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감각을 자라게 하는 일용한 양식이다.

클로드 모네는 감각의 축적을 삶으로 보여주었다.

by 경험을전하는남자

감각에는 크고 작음이 없다. 남과 비교할 필요도 없다. 오직 크고 작은 자신만의 관점을 쌓는 게 중요하다. 어떤 형태로 자신의 감각을 지속해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 글이 될 수도 있다. 사진이 될 수도 있다. 영상이 될 수도 있다.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스스로에게 잘 맞는 감각들을 묶고 엮는 연습을 계속하는 게 더 중요하다.

클로드 모네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캔버스 그림이 아니다. 감각을 쌓는 자세다.

모네는 감각의 축적이 무엇인지 삶을 통해 보여주었다.

그는 자신의 삶을 통해 ‘자신의 ‘감각’은 오직 자신만이 손질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감각의 디테일을 키우면서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의 경험과 관련한 영역을 세밀하게 상상하고 통제할수록 디테일은 무한하게 키워나갈 수 있다.’라는 것을 증명했다. 이는 모네의 초창기 그림을 보면 이 부분을 더 자세하게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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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 모네의 그림. 빛변화는 무언가 엉성하고 부자연스럽다. 출처: 위키디피아.

모네가 초창기에 그린 그림 안에서 ‘빛 묘사’는 상당히 어색하다. 빛이 사물에 비치는 부분도 부자연스럽다. 특히 사물과 빛이 따로따로 어울린다는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초창기 작품이라도 [인상, 일출]같이 풍경이 중심인 그림에서 그는 빛에 따른 변화를 세밀하게 짚어낸다. 반면에 사람이 많은 그림에서는 풍경화보다 빛 변화를 세밀하게 잡아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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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3-1885]까지 시간이 흐를수록 모네가 사람을 그리는 방식도 변했다. 사람보다는 빛을 통해 변한 사람에 초점을 두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네의 그림은 시간이 지날수록, 풍경과 사람을 구분해서 묘사한다. 풍경화에서는 빛이 사물에 반사되는 면을 모두 살펴보면서 세밀하게 빛을 묘사한다. 사람이 중심인 그림에서는 인물 정서와 빛을 합쳐 ‘사람’을 더 두드러지게 표현한다. 모네는 자신의 모든 그림에서 빛이 사물에 반사될 때와 사람에게 비치는 차이를 명료하게 구분했다. 모네의 그림 속 디테일은 수많은 관찰과 시도를 통해 나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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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의 초창기 그림은 다양한 실험이 돋보인다. 이와 다르게 말기에는 빛변화를 매우 능숙하게 다룬다. 이는 철저한 출적의 결과다. 출처: 위키디피아.



감각은 사람의 가치관에서 시작한다


감각은 사람으로부터 나온다. 사람의 가치관이 투영되는 것은 당연하다. 자신이 감각을 다른 이들과 어떻게 교감할까?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사진들은 스스로의 감각에 충실하면 된다. 하지만 건축은 조금 다르다. 건축은 공간을 사용한 사람들이 어떻게 공간을 사용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개인이 만든 어떤 결과물은 그 안에 충분한 스토리텔링을 담아낼 수 있지만, 건축은 아니다.

공간을 정의하고, 그곳에 스토리를 붙이는 건 사람이다. 출처: unsplash

건축에서 스토리텔링은 이야기를 멋지게 구현한 작업이 아니다. 건물을 사용할 사람이 공간에 공감해야 한다. 이 같은 부분은 자기 자신의 공간을 직접 만들어보면 알 수 있다. 자신만의 공간을 스스로 만드는 경우, 자기 삶과 감각을 보다 깊이 있게 바라보게 된다. 아무리 스스로 많이 보고 다녔다고 자부한다고 해도, 스스로 직접 공간을 만드는 순간. 맨 처음에는 버벅거리게 된다. 자기 나름대로 철저히 준비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부딪쳐 보면 실수를 연발하기도 한다. 하나 그 실수를 통해 자신의 감각이 어느 지점에 왔는지 알 수 있다.

제임스 제비아는 1994년 처음 슈프림을 만들 때부터 '스케이트 보더들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데 최선을 다했다. 출처: 슈프림.

자신의 감각에 어떤 것을 놓는가에 따라서, 감각은 천천히 바뀐다. 그렇기에 감각을 키워나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디'에 배치하느냐가 언제나 중요하다. 우리가 미술작품을 보는 이유도 이러한 감각들. 자신의 감각을 어떻게 배치할지 알아가기 위함이다. 우리가 예술을 보는 일은, 무언가 ‘지식’을 쌓는 일이면서도 감각을 깨우고 존중하는 법을 익히는 ‘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작품을 보면서 ‘나는 무언가 예술을 느끼기 너무 늦었다’라고 생각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무엇이 내 마음에 스며들었는가를 세밀하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 만일 마음에 드는 예술작품을 보았다면, 스마트폰으로 곧장 그 작품을 찍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예술작품을 보는 한계는 외부가 아닌, 내적 요인에서 온다.


감각은 자신만의 세계관을 구축하는 근간이자 끈기의 산물이다.

인상주의자들이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는 감각을 처음으로 표현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모네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려고 노력했다. 조롱, 멸시, 비아냥을 이겨냈다. 모네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삶으로 보여주었다. ‘삶’으로 보여주는 자세만큼 가장 강력한 것은 없다. 우리는 나에게 가장 잘 맞는 형태의 플랫폼을 찾아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면 된다. 그게 자신의 감각을 전하는 전략이라면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나에게 맞추고자 하면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보다는 듣기 좋은 말에 귀 기울 수밖에 없으니까.


만일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것을 ‘변화’에 맞추어 일관성 있게 전하면 된다. 다만 하고 싶은 '말'을 계속하는 일은 끈기를 필요로 할 뿐이다. 그 끈기에 꾸준히 세밀함을 더하면 된다. 모네가 한건 그뿐이다. 그는 빛을 관찰하고 또 관찰했을 뿐이다.

모네를 수련에 담긴 다양한 빛 변화를 표현하기 위해 인생을 쏟아부었다.

감각을 전하는 일은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첫째는 남들이 좋아하는 걸 찾아내어 전하는 거다. 둘째는 내 감각을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게 만들던가. 솔직하게 나는 ‘미술에게 톡톡’에서 미술 지식을 전할 생각은 없다. 이미 나보다 더 뛰어난 분들이 적은 좋은 책들이 시중에 많기 때문이다. 오히려 내가 말하고 싶은 말은 간단하다. ‘예술에 졸지 말자’. ‘미술에 졸지 말고 어떻게 관점을 기를 것인가?’ 나에게는 이게 더 중요하다.


지금은 모든 게 넘쳐나는 포화의 시대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감각은 남들이 한 게 아닌 남들이 남겨놓은 빈틈을 찾는 일이다. 그 빈틈을 찾아 엮어내면 내 관점이 조금씩 생긴다. 남이 빈틈을 보면 다른 게 조금씩 가능해지고, 그것을 일관성 있게 키우다 보면 내 감각이 되기 시작한다. 동시에 그 감각을 자기 자신에게 끊임없이 주입시켜야 한다. ‘나는 감각을 전하는 미디어다. 나는 감각을 전하는 미디어다’ 등등. 스스로가 ‘미디어’라는 자부심과 자존감이 없으면, 감각을 꾸준히 길러가는 일은 매우 힘들다.

감각은 언제나 수많은 축적을 기반으로 한다. 출처:살레리 벰버리 홈페이지.

감각을 키우는 일은 골격을 만드는 일이다. 몸에 어떤 옷을 입히느냐에 따라 사람의 모습을 달라지듯이 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매일 쌓아가는 감각은 자신의 결과 인상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흐름은 자신이 만드는 모든 것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감각은 옷과 다르게 금방 갈아입을 수 없다. 계속해서 조금씩 무언가를 해보면서 결점을 보완해나가면 된다. 클로드 모네가 지금도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는 아마도 이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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