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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험을전하는남자 Aug 18. 2017

도쿄기억.

잠자고 있던 영감이 조금씩 깨어나는 도시 그 곳이 도쿄다.

"탁, 탁탁, 털컥, 타 가닥 타 가닥" 바퀴는 계속해서 소리를 낸다.

캐리어의 바퀴의 소리는 은근히 거슬리게 들린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데 말이다.

종종 남에게 시끄럽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사람들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저 날보고 '어디론가 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지난밤의 피로가 아직 묻어나는 손은

지친 기색으로 캐리어를 끌며 지하철 계단을 내려간다.

안타깝게도 숙소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캐리어를 계속해서 끌어야 한다.

코인로커가 있지만 그것도 잠시뿐이다. 여행을 위해 떠난 순간부터

숙소에 도착하는 시간까지 캐리어를 끄는 시간은

불안함이 엄습하는 시간의 합이다.


어제는 서울에 있었다. 정확하게 6시간 전만 해도 서울에 있었다.

주변에는 한글이 가득했고, 같은 말을 쓰는 사람들과 웃음을 나누면서 있었다.

공항의 탑승구에는 다들 자신의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과 부모들은 기대감을 안고 각자의 목적지에 갈 준비를 한다.

밤 비행기라고 사람이 적을 것이라는 생각은 금물이다.

사람들은 오히려 밤에 더욱 분주해진다.

특히 여행을 떠나는 이들에게

밤은 새로운 곳을 향한 기대감으로 가득한 폭포수와 같다.

눈을 감고 비행기를 타고나서 눈을 뜨고 나니 새로운 곳이다.

그것은 스스로만 알 수 있는 놀라운 경험이다.

'도착했다!'라는 기쁨이 심연에서 터져 나오며

내 온몸을 휘감을 때 그 얼마나 짜릿하고 감동스러운가!

탑승구는 그 동안 참아왔던 기대감이 폭발하기 시작하는 시작점이다.
하늘에서 본 인천공항근처의 모습.일상이 새롭게 보이는 순간이 여행의 시작이다.

일상적으로 무미건조한 도시의 불빛과 감흥이 없는 빌딩들.

항상 건너는 길목과 시끄럽고 매연만 뿜어내는 자동차들.

삶에서 보는 것들이 '위를 향해 보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보는 것'이 되는 순간,

일상의 순간은 기억하고 싶은 찰나의 순간이 된다.

여행의 시작은 항상 이렇다.

일상적인 것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다.

비행기  좌석에서 보는 풍경은 더더욱 그렇다.

위를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는 경험은 흔치 않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의 모든 풍경에 경외감을 느낀다.

 그래서 우리는 창가 자리를 항상 사수하려고 한다.

엔진 소리가 커도 말이다.

그 소리를 참을 만큼의 소소하고 잔잔한 감동이

창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테니까.


하늘에서 보는 순간이 점차 줄어들고

 '위에서 보는 것'이 다시 '위를 보는 것'으로 바뀌어 갈 때,

비로소 목적지에 다다랐음을 깨닫게 된다.

그 순간부터 불안감과 기대감은 짝꿍이 되어서 나의 양쪽에서 나와 함께 한다.

비행기가 착륙했다. 설레이기도 하지만 덤덤하다.

비행기가 착륙하고 멈추는 순간이 되면 설렘의 절반은

덤덤함으로 바뀌어져 있다.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 나에게 있던 묘한 호기는 점차 사라진다.

이제 낯선 땅의 온도에 적응해야 하는 부담감일 것이다.

마음도 마음이지만 몸이 긴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같은 비행기 안의 공기가 어느 순간 적막한 긴장감으로 다가온다.

짐을 내리기 위해서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지만

그런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순간적으로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아주 잠깐이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묘한 느낌이 온다.

특히 혼자서 온 여행은 더더욱 그렇다.

"number 1 clear! number 2 clear!"를 말하는

캐빈승무원들의 말이 끝나면 비로소 비행기에서 나가게 된다.

"즐거운 여행되십시오!"


미소를 띠우며 울려 퍼지는 캐빈승무원들의 인사. 이것이 마지막으로 듣는 한국말이다.

동시에 여행지에서 일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사실 일정이라는 말도 어색하다.

혼자서 여행을 오면 일정이 어디 있는가? 자고 싶으면 자는 거고 걷고 싶으면 걷는 것이다.

하지만 친숙한 모국어가 끝나는 시점에서의 느껴지는 이유 모를 어색함은 불안하면서도 뭔가 흥미진진하다.

무엇보다 이 상황이 낯설지만 금세 또 적응한다.

다만 매번 여행에서 느끼는 감정이니까 다만 그걸 느끼는 것이 즉각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간간히 한글 안내글이 보인다. 한국어 방송도 들린다.

한국에서 느낄 수 있는 특유의 한국어 음색이 결코 아니다. 어색함이 느껴지는 한국어라서

'이것은 한국어 방송'이라는 생각만 들지 친숙함이 없다. 모국어에 대한 낯선 감정이라....


입국심사를 받는 순간에도 주변에는 한국인들이 있어서 낯섦이 덜하다.

이번은 두 번째 도쿄 여행이라서 이 입국심사장은 더더욱 익숙하다.

불안감의 시작은 스마트폰 충전을 위해서 110V 돼지코를 보는 순간 갑자기 밀려온다.

'한국이 아닌 것이다....'


공항에서부터 다시 집으로 가는 순간까지 불안과 기대감은 여행에서 시종일관 나와 함께하는 동반자이다.

하지만 걱정할 것은 없다. 불안과 기대감의 적절한 조화가 여행에서 새로운 시선을 가지게 도와주기 때문이다. 특히 혼자서 여행을 할 때 그것은 더더욱 심하디.

이른 새벽의 하네다공항(2016년 여름.) 생각보다 낯설지는 않다.
낯선 현지 일본어 방송과 함께 하루가 시작된다.

하네다 공항에 도착한 시간이 밤 11시라서 5시간 정도 공항에서 노숙을 해야 한다.

저녁의 하네다 공항에 도착한 사람들은 대부분 노숙을 하기 때문에 전혀 낯설지가 않다.

오히려 입국장을 나오면 노숙할 자리를 잡기 위해서 뛰어가는 사람들도 볼 수 있다.

다만 일정이 조금 힘들 뿐이다. 물론 우버를 사용하면 좀 더 편하게 갈 수 있다. 그렇지만

공항에서 노숙은 그리 나쁜 경험도 아니다. 낯선 일본어를 자장가 삼아서 잠을 청해 본다.


서울남산체가 아니다 그냥 고딕이다. 한국과는 다른 어색한 한글.그래도 반갑다. 딱 여기까지다. 한국어는(신주쿠역에도 한국어는 있음.)
마츠모토 준에게 인사를 건네자! 적어도 도쿄에서 2번은 보게 된다.

도쿄 모노레일을 타고 하마마츠쵸 역을 빠져나와서

아사쿠사선 다이몬 역에 도착하는 순간

더 이상의 한국어를 찾아보기가 힘들어진다.

낯선 여행지에서 모국어가 점차 사라지는 시간은

낯선 지역과 만나는 시간과 더욱 가까워짐을 알려준다.

아사쿠사선에서 츠키지 시장으로 가는 지하철을 기다리는  

내 모습에는 조금 아는 일본말과 그나마 익숙한 영어가 보일뿐이다.


아사쿠 사선 다이몬 역에서 두 정거장만 가면 츠키지 시장이다.

미스터 초밥왕과 맛의 달인에서 그토록 들은 츠키지 시장 아닌가?

도쿄에 새벽시간에 도착하면 할 일이 없다.

대부분 상점은 11시부터 열기 시작한다. 숙소 체크인도 오후 3시이다.

여행 첫날 새벽부터 오후 3시까지는 아주 긴 시간이다.

게다가 밤 11시부터 도쿄로의 여정이 시작됐기에,

그 시간은 더더욱 길다. 그렇지만 도쿄에 도착한 시간 중에서  단 1분도 헛되이 보낼 수 없다.

그렇다면 츠키지 시장에 가서 시장 구경을 하자.

그래서 나는 지금 다이몬 역에 있는 것이다.


츠키지 시장역에 도착하면 한국어가 조금 보인다.

츠키지 시장 쪽으로 전혀 문제없이 찾아갈 수 있다.

냄새만 따라가도 문제가 없다. 냄새가 타는 출구가 바로 츠키지 시장 입구이다.

출구에 도착할 무렵 바다 냄새가 자욱하게 코를 찌른다.

비린내가 코 안을 세밀하게 찌르지만 오히려 반갑다.

사람 사는 냄새를 맡는 것 같다. 몸은 힘들지만 잘 왔다고

스스로에게 칭찬을 해준다.

그러나 갑자기 내 눈앞에 수많은 전기구루마가 쏜살같이 지나간다.

명심하시라! 츠키지 시장에서 전동구루마는 사람보다 먼저다.

그것은 츠키지에서의 불문율이라고 한다.

노량진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다.

전기 구루마가 서로 줄지어서 가는 모습들을 보면 경이롭기까지 하다.

(다만 멍 때리고 있지 말자. 전동 구루마들은 갑자기 튀어나오기도 한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 서로가 서로의 거리를 지켜준다.

일본어가 마구 난무하는 상황에서 길도 어디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잘 왔다! 정말 잘 왔어! 사람 사는 냄새가 너무 좋다!'

스스로에게 말하면서 이곳을 구경한다.

낯선 일본어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호기 있게

전기구루마를 따라서 츠키지를 살펴본다.

츠키지에서 전기구루마는 사람보다 우선이라고 한다.명심하지.
아리따운 자태를 뽐내는 새우들.

츠키지 시장을 구성하면서 지난 시간 나의 일정을 다시 한번 기억해본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공항에서 들은 한국어 안내는 아주 어색했다.

지하철에 지친 손으로 의자에 앉고서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

'나는 비로소 홀로 도쿄에 와있구나.'

지하철이 다음 역에서 멈추는 순간 홀로 있다는 외로움이 가슴에 몰려온다.

그리고 이제 어떻게 시작할지 막막하다.

'어떠한 말을 해야 할까??'이 상황에서 쓰미마셍이 맞는 걸까?'

이미 겪지도 않는 상황을 상상하면서 홀로 상상의 나래에 빠진다.

다 부질없는 짓이다.

어차피 어떤 상황이 닥쳐도 어떻게든지 행동할 것이다.

미리 걱정하는 것은 부질없다.

신선한 츠키지시장의 참치.마지 정육점같다.


그렇지만 그것이야 말로 항상 여행에서 느끼는 감정이다.

이제 이 감정도 곧 새로운 생각과 영감으로 바뀔 것이다.

두려움과 설렘은 친숙함과 낯섦으로 동시에 날 마주할 것임을 안다.

그래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나를 알지만 내가 몰랐던 나를 알기 위해서 말이다.

자신이 몰랐던 불편함과 고독을 느낄 때 비로소 자신은 성장할 수 있다.

우리는 항상 편한 감정과 상태를 원한다. 성장도 항상 편하게 알아서 되기를 원한다.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연스럽게 어떠한 어려움 없이 무난하게 자라기를 바란다.

성장을 그러한 것이 아님을 나 자신도 알고 있는데 말이다.




JR신주쿠 동남쪽 출구.수많은 여행객들과 사람들이 거쳐가는 곳이다.공항이 여행의 경계에 있다면 이곳은 여행이 시작되었네?하고 말 할 수있는 곳이다.

나는 왜 도쿄에 왔는가?

도쿄에서는 내 생각을 다듬어 볼 수 있다. 항상 도쿄에서 시작된 것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로 건너온다. 그렇기 때문에 서울에서보다

구체적인 생각을 해 볼 수가 있다.

동시에 그 구체적인 생각이 만들어진 것을 실제로 볼 수 있는 기회도 역시 크다.


자신의 생각의 타래를 조리 있게 풀어내는 것.

그 타래의 첫 실 가락은 '생각', '몽상'에서 가장 먼저 시작된다.

그 막 피어오르는 생각도 때때로 이미 완성된 것이 있을 확률이 높다.

도쿄는 그것을 제공하는 하나의 공간이다.

도쿄가게들의 기뢱 맥락은 한국과는 사뭇 다르다.츠타야로 알려적 제안은 이곳에서는 어디서든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사진은 도쿄역 키테)
다이칸야마 티사이트는 아주 유명하지만 그안에서의 제안들은 도쿄에서는 익숙한 광경이다.

낯섦은 나의 생각을 더욱 다듬어 보게 한다.

낯섦은 익숙함에서 시작한 내 생각을 다른 시각에서 보게 한다.

나의 철학, 나의 시선을 담아내는 그릇이 모호한 것에서

구체적인 것으로 발전하게 된다.

디테일이 조금씩 채워지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디테일을 더욱 세밀하게 채워주는 곳을

찾아가는 것은 스스로에게도 도전이지만 가장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너무나도 관대하지 않은가?

낯섦은 그 관대함에 냉정하게 철퇴를 가한다.

그래서 여행을 스스로가 떠나서 일부러 자극을 받을 필요가 있다.

노량진수사장에 익숙해져 있다면 츠키지 시장은 전혀 새롭게 다가온다. 참치 한마디를 통째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서울에서 흔하던가?

영감의 도시는 무엇일까?


영감의 도시는 그저 생각만 하게 하는 곳이 결코 아니다.

자신의 시선, 철학을 구현하는 과정이 담긴 곳을 보는 것이다.

그 집합체가 영감의 도시이고, 그렇게 명명할 수 있는 것이다.

생각의 파편과 조각들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과정을 지나서,

처음에  보이지 않던 퍼즐 조각들이 하나씩 하나씩 발견하며,  

하나씩 발견한 조각들은 맞춰볼 수 있는 곳.

어떠한 정답도 없고, 정답이 없기에 질문도 만들어야 하는 과정들.

영감의 도시에서는 그것들이 가능하다. 적어도 나에게 도쿄는

위에서 말한 모든 것들이 충족되는 것이다.


이른 아침의 아사쿠사는 사람이 없다.하지만 이 길도 오후가 되면 수많은 사람들로 붐빈다.나의 여행도 이 길처럼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말로 표현하기 힘든 수많은 생각과 감정으로 가득찰다.

아무 의미 없는 것들에게 나만의 의미를 더해서 나의 발걸음을 넓혀가는 것.

그것이 여행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축복이자 도전이다.


여행은 시작됐다. 이미 지난 모든 일들,

모든 불안들, 모든 걱정들은

망각의 강에 다 쏟아버렸다.

불안과 설렘을 안고 다도 알지 못할 경험 속에 나를 던진다.


내 자신도 예상치 못할 이야기, 생각, 아이디어, 제안 , 기획 등이

 나를 어떻게 엄습해 올지 모른다.

그것이 바로 영감일 것이다.

그렇다. 도쿄는 영감의 도시가 될 것이다.

아니다. 영감의 도시이다. 그렇게 믿으며 여행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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