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아가 제안하는 잠 (feat. 강남팝업스토어)
버스와 차가 지나가는 커다란 8차선 도로.언제나 사람이 많은 강남대로. 그 길을 걷다 보면 노란 벽과 커다란 곰인형이 불쑥 보인다. 8월 28일부터 9월 8일까지 진행하는 이케아 팝업스토어다. 솔직하게 이케아 강남 팝업스토어의 구성은 아주 간단하다. 1층은 침실 디자인 4개, 거실 디자인 1개, 사진 촬영, 셀프 수면 테스트가 전부다. 2층은 이케아 패밀리와 신규가입고객을 위한 다과, 2020 카탈로그 배포. 이게 전부다. 이케아라고 엄청 거창할 거라고 생각하고 가면 실망하기 쉽다.
공간 콘셉은 중요하다. 공간이 나아가는 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특히 의식주 전반을 다루는 이케아 같은 경우 짧은 기간만 여는 팝업스토어에서 이케아 전부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이도 저도 아닐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케아는 오로지 '어떻게 질 좋은 수면을 취할 것인가?'에만 집중하고 그에 관한 인테리어만 선보인다. 그 외에는 다 버렸다.'잠'을 공간 콘셉트의 우선순위로 두었기에 공간은 매우 단순하지만 메시지는 직관적이다.
1층: '잠'을 제안하는 침실 인테리어.
"깨워요! 좋은 날"은 숙면을 취한 다음날을 말한다. 이 슬로건으로 시작하는 팝업스토어. '잠'이 공간의 콘셉트이다 보니 공간 색깔은 편안함을 주는 보라색과 흰색이 전부다. 강남 팝업스토어는 이케아 매장 안 전체 쇼룸 중 침실 디자인 일부만 가져왔다. 엄청나게 특별하지는 않지만 이케아 쇼룸의 특징인 '공간 경험' 은 여전하다. 1층은 침실 4개와 거실 1개로 단출하게 꾸몄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잠'만 다루겠다는 슬로건과 들어가자 보이는 4개의 침대는 매우 직관적이다. 침대가 있는데 더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하지만 1층 팝업 공간은 작지만 알차다. 이케아가 제안하는 '수면'을 담은 침실을 보고 수면 테스트를 하면 끝이다. 수면 테스트 내용은 이케아가 숙면을 위해 세운 [편안함, 온도, 빛, 향, 소리]이 5가지 기준을 기반으로 한다. 이 수면 테스트는 '개인화'서비스의 일환이다.
예를 들어 수면 테스트 질문은 다음과 같다.
'당신이 잠을 잘 때 자세는 어떠한가?"
당신이 잠을 자는 곳의 조명은 어떠한가?'
'잠자는 공간의 온도는 어떤가?"이다.
이같이 설계된 질문을 바탕으로 해서 그에 맞는 제품을 이메일로 보낸다.
또한 이 테스트를 마치고 나면 직원이 와서 '2층으로 가서 이벤트에 응모하세요!'라고 권한다.
2층 직원에게 응모 이벤트를 말하면 각 제품과 콘셉트를 설명해준다.
2층: '잠'을 대하는 이케아 라이프스타일 제품 설명, PIKA, 이케아 패밀리 가입 및 홍보.
1층에서는 이케아가 제안하는 4가지 침실 공간과 거실, 콘셉트를 선보인다. 반면에 2층은 1층에서 이케아가 제시한 '수면을 위한 5가지 감각'이 반영된 상품을 설명한다. 직원에게 물어보면 간략하게 설명도 해준다. 2층 가운데에는 소파와 스탠드 책상을 설치해 사람들이 쉴 수 있게 했다. 2층 벽에는 이케아 온라인 쇼핑몰에 대한 설명도 담았다. 하지만 온라인 쇼핑을 강조할 시에는 '수면'을 중심으로 한 팝업스토어 콘셉트를 침범할 수 있으니 단순한 문구 정도에서 끝냈다. 하지만 문구만 보아도 '이케아가 이제 온라인도 되네! 오호!'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확 와 닿았다.
계단에 적은 이케아 코리아의 연혁.
사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을 내용이다. 2층으로 가는 계단에는 2014년 이케아 광명점을 시작으로
매해 이케아가 어떤 행보를 보이고 있는지 설명한다. 계단에는 2019년 기흥, 2020년 동부산점을 적어놓았는데 이는 한국에서 한걸음 한걸음 진출하고 있는 이케아를 상징한다.
온라인 매장 홍보&쇼핑 트렌드 반영.
팝업스토어에는 물건을 판매하지 않는다. 대신 제품마다 QR코드 인쇄해서 언제든지 온라인 주문이 가능하도록 했다. 매장 내에서 수면 테스트를 하고 관련 제품을 만져본 뒤에 마음에 드는 제품이 있다면 그 자리에서 스마트폰으로 주문하면 된다. 만약에 침실 가구를 구입할 생각이 있다면 이케아 제품을 처음으로 고려할 만큼 그 효과가 강력했다.
색상
이케아 강남 팝업스토어에서는 보라색, 흰색을 중심으로 일관성이 있는 공간을 선보인다. 팝업스토어를 나오고 나면 보라색밖에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다. 색상은 생활 속에서 물리, 시각, 심리적으로 영향을 준다. 맑게 갠 하늘을 보면 마음이 편해지고, 흐린 하늘을 보면 기분이 우울하다. 빛이 내리는 모습 그 자체에 마음이 평안해지기도 한다. 이처럼 색채는 기분뿐만 아니라 신체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보라색은 명상과 자기 성찰을 돕는 색이다. 창의적인 활동에 도움을 주며 폐경기 중년 여성도 보라색 계통의 옷·스카프 등을 이용하면 자존감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렇지만 보라색은 과거 귀족과 왕족만이 사용할 수 있는 색깔이었고 특히 그 의미는 권능(majesty)이었다. 이 같은 보라색이 가진 의미 때문에 보라색이 가진 색체 효과는 생각만큼 알려지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1층에서는 식물이 콘셉트인 침실 인테리어도 선보이는데 주변이 보라색이다 보니 녹색이 두드러진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녹색과 보라색이 서로 보색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보색 관계에 있는 두 색을 서로 가깝게 매칭 하면 두 색 모두 색이 선명하게 보인다.
음악
수면에 도움이 되는 음악을 지속적으로 틀어놓는다. 이 음악은 편안한 보라색, 흰색을 기반으로 한 공간에 몰입감을 더한다. 나 같은 경우는 매장에서 시종일관 막스 리히터의 자장가가 계속 떠올랐다. 사실 음악만큼 잠을 돕는 강력한 도구도 없다. 막스 리히터 같은 경우 사람들에게 자신의 음악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알려주기 위해서 실제로 사람들이 자는 8시간 동안 자신이 만든 자장가를 시연하기도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8dvpT0hA0Lk
수면 테스트를 통한 데이터 수집.
나에게 수면 테스트는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였다. 질문과 선지 하나하나에 관련 제품이 연결돼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질문을 조금만 신경 써서 본다면 충분히 추론이 가능했다. 예를 들어 '수면 중에 조명상태는 어떠십니까?'라는 질문만 보아도 '이건 조명 상품에 대한 수요조사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이케아 매장은 도시 외곽에 있다. 인터넷으로 데이터를 수집한다고 해도 그 비용 또한 생각만큼 만만치 않다. 페이스북 타깃 광고를 한다고 해도 사람들이 얼마나 설문조사를 할지도 미지수다. 반면에 팝업스토어를 이용한다면 보다 더 신뢰성이 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아마도 이케아 팝업에 오는 사람들은 이케아 제품을 구입할 의지가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팝업 기간은 8월 28일에서 9월 8일까지다. 대략 11일인데 하루에 100명만 한다고 해도 1100건이다.
카탈로그
이케아는 매년 카탈로그를 발행한다. 매년 카탈로그에는 개별 상품, 각종 캠페인 광고, 표지, 가상의 집과 공간을 연출한다. 카탈로그 속에는 제품, 특가 제품, 표지, 슬로건, 판형, 가격정보, 가구와 소품 등 여러 정보다 같이 제공한다. 이케아 매장을 종이로 최대한 옮기려고 노력한 카탈로그는 이케아가 제안하는 라이프스타일 그 자체다. 웬만한 인테리어 잡지 수준의 카탈로그는 자신이 가진 인테리어 취향을 확인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나 역시도 책장에 이케아 카탈로그가 있고 수시로 재미 삼아 보기도 한다. 특히 이케아 온라인 샵을 사용할 때 애용한다.
텍스트&픽토그램
텍스트와 픽토그램을 활용한 공간 구성도 좋다. 색상이 강조된 공간에 필요한 텍스트와 픽토그램을 담아서
단조로운 공간에 세밀한 디테일을 넣었다. 특히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부드러움 어조의 선택도 이케아가 가진 스웨덴 감성을 잘 풀어낸다. 특히 말풍선을 활용해 잠에 대한 설명은 공간 콘셉트를 강조하는 한 끗 차이를 만든다.
이케아 매장 기흥점은 광명시보다 보다 아래 있다. 구글 지도로 확인한 강남역과는 1시간 20분 정도 거리다. (버스 기준) 강남역을 기준으로 본다면 강남대로의 팝업스토어는 기흥점 홍보와 데이터를 모으기 위한 목적도 겸한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주로 이케아 온라인샵과 고양점을 주로 이용한다. 그래서 기흥점에 대한 기대는 없다. 반면에 용인, 기흥, 수지, 분당 쪽에서 강남으로 출퇴근하는 이들에게 기흥점은 큰 메리트가 되리라 생각했다.
팝업 매장에서는 매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쿠폰, 중복할인 쿠폰, 카탈로그를 나눠주며 은연중에 이케아 기흥점의 접근성, 연결성, 팝업을 통한 환기시키는 부분도 있었다. 특히 중복할인을 강조하는 직원들의 다소 큰 목소리는 인상적이었다. 만약 누군가 용인, 수지, 분당 쪽에 거주하고 강남지역에 있다면 이케아 팝업은 충분히 가볼만할지도 모른다.
이번 팝업스토어의 핵심은 2가지라고 생각한다. 첫째는 '경험', 두 번째는 '데이터'수집이다.
"깨워요!"가 적힌 셔츠를 입은 직원들, 잠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을 적은 말풍선 장식, 이케아가 생각하는 수면을 위한 5가지 요소(감각)는 단순하지만 강력했다. 오직 '잠'을 강조했기에 겉도는 게 크게 없었다.
집에서 사용시간이 가장 많은 제품은 침실제품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테리어를 꾸밀 때 가장 중시하는 곳이 침실이다. 자신의 취향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이 침실 아니던가?
'수면은 최고의 쉼'이다를 강조하며 '집'이 가진 본질적인 기능인 '쉼'을 강조했기 때문에 공간 속에서 '이케아'라는 브랜드가 힘을 받는다. 이케아가 가징 '이케아'를 잘 설명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에 대한 고민이 많이 보였다고 해야 할까?
이케아는 이미 이케아 테스트 랩을 통해서 제품과 사람, 사람과 환경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가능성을 예측하고 검증하고 있다. 또한 BYREDO, HAY, 톰 딕슨, 오프 화이트 등 의식주에서 다양한 컬래버레이션을 선보였다. 이케아만큼 의식주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브랜드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찾아본다면 무인양품 정도?
무료 다과를 제공하며 이케아 패밀리 가입을 유도하는 전략도 좋았다. 2층에서 직원들은 이케아 패밀리 신규가입을 강조했고 많은 이들이 음료, 과자, 아이스크림을 위해서 신규가입을 하는 모습을 보았다. 온라인 구매, 기흥 점등은 부차적인 요소였다. 내가 주목한 부분은. 이케아 패밀리 신규가입에 적힌 문구였다.
이케아 패밀리 가입 문구에는 "가족은 몇 명인가요?""자녀는 몇 명인가요?" "기르는 애완동물은 무엇인가요?"등 요즘 라이프스타일이 반영된 모습이 상당히 놀랐다.
침실은 자신만의 취향이 가장 잘 담긴 곳이다. "남의 방에 함부로 들어가는 거 아니야!"
"남의 침실에 들어가는 건 큰 실례야!'라고 하는 말은 침실이 개인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잘 말해주는 표현이다. 그만큼 침실이라는 공간은 개인의 취향이자 동시에 정체성이기도 하다.
솔직하게 이케아 가구로 침실을 꾸민다고 해도 숙면을 취한다는 보장은 없다. 이케아 매장에서 보는 침실은
단지 하나의 이미지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안에서 자신에게 맞는 취향을 하나씩 뽑아내서 자신만의 취향을 만든다. 모든 게 개인화로 집중하는 지금 시대에 이케아가 팝업스토어를 연 이유는 보다 더 구체적인 취향을 고르는 안목을 사람들에게 전해주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