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과 이탈리아 바로크 미술.

브랜드는 사람에게 어떻게 다가가야하는가?

by 경험을전하는남자

17세기 로마 가톨릭은 조각, 회화, 건축 등 미술을 통해 신자들이 가진 신앙의 맥락을 촘촘하게 엮어나갔다.

지금 우리는 그때의 미술을 바로크라고 부른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탈리아 바로크. 나는 이탈리아

바로크 미술을 보면서 아마존이 떠올랐다. 이탈리아 바로크 미술과와 아마존은 방법과 방향을 다르지만

추구하는 가치를 대상에게 전하기 위한 방법이 상당히 비슷하다.


바로크 미술은 이탈리아, 프랑스, 플랑드르, 스페인 등 지역마다 성격이 조금은 다르다. 그중에서도 이탈리아 바로크 미술이 추구한 방향은 가톨릭 교리를 더욱 안정화시키지 위함이었다. 그 당시 로마 카롤릭은 더 이상 막강한 영향력이 없었다. 유럽 국가의 왕실들은 더 이상 교황의 눈치를 보지 않았고 왕권을 강화하고 있었다. 로마 가톨릭은 자신들의 영향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었다. 바로크 미술은 유럽 지역마다 달랐지만 유독 이탈리아 지역에서는 가콜릭 영향력 강화에 중점을 두었다. 어떻게 보면 선전 미술이라고 할 수도 있다.

또 다르게 보면 '로마교황청'이라는 회사가 자사 브랜드인 '가톨릭교리'를 판매하기 위한 전략으로

바로크미술을 사용했다고 볼 수 도 있다.


그렇다고 아마존도 선전(프로파간다)을 취한다는 말이 아니다. 아마존은 그렇게 하지도 않는다. 아마존이 추구하는 지향점은 고객의 모든 시간과 함께하며 고객 생활과 분리되지 않고 언제나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고객 삶 모든 부분에서 아마존은 24시간 노력 중이다. 아마존은 온라인, 오프라인, 가격 , 서비스, 배송, 프라임 서비스, 기술, 콘텐츠 등 일상생활 속에서 고객들과 접점을 계속 엮어나가고 있다. 심지어 아마존 프라임 데이에서 나온 실수 (올해는 카메라 대란이 일어났다.) 마저도 고객들을 위해서 감수한다. 그들에게 천문학적 손해가 아닌 이상 고객이 아마존에 더 가까워진다면 작은 손실은 개이치 않는다.


그렇다면 이탈리아 바로크와 아마존은 어떤 면에서 비슷하면서도 다르단 말인가?

이탈리아 바로크 미술 속에는 '가톨릭 교리 강화'. 그 이상 그 이하도 없다.

일단 이탈리아 바로크 미술부터 보자.


가톨릭은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손상된 교회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 미술의 힘을 빌려오고자 했다.

1563년 가톨릭은 트리엔트(혹은 트렌드) 공의회에서 통과된 ‘형상 숭배의 법령’을 통해 작품의 도상과 표현방식에 개입했다. 루터의 종교 개혁 이후 점차 안정을 되찾은 가톨릭 교회. 그들은 신도들의 시선을 압도할 만한 화려하고 극적인 미술이 필요했다. 패러다임을 더욱 견고하게 만드는 일. 이것이 바로 17세기경 로마에서부터 전 유럽으로 전파된 바로크 미술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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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바로크 미술은 가콜릭 교리의 확장에 중심을 둔다. 출차ㅣ 위키디피아.

이탈리아 바로크 미술의 핵심은 간단하다. “종교개혁 이후 손상된 가톨릭의 위상을 재 회복하는 일".


17세기경만 해도 여전히 성당은 사람들에게 미디어와 같은 존재였다. 그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예배를 하고 스테인드 글라스에서 들어오는 찬란한 빛과 장엄하고 화려하고 드라마틱한 바로크 미술을 보고 성가와 성경말씀을 듣고 죄를 회개하며 그들의 정체성을 회복했다. 바로크 미술은 르네상스 미술이 추구한 ‘인간 정신 회복’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베르니니의 조각품, 카라바조의 그림은 그 무엇보다 사실적이면서도 르네상스보다 더욱 역동적으로 인간을 묘사한다. 그렇지만 질적으로 르네상스와 다르다. 묘사의 목적이 ‘인간 정신’이 아닌 '가톨릭 교리'와 '성경 속 장면 묘사'에 있다. 단지 드라마틱하게 묘사하기 위해 역동적으로 그렸을 뿐이다. 바로크 미술 예술가들의 손에서(물론 그 당시에는 바로크라고 하지 않았다. 우리가 부르는 미술사조는 대체로 그 시기가 지난 이후 붙여진 이름이다.) 무미건조한 교리는 화려하고 드라마틱하게 연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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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 조각상에는 드라마틱한 요소가 들어갔다. 출처: 위키디피아


루벤스, 카라바조, 베르니니 등 그 시대의 화가 들은 어둠과 빛의 대비를 이용해 장엄한 기독교 미술을 만들었다. 잠시 바로크 미술의 특징을 살펴보자. 첫 번째, 명암대비가 심하다. 고전주의의 균질한 명암과는 달리 바로크 미술은 밝고 어두움의 대비는 분명하다. 대비가 분명하기에 그림은 아주 역동적이다. 두 번째는 역동성이다. 고전주의의 안정적인 삼각형 구도와 비례감을 중시한 인체 모습과는 다르게 바로크 미술 속 조각상은 역동적이다. 바로크 조각상에 조각물들은 달리거나 비상하거나 공중에 떠 있는 등 포즈에 역동감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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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대비, 역동성은 이탈리아 바로크의 핵심이다. 출처: 위키디피아.


세 번째는 빛과 색이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관념적으로만 색을 칠했다. 바로크 시대의 화가들은 이를 찬란한 빛과 색으로 바꾸었다. 네 번째는 풍성한 질감이다. 바로크 미술가들은 현실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 자유롭고 표현적인 붓질을 통해 시각적이면서도 촉감이 살아있는 그림을 그렸다. 대표적인 예가 카라바조다. 그가 그린 그림 속 인물은 당시 실존했던 주변 사람들 얼굴이다. 카라바조 그림에서 유독 생동감이 넘치는 이유는 그림 속 인물 등이 실제로 누군가의 얼굴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탈리아에서 바로크 미술은 가톨릭 교리 강화였다. 그렇다고 바로크 미술이 오로지 '가톨릭 교리 강화'를 위해서만 쓰였다고 할 수는 없다. 플랑드르 같은 신교가 중심이 된 지역에서는 종교화 자체를 아예 금지했다. 프랑스에서는 이탈리아와 비슷하게 왕권강화를 위해 사용했다. 스페인에서는 궁궐 미술로 변했다.


베르니니가 지은 바로크 양식 성 베드로 성당의 열주과 대광장. 역동적이고 장엄한 대광장은 로마 가톨릭이 추구하는 교리 그 자체다. 출처: 위키디피아.

바로크 미술이 가진 선전적인 면은 건축물에서 절정을 이룬다. 로렌초 베르니니가 개축한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 개축이다. 베르니니는 베드로의 옥좌가 있는 제단 부분을 금빛으로 장식했다. 돔 지붕 아래에는 거대한 청동 닫집을 세웠고 ‘가톨릭의 영광’을 다시 한번 높이고자 하는 열망을 담아냈다. 교회 주춧돌을 세운 베드로. 그 위에 놓인 화려함 금빛도 역시 가톨릭의 열망이었다. 약 20여 년 뒤 성당과 광장을 통일성 있게 연결하는 열주 회랑이 성 베드로 성당에 추가적으로 생겼다. 성당 전면의 양편에서 둥근 모양으로 길게 뻗어 광장을 감싸는 회랑. 하나님이 두 손을 벌려 신도들을 맞이하는 모습이다. 지금도 바타칸에 가면 그 기둥의 두께는 실로 경이로울 만큼 두껍고 사람을 압도하는 힘이 있다. 그 힘은 강인한 아름다움이 근육이 아닌 강인한 억압이다. 이탈리아 바로크는 과연 신자 중심적인가? 아님 교황청 중심인가? 답은 후자다.


화려한 성 베드로의 옥좌는 과거의 영광을 찾고자 하는 로마 가톨릭의 열망 그 자체다. 출처: 위키디피아.

이 건축물을 통해 로마 가톨릭이 이루고자 한 목표는 ‘일상에서 교리가 언제나 살아 숨 쉬는 것’이었다.

성당을 보며 사람들이 현실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는 일’. 모든 삶 속 맥락에 가톨릭이 들어가는 일.

그들은 신교를 철저히 이단으로 규정했고 ‘바로크 미술’이라는 미학으로 사람들을 그 안에 가두고자 했다.

그 안에는 '사람을 위한 예술'은 없었다. 로마 가톨릭에게 중요한 건 신자들에게 교리를 '라이프스타일'로 느끼는 것이었다. 이것만이 목적이었다. 그림을 그리는 기술은 더욱 발전했지만 그 기술은 이상적인 비례와 균형을 중시한 르네상스 미술과는 거리감이 있었다. 이를 두고 독일 미술사학자 요한 빙켈만을 중심으로 한 고전주의 부활 옹호론자들이 바로크 미술을 '르네상스 미술의 쇠퇴에 불과하다'라고 말한 게 틀린 말은 아니다. 이탈리아 바로크 미술이라는 기술 속에서는 오로지 패러다임의 강화.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탈리아 바로크 미술은 회화를 통해 성경 속 이미지를 더 상세하게 묘사했다. 조각을 통해 기독교를 더욱 생동감 있게 느끼도록 했다. 건축을 통해 회화와 조각의 이미지를 통합했고 사람들이 기독교 정신을 생활양식으로 느끼도록 많은 시도를 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을 오랜 시간 동안 늘 그랬던 것처럼 가르치려고만 했다.

그들은 실패했지만 후손들에게는 무수히 많은 관광수입만을 안겨주었을 뿐이다.


하지만 아마존은 그렇지 않다. 아마존은 콘텐츠에서 서비스 인프라까지 전방위적이다.


‘아마존은 먼저 고객들의 시간’을 금같이 여긴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효율성을 극도로 높이는데 최우선을 둔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최적의 소비효율은 시간, 돈, 노력을 최소화해서 원하는 걸 최저가로 얻는 거다.

아마존은 이에 가장 최적화된 플랫폼이다. 수많은 상품으로 소비자들에게 효율을 제공한다. 아마존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아마존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PB상품을 통해 고객들이 생각한 효율의 끝을 아마존으로 옮기게 만든다. 프라임회원이 되면 그 효율을 더 누리게 만든다 기본 5일 배송은 프라임회원이 되는 순간 2일 배송이 된다. 게다가 요즘에는 그걸 당일배송으로 하겠다고 이야기한다. 킨들에서부터 시작해 비디오, 각종 부가서비스를 제공한다. 또한 홀푸드 매장 등 오프라인 매장과 아마존 락커에서 픽업도 가능하게 한다. 삶 속 모든 부분에서 아마존은 항상 고객들의 시간 편리를 생각한다. 로마 가톨릭이‘교리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미술을 통해 경험을 가르치려고 했다면 아마존에게는 ‘고객중심’을 고객들이 느끼도록

최선을 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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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프라임서비스는 고객중심에 대한 학고한 의지중 하나다. 출처: 아마존.

아마존이 오로지 고객 효율성만 생각하는 온라인 커머스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아마존은 그냥 일상이 되고 싶어 한다. AWS, 책 추천, 아마존 비디오, 넷플릭스, 트위치, 클라우드 서비스, 인터넷 서비스까지 우리가 지금 매일 경험하는 온라인은 아마존에서 출발해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 넷플릭스를 이용하는데 아마존이 나오는가에 대해 의아할지도 모른다. 기묘한 이야기 시즌3 론칭 후 제프 베조스는 기묘한 이야기에 대한 포스팅을 남겼다. 기묘한 이야기에서 나오는 장면을 자신의 집 벽에 그대로 흉내 냈다. 사람들은 다소 놀랐다 ‘넷플릭스는 경쟁사 아닌가?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와 경쟁사인데? 제프 베조스가 포스팅을 왜 해?”

이렇게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넷플릭스는 아마존 클라우드 서비스의 큰 고객 중 한 명이다.

기묘한 이야기를 비롯한 넷플릭스 사용자가 늘어날수록 아마존의 수익도 동시에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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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과 넷플릭스는 엄연한 사업파트너다. 아마존 re:invent에서 발표하는 닐 헌트 넷플릭스 CPO출처:제프베조스 인스타그램, aws유투브채널


아마존이 접근하는 방식은 늘 이렇다. 고객중심으로 가기 위해서 모든 방안을 다 생각한다. 마음만 먹으면 지금보다 더 큰 수익을 올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고객을 위해서 재투자하고 점유율을 늘려나간다. 그렇다고 손해 보는 건 아니다. 규모에 비해서 너무 적은 이익을 가져갈 뿐이다. 모든 걸 고객중심으로 접근하고 고객이 아마존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고자 함이 아마존에게는 무척 중요하다. 절대로 아마존은 고객을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다. 반면에 로마가 콜릭은 예술로 사람들을 가르치려고 했다.



‘아마존 고, 아마존 북스, 홀푸드, 픽업 서비스 등 아마존이 서비스를 오프라인 공간으로 점차 확장하는 이유는 명료하다. 아마존의 서비스를 구체적으로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다. 온라인이 가진 가장 큰 취약점은 모든 서비스가 온라인에서 끝난다는 점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중요시하는 건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넘어오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브랜드에 대한 신뢰가 쌓인다. 아마존 고에서는 아마존이 자랑하는 기술력을 경험하게 하고 아마존 북스에서는 아마존에서 가장 평가가 좋은 책들. 즉 아마존을 이용한 사람들의 의견을 반영한다. 홀푸드에서는 식재료가 가진 ‘신선함’이라는 물성을, 픽업 서비스는 ‘편리함’을 느끼도록 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으로 구현하는 일. 사람들은 직접 만져야 더욱 브랜드에 대해 생동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아마존은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아마존의 오프라인 공간은 아마존 서비스를 직접 만지는 데 중점을 둔다. 물건을 실제로 만져봐야 안심하는 게 사람이다. 그래야 더 신뢰가 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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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이 아마존이 오프라인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면은 성 베드로 성당과 유사하다. 건축을 통해 사람들에게 가톨릭 교리의 정수를 전하듯이 오프라인 매장을 통해서 아마존은 아마존 서비스의 정수를 전한다.


가톨릭이 유럽 내 가치관이자 생활양식의 중심이던 시절. 사람들 정신에는 항상 가톨릭 교리가 있었다. 로마 가톨릭이 바로크 미술을 통해 교리를 전한 이유도 결국 가톨릭 교리의 구체화다. “전능한 하나님의 권위!”를 건축을 비롯한 감각으로 느끼는 일. 로마 교황청은 가톨릭 교리에 대한 역동적인 경험을 선사해야 로마 가톨릭이 잃어버린 과거의 영향력을 회복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교리를 더욱 역동적으로 신자들에게 가르친다면 영향력을 회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들은 철저하게 그들의 사고관에서만 행동했고 신자 들 입장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마치 자신들 브랜드만 고객들에게 전하기만 하고 고객 경험은 무시하는 브랜드들처럼 말이다. 결국 역사가 증명하듯 그들은 실패했고 로마 가톨릭은 두 번 다시 과거의 영광을 회복하지 못했다.


아마존은 아니다. 아마존도 고객들 삶 속에 더 가까이 들어와 있으려고 한다. 하지만 결코 고객들을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다. 어떻게든지 고객의 불편함을 찾아내고 그 속에 아마존을 집어넣는다. 철저히 고객가치에 집중한다. 결코 훈계하지 않는다. 어떻게 해서든 고객이 아마존에 머물게 디테일하게 연구한다. 얼마나 디테일하면 알렉사가 TV 방송에서 인형의 집 광고를 듣고 인형의 집을 주문하겠는가!

가톨릭에서’ 오 주여! 성모 마리아여! 라면 아마존은 ’ 알렉사. 집에 세재 떨어졌어”다.


사람들들은 각자마다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한다. 그 중심에는 자신이 있다. 자기중심으로 라이프스타일 판을 짜고 그 중심에는 자신이 추구하는 미학을 놓는다. 그 미학이 자신과 맞는 브랜 드라먼 오케이! 아니면 굿바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모든 브랜드는 브랜드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며 생활양식을 제안하는 종교가 되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훈계라면 소비자는 소리 없이 외면한다. 아마존은 이 같은 사람들 변화를 잘 잡아낸다. 결코 고객들과 싸우지 않고 그들이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을 돕는 매개체로 인프라로 접근한다.


오랜만에 베르니니가 만든 조각품 그림을 보면서 문득 아마존이 생각났다.

예전에는 무척 멋지다고 생각한 이탈리아 바로크 미술은

요즘은 무척이나 강압적이라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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