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드 모네.'예술은 감각을 키우는 양식이다.'

클로드 모네. 그는 빛에 따라 변하는 감각에 집중했다.

by 경험을전하는남자

19세기 말, 클로드 모네를 중심으로 한 몇몇 화가들은 새로운 그림을 시도했다. 그들은 프랑스 왕립 아카데미에서 인정하는 ‘기준’. ’ 역사와 신화’를 주제로 한 그림을 그리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들은 파리 근교로 나가 풍경을 그렸다. 그렇다고 풍경을 세밀하게 묘사한 그림을 그리지도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눈에 보인 빛, 색채, 대기 변화를 그렸다. 특히 그중에서도 클로드 모네는 이 ‘빛의 변화’에 인생을 바쳤다.


1874년 사진가 나다르의 스튜디오에서 ‘새로운 미술을 보여주겠다!’라고 말하는 전시회가 열렸다. 훗날 ‘인상주의 전’이라 알려질 전시회였다. 인상주의자들. 후대의 사람들에게 그들은 ‘현대미술의 근간을 만든 이들’이라고 칭송받고 있지만, 그 당시 그들은 비웃음과 멸시의 대상이었다. ‘인상주의’라는 말도 조롱, 비아냥, 경멸, 멸시에서 나온 표현이었다. 모네의 유명한 [인상, 해돋이]도 그 당시에는 조롱받는 그림 중 하나였다.

모네의 초창기 그림은 빛을 묘사하는 다양한 관점. 파리 사람들을 그리는데 초점을 두었다. 출처: 위키디피아.

초창기 시절, 모네는 파리 사람들의 삶을 그렸다. 점차 그는 풍경화로 관심을 옮겼다. 그는 언제나 색채와 빛 굴절에 주목했다. 풍경에 대한 세밀한 묘사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그에게 중요한 건 언제나 빛과 그에 따른 사물의 변화였다. 인상주의 그룹이 해체되자, 그는 파리를 떠나 지베르니로 갔다. 1890년부터 그는 동일한 대상. 빛에 따라 사물이 어떻게 보이는지 ‘탐구’하는 작품들을 지속적으로 그렸다. 루앙 성당 연작, 건초더미 연작, 브르타뉴 절벽, 런던 국회의사당 작품이 대표적이다. 또한 모네의 그림은 시간이 지날수록 윤곽선은 점차 흐려졌다. 마치 사람 눈이 나이를 먹음에 따라 흐려지듯이 말이다. 말련에 그린 수련을 보면 알 수 있다.

모네의 대표작인 '인상, 일출' 그 당시 사람들에게 조롱과 멸시를 당했던 작품이다. 출처: 위키피디아.

그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는 역시 [인상, 일출]이다. 파리의 마르모탕 모네 박물관에 소장된 이 작품은 인상주의라는 이름을 더해준 작품이기도 하다. ‘인상, 일출’이라는 제목이 말하듯이, 모네는 이 그림 안에서 풍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 일출’ 바라보는 모네의 관점을 캔버스에 그렸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그림을 보면서 ‘모네는 인출을 보면서 왜 이런 인상을 받았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면 된다. 내 관점에서 모네가 보여주고자 한 새로운 미술은 사람들이 그림을 통해 ‘자신의 감각’을 깨우는 것이었다.

그림을 볼 때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면 그림을 이해하는데 더욱 도움이 된다. 출처:unspalsh.

만일 그림을 보면서 ‘내가 본 일출의 경험’이 생각난다면? 정동진 혹은 산 정산에서 본 일출이 생각난다면? 그럴수록 더 좋다. 모네의 생각과 내 생각을 비교하면 되니까. 모네 그림에 대한 지식을 반드시 ‘먼저’ 알 필요는 없다. 만일 궁금하다면?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면 된다.


조금 더 자세히 보자. 그는 이 그림에서 붉은 태양이 주변 풍경에 어떠한 변화를 만드는지 집중했다. 일단 그는 풍경을 전혀 사실적으로 그리지 않았다. 세밀한 묘사는 찾아볼 수 없다. 붓질은 마치 대충대충 한듯하다. 물론 반 고흐만큼은 아니다.

'인상,일출'에서 모네는 자신의 감각으로 해석한 일출을 그렸다. 세밀한 묘사는 하지 않았다.

둥글고 붉은 오렌지빛 태양이 그림 전체를 지배한다. 차갑고 푸르스름한 회색은 안개로 가려진 채로 고깃배와 두루미로 붐비는 항구 분위기를 묘사한다. 또한 연기가 안개와 섞이면서 독특하게 변하는 빛 반사를 묘사하기도 한다. 모네는 여기에 물과 하늘을 푸른색으로 묘사해 일출 풍경에 녹아들게 했다. 그의 뛰어난 색채 감각은 수면 위에 반사된 태양빛과 희미한 핑크빛으로 연출된 구름에서 단연코 돋보인다. 당연히 이러한 모네의 그림은 그 당시 사람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그림’과는 맞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의 그림을 보고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빛과 색채에 대한 감각일 전하고자 한 모네의 그림음 그동안 쌓아온 예술 개념에 전면으로 도전하는 모습으로 보일 뿐이었다.

19세기말, 사람들이 인정하는 미술은 신화와 역사를 다룬 그림이었다.

모네는 언제나 빛이 연출하는 ‘감각’의 변화에 주목했다.


모네의 대표적인 그림은 정말 많다. 그중에서도 루앙대성당 연작과 건초더미 연작은 그가 빛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알려주는 그림이다. 이 두 연작은 모네가 추구한 감각을 여실 없이 보여준다. 그는 루앙대성당과 건초더미 연작을 통해 빛과 시간에 따라 사물이 어떻게 변하는 묘사 했다. 계절과 시간대별로 다른 모습을 관찰한 두 연작에서 모네가 얼마나 빛에 집중했는가를 알 수 있다. 오직 빛에 따른 변화에 집중했다는 점. 우리는 이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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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의 건초더미 연작. 모네는 '건초더미' 연작을 통해 '계절과 시간'에 따라 변하는 빛을 캔버스에 그렸다, 출처: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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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지난 글에서 다룬 카라바조와 렘브란트와 비교해보면 보다 선명하게 알 수 있다.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두 화가는 ‘빛’을 그림의 주제를 강조하는 도구로 사용했다. 이 둘의 그림에서 빛은 ‘빛’ 그 자체로만 존재한다. ‘대비’만 눈에 들어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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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렘브란트의 그림에서 빛은 그림을 드라마틱하게 만드는 도구이지, 주인공은 아니다. 출처: 위키디피아.

이와 다르게, 모네는 그림의 역동성을 더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던 ‘빛’ 그 자체에 주목했다. 그는 오히려 ‘빛’ 그 자체를 그림의 ‘주인공’으로 보았다. 특히 건초더미에서는 우리는 오직 ‘빛’이 건초더미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볼 수 있다. 그림을 보면 건초더미가 주인공 같지만, 사실은 ‘빛’이 주인공이다. 시간과 날씨에 따른 빛. 우리는 추상적이고 모호한 ‘빛’을 건초더미를 통해 실체를 관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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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는 루앙대성당 연작에서도 빛에 따라 변하는 루앙성당의 모습을 그렸다.

루앙대성당도 건초더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오르세 미술관에 진열된 루앙대성당 연작을 같이 보면, 루앙대성당 연작에서도 루앙대성당은 주인공이 아니다. 건초더미처럼 ‘빛’이 주인공임을 알 수 있다. 이는 그가 말년에 그린 수련에도 볼 수 있다. 그는 수련에서 그동안 자신이 쌓은 모든 감각을 수련에 모두 담아냈다. 빛을 통해 변화하는 수련의 모습과 형태는 물론 빛이 만들어낸 모든 변화를 세세하게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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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 모네의 그림은 사람들의 삼과 빛. 이 두가지 모두에 집중했다. 출처: 위키디피아.

모네는 처음에는 사람들의 ‘삶’을 그렸다. 하지만 그는 만족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삶을 그리면서도, 자신의 감각을 키우기 시작했다. 점차 그는 자신이 중요시하는 부분이 ‘빛‘에 반사된 사물의 변화임을 알았다. 천천히 ‘빛’에 의한 사물의 변화. 그 감각을 차곡차곡 쌓아가면서 자신만의 감각을 만들어나갔다. 폴 세잔도 사물의 경계를 그렸지만, 그는 모네처럼 빛에 집중하기보다는 사물의’ 형태’에 집중했다. 모네는 그 당시 다른 어떤 화가보다는 빛이 만들어내는 사물의 ‘경계’를 잘 포착했다.

모네는 자신의 그림이 '빛'에 따라 변하는 '감각'에 초점을 둔다는 것을 알았다. 출처: 위키피디아

모네는 현실 속에 존재하는 공간에서 1년이라는 시간 동안 펼쳐질 다양한 계절과 날씨. 아침부터 밤까지 온종일 변화하는 빛을 그렸다. 그의 그림은 매우 논리적이면서도 아주 감성적이다. 어떤 면에서 그는 조물주의 시선과 입장을 우리에게 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이차원에 불과한 캔버스에 ‘시간’을 더해 사차원으로 관점을 전환시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그 안에서 숨 쉬며 시간의 흐름을 볼 수 있다. 모네 그림의 '다름'이란 여기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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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년 그림에는 오직 빛 변화에 따른 감각만 드러난다. 출처: 위키디피아.

그는 단순히 빛 그 자체를 묘사하는 일에 머물지 않았다. 오히려 후대의 사람들에게 다양한 관점에 대한 접근을 보다 용이하도록 ‘틀’을 만들었다. 모네는 그림을 유화의 단위로 접근하지 않았다. 그는 빛을 통해 공간과 공간 속에 있는 사물이 시간에 따라서 어떠한 변화를 이끌어내지 집중했다. 즉, 모네가 그린 작품들은 ‘감각의 궁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그는 감각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방법을 제안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화가는 자신이 포착한 무언가를 그림을 통해 사람들에게 매시지를 전한다. 그 메시지는 사람들에게 각기 다른 경험을 전한다. 누군가에게 어떤 그림은 잠시 보고 지나칠지도 모른다. 반면에 어떤 이에게는 인생을 바꿀 전화점이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미술은 사치품이 아닌 감각을 키우는 일용한 양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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