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창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험을전하는남자 Nov 05. 2019

기요미즈데라. 취향을 재조명한다.

기요미즈데라는 존재 그 자체로 자연을 바라보는 취향을 가르친다.

(이번 글은 이어서 올라간 스타벅스 니겐자카점 글과 같이 읽으시면 더 좋습니다. 글을 쓰다 보니

연작이지만 연작이 아닌 서로 독립적인 글이 나왔습니다.)

 

기요미즈테라의 미감 '올라가서 바라본다'

 기요미즈테라(이하 청수사)는 교토 내 절 및 정원과 다른 점은 위치다. 교토 내 정원은 대부분 평지다. 료안지는 조금 걸어 올라가지만 언덕 수준이다. 반면에 청수사는 히에이 산 자락. 즉 높은 곳에 있다. 앞서 말했듯이 본 정원은 보통 평지에 땅을 파고 평지에서 만든다. 땅을 파고 물이 들어올 공간을 계산하고 이에 맞게 돌을 놓는다. 그렇지만 기요미즈테라(청수사)만은 예외다. 

기요 미츠 테라의 시작은 '오른다'디. 올라가기에 보는 시선은 자연스럽게 아래를 향하리라 예상한다.

헤에 이산 자락에 위치한 이곳은 자연을 편집해 축소시켜 만든 정원이 없다. 정원 안에서 조성된 자연을 유유히 바라보듯 청수사는 교토 시내를 유유히 바라본다.   


'바라본다'속에 담긴 교토 미감.

청수사의 핵심은 '바라본다'라다. 그래서 정원과는 다르다.

청수사는 히에이 산 자락에서 가장 교토를 잘 볼 수 있는 위치에 건물을 지었다. 니겐 자카, 산넨

자카, 기요미즈 자카에서  청수사까지 올라가는 길목마저도 유연하게 조성했다. 이렇게 만든 청수사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교토의 전체다.  한국인이 생각하는 정원은 자연을 그대로 놔둔다. 그 안에 빈 곳. 정자가 들어갈 곳이 있다면 그곳에 건물을 만든다. 한국인은 자연을 일부러 자르고, 다음고 돌을 놓지 않는다. 그렇기에 한국에는 '정원'이라는 문화가 발전하지 않았다. 오히려 청수사의 구조는 한국인이 생각하는 정원과 유사하다.


교토에 가면 많은 정원들을 보게 된다. 돌을 놓는 일을 시작으로 정원을 조성한다. 다른 정원 양식과 자연풍경 일부를  차용해 자연을 편집한다. '어딘가에는 있을만한 자연. 반면에 청수사는 이 같은 일본 정원 미감이 거의 없다. 청수사는 일본인 특히 교토인 들은 편집한 자연만 좋아한다는 미감과 다르게 있는 그대로의 자연도 좋아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기요미즈 자카, 산넨자카, 니넨자카와 마루노우치와 오테마치.

기요미즈 자카(청수사 정문에서 내려오면 시작하는 유명한 거리) 그 시작은 찻집 거리라고 한다. 일본의 찻집 거리는 기온이 첫째고 두 번째가 이곳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기온, 기요미즈 자카, 시조 가와라마치는 걸음으로 1시간 내외에 있을 만큼 가깝다. 또한 여기에는 교토 도자기를 대표하는 기요미즈 야키가 유명했고. 15세기에는 다완이 유명했다. 에도시대에는 닌세이가 색회도기를 개발했다. 그래서 기요미즈 자카는  자완자카라는 다른 이름도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옛날 그대로 내려오는 노포들도 상당하다. 이 같은 노포들은 한자리에서 4대, 5대를 이어가며 집안의 전통을 이어간다.

노렌은 이곳 상인들의 자부심이다.

당연히 이들의 자부심이 걸린 노렌이 상점에 걸린 건 당연하다.  기요미즈 자카 보는 순간 우리나라 북촌, 서촌, 가회동이 떠오르는 건 우연이 아니다. 건물 형태는 다르더라도 분위기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기요미즈자카, 산넨자카 내 길을 내려가다 보면 현대적인 가옥과 전통가옥들이 섞여있다. 대략 이 집들의 나이는 100년 이상이다. 대부분 메이지 시대에 지어졌다고 하니 말이다. 이렇게 보존이 가능했던 건 교토 주민들 스스로가 노력했기 때문이다.

교토시에서 위촉한 보전 수경 사업 계획을 입안한 주체는 1969년 발족한 보존 수경 계획 연구회다. 교토대 건축학과가 주도하고 역사, 지리, 고고학, 생물학 등 각 분야 연구자들이 이어서 합류했다고 한다. 시청 공무원, 건축사, 토목기술자들도 합세했다고 한다. 이 같은 민간과 시가 같이 이 지역 보전을 연구했고 이 지역주민들에게 조사를 했다. 조사 결과  90프로가 자신의 집이 가진 옛 아름다움을 유지하며 '교토스러움'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에 교토시는 몇몇 지정양식을 제시하고 집수리할 경우 추가 비용으로 보조하는 방식으로 오늘날 같은 모습을 유지했다고 한다.

그러나 1970년부터 교토에 관광객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교토 지역민들은 이 지역을 지키기 위해서 히가시야마 산천을 지키는 모임을 만들었고 교토시는 1972년 산넨자카 일대를 특별 보전 수경지 구로 지정했다. 이후 전국적으로 개발에 의한 주거환경의 파괴가 심각해졌다. 당연히 이에 반대하는 주민 운동이 활발해졌다. 

1975년에야 비로소 일본 중앙정부는 문화재 보호법을 개정해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지구제도'를 도입하였다. 자연스럽게 교토에 있는 기존의 특별 보전 수경지구는 이 법으로 의해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지구'로 바뀌었다.  보존지구지정은 역사적인 건조물들이 모여있는 거리 자체를 대상으로 했다. 이는 기존의 점적인 보존에서 면적인 보존으로 확대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민간에서 시작된 보존 운동 지금 교토를 만드는 기반이 되었다.


이 세 지역의 거리에서 알 수 있는 공간감은 교토 기획을 해석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교토 건물은 직선처럼 곧고 선적이면서 좁다. 같은 도로라고 해도 로마 아피아 가도는 폭이 넓다.로마로 유입되는 모든 것을 운반했던 아피아 가도와는 다르다. 교토 거리와 문을 보면 교토의 공간감은 도쿄와 확연히 다름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경직되어있고 딱딱하다.

교토는 천년 간 수도로서 기능했고 그 과정에서 오닌의난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피해도 입지 않았다.  반면에 도쿄는 에도시대부터 땅을 매립하고 평지를 개간하며 끊임없이 도시를 만들었다. 또한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서양건물을 들이기도 했고 강한 바람에 불이 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서양식 내화 건물을 신바시에서 긴자까지 도입하기도 했다. 교토는 오랜 시간 꾸준히 유지한 정서가 도시를 지배하기 때문에 정서가 도시를 이끈다. 반면에 도쿄는 서양문화를 배우는 동시에 일본문화를 보존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내가 생각할 때 교토와 도쿄를 비교하기에 가장 안성맞춤인 곳은 야나카다. 보통 야나카를 옛 도쿄 모습이 남아있는 몇 되지 않는 곳이라고 하는데 야나카의 모습은 교 토하 고는 또 다르다. 교토에서 가장 높은 건물에 속하는 편인 교토타워는 도쿄에서 높은 건물이라고 할 수 있는 모리타워나 스카이트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 규모는 크지 않다. 그 얼기에 교토에서 보는 공간감은 도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며 기획을 정서로 해석하는 일과 개발적인 시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도쿄와 교토는 모두 방사형 도시지만 그 방사형을 유지하는 방안도 달랐다. 교토는 변함없는 옛 모습을 유지했다. 반면에 에도는 그 시작부터 달팽이관 형태로 도시를 확장하는 형태로 디자인했다. 교토의 번화가인 기온과 가와라마치 지역의 방사성 구조는 아사쿠사의 다와라마치에서 그대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에도가 확장성을 그대로 유지하는 공간은  마루노우치, 오테마치, 니혼바시, 교바시 지역이다. 가장 빠르게 재개발이 끝난 마루노우치는 빌딩을 위로 올리고 상가시설을 모두 지하로 집어넣었다. 

도쿄 마루노우치 중앙 출구에서는 고쿄까지 이어지는 방사형 구조를 그대로 볼 수 있는데 이는 도쿄가 얼마나 교토와는 다른 측면을 취하는지 알 수 있다.(물론 빌딩이 일왕이 사는 건물 내려본다고 빌딩 건축을 반대한 의견도 있었다.) 같은 일본이라고 해도 도시가 가진 공간에 대한 태도는 도시재생과 기획에 분명히 영향을 준다. 이를 기억해야 한다. 도시미 감은 도시만의 기획을 해석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청수사와 기요미즈자카는 무엇을 남겼는가?

기요미즈테라 그 자체는 교토 미감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교토 내 일본 정원, 문에 새긴 직선, 겹침, 개인화를 어떻게 공간 전체의 맥락으로 채울지에 대해 기요미즈테라는 그 존재 자체로 답한다. 어떤 위치에 있던지 히가시야마(히에이 산)의 풍경을 청수사에서 볼 수 있다. 교토 풍경, 산속 나무까지 말이다.

정원속에서 자연을 편집해서 즐기는 일도 자연을 보는 일이다.또한  자연속에서  더 넓은 자연을 보는 일도 자연을 보는 일이다. 이 기준은 오로지 취향이다. 우열은 없고 관점만 다를뿐이라.결국 교토정원과 자연은

'취향'에 따라 자연을 보는 법은 알게 모르게 가르쳐준다.


일본 정원은 각자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한 자연 일부를  취향에 녹여 공간으로 끌어온다. 그렇게 만들어진 자연에는 그 지역에 맞는 취향이 녹아 낸다 이걸 로컬 관점에서 본다면 개인 취향이 담긴 정원 자체가 '개인화의 중심'이다. 동시에 모두가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정원 스타일에서는 결코 벗어나지 않는다. 지역 맥락에 맞는 공통의 '가치'를 지키면서도 개인 취향을 동시에 담아낸다. 어떻게 보면 교토 내 일본 정원은 교토 지형지물의 '소셜라이징'이다. 

교토 내 어느 정원에 가도 교토 자연 일부가 녹아있다. 로컬을 강조 않아도 교토는 이미 로컬을 드러내는데 우연하다. 반면에 시부야의 트렁크 호텔은 소셜라이징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호텔의 위치인 '시부야'와 '도쿄'를 강조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도쿄의 발전과정을 상세히 설명한다. 하지만 교토는 그럴 필요가 없다. 과거에서부터 이미 로컬이라는 정서가 교토 내 충만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가레산스이는 '료안지가 최고지~'라고 말할 수 있다. 교토에서는 의도치 않게 [~다움]을 만든다. 교 토인들이 교토 특유 억양을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이유도 과거에서부터 쌓아온 교토 다움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직접 걸어 다니면서 본 일본 정원은 각 정원마다 미세한 공간 차이를 적극적으로 만들었다. 그 차이에는  '나는 왜 이 정원을 만들었는가?' 내가 추구하는 자연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항상 발견할 수 있었다. 각기 다른 정원공간은 공적인 공간보다는 사적인 공간이 훨씬 더 강했다. 나는 일본인들이 이 같은 모습들 태생적으로 접하기에 공간, 서비스에 적용하는 '개인화'에 능하다고 생각한다. 

취향을 강조하는 공간들. 이에 대한 경험들이 태생적으로 꾸준히 쌓이다 보니 자신이 원하는 공간 혹은 서비스를 만들어낼 때  "나는 어떠한 차별점을 만들어낼까?'라는 질문에 대한 개개인만의 답에 도달한다고 생각한다. 취향을 자연스럽게 인정하는 태도. 나는 이를 정원 미감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일본인들. 특히 일본 건축가들은 공간 혹은 브랜드에서 공간이 추구하는 정체성을 잘 담아낸다. 일본에서 승리하는 기획만 모여있는 도쿄 기획과 구현은 전체적으로 다들 비슷비슷하다. 동시에 하나하나씩 다른 디테일을 추구한다. 당연히 그 디테일에서는 취향이 녹아있다. 취향이라는 말보다는 취향, 감각, 미식 등을 포괄하는 'Taste'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지 오르겠다.

요즘 같이 취향에 기반한 '개인 맞춤 서비스'가 주류가 되면서 일본 기획력이 꾸준히 주목을 받는 이유는  '세밀하게 다른 디테일'과 'Taste'를 다루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그 디테일을 장사에 반영하는 능력일 이라 생각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7.야스쿠니 신사에서 마루노우치까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