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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은 Nov 16. 2018

공간: 내가 생각하는 공간의 크기는 무엇일까?

라이프스타일을 위한 10가지 에세이: 3. 공간.

"그저 이 순간에 머물고 싶다."


꿈꾸던 공간에 머물렀을 때 우리도 모르게 내뱉는 말이다.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공간은 자신을 닮는다.

공간에 대한 접근, 철학, 구현은 정답이 없다. 정답보다는 방향이다.

모든 공간은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 경험에서 태어난다.

우리가 손수 겪은 경험이 삶 속에서 크거나 작게 나타난다. 

공간은 기억의 발자취이자 그림자다.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가 라이프스타일이라는 

기획이라면 공간은 그것을 구현하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 기획과 구현은 언제나 파트너다.

라이프스타일을 위한 10가지 에세이를 쓰면서 공간을 세 번째 단어로 선택한 이유는 

나 자신이 원하는 공간이 무엇인지 스스로 묻고 답하고 싶었고

내가 본 공간들을 한번 돌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찾은 답은 '확장과 축소'다. 

어떤 공간이던지 그 안에는 확장과 축소가 있으며 

한 부분이 더 두드러지거나 혹은 조화를 이룬다.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는 공간을 통해서 드러나고 

그 속에서 우리도 모르게 자신이 원한 취향이 디테일로 드러난다. 

그렇게 만들어진 혹은 경험하는 공간을 만날 때 그 안에서 안도감을 느낀다.

그 안도감이 극대화되어 편안함을 느낄 때 우리는 그곳을 '인생-'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공간:축소와 확장의 조화


자신이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은 자신이 선호하는 공간으로 귀결된다.

공간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 하나하나가 자기 자신 그 자체다.

자신이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이 공간을 통해 확장하는 시작점으로 삼을 수도 있고 

모든 요소를 축소할 수도 있다. 하지만 확장과 축소라는 두 요소를 나눠서 볼 수 없다.

확장과 축소는 방법론의 차이일 뿐이다. 확장 지향 혹은 축소지향이라는 방향성이 중요하다.

심은 그 안이 있는 중심은 '나"이다.


1. 확장이 두드러지는지는 공간: 넓은 거리, 자연, 마천루.

확장이 두드러지는 공간은 크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사진 몇 장이면 충분하다. 도시 야경 혹은 전경은 장엄함을 선사한다.


마천루에서 보는 야경. 도시를 통해 인간의 의지가 극적으로 확장된다.


부산 전경, 뉴욕 야경, 홍콩 야경이다. 마천루에서 보는 도심은 

그 자체로 사람을 압도한다. 이곳에서 개인 공간은 없다. 오로지 개인을 압도하는 공간만 있다. 

그렇지만 그 압도감은 개인을 짓누르는 힘이 아니다. 도시라는 커다란 공간이 끊임없이 펼쳐하는 모습 그 자체는 사람을 압도한다. 도시를 일군 사람의 힘을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홍콩에 여행을 갔다고 하자. 

숙소는 침사추이다. 빅토리아 피크에 가서 홍콩 야경을 보려고 한다.

그렇다면 침사추이에서 페리를 타고 IFC빌딩이 있는 센트럴로 간다. 센트럴에서 트램을 타고 빅토리아 피크로 올라간다. 빅토리아 피크에서 야경을 보는 순간에 우리는 단순하게 야경만 보고 감탄하지 않는다.  자신이 저 바다 건너편에서 페리를 타고 온 여정까지 모두 생각한다. 

'내가 페리를 탄 저 바다가 한없이 작아 보여!'. 이 같은 경험은 야경을 통해 보는 공간 확장성이 페리를 타고 온 순간을 비추기 때문이다. 우리가 여행에서 야경투어를 가는 이유는 이 같은 경이로운 압도감을 체험을 하기 위함이다. 이와는 다르게 자연은 사람에게 숭고미를 선사한다. 그 자체로 말이다.

자연은 조금 다른 압도감을 보여준다. 끝없이 펼쳐지는 수평선과 바다를 보라. 산이 둘러싼 자연을 속에는 웅장함과 고요함이 살아 숨 쉰다. 도시와는 다른 자연스러움으로 사람을 압도한다. 이곳에는 마천루가 선사하는 도시 야경과는 다른 숭고미를 뿜어내는 공간 확장이 있다.


거리도 마찬가지다. 도시에서 공간의 확장을 자연스럽게 느끼는 장소가 거리다.


거리는 일상이 가장 확장하는 공간이다.




2. 확장과 축소를 동시에 경험하는 공간:

도서관, 카페, 공원, 미술관, 좁은 거리, 서점.


서점은 책이라는 매체로 사람의 경험을 확장시킨다. 동시에 책을 보는 개인은 개인만의 시간을 갖는다. 이는 공간의 축소다.
같은 도서관이지만 왼쪽은 공간이 확장되는 느낌이 강하지만 오른쪽은 공간이 축소되는 느낌이 강하다.


도서관은 공간의 확장과 축소가 공존하는 흔치 않은 공간이다. 

수많은 책 속에서 사람들은 경외감과 압도감을 느낀다. 

그 압도감은 사람의 감정을 억누르는 힘이 아닌 감정을 터트리는 압도감이다.

누구나 압도적인 책 앞에서 자신이 작아지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자신은 작아지나 공간은 더욱 크게 다가온다. 조용한 도서관은 이 같은 압도감으로 

우리가 체감하는 공간을 더 확장한다. 동시에 도서관에 들어가서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에서 

책을 골라 읽기 시작하는 순간, 나는 홀로 그 공간에 몰입한다.


블루보틀은 커피를 마시는 경험을 공간에 담았다.스타벅스와는 다르게 '커피에 집중한다'는 개인적인 경험에 초점을 맞춘다.
카페는 개인공간과 공적인 공간이 조화롭게 충돌하는 곳이다. 우리가 카페에 끌리는 이유는 이 조화로움때문이다.

카페는 개인이 추구하는 공간이 조화롭게 충돌하는 곳이다. 우리가 카페에 끌리는 이유는 이 조화로움 때문이다. 종종 카페가 공부를 하는 곳인가? 아니면 이야기를 하는 곳인가? 대한 논쟁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는 공간에 대한 인식차에서 시작한다. 카페는 커피를 마시는 음식점이면서도 동시에 단기 임대공간이다. 카페에서 공부를 하는 이들은 카페를 공부하는 공간으로 접근한다. 카페 안에서 내 자리는 커피와 같이 구입한 '나의 공간'으로 생각한다. 응당 그곳의 권리는 나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이 순간에 카페 내 공간은 개인의 공간으로 축소된다. 반면에 카페에서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토론을 이들에게 카페는 개인과 개인의 만남을 통해 확장이 되는 장소다. 그들에게 카페는 공간이 확장되는 곳이다. 이렇게 같은 공간에 대한 접근이 다른 게 당연히 충돌할 수밖에 없다. 

공간이 확장될 때 우리는 따뜻함을 축소될 때는 고요함을 느낀다.


다이칸야마 츠타야 티사이트 음반코너는 음악이라는 큰 장르와 '음악을 듣는 나'라는 개인공간이라는개념이 공간으로 확장되는시점과 개인공간이라는 축소가 미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우리가 "잘 만들었다!"라고 좋아하는 공간은 개인이 느끼는 정서의 확장과 축소를 잘 나눠져 있다. 이 같은 느낌을 우리는 직관적으로 안다. 편안함은 인위적인 감각이 아닌 원초적인 감각이니까.

 

미술관도 확장과 축고삭 공존하는 공간이다. 미술관이라는 건물 자체가 그곳이 추구하는 예술의 지향점을 공간으로 축소한 곳이다. 런던 테이트 모던과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은 건물 형태와 소장물도 다르다. 미술관에서 사람들은 작품을 보며 예술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마주한다. 미술관에서 사람들은 미술작품을 보면서 자신만의 감성을 작품을 통해 느끼거나 해석하며 몰입한다. 서유럽 미술관에서 의자를 가지고 다니며 작품을 오랜 시간 보는 이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는 개인의 취향이 미술품으로 축소되는 것이다.

미술관에서는 예술이라는 큰 테두리로 공간이 확장된다. 미술을 감상하는 나는 철저하게 개인이다.이는 축소다.
뉴욕 MOMA의 작품전시장. 작품을 해석하기위해서는 개인이 철저하게 작품에 집중해야 한다. 그야말로 공간의 축소 아닌가?


3. 축소가 두드러지는 공간: 주방, 욕실, 서재, 편집샵, 스마트폰, 호텔


대부분 공간은 확장과 축소가 공존한다. 공간은 이분법적으로 생각할 수 없지만 공간이 '축소'에만 편중된 공간도 존재한다. 대표적인 공간이 주방이 아닐까? 주방은 음식을 만드는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이다. 레스토랑도 별반 다를 바 없다. 레스토랑마다 추구하는 음식 철학과 미식 경험이 다르지만 이 부분을 떠나 음식을 조리하는 공간과 먹는 공간은 오로지 '음식에' 극도로 집중한다. 파인 다이닝이라는 부르는 현대 미식도 넘어서 음식 자체를 넘어 경험으로 확장되지만 그것도 결국 '개인'에 한정된다.


알리니아는 레스토랑이 아니라, 경험하는 곳이라고 말한다.사실 음식만큼 가장 개인적인 경험은 없다.

 대표적인 예로는 시카고에 위치한 레스토랑 '알리니아'가 있다.(알리니아는 가보지 못했다.)

알리니아는 '우리는 레스토랑이 아닙니다.'라는 모토로 미식 경험을 전한다.

알리니아의 시드니처인 디저트. 다른 곳과 다르게 식탁에서 바로 만들어준다. 이는 미식이라는 경험을 가장 극적으로 축소한 형태다.


https://www.youtube.com/watch?v=tSoU4mFjMPM

알리니아의 시드니처는 디저트다. (알리니아의 셰프인 그랜드 아카츠에 대한 내용은 넷플릭스 쉐프스 테이블 시즌2 1화를 보는 게 더 좋다.) 다른 곳과 다르게 이곳은 손님이 앉은 식탁에서 디저트를 바로 만든다. 코스요리의 끝이자 피날레인 디저트를 그 자리에서 만드는 행위는 '미식'이라는 경험을 가장 극적으로 축소한 퍼포먼스다. 


요리는 조리과정과 식재료로 철저하게 나뉜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요리과정 하나하나에는 의미가 있다. 백종원이 기름을 두르고 파를 볶아 파 기름을 만드는 이유는 음식 바탕이 되는 풍미를 만들기 위함이다. 이탈리아 요리에서는 올리브유와 마늘, 일본요리에는 가쓰오 국물 등 각 나라 요리마다 기본이 되는 풍미가 있다. 그 풍미는 맛이라는 기본 틀을 잡는다. 이보다 가장 단순한 공간 축소는 없다. 레스토랑을 생각해보자. '전체-메인-디저트'라는 큰 틀은 재료, 조리방법 , 음료와 궁합(마리아주)등 관련된 모든 요소를 철저하게 나눈다. 손질하고 조리한 재료들을 합쳐 요리를 만들지만 그 결과물도 역시 재료가 가진 장점을 모은 축소물이다. 요리를 통해서 경험하는 순간도 역시 축소다. 요리가 비로소 확장이 되는 순간은 "야! 여기 음식 대박이야! 존맛탱임!'라고 다른 이에게 전하는 순간부터다.


욕실은 개인의 공간이 가장 축소된 공간중 하나다. 특히 료칸은 그중 최고라고 할 수 있다. 출처:호시노 리조트 카이.


욕실도 마찬가지이다. 욕실은 어느 누구도 건드리지 않는 개인 공간이다. 욕실 안에 있는 샴푸, 칫솔, 비누, 도구 등은 모두 개인의 취향이 들어가 있다. 호텔에서 가서 어메니티를 따지는 이유도 어메니티에 대해 자신이 취향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서재와 편집샵은 축소가 가장 두드러지는 공간이다. 서재에는 개인의 취향이 가득 담겨있다. 서재 안에 꽃인 모든 책은 개인의 정체성을 모두 드러낸다. 서재에 놓아져 있는 책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편집샵도 같은 맥락에 있다. 라이프스타일 구분에 따라서 그에 맞는 브랜드로 구성한다.


같은 어플을 사용할지 몰라도 같은 용도는 없다.어플은 손안의 우주다.일상에서 말이다. 출처:UNSPLASH.COM

그렇지만 최근 10년 동안 축소가 가장 두드러진 공간은 전혀 다른 곳이다. 그곳은 바로 스마트폰.

스마트폰은 전자제품인가? 전자제품이 아닌가? 스마트폰은 어떻게 공간에 들어가는가?

스마트폰을 공간으로 보는 이유는 애플리케이션 때문이다. 


과거 핸드폰은 통화와 메시지라는 '통신'의 연장선에서 끝났다. 

하지만 스마트폰은 일상 속 모든 일을 해결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근본적으로 핸드폰과 스마트폰은 다르다. 

스티즈 잡스가 만든 아이폰이 '혁신'적인 이유는 단순하다.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포맷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이폰은 '통신'에 머물던 전화, '음악 감상'에서 끝났던 '음향기기', 

'데스크톱'을 통해서만 가능한 인터넷을 하나로 합친다. 

손 안에서 모든 일을 해결 가능하게 하는 생활양식을 만들었다. 

또한 이를 밑바탕하는 앱스토어는 프로그래밍이라는 분야를 보다 더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이 같은 부분이 '공간'과 관련이 있을까? 

아이폰으로 대변하는 스마트폰을 통해 온라인과 오프라인 공간상의 경계는 미묘해졌다.


아이폰의 애니모지는 개인이라는 정체성을 단순하게 축소했다.이같은 요소는 과연 무엇일까? 아직 진행중이다.출처:the verge.com


일단 AR과 VR은 공간을 확장하나 축소하는가? 분명하지 않다.

아직 개념이 완성되는 중이니까.

미스터 포터, 네타포르페, 29cm, 오늘의 집 등 온라인 편집샵에 들어가서 

물건을 샀다면 그것은 과연 어떤 범주로 보아야 하는가? 단순한 온라인 쇼핑인가? 

우버, 타다, 소카, 카카오 택시를 사용해  자동차를 탔다. 

온라인으로 자동차를 호출하는 일과 길거리에서 택시를 잡은 것이 과연 무엇이 차이인가?


호캉스가 새로운 트렌드이다. 호텔은 이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왜 이제야 호텔로 바캉스를 떠나는가?

바캉스는 교외로 떠나는 일을 의미했다. 호텔은 바캉스의 부수적인 요소였다. 

그러나 지금은 호텔은 새로운 여행지가 됐다. 사람들은 이제 쉬기 위해 호텔로 간다. 

지금 시대를 관통하는 단어는 단어는 단연코 연결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 '연결'이 끊임없다는 게 문제다. 

퇴근 후에 상사에게 메신지로 업무지시를 받는다.

이게 퇴근인가?  연결되야한다는 강박, 연결로 인한 업무 연장은 오히려 사람들을 지치게 한다. 

사람은 종종 자신만의 공간으로 들어가기를 원한다. 쉼을 통해 자신이 정신은 맑아지고 확장된다. 

개인 공간을 가지고 싶은 경향으로 인해 사람은 축소를 더 원한다. 호텔은 이 같은 사람들의 마음을 충족시키는 가장 매력적인 공간이다. 물론 축소가 두드러지는 공간은 더 많을 것이다. 아직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 수두룩하니까 말이다.


공간이라는 개념은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시대에 따라서 공간에 대한 사람들의 관점은 다르게 변했다.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도로와

로마인이 깔아놓은 아피아 가도는 도로라는 명칭은 같아도 그 목적과 공간의 차이가 있다.

지하철과 지하철역 같은 대중교통도 사람에게 선사하는 공간은 완전히 다르다.


파리와 보스턴의 지하철역은 우리나라와 큰 차이가 없다.
지하 깊숙히 들어가는 워싱턴DC의 지하철은 사람을 압도한다.

내가 경험한 공간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곳은 워싱턴 DC의 지하철이다. 방공호를 같은 느낌을 자아내는 지하철역은 공공공간임에서 커다란 공간의 확장으로 사람을 압도한다. 이 압도감은 뭐라고 해야 할지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



자신이 경험한 모든 공간은 흩어지지 않고 축적해 쌓을 필요가 있다. 자신이 느끼지 못했던 공간의 확장과 축소를 계속 경험하다 보면 조금씩 자신이 원하는 공간에 대한 관점이 쌓인다. 자연일 수도 있고 '순간'일 수도 있다. 어느 시점에 되면 그동안 쌓인 공간에 대한 기록은 한 가지 방향성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나도 아직 모른다. 단지 조금씩 나만의 취향이 담긴 공간에 대한 기억이 점차 쌓이는 모습을 조그마하게 보고 있다.


자신이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이 담긴 공간은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자신이 원하고자 하는 공간의 성격에 대해서 스스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 누군가가 만든 공간을 막연하게 비교할 필요도 없다.

어떤 이는 가구를 채우는 일에서 안도감을 느끼는 이도 있다. 혹자는 가구를 최소한으로 채우는 일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나는 후자다. 그래서 내 방에는 가구가 조그마한 서랍장 하나만 있다.


자신이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에 따라서 공간은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누군가에게 길거리 벤치가 아무 의미 없을 수 있다. 

반면에 길가에 놓인 의자에서 가장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어떤 공간을 좋아하는가? 확장을 좋아하나? 축소를 좋아하나?

답은 없다. 뱡향이 중요하다. 이는 항상 진행형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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