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해하는 건 자유지만, 타인의 시간을 함부로 정의 내리는 것은 금지!
면접일자:2018년 6월 초
직무분야: 국가 연구개발사업 정산업무
공백기 때 뭐했어요?
두꺼비 빌딩 근처라고 했는데? 아, 미치겠다. 아무리 카카오 맵으로 현재 위치를 찍고 돌아다녀봐도 계속 나는 두꺼비 빌딩을 빙빙 돌았다. 돌고 돌아도 무섭게 생긴 두꺼비 동상 앞으로 돌아오는 내가 너무 바보 같아 화딱지가 나기 일보직전, 지나가던 택시를 붙잡은 다음에야 회사를 찾았다. 땀으로 범벅이 된 블라우스를 만지작거리며 도착한 사무실, 복도부터 줄기차게 늘어진 박스들이 먼저 나를 반겼다. 면접장소라고 안내받은 곳은 냉장고가 두 개나 있는 탕비실이었다. 점심의 흔적이 남은 그곳에 앉아 면접관을 기다렸다. 말총머리를 한 젊은 여성분이었다.
"안녕하세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면접은 1:1. 면접관의 손에는 흑백으로 뽑힌 나의 자기소개서와 이력서가 들려있었다. 힐끔 보이는 이력서 안에 적힌 경력을 보고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해졌다. 경력으로 밀어붙인다면 자신 있었다. 동종업계에서 죽을똥을 싸며 4년을 버텼으니까. 자신감으로 시작된 면접 분위기도 좋았다. 나의 인상이 마음에 든다며, 본인과 잘 맞을 것 같다는 말도 하더니 갑자기 관상을 봐주기도 했다. 면접관에 따르면 “술은 잘 못 먹지만 회식자리에서 끝까지 남아 있을 상”이란다. 그러니까 이 면접은 정말 신선했다. 면접관이 아 하면, 내가 어 하는 환상적인 아어이다 면접이 무르익었을 때쯤, 면접관은 개인적으로 내게 궁금한 것이 있다며 넌지시 물었다.
“혹시 공백기에는 뭘 했어요?”
아, 이 질문이 왜 안 나오나 했는데 역시 나왔다. 당연히 나올 줄은 알았지만 답변을 따로 준비하지는 않았다. 지난 1년간 내가 살아온 이야기가 곧 답변이 될 테니까. 꽤나 안정적이고 높은 연봉을 받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1년 동안 나는 속기사가 되기 위해 공부를 했다. 안양에서 홍대까지 학원을 다니고, 자격증을 취득하기 전에는 뉴스 자막 송출 알바를 위해 7시까지 홍대에 도착했었고, 그렇게 자격증을 땄다. 그 이후에는 속기공무원에 도전하기 위해 공부도 했었다. 그렇게 1년을 꼬박 꿈을 위해 노력했던 그 시간, 결과는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지만 만족스러운 1년이었다. 나는 너무 행복했던 그 시간을 솔직하게 말하면 되겠다 싶었지만, 나도 모르게 면접관의 눈치를 살폈다. (아, 이 구직자의 눈칫밥이란.)
그러자 방금 전까지 대화가 잘 통하던 면접관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래요, 이제 돈 벌 나이지, 공부는 그만해도 되지~”
어? 갑자기 기분이 묘해졌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문장 분석을 시작했다. 그래요, 이제 돈 벌 나이지.라는 말에서는 내 나이를 후려치는 것 같지만 합격은 시켜준다는 말인가? 싶었고, 공부는 그만해도 되지라는 말에서는 너무 쉽게 누군가의 결정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면접 최다 빈출 질문, 공백기 때 무얼 했어요?, 너무 오래 쉰 거 아니에요? 하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아니, 그럴 수도 있지!, 더 못 놀아서 아쉬운 건데요?’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래, 그게 궁금할 수도 있지, 아니 어쩌면 가장 궁금하겠지,’라는 생각이 공존한다. 회사 입장에서는 오랜 시간 공백을 둔 구직자에게 편견을 가지게 되는 건 당연한 것일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조금 더 우리 사회가 쿨해졌으면 좋겠다. 100세 시대에 반년, 1년, 아니 3년을 일 안 했다고 크게 망하지도 않으니 말이다.
궁금해하는 건 자유지만, 타인의 시간을 함부로 정의 내리는 것은 금지!
“공백기 때 무엇을 했나요?”라는 질문은 마치 “앞으로의 포부”를 묻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아, 공백기는 어쩌다 보니 생겼고요, 앞으로의 포부는 돈 버는 겁니다.라고 쿨하게 말할 수 없는 현실이 참 아쉽다. 이직할 때 가장 좋은 건 환승 이직이라는 말이 있다. 회사를 다니면서 이직할 회사를 구해두고 때려치우는 것. 그러니까 두 마리 토끼를 한 손에 쥐고 있으라는 말인데, 그게 나는 정말 어려웠다. 아니, 토끼 한 마리의 귀 하나 잡기도 힘든데 어떻게 두 가지 모두를 한 번에 한단 말이지? 그래서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일단 회사를 때려치우고, 하고 싶은 것을 했다. 그리고 그것들을 정리하고 다시 회사를 구하는 게 나만의 속도.
면접관에게 나는 답답한 거북이처럼 보였을까 아니면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쳐버린 불쌍한 사람처럼 보였을까? 생각이 든 면접은 그렇게 끝이 났고, 찝찝한 마음이 남았다. 인사를 하고 건물에서 나와 30분 전에 헤매고 헤맸던 길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시 마주하게 된 두꺼비. 건물 앞에 뚱하니 있는 두꺼비와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너를(두꺼비) 다시 보게 될 수 있을까, 아니면 오늘이 마지막일까? 면접을 잘 본 것 같아 기대가 되면서도 혹시 붙으면 어떡하지?라는 기분이 들었던 그날,
며칠 뒤 한통의 메일을 받고 다시 회사라는 세계에 들어갔다. 엉금, 엉금 거북이의 속도로, 아니 나만의 속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