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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험을전하는남자 Sep 06. 2024

도쿄브랜드를 이해하는 돋보기, 편의주의와 축소성

편의주의와 축소성을 이해하면 도쿄에 더 몰입할 수 있다. 도쿄에 더 몰입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난 지금까지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나만의 답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누군가 나에게 위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조금은 나만의 답을 이야기할 수 있다. 일본[혹은 도쿄를]을 '편의주의'와 '축소지향'으로 바라보자. 그 순간부터 도쿄는 무궁무진한 볼거리로 가득 찬 도시로 변한다. 도쿄의 구석구석에 더욱 몰입할 수 있다. 단순히 일본 감성이 아니다. 도쿄 그 자체에 대한 접근이 더 깊어진다.

도쿄를 아시아에서 가장 현대적인 도시라고 한다. 영국의 글로벌 금융 컨설팅업체 옥스퍼드 이코노믹스가 발표한 '글로벌 도시 지수'에서 도쿄는4위를 차지했다. 그렇다고 현대적인 도시가 꼭 아름다운 도시는 아니다. 오히려 천년 수도의 고즈넉함을 지닌 교토, 나라, 개성이 뚜렷한 오사카가 더 아름답다. 도쿄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주창한 에도시대부터 메이지유신을 거쳐 지금의 도쿄로 거듭나기까지 필요에 따라 발전했다. 이러한 발전 과정에서 도쿄는 편의주의와 축소성을 적절히 활용했다. 예를 들어, 도쿄에서는 서울과 달리 사진 같은 지도를 자주 볼 수 있다. 이는 복잡한 도시 구조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편의주의적 접근이다.


도쿄 거리를 보면 종종 커다란 개발 계획보다는 상황에 맞춰 급하게 개발한 흔적이 보인다. 이는 억지로 도시를 변형시킨 듯한 느낌을 주지만, 실제로는 도쿄의 특징이다. 예를 들어, 좁은 골목길 사이에 고층 빌딩이 들어서 있거나, 전통적인 상점가 옆에 현대적인 쇼핑몰이 위치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대비는 도쿄의 역사와 현대성이 공존하는 독특한 경관을 만들어낸다.


2017년 오랜 시간 동안 시간이 걸린 도쿄역과 그 중심부인 마루노우치 지구가 깔끔하게 정비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도쿄의 편의주의적 접근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복잡했던 시설들은 지하로 내려가고 도쿄역을 마주하는 마루노우치 빌딩과 신마루노우치빌딩 사이는 고쿄로 향하는 큰 길이 만들어졌다. 또한, 버스환승장이 생기면서 일평균 200만명이 오고가는 JR도쿄역의 편리함도 더 좋아졌다. 이는 기존 구조를 완전히 바꾸는 대신, 필요한 부분을 개선하고 효율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마루노우치는 도쿄에서 상징성이 큰 지역이다. '중심의 중심'이라는 뜻을 가진 마루노우치는 도쿄역을 중심으로 북측의 오테마치에서 마루노우치, 그리고 남쪽 유라쿠초까지를 포함한다. 이 지역은 일본 최고의 비즈니스 거리로, 4100여 개 회사와 25만 명이 밀집한 일본경제의 중심이자 세계적인 업무지구다. 이러한 집중은 도쿄의 축소지향적 특성을 잘 보여준다. 좁은 공간에 많은 기능을 효율적으로 배치함으로써, 도시의 생산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미쓰비시 지쇼가 이 땅 전체의 70% 이상을 소유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그들은 글로벌 경쟁력을 잃어가던 마루노우치 지구를 현대적인 도시로 탈바꿈하는데 오랜 시간 동안을 공들였다. 마루노우치빌딩을 다

 이 과정에서 기존 마루노우치 지구에 있었던 시설을 지하로 많이 옮겼는데, 이는 지상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면서도 도시의 기능을 유지하는 축소지향적 접근이다. 현재 도쿄역 지하의 그란스타 도쿄가 바로 그 결과물이다.

이러한 개발 방식은 다른 지역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미쓰이 부동산은 코레도 시리즈를 통해 니혼바시를 새롭게 다듬어 나갔으며, 도큐코퍼레이션은 시부야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특히 광역도시 시부야 프로젝트는 시부야, 에비스, 다이칸야마까지 지역 간의 교통을 더 매끄럽게 하고자 정비하고 있다. 이는 도시의 각 부분을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전체적인 효율성을 높이는 편의주의적 접근의 또 다른 예다.


이러한 도쿄의 발전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기저에 있는 '편의주의'를 파악해야 한다. '편의적, 편의, 편의주의'는 그때그때 상황에서 맞추어 좋은 것을 취하는 행위를 뜻하는 단어다. 이는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는가?"라는 말로 간단히 설명될 수 있다. 도쿄의 도시 계획과 개발에서 이러한 태도가 명확히 드러난다. 예를 들어, 도쿄의 좁은 골목길에 자판기가 즐비한 것은 공간제약을 극복하면서도 편의성을 높이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편의주의적 접근은 때로 윤리적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과거사 문제나 국제 관계에서 일본의 태도가 종종 비판받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태도가 때로는 책임 회피나 과거의 잘못을 무시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도쿄기획은 이러한 편의주의를 바탕으로 하며, 이는 문제 해결이나 패러다임 전환에 집중하는 영미권의 접근과는 다르다. 도쿄에서는 창의성보다는 '지금보다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무인양품과 발뮤다 같은 기업들의 제품 개발 철학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들 기업은 혁신적인 새로움보다는 기존 제품의 사용성과 효율성을 개선하는 데 주력한다.예를 들어, 발뮤다의 토스터기는 혁신적인 신기술을 도입한 것이 아니라, 기존 토스터의 문제점을 개선하여 더 맛있는 토스트를 만들 수 있게 했다. 이는 창의성보다는 실용성과 사용자 경험 향상에 초점을 맞춘 접근이다. 오히려 혁신적인 신기술을 이야기하기에는 수비드머신이 오히려 더 적합하다.

앞선 글에서 도쿄브랜드를 이해할떄 지하철이 중요하다고 했다. 허나  도쿄라는 도시 그 ‘자체’도 깊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편의주의와 축소성이라는 렌즈를 통해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도쿄내 도시 계획, 건축, 제품 개발, 나아가 사회 전반의 특성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도쿄는 혁신적인 창의성보다는 실용적인 개선과 효율성 증대를 통해 발전해 왔다. 이러한 접근은 앞으로도 도쿄의 발전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창의력은 편의주의에 막힌다.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생각은 패러다임을 바꾸는 사고를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런 태도는 현상 유지를 선호하고 급진적 변화를 꺼리기 때문이다. 패러다임을 바꾸는 힘은 결코 사람들에게 좋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산업혁명 초기에는 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디지털 혁명으로 전통 산업이 위협받았다.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기에는 항상 고통과 인내가 따른다. 그 변화 속에는 항상 기존 기득권의 이익과 변화를 추구하는 이들이 충돌한다. 과거 택시 업계와 우버의 갈등이 이를 잘 보여준다.


편의주의는 이와 대치하는 사고다. 불편함을 피하거나 없애려는 태도에 더 집중하는 게 편의주의다. 편의가 '개선'에는 도움이 될지 모른다. 하지만 패러다임 전환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편의주의는 현재의 틀 안에서 작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그치기 때문이다.


도쿄 기획에서는 일상 속 사소한 부분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기 좋다. 예를 들어서 허리를 펴주는 교정기, 나무만 취급하는 가게, 남녀 사용을 구분하는 타월, 일본 전역에 퍼진 상품을 한 곳에 기획하는 법, 발 마사지 크림, USB로 충전하는 베개, 재활용품에 대한 새로운 기획(디앤디파트먼트) 등 일상 속에서 편리함을 도와줄 아이템을 가득하다. 이런 제품들은 분명 생활의 질을 높이지만, 사회 구조나 사고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않는다.


이제는 꼭 일본에 가지 않아도 쿠팡 로켓직구, 라쿠텐, 아마존 재팬, 이로이로, 돈키호테 온라인 등 직구를 통해 구할 수 있다. 또한 제품을 꼭 구매하지 않아도 SNS를 통해 손쉽게 제품을 볼 수 있다. 유튜브에서 검색을 해도 다양한 리뷰가 나온다. 나는 SNS에서 라쿠텐 코리아, 도큐핸즈 페이지를 팔로우하는데 재밌는 물건에 대한 포스팅이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가끔 라쿠텐에 들어가서 혼자 물건을 찾아본다. 종종 신기한 물건들이 눈에 보이는데 그 재미가 쏠쏠하다. 이런 경험은 소비의 편리함을 높이지만, 소비 방식 자체를 혁신하지는 않는다.


물론 이 같은 부분도 창의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요즘은 쿠팡 로켓배송에도 들어가보는데, 이 역시도 아주 재밌다. 그러나 기존의 틀을 넘어서 패러다임을 바꾸는 아이디어를 일본에서 본 적이 있는가? 생각보다 많지는 않다. 예를 들어, 환경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혁신이나 노동 구조를 완전히 바꾸는 아이디어는 찾아보기 힘들다. 결국, 이러한 편의주의적 접근은 일상의 소소한 개선에는 도움이 되지만, 패러다임을 바꾸는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편의주의, 도쿄 브랜딩을 이해하는 출발선.


편의주의 속에는 도덕이 없다. 오로지 맥락만이 있다. 이를 통해서 돈이 된다면 불편함은 감수한다. 그거면 된다. 좋은 게 좋은 거야. 왜? 그냥 좋은 게 좋은 거잖아? 그냥 넘겨. 그게 편해. 아니다. 불편한 건 고쳐야 하는 거다. 이 '왜?'라는 질문은 도덕에서 나온다. 기준과 원칙을 세우고 그에 맞게 균형을 맞춘다.


원칙과 윤리를 강조하는 한국을 일본은 잘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동시에 일본인들에게 없기에 한국인들에게 열등감을 느낀다. 일본인들은 조용하지만 뒤끝이 강하기로 유명하다. 앞에서는 친절하지만 뒤에서는 수많은 험담을 한다. 일본인은 항상 4,5명 이상의 모임을 만드는 일을 좋아한다. 겉과 속이 다른 일본인. 이 같은 사실은 전 세계 사람이 안다. 그럼에도 일본인은 손님에게는 지극정성으로 대한다. 나는 그 이유를 편의주의에서 본다.


'편의주의'가 추구하는 목적은 이익이다. 이익을 위해서는 나와 상대방 사이에는 불편함이 없어야 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때때로 상대방과 불편함을 마주해야 한다. 불편함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나눠야 한다. 하지만 일본은 유독 이를 싫어한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문제들을 먼지 덩어리라고 생각한다. 일본인은 항상 먼지를 치우려고만 한다. 먼지의 원인을 제거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당장 눈에 보이지만 않게 하려는 태도에 집중한다.


그들은 조금이라도 부딪치면 '미안합니다'라고 말한다. 불편함을 최소화하기 위해 예의를 지키려고 한다. 예의라기보다는 여지를 남기고 싶지 않은 경계심에 가깝다. 오모테나치는 손님을 극진히 대하는 일본 특유의 접객 방식이다. 손님을 극진하게 대하는 방식. 그 극진함은 이익을 담보로 한다.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적절한 기준에서 불편함이 없다면 좋은 거다. 일본인은 자신의 안위와 편의를 위해서 개인과 개인 사이 일정 거리를 두는 것을 편안하게 여긴다. 일본만이 가진 이 편의주의는 일본만의 '개인주의'를 대변한다. 한 국가의 주권자와 시민으로서 개인을 강조하는 서양의 개인주의와는 전혀 다르다.

나는 이 편의주의에 기반한 기획의 정수를 지하철이라고 생각한다. 일본 지하철은 복잡하다. 지하철 노선이 굉장히 많다. 지하철 노선 간 환승할인이 없다. 환승할인을 찾아본다면 도에이에서 도쿄 메트로로 갈아타는 경우 할인이 전부다. 일본에서 만난 현지인에게 우리나라의 환승시스템을 이야기했다. "그런 환승 시스템이 진짜로 있어?"라는 반응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만큼 도쿄 지하철에서 환승할인은 아주 생소하다. 도쿄 지하철 노선에 익숙해지면 그 노선마다 규칙이 있음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도쿄 여행 중 지하철 노선에 익숙해질 무렵이면 이제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일본은 우리나라 지하철 시스템과 달리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식이다. 우리나라 지하철 환승은 대체로 교통 중심지에 집중한다. 반면에 일본은 그런 거 없다. 걸어서 가도 좋은 거리에도 지하철 노선이 있거나 사철 노선이 있다. 물론 일본 특유의 지하철이 타지인에게 일본 감성을 맛보게 하지만 이는 별개다. 효율성이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다. 하지만 교통은 효율성이 중요하다. 


교통은 도시인들을 위한 기본 인프라다. 동시에 교통비는 생활비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우리가 대중교통 기본요금 인상에 민감한 이유도 교통비가 생활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 아닌가? 우리나라는 지하철 노선이나 요금 체재에 대한 문제가 이슈화되면 그에 관해 수많은 개선 이야기가 나온다. 청와대 청원은 이제 기본이다. 그렇지만 도쿄에서 사람들은 불편함을 감수한다. 출근시간 지하철에서는 경찰들이 나와서 사람들을 안내한다. 지하철 개찰구를 향하는 사람들이 만든 수십 미터 줄을 경찰이 관리한다. 스크린도어는 아주 드물다. 치안경찰들이 지하철이 들어오는 부분을 담당한다. 항상 도쿄에서 느끼는 일관성 없는 지하철 출구와 노선 설계는 답답하다.


데이터가 기본인 시대. 데이터를 취급하는 일은 이제 누구나 해야 한다. 데이터를 다루는 일에게 중요한 건 데이터 그 자체가 아닌 데이터 속에 감춰진 의미다. 데이터가 알려주는 방향성을 도출해야 한다. 가설을 설정하고 그 가설을 AB테스트를 비롯한 여럿 방법으로 끊임없이 실시하면서 결과를 찾아야 한다. 이와 동시에 가설에 맞는 해결방안도 찾아내야 한다. 츠타야가전은 츠타야에서 모은 빅데이터에 근거한 제안을 선보인다. 데이터에 기반한 맥락은 오히려 논리보다는 감성을 찌른다. 하지만 유통모델을 맥락이라는 기획으로 바꾼 츠타야는, 인스타그램이나 유투브같이 개개인들이 디자이너이자 기획자가 되는 시대가 되면서, 과거의 영광을 잃어가고 있다.

일본의 편의주의는 데이터를 활용하는 면에서도 드러난다. 예를 들어서 츠타야 같은 경우 T 포인트 데이터를 활용해서 그에 맞는 라이프스타일 제안을 기획한다. 다이칸야마 티 사이트, 츠타야 가전, 츠타야 셰어라운지등 츠타야에서 하는 기획은 티포인트에서 나오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라이프스타일 맥락'을 만든다. 데이터에서 나오는 방향을 가지고 생활 제안에 대한 맥락을 자르고 붙인다. 동시에 그 제안을 담당한 사람은 그 분야의 최고 전문가를 고용한다. 온라인속에 있는 빅데이터와 오프라인인의 최선의 대안을 서로 결합시킨다. 상황을 보다 좋게 만드는 방법. 이같은 사고는 일본의 편의주의가 가진 장점이자 단점이다.


데이터 속에서는 논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무수한 정보 파편만 있다. 그 안에 있는 데이터를 분석하면 맥락을 만들 수 있거나, 발견해야한다.  처음 빅데이터가 주목을 받을 때 많은 기업과 스타트업이 강조한 문구 중 하나가 "빅데이터를 활용한 라이프스타일 큐레이션"이다. 축약하자면 '제안'이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지나가면서 사람들은 '제안'을 보기전에 '시간'을 보기 시작했다. 게다가 빅데이터분석을 넘어. 'AI'가 발전하면서, 기업들이 하는 제안의 폭은 점차 그것이 '유통'의 다른 프레임이라는 점도 사람들이 손쉽게 발견하게 만들었다.


도쿄 기획이 늘 한국에서 주목을 받는 건 이 같은 데이터를 뽑아내 만든 편집기획이 다른 이들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도덕 같은 원칙은 없지만 편의주의가 바탕이 되는 편집력이 뛰어나기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러한 편의주의에 일본인이 유독 집착하는 '축소'를 만나면 일본인의 편집력은 더욱 빛을 발한다.


일본인들만의 유일무이한 특징.축소성.


무엇이든지 일본으로 넘어가면 조그마하게 변하거나 더욱 간편하게 변한다. 혹은 세밀하게 재현하는 물건을 즐겨 만든다. 뿐만 아니라 일본인은 상황에 맞게 좋게 개선하는 일을 좋아한다. 이는 유독 일본인에게 익숙한 일이다. 동시에 그들에게 잘 맞는다. 특히 간편하게 축소하는 일은 일본인들이 너무나도 잘하는 일이다. 일본이 창의적인 무언가를 발명한 사례를 아주 드물지만 인스턴트 라면은 일본인의 사고가 만들어낸 엄청난 발명품이다.

일본인이 추구하는 축소성을 가장 잘 표현한 문화를 뽑는다면 단연코 일 순위는 일본 음식이다. 일본 전통 새해 음식인 오세치가 대표적이다. 오세치 속에는 1년 동안의 삶과 소망을 담는다. 오세치 음식마다 각기 의미가 있다. 예를 들어 밤은 노란색이라서 돈이다. 새우는 긴 수염을 가졌기에 장수를 의미한다. 오세치 음식은 밍밍하다고 하지만 맛으로 먹는 게 아니다. 1년을 기원하는 자세이자 의식에 가깝다. 가족이 모여서 오세치를 먹고 신사에 가서 한해의 길 융화복을 기원한다. 오세치는 안으로의 축소, 신사는 밖에서의 축소다.


일본인의 축소성이 가장 빛을 내는 분야를 두 가지를 뽑는다면 하나는 피규어(프라모델 포함)이고 다른 하나는 디저트다. 특히 디저트는 일본인이 가진 축소성이 무엇보다 빛을 발하는 분야다. 디저트는 조금 다르다. 빵의 발효를 중시하는 빵과 다르게 디저트는 모든 공정 하나하나가 의미가 있다. 재료, 온도, 습도 등 공정과 환경변수를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디저트는 올바르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대표적인 예가 머랭과 초콜릿이다.

디저트는 단연코 프랑스라고 말하지만 아시아에서 독보적인 위치는 도쿄다. 디저트 시장의 규모와 다양함은 한국을 압도한다. 한국은 한국 나름대로 디저트 스타일이 있으나, 일본은 한국보다 디저트시장이 3배정도 크다. 2023년기준으로 한국은 대략 2조원. 일본은 6조원일정도로 시장이 크다. 그만큼 일본 디저트시장은 세분화되어있다. 또한 오미야게 문화도 무시할 수 없다. 


도쿄에는 세계의 모든 파티시에, 쇼콜라티에가 모여든다. 백화점에서부터 전문 과자점까지 디저트 전쟁이 일어나는 곳이 도쿄다. 도쿄에 가면 반드시 미츠코시 긴자 식품관에 가야한다. 양과자에서 일본 과자까지 다양함은 기본이거니와 정교한 과자들을 보고 반한다.

정원 속에서 나무와 돌을 하나씩 손질하며 자연을 축소하는 일본인들. 그들에게 달콤함의 축소하는 디저트는 무엇보다 잘 어울린다. 디저트를 만드는 각기 다른 공정을 통해 더해진 맛은 작은 형태 속에서 다채로운 맛을 선보인다. 맛의 우주! 달콤함의 향연. 달콤함의 하모니. 디저트 안에는 재료가 가진 디테일, 섬세함. 맛이 녹아있다.


이케부쿠로의 반다이 남코 크로스스토어에 가면 동물을 최대한 단순하게 축소한 모형들을 많이 판매하는 걸 볼 수 있다. 일본은 유독 이 같은 상품이 많다. 피규어와 프라모델도 이 안에 들어간다. 피규어는 보통 수집에 집중하지만 프라모델은 수집, 제작을 동시에 집중한다. 도쿄는 덕질을 하는 이들의 천국이다. 특히 아키하바라는 덕질을 위해 반드시 가야 하는 장소다.

일본은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그에 기반한 각종 상품이 우리나라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발전했다. 특히 피규어 쪽은 엄청나다. 일본인은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애니메이션 속에 있는 인물들마저도 현실로 옮기고 싶어 한다. 이 같은 소망이 담긴 물건이 바로 피규어다.


피규어는 일본인이 사랑하는 '축소성'중 하나일 뿐이다. 일본 드라마를 보았다면 집안에 있는 위폐에 기도를 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을 것이다. 작은 위폐 즉 작은 신사를 집에 축소해서 모셔놓는다. '히나마츠리'같은 여자아이들을 위한 마츠리(일본식 축제)에서도 여자아이들을 위한 축소가 등장한다. 일본인이 추구하는 축소는 셀 수 없이 많다. 난 단지 극히 일부만 이야기했을 뿐이다.

편의와 축소를 이해한 후 일본과 도쿄를 보기 시작하면 새로운 시각이 열린다. 도쿄가 무엇이 서울과 다른지 분명하게 볼 수 있게 된다. 또한 일본인이 추구하는 이 두 가지는 한국인에게는 잘 맞지 않는다. 이는 한국인이 조화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크고 작음이 가진 조화를 추구하는 한국인에게 편의와 축소가 핵심을 이루는 도쿄 기획은 한국에게 필요한 디테일을 제시한다. 만약 당신이 기획 혹은 구현에서 디테일을 더 살펴보고자 한다면? 도쿄에 가면 그 해답을 찾을 확률이 높다.


도쿄가 서울보다 앞선다? 그 기준은 특정한 측정지표에 기반한 의미다. 우리는 애써서 한국을 내려치고, 일본을 올려칠 이유가 없다. 우리는 그저 물리적으로 앞선 도쿄의 무언가들을 우리것으로 만들면 된다.그렇기때문에 편의주의와 '축소성'을 기억하고 도쿄에 가자. 도쿄를 더 새롭게 보는 돋보기가 될 테니 말이다.


도쿄 기획을 관통하는 단어 '쓰메루’


쓰메루? 뺵빽하게 채운다는 일본 단어다. 한국어로는 빽빽하다는 말로 표현할수있지만, 그 빽뺵함이 단순하게 촘촘하게 채운다는 뜻과는 다소 뉘앙스가 다르다. 하지만 '쓰메루'를 항상 생각하면서 '도쿄'를 비롯한 일본기획과 구현을 보자. 일본 기획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이 생길 것이다. '쓰메루'는 일정한 틀 속에 최고 다져서 빽빽하게 끼워 넣는다는 일본말이다. '쓰메루'는 특히 퍼져있거나 산재해 있는 것들을 일정한 공간에 치밀하게 밀집시켜 놓는 것을 말한다. 빽뺵하지만, 빽빽하게 가득 채운건 아니다. '쓰메루'에서는 치밀하게 밀집시키기 때문에 '공간'을 줄인다. 그렇기에 쓰메루는 '공간'에 많이 반영된다. '쓰메루'라는 개념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나서야 도쿄에서 본 기획이 자연스럽게 이해됐다.

그렇다면 쓰메루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빽빽하게 채워 넣는다'는 쓰메루를 가장 쉽게 이해하는 물건이 있다. 바로 '벤또'다. 즉, '도시락'이다. 예를 들어 일본 새해에 먹는 오세치 요리는 보통 한 끼 식사가 아니다. 3단으로 구성한 오세치에는 새로운 1년 동안 건강, 번영, 행복에 대한 마음을 빽빽하게 담아 밀집시켰다. 오세치는 1년을 기약하는 소망을 축소했다. 이는 1년의 축복을 기획하고 구현한 모습과 다름이 없다. 오세치는 들어가는 재료마다 의미가 있다. 예를 들어 오뎅은 새해 첫 해돋이, 새우는 건강과 장생을 의미한다.

도쿄역 마루노우치 중앙 출구로 나오면 탁 트인 전경과 멀리 고쿄가 보인다. 고쿄로 향하는 길목에는 마루노우치, 신마루노우치 빌딩이 양쪽에 있으며, 그 양옆을 따라 말끔한 도로, 분재같이 손질한 소나무, 도로가 고쿄와 유기적으로 이어진다. 그 배치는 바닷가를 축소한 느낌을 받는다. 고쿄는 섬이며, 도로는 바닷물, 자동차는 배. 도쿄역은 항구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교토를 방문해본 이라면 료안지 정원이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노지정원이 떠오를 수 도 있다. 이는 고쿄 러닝코스를 달려보면 알 수 있다. 고쿄러닝코스는 고쿄와 그 주변 자연 경치를 한바퀴 도는 코스다. 사쿠라다이몬에서 시작해 마루노우치와 신마루노우치 빌딩근처에 오면, 근방의 나무들이 마치 노지정원의 돌길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정갈하면서도 빽빽하게 무언가를 채운 느낌. 그 빽빽함은 규칙적이지만 지나치게 차분함이다. 이 처럼 일본인이 공간을 만드는 방식에서 '쓰메루'를 다양한 형태로 발견할 수 있다. 그 모습은 공간뿐 아니라 기획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쓰메루는 '공간을 왜 만들고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라는 시작점에 있기 때문이다.

도쿄기획은 보면 무언가 항상 꽉 차 있다. 각 코너는 언제나 일괄적인 나열이 아닌 '주제', '관점', '맥락으로 채우는 취향'이 있다. 지금은 없어진 다이칸야마 츠타야 티사이트의 음반 코너같은 경우,'재즈 피아노를 좋아하는 이는 이러이러한 아티스트를 좋아하지 않을까요?'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면 그 맥락을 이어주는 물건으로 가득 채운다. (키스 재릿과 빌 에반스) "재즈를 좋아한다면 역시 달콤하고 매혹적인 재즈 보컬 아니겠어요?"하는 기획에서는 재즈 보컬로 가득 채운다. 대표적인 사례가 다이칸야마 츠타야 티 사이트 안 음반코너이다. 지금은 셰어라운지로 바뀌어서 더 이상 볼 수 없는 공간이다.


대부분의 음반매장은 '장르', '취향'으로 가득 채운다. 이곳은 음반의 우주다. 마치 도시락을 먹듯 '밥'이 있고 밥과 같이 먹기 위한 '다양한 반찬'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때로는 간결하기도 하고, 너무 과하기도 하지만 그 속에는 무엇인가 '메시지를 담은 꽉 참이 있다.' 기획에서 연결성이 있는 맥락을 지향한다. 반면에 논리는 나누는 성질이 있어서 최대한 지양한다. 꽉 채운다는 개념은 '맥락'을 채움을 말한다. 물건으로 가득 채운다는 말이 아니다.

츠타야는 '개인의 라이프스타일', 무인양품은 '이것으로 충분한 삶', 아코메야는 '일본인의 쌀문화' 하코야는 '나무로 가득 찬 일상', 렉서스 미트 히비야는 '렉서스가 중심이 되는 삶', 하마쿠라 상점제작소는 '쇼와시대 정서를 품은 요코초'등 훌륭한 기획을 하는 곳은 간결함과 맥락으로 구성한 '꽉참'이 항상 있다.츠타야같은 경우는 셰어라운지를 통해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을 ‘시간’으로 바꿨다. 하지만 도쿄기획에서는 늘 ‘꽉’ 채워야 하기에 기획 안에 담긴 디테일은 항상 매우 강하다. 그렇다고 여기서 ‘꽉 채운다는 말이 ’물리적인 공간을 빈 곳 없이 채운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비워놓는 것이 빽빽히 채우는 모습이라면 공간은 비운다. 그렇기 때문에 공간도 기획과 맥락으로 연결한다.

츠타야가전은 '쾌적한 집', '음악듣기'라는 라이프스타일 제안을 위해 가전제품을 가득 채운다. 가지런히 정리한 '도쿄의 기획'에는 디테일을 하나씩 손질한 인간의 손이 먼저 보인다. 만약 츠타야를 비롯한 일본의 기획이 좋기는 하지만 인위적으로 연결한 흔적을 적지 않게 느꼈다면 그건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무인양품은 '이것으로 충분하다!', 에비스브루어리 도쿄은 '에비스맥주에 관한 모든 경험'들로 가득 채운다. 기획 속 디테일에는 '맥락'과 '맥락'을 연결하는 논리가 밑바탕이다. 이는 경험을 중시하는 공간으로의 전환을 시도하는 대다수 도쿄 브랜드들에게도 모두 적용할 수 있다. 쓰메루는 소위 도쿄기획을 모든 황금열쇠와도 같다.


그렇다면 쓰메루가 기획법의 종류인가라는 질문이 생긴다. 하지만 아니다. 우리나라 빌딩과 다르게 일본 빌딩에는 꼭 빌딩 안에 입점업체를 자세하게 알려준다. 이 역시도 쓰메루의 일종이다. 일본에는 '기리쿠치'라는 말이 있다. 단어 자체 뜻은 '베는 솜씨', '단면'이라는 뜻이다. '기리쿠치'는 특정 '주제를 어떠한 관점으로 볼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다. 허나 이 기리쿠치 그 위에는 '쓰메루'가 있다. '기획 결과물은 항상 빽빽하게 채운다'를 전제하고 기획 방향을 정하는 것이다.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이 그 어느 때보다 주목받고 있다. 코로나이후에는 라이프스타일의 기저인 '시간'으로 그 초점이 옮겨졌다. 타이파,코스파,스페파, 웰파같은 3,4년간 일본의 트랜드들은 이러한 것들을 모두 반영한다. 코로나이전에는 츠타야나 무인양품을 비롯한 일본 기획이 인스타나 각종 포스팅에서 자주 보인다. 하지만 이제 이런 기획들은 점점 더 자취를 감추고 있다.  나는 과거 츠타야 같은 기획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이 '쓰메루'라는 말에서 시작하는 일본 특유의 '기획'과 '구현'이 관련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간'과 '경험'이 중심이 된 지금에도 '쓰메루'한 결과물은 무엇이든지 축소한다. 쓰메루한 결과물을 즐기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즉, 축소한 대상은 결국 개인에게 최적화된 상태다.


다시 한번 오세치를 보자. 오세치 안에는 다수는 없다. 오로지 1년의 소망을 기원하는 개인만 보인다. 이 오세치 안에 1년의 소망을 축소했지만 철저하게 개인적이다. 이 안에서는 개인만 보이지 다수는 보이지 않는다. 일본인들은 오세치 안에 '1년'이라는 시간을 음식으로 가득 채운 셈이다. '쓰메루'를 항상 생각하면서 '도쿄'를 비롯한 일본기획과 구현을 보자. 일본 기획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이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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