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자연의 관찰을 제품에 반영한 애플은 반고흐와 같은 맥락을 표현한다
애플은 미니멀하다. 사실이다. 매끈한 디자인, 말끔한 마감, 광이 나는 표면.
지금 내가 글을 쓰고 있는 맥북프로도 마찬가지다. 스티브 잡스가 미니멀리즘과
최적의 비움을 추구하는 일본 선사상을 애플 제품에 집어넣은 건 사실이다.
스티브 잡스 사후 팀 쿡이 이끄는 애플은 분명하게 다르지만 잡스가 이끌던 애플처럼 여전히 미니멀하다.
많은 이들이 이제 애플 디자인이 예전만큼 새롭다는 느낌을 받지 않는다.
‘더 적게. 더 간결하게’ 애플의 디자인은 항상 이 방향을 따라갔고 미니멀 디자인의 하나의 교과서가 되었다.
제품 혹은 디자인을 간단하게 만든다는 건 쉬운 게 결코 아니다. ’어느 부분을 빼야 하는가’에 초점을 두어야 하기 때문에 티가 나지 않는다.
나는 애플 디자인을 구현하는 운영체재를 좋아한다. 매번 신제품 발표와 WWDC를 볼 때도 디자인, 스펙보다는 운영체재가 어떻게 제품 디자인에 반영됐는가를 집중해서 본다. 애플의 모든 디자인은 운영체제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제품 전원이 켜지자 마자 나오는 애플 로고. 그때부터 애플에 대한 경험이 시작한다. 스마트폰 같은 전자기기에서 경험을 좌지우지하는건 운영체재다. 대다수 사람들은 제품내 설정된 운영체제의 기본 설정을 많이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 설정을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이해하도록 만드는 일이 무척 중요하다.오직 소수의 사람들만이 오랜 시간 공을 들여서 운영체재를 자기에 맞게 튜닝한다.
애플은 단순하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단순하지 않다. 오히려 운영체재와 디바이스를 통해서 애플만의 감성, 라이프스타일, 효율을 표현한다. 애플이 남 눈치 보는 일은 없다. 비교는 더더욱 없다. 비교대상은 오로
지 '애플 자신'이다. 대부분 애플 제품은 '그 전 세대 애플 제품'을 기준으로 한다. ’ 어제까지의 애플 제품의 경험’을 이기는 게 애플의 자세다. 매년 신제품 혹은 서비스 발표마다 자신들 제품이 어떻게 애플 사용자들에게 좋고 이전 제품보다 얼마나 '더 좋은 경험'을 줄지 생각한다.
"새로운 맥북프로는 그 전세대 맥북프로보다 데이터 처리속도가 3,4배 좋아졌습니다."
같은 말은 애플 제품 설명회에서 자주 나오는 표현이다.
애플은 자사 제품 경험에 대한 타협은 결코 하지 않는다.그들에게 극복 대상은
언제나 어제까지의 애플이다.
미술사에서 이같이 남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만의 미술세계와 감정을 표현한 화가가 있다.
빈센트 반 고흐다. 반 고흐는 살아서 인정받지 못했다. 그는 철저하게 무시당했다. 그림 상인이었던 동생 테오 반 고흐도 형인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을 팔지 못해 힘들어했다. 당시 사람들은 반 고흐를 이해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서야 반 고흐는 사람들이 ‘가장 원했던 그림을 그린 화가’가 되었다.
물감이 덕지덕지 붙은 캔버스, 파격적인 구도와 색감은 그 당시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했다.
여전히 ‘역사화, 신화를 묘사하는 그림’을 예술이 지향하는 방향으로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반 고흐는 인상주의 자보다 더 정신나간 괴인이었다. 사람들은 오히려 '인간 삶과 고뇌'를 그림으로 표현하고자 한 그의 노력을 외면했다.
그는 처음부터 화가 아니었다. 1878년 신학교를 그만둔 그는 벨기에의 가난한 광산촌에서 평신도 설교자가 되었다. 탄광촌에 가서 그곳 사람들과 생활했고 그곳에서 목회자가 아닌 화가가 자신이 가야 할 길임을 알았다. 목탄화로 자신이 본 탄광촌의 모습을 그렸다. 비록 그 시절 그의 그림은 어둡고 탄광촌의 힘든 삶을 묘사했지만 그림들은 오히려 ‘오노레 도미에’의 그림처럼 생명력이 있었다.
1886-1888년에 걸친 파리 체류 기간 동안 반 고흐는 인상주의자들과 교류했다. 인상주의의 색채 요소를 그림에 접목했고 그 시대 다른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과감한 색깔, 비약이 심한 구도를 가진 일본 색채 목판화인 '우끼요에'에 빠젔다. 그는 이를 반영해 실험적인 구도, 풍부한 색감을 반영한 그림을 그렸다. 새로운 영감에 대한 기쁨이었을까? 그에게 도전은 언제나 어제까지의 반고흐었다.
파리에서 받은 영감과 이를 더 발전시킨 아를에서의 그림은 어느 시절보다 밝았다. 이 시기 그림에서는 새로운 영감을 가득 얻어 기쁨에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들이 붓질과 색체에서 풍성하게 드러난다.
그는 아를에 이주한 후 자신만의 그림으로 더욱 발전시켰다. 프포방스 지역 아를이 선사한 아름다운 자연을 관찰했고 그 속에 색의 변화를 화폭에 담고자 노력했다. 고흐는 관찰하고 또 관찰했다. 자연 속 색 변화는 그 시기 고흐만의 스타일을 만드는 구심점이 되었다. 그림을 그릴 때는 항상 그림 소재가 지닌 본질, 특성 그리고 자신이 그것을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
다른 인상주의들이 빛의 묘사, 일상의 묘사, 교외 풍경 등 기법과 주제에 집중할 때 그는 사람과 자연을 향했다. 사람이 자연을 보고 느끼는 모든 감각에 집중했다. 그 감각에 집착하고 관찰했다. 언제나 그림 속에 사람이 물체는 보는 방향, 사람이 가진 감성을 투영했다. 마치 우리가 같은 사진을 찍어도 자신이 좋아하는 감성에 맞추어서 여러 색깔로 사진을 보정하듯이 고흐도 자신이 관찰하고 바라본 색상으로 세상을 그렇다. 그 당시에 그렇게 한 화가는 거의 없었다. 뽑아보자면 폴 세잔과 폴 고갱 정도였다.
그는 정신병이 오고 자살하기 직전까지도 관찰하고 관찰하며 그림을 그렸다. 그의 정신상태에 따라서 그림의 색깔과 분위기가 바뀌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자신이 느끼고자 한 삶’의 표현. 그림은 결국 화가가 자신의 삶을 누군가에게 제시하는 것과 동일하다. 화가의 그림은 그의 기획이 담겨있고 그가 만든 제품이다.
반 고흐가 그림을 그릴 때는 항상 그림 소재가 지닌 본질과 특성 그리고 자신이 그것에서 감정을 표현하는 데 집중했듯이 애플도 제품을 만들 때 제품을 통해 경험할 사람들 삶과 특징에 집중한다. 기계가 고철덩어리가 아닌 생활양식을 지탱하는 삶의 일부로 만드는 일에 집중했다. 애플 제품이 기능 중심이 아닌 '경험'으로 간 건 당연한 일이었다.
1984년 매킨토시 시연회에서 매킨토시가 ‘헬로 아임 매킨토시’라고 말하는 장면은 애플이 추구하는 방향이 언제나 사람이었음을 이야기한다. 당시 컴퓨터는 오로지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기계였고 일반인들과는 동떨어진 제품이었다. 잡스가 애플에서 쫓겨나면서 침체기를 겪기는 했지만 잡스가 복귀한 뒤에 출시한 아이맥 G3과 아이북을 통해 원래 방향을 회복한다. 그 이후에는 우리가 익히 아는 대로 아이팟, 아이폰, 맥북, 맥북에어까지 애플은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생각하는 전자기기 경험의 토대를 만들었다. 겉으로 보기에 애플 제품은 간결함하기만 하다. 하지만 그 안에는 전자기기를 일상에서 직관적으로 사용하기를 제안하는 애플만의 철학이 있다.
반 고흐의 그림은 미술사의 그 어떤 화가보다도 직관적이다.
반 고흐 전시회가 항상 인기가 있는 이유는 그림 그 자체 때문이다. 나는 빛과 색을 강조한 그림을 좋아하는 탓에 반 고흐를 좋아하지 않았다. 미술사 책에 나온 반 고흐 그림은 평면에서 찍은 사진이라 반 고흐 그림만이 가진 특유의 물감 질감을 담아내지 못한다. 미술사 책 사진만 보고 반 고흐 그림만 보면 "그냥 재밌는 그림이네"할 정도다. 하지만 반 고흐의 그림을 직접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내가 반 고흐 그림에 빠져버린 건 뉴욕에서 '별이 빛나는 밤에'를 실제로 보고 나서다. 두꺼운 물감 사이로 빛나는 빛. 어둠기보다는 짙은 남색의 밤하늘. 모든 걸 압도하는 그 광경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거친 붓질로 표현한 감정 묘사와 물감 단면을 하나씩 보면 반 고흐가 그림을 통해 전하고자 한 감정의 밀도를 느낄 수 있다. 기쁨, 슬픔, 소생 등을 느낄 수 있다. 필라델피아에서 우연히 본 ‘해바라기 꽃’은 해바라기 꽃 묘사가 아니었다. 해바라기 꽃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고흐의 표정, 해바리기꽃을 구성하는 색깔을 디테일하게 담아내려는 반 고흐만의 감성을 느낄 수 있었다.
폴 세잔이 현대미술에 대한 방법론을 만들었다면 반 고흐는 현대미술이 추구하는 방향과 해석론을 만들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말로 독보적이다. 반 고흐는 그 자체로 ‘직관적인 예술’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time_continue=260&v=EYmu6jOWArU
모든 기업이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에서 한 축이 되고 싶어 한다. 이 같은 접근에서 본다면 본다면 반 고흐는 사람들에게 영감과 감성을 선사한다는 면에서 하나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고 볼 수 도 있다. 거친 붓, 다채로운 색감, 감성, 뛰어난 관찰 등 누구나 고흐가 그린 그림 속에서 고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동시에 그 속에서 자신의 일부를 본다. 자신도 모르게 직관적으로 내면의 감정과 취향을 보기 때문이다. 반 고흐의 유화, 애니메이션, 프로젝터를 활용한 멀티미디어아트로 확장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미 반 고흐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장르다. 원본 그림 없이 오로지 작품의 멀티미디어 아트만으로도 사람들이 열광하는 화가는 고흐 외에는 찾아보기 힘들다. 게다가 해를 거듭할수록 비주얼 아트 기술들이 반 고흐의 작품을 더 역동적으로 만들고 있다. 언젠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인상주의 화가가 '반 고흐'라는 사실에 깜짝 놀란적이 있다.(반 고흐는 인상주의로 분류하는 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마도 반 고흐를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반 고흐가 사람들에게 ‘예술이란 이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라는 관점을 제시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예술에 대한 경험. 그 경험에 빠져들게 하는 화가 중 최고는 반 고흐니까.
애플: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경험 디자인은 무엇인가?
앞으로 디지털 경험 발전이 어디로 향할까? 이는 쉽게 말하기 어렵다. 예측도 어렵다.
일단 말할 수 있는 사실은 현재 디지털 경험은 개인과 스마트폰에서 정체되어있다는 점이다.
사물인터넷, 가상현실, 증강현실이 그다음을 이을 기술이라고 하지만 아직 우리에게 크게 와 닿지는 않는다. 하지만 5G, 블록체인 , 인공지능기술 등은 이를 뒷받침할 기술이다. 또한 이 기술들은 점차 사용자를 향해서 나아가고 있다. 현재 디지털 경험의 핵심은 '실시간'에 머물고 있고 '지리'적인 환경이라는 단점을
완벽하게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5G, 인공지능기술 등이 더 발전한다면 영화 '아이언맨 3'에서
토니 스타크가 실시간으로 '아이맨 슈트'를 조종하거나, 영화 '블랙 팬서'에서 슈리가 증강현실을 통해서
자동차를 운전하는 게 가능해질 거다.(이미 5G 기술을 통해 원격으로 굴삭기 작업을 테스트한 사례는 있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기술발전이 아니라 기술발전이 점점 더 삶에 직관적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점이다. 사용자가 언제든지 자료를 꺼내 쓸 수 있게 도와주는 클라우드 서비스의 꾸준한 성장도 이를 뒷받침한다. 지난주 발표한 마이크로소프트의 클라우드에서의 이익 증가를 이를 반증한다. 5G가 4G처럼 일상화되면 클라우드 서비스는 지금 보다 더욱 모든 분야로 확장이 될 거다.
나 역시도 도쿄에 가면 사진, 영상을 찍는 양이 정말 많다. 매번 도쿄에 다녀오면 적어도 사진과 영상자료가 적어도 100기가 정도는 나온다 그래서 도쿄에서 가기 전에 가장 먼저 모든 자료를 클라우드와 외장 ssd다 옮긴다. 도쿄에 도착하자 하는 일은 유심을 교체하고 아이클라우드를 데이터 네트워크와 연결한다. 사진과 영상을 클라우드에 올리고 아이폰을 최적화시켜서 용량이 부족해지는 일을 방지한다. 수시로 데이터를 클라우드로 옮기지 않으면 정작 필요할 때 사진과 영상, 음성으로 남길 수가 없다. 아이클라우드에 대한 여러 불만도 있지만 애플 제품의 클라우드 연동성은 최정상급이다.
애플은 애플만의 최적화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애플로 구성한 삶을 제안한다.
1984년 애플이 취급하는 물건은 ‘컴퓨터’라는 기계 ‘하나’였지만 2019년 현재 애플뮤직, 애플 워치, 애플 페이, iOS, 애플티브이, 맥북, 아이폰, 맥 프로, 맥북, 맥미니, 음향기기, AI스피커 등 다양한 상품을 취급하며
이를 통해 애플이 중심이 된 생활양식을 만들고 있다. 지금까지 애플은 하드웨어가 중심이었다. 그러나 점차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를 시작해 ‘everything’으로 확장해나가고 있다. 애플만으로 충분한 삶의 제시’는 이제 애플이 추구하는 가장 큰 가치다. 애플만으로 충분한 삶을 애플이 관연 지속할지는 나도 모르고 애플도 모른다. 애플은 과연 반 고흐만큼 하나의 장르가 될 수 있을까? 글쎄다 애플은 아직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