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미러 시즌5 :기술이 우리안의 결핍을 채울때 생기는 일들
(본 글은 브런치 X 넷플릭스 콜라보레이션에 당첨되었기에 적는 글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
이번 글은 블랙미러 시즌5에 대한 프롤로그 글입니다.
에피소드에 관한 글은 몇개의 글로 나눠서 적으려고 합니다.
스마트폰이 세상에 처음 선 보였을 때 사람들은 열광하며 스마트폰을 구입했습니다.
음악, 사진, 전화, 인터넷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흥분했죠. 매년 끊임없이 새로운 스마트폰이 계속 나왔죠.
기술이 익숙해지면 식상해지는 걸까요?
아니면 스마트폰이 이제 일상 그 자체가 되었다는 신호일까요?
2018년은 처음으로 전 세계 스마트폰 판매량이 줄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제 스마트폰을 살 사람들은 대부분 다 샀다는 이야기라는 거죠.
그렇다면 한번 생각할 필요가 있어요. 스마트폰을 쓰는 우리는
진정으로 ‘스마트’해졌는가 말이죠.
새로운 기술과 제품이 처음 소개될 때 항상 멋집니다.
“드디어 저게 가능해? 미쳤네… 진짜”
그렇지만 기술이 일상에 자리 잡으면 익숙해집니다.
처음 탄생한 기술은 더 이상 새롭지 않죠. 항상 신기술을 소개할 때는
익숙함을 뛰어넘는 새로움이 있어야 하니까요. 그래야 ‘신’ 기술이죠.
블랙 미러도 이와 비슷합니다. 시즌4까지는 일상에서
새롭게 자리 잡은 ‘기술’을 각 에피소드 주제로 선택해
그 기술이 극단적으로 우리 삶을 지배할 경우를 날카로우면서도
어두운 상상력으로 풀어냈죠. 시즌 5도 이 같은 방향은 변함이 없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시즌4 까지는 ‘기술’에 초점을 두고 매 에피소드마다
"섬뜩하고 날카로운 상상력'을 담았다면 시즌5에서는 ‘인간관계와 마음’이
기술에 의해 어떻게 변했는지 전하며 그 속에서 방환하는 ‘개인’을 묘사합니다.
시즌5는 오히려 ‘기술이 우리에게 남긴 건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날카롭지만 어두운 상상력이 세밀한 현실 묘사로 우리 머릿속 생각 근육을 천천히 자극하죠.
블랙 미러 시즌5는 다음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기술에 매몰된 인간성은 회복할 수 있는가?”
“기술에 매몰된 건 우리 모두 다. 일부가 아니다.”
결론을 내리지 않고 커다란 질문으로 매 에피소드를 끝냅니다.
기술이란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인간과 살아가기 때문에 답을 낼 수없다는 열린 결말이죠.
블랙 미러 시즌5의 전개는 시정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생각하게 위해서 천천히 묘사합니다.
이에 맞게 ‘시즌5’는 연출, 촬영 방식도 예전과는 조금 다릅니다.
대사가 생각보다 많지 않고 오히려 대사, 표정, 음악, 롱테이크 신을 강조하죠.
기술보다는 ‘이야기 묘사’에 집중하죠.
"스미러리언" 에피소드에서는 '2018'년이라는 연도를 명시합니다.
셜록에서 모리아티로 열연한 앤드류 스캇의 심리묘사
(안타깝게도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나오지 않습니다. 뉴욕 생텀을 지켜야죠.)
앤서니 매킷의 묵묵한 표정은 강렬하지 많지만 큰 울림을 전합니다.
(팔콘은 잊으세요. 드라마에서 갑자기 날개를 피고 날아다니지 않습니다.)
블랙 미러 시즌5를 통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건
‘인간으로서 나는 어떻게 다른 이들과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사람보다는 스크린이 어느 순간 더 익숙해져 버린 사회.
사람 간 경험도 점차 낯설어져서 그 마저도 하나의 비즈니스 모델이 된 사회.
우리가 묵묵하게 목도하는 현실이죠.
물론 그 안에서도 아픔을 공감하는 다양한 방법이 생겼지만
우리가 사는 사회가 예전보다는 각박해졌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 이들은 없을 겁니다.
블랙미러 시즌5에서는 사람 간 채워야 한 결핍을 기술이 채울 때 생기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과거 기술이 인간의 불편함을 해결하는데 치중을 두었다면 지금 기술은 인간의 불편함보다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데 더 치중을 둡니다.
종종 우리는 서로 싸웁니다. 감정의 골이 깊어지면
그 속에는 잠시나마 결핍이 생기죠. 기술은 그 순간을 비집고 들어와
우리를 그 결핍을 채워줍니다. 게임, 소셜미디어, 인공지능 로봇 등 여러 가지가 있죠.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그 채움은 일시적입니다.
바닷물을 먹으면 갈등이 더 심해지듯이 기술로 채워가는 마음속 상처는
결코 아물거나 채워지지 않죠. 기술로 채워나갈수록 오히려 더 결핍은 커집니다.
그 결과는 자살, 살인, 중독 등 비참한 결과로 이어지죠.
결국 감정의 골, 결핍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유대감, 사랑으로 채워야 합니다.
인간과 인간 간의 결핍은 결국 인간만이 채울 수 있다는 단순한 결론이죠.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는 기술을 통해 이 단순한 결론을 피하려고 하죠.
왜냐고요? 누군가 싸운 후에 그 사람의 두 눈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일만큼 힘든 일은 없으니까요.
"인간사회는 답을 내릴 수 없다...."
지금 시대 우리의 자화상을 그린다는 점에서
블랙 미러는 불편하지만 내가 보기 싫은 현실을 보게 만드는 거울이자 우화입니다.
너무나 현설적이어서 불편한 우화죠. 드라마를 보면서 불편함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드라마 속 불편함도 이기지 못한다면 현실 속 불편함은 더더욱 힘들겠죠.
블랙 미러의 시즌5 마지막 에피소드인 애슐리 투의
크레디트 화면을 보면서 카이사르가 한 말이 생각났습니다
“누구나 현실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현실만은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