주 짧은 라인이었는데, 첫 번째 사람이 라인 시작점에서 박스를 기계에 통과시키면 테이프가 챠라락 부착이 되는데 그 박스가 레일을 타고 오면 2,3번째 사람이 내용물을 담고 4번이 테이핑을 하는 작업을 하는 것. 오늘의 나는 여자 4호가 되었다. 4번, 즉 레일의 마지막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레일 위 교통상황 정리도 필수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마지막 부분에서 상자가 쌓여있으면 앞에서 상자가 오지 못하기 때문에 굉장한 부담감이 있었다. 그 와중에 B는 첫 번째 타자가 되었다. 작업반장님과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테이핑 기계를 다루는 법을 배우고 있는 듯했다. 정신 없이 테이핑을 하고, 박스를 옮기고를 반복했다.
드디어 일이 끝났다.
이상하게 오늘은 시간이 정말 빨리 갔다. 친구들과 함께 해서일 수도 있고, 두 번째 일이라 익숙해서 일수도 있는데 아무래도 둘 다 인 것 같다고 감상에 젖어있는 데 B가 입을 열었다.
"아니 테이핑 그거 있잖아. 엄청 어려워. 죄송한데 나 못하겠다고 했어."
그 말을 들은 A는 물류센터에서 못 하겠다고 말하는 사람 처음 봤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랬더니 아니래. 잘할 거 같아서 알려주는 거니까 열심히 해보래. 근데 계속해봐도 어렵더라고. 박스 가운데로 테이프가 안 들어가. 아오." 결국 열심히 배우던 친구는 옆구역으로 넘어가 스티커 부착으로 업무를 바꿨고, 지금까지 스티커만 붙이다왔다고 웃었다. 이야기를 들으며 오늘 하루를 떠올려봤다. A의 섬세함이 좋았고, B의 용기가 좋았다.
"안 되겠어. 이거 기념해야 돼."
기념사진도 아닌 기념영상을 찍은 우리는 버스정류장을 향해 걸었다. 방금 전까지도 다리가 아프다고, 죽겠다고 하던 B가 버스를 보자마자 버스를 향해 잽싸게 달려갔다. 오늘 하루종일 본 날다람쥐 같은 모습이 다시 재생돼 웃음이 났다. 팔다리는 쑤셨지만 이상하게 웃음이 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라면집에 들렀다. 아주 매운 라면을 후후 불어먹으면서는 돈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났다. 아무래도 인간에게 가장 큰 축복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일급: 96,000원
오늘의 훈련: 영양제 포장, 박스 테이핑
물류캠프 입소 한 줄 평: 친구들과 함께 하면 외롭지 않아요.
오늘의 깨달음: 못하는 건 못하겠다고 말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