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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험을전하는남자 Feb 25. 2019

시모키타자와에는 젊음과 그리움이 있다.

1년 만에 시모키타자와를 다시 왔다. 1년 전 이 무렵이었을 거다.

JR 신주쿠 중앙 출구로 가면 사철인 오다큐선 개찰구가 나온다. 

오다큐선을 타면 번잡한 신주쿠를 떠나 철로를 따라 차분한 도쿄로 떠난다.

도심 가운데를 가로질러 지나가는 기차. 기차를 모는 기관사 뒤에서 기차가 

도심을 유유히 지나가는 모습에 마음이 평안해진다.  15분 정도 짧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전철은 시모키타자와 역에 도착한다. 신주쿠의 번잡함은 소리 없이 사라졌다.


https://www.youtube.com/watch?v=-0n5oKPGPU4


https://www.youtube.com/watch?v=Txl9W3P0UMk



공사 중인 시모키타자와 역을 지나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시모키타자와를 알리는 안내판과

음악이 흘러나온다. 거리에서 흘러나오는 익숙한 음악소리.

가게에서 나오는 음악이 아니다. 거리 위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음악이 나온다.

한국에서는 전혀 보지 못한 풍경이다. 기치초지역 앞 상점거리에서도 시모키타자와처럼 음악이 흘러나온다.

음악은 신기하다. 나는 거리를 걷지만 이유 없이 꼭 영화 속에 한 장면에 있는 거 같다.

하모니카 소리와 익숙한 멜로디는 언젠가 본 영화와 추억을 다시 생각나게 한다. 1년 만에 온 시모키타자와 역이 반가운 건 아마도 이 음악소리를 기억하기 때문일 거다.





1년 만에 다시 찾은 시모키타자와는 큰 변화는 없었다.

시모키타자와 역 주변 공사지역만 바뀌었을 뿐이다.

도쿄 공간 에피소드 10은 시모키타자와다.

도쿄 거리 에피소드에 시모키타자와를 이미 적었지만 다시 시모키타자와를 적는 이유는

1년 전에는 2,30분 정도 시모키타자와의 거리만 보았기 때문이다.

마치 못한 숙제를 다시 하는 초등학교 시절기분처럼 시모키타자와 역에 내릴 때는

1년 전과 다르게 마음에 여유가 넘쳤다. 1년 전 미처 가보지 못한 길거리를 마저 가보았다. 



편의주의와 축소지향은 일본을 읽어내는 분석도구이지만 일본 감성을 분석 툴로만 읽어낼 수는 없다.

사람은 분석적이지 않고 감성적이다. 분석이란 '목적'을 설정한 상태에서 접근하는 하나의 방식이니까.

도쿄 공간 에피소드에서는 분석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종종 분석하는 글로 나아가기도 하지만 

다행히 시모키타자와는 분석보다는 느껴야 비로소 보이는 공간이다. 다행이었다.

도쿄 내 일본 감성을 느끼고 싶다면 나는 1순위로 시모키타자와를 가보기를 제안한다.


일본만의 감성이 가장 가안게 거리다. 그게 바로 로지우라.


일본 감성은 독특하다. 거리는 차분하면서 몽환적이다.

그 느낌에서 벗어나면 조용함이 밀려온다.

일본에서는 좁고 가느다란 뒷골목을 '로지우라(路地裏)'라고 부른다.

우리가 '일본 갬성'이라 부리는 거리가 로지우라다. 시모키자자와는 

이 로지우라가 얽히고설킨 동네다. 자연스럽지만 동시에 인위적인 무엇인가가 우리를 사로잡는다.

오사카와 다르게 도쿄는 유독 좁은 거리를 찾기가 상대적으로 힘들지만

도쿄만의 분주함은 오사카와 다르게 일본 감성을 더 돋보이는 경험을 선사한다.


골목길. 로지우라는 시모키타자와를 만드는 핏줄이다.


신주쿠가 선사하는 현대적인 복잡함을 경험하다가 일본 감성이 살아숨시는 시모키타자와의 로지우라에 마주하는 순간 적막하다.그 적막감은 시모키타자와가 품은 일본 특유의 몽환적 느낌에 서서히 사라진다.

아니다. 적막함히 사실은 골목길. 즉 로지우라가 만들어낸 몽환적인 느낌이었댜는 사실을 알게된다.

점차 차분함이 몸안에 베어 든다. 발걸음이 느려지는 이유는 그 때문일지 모른다.


시모키타자와 1번가 상점가 북쪽으로 가면 길이 더 좁아진다.


시모키타자와는 시모키타자와 역(오다큐선은 지하, 게이오선은 지상)을 중심으로 북쪽과 남쪽으로 나뉜다.

역 북쪽으로 가면 빈티지 소품과 구제의류상점이 많고 남쪽에는 시모키타자와 1번가 상점가가 음식점들이 있다. 고독한 미식가에 나온 오꼬노미야끼 가게 히로키가 이곳에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lJi6dGHJws&t=1s

시모키자타자와는 도로면과 건물 각 층마다 마치 만화경처럼  다채롭고 변화무쌍해 신기한 볼거리가 가득하다. 조용하면서도 거리에는 벽화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번에 가본 빈티지 옷 상점인 'HAIGHT & ASHBURY'는 정말로 좋았다. 옛 느낌이 가득한 옷은 패스트패션에 익숙한 최근 패션 트렌드와는 달랐다. 

다채로운 개성 그 자체였다. 스타일리스트 및 모델들도 찾는 이곳은 호화스러운 드레스에서 빈티지 액세서리, 100년보다 더 오래된 빅토리아 시대 옷도 있다. 마치 잠들어있던 오랜 유럽의 옷장을 열어본 듯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츠타야 다이칸야마 티 사이트가 있는 다이칸야마와 근방인 에비스는 세련됨이 두드러지지만 반면에 시모키타자와는 개성이 넘치는 곳이다. 넓은 거리보다는 두세 명이 느긋하게 지나갈 정도로 여유 있는 길목이 많다. 빈티지한 소품 가게, 옷가게, 음식점, 드러그스토어 등이 즐비하다.


꺠알 같은 디테일과 귀여움은 일본만이 가진 감성중 하나.


시모키타자와 역에서 나와 1번가 상점가 거리에 접어들면 음악이 흘러나온다. 음악이 흘러나오는 좁은 골목길은 15년 전 홍대와 많이 닮았다. 지금과 다르게 당시에 홍대는 큰 건물로 많지 않았다.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보여서 개성이 가득한 곳이었다. 앞선 언급했듯이 일본의 골목길인 로지우라가 가득한 곳이 홍대였다. 지금처럼 번화한 거리와는 거리가 먼 곳이었다. 신촌과 홍대입구는 '20대 청춘'을 대변하는 곳이었다. 지금은 성수와 을지로가 젊음의 공간으로 부상했지만 당시에는 홍대입구가 대세였다. 아직도 기억한다. 


우연히 블로그에서 발견한 상수역 근처 당고집. 당고를 먹고 싶어 학교 수업도 가지 않고 마냥 당고집을 찾았다. 당시에는 스마트폰도 없어서 대략 위치를 종이에 적었다. 홍대입구에서 상수역으로 가면서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서 당고집을 찾았다. 그 당고집이 아직도 있는지 모른다. 홍대 근처는 더 이상 가지 않으니까. 유독 옛 홍대가 생각난 건 시모키타자와 거리 그 자체가 옛 홍대 거리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오사카의 오렌지 스트리트 같기도 했다. 또한 길목이 좁은 하라주쿠의 캣 스트리트와도 비슷했다.



시모키타자와는 각자의 개성이 모인 멋진 편집샵 그 자체다. 각자가 가진 삶과 에너지가 시모키타자와를 지배한다. 소품 가게 속 아저씨는 손님이 오든지 말든지 개의치 않고 무심하게 스마트폰을 보고만 있다. 길거리 벽화아 공중전화박스 걸린 신기한 물건을 보고 학생들은 사진을 찍어 추억으로 담아간다. 투박하지만 섬세하다. 무엇이랄까? 때가 타지 않은 이 동네는 '집으로 가는 편안함'을 닮았다. 젊음시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교복이 아닌 자유롭게  옷을 입기 시작할 때의 즐거움이다. 처음으로 파마를 하고 밖에 나갔을 때 느낀 설렘과 어색함. 사복을 입고 밖에서 친구들과 새로운 곳에 갈 때 느낀 설렘과 그리움이다. 혼자서도 보기 좋은 시모키타자와이지만 둘이 오면 더 좋은 곳이다. 시모키타자와를 걸으면서 핫플레이스가 되면 획일화되는 서울의 모습에 뭔가 서글펐다.



오다큐선을 타고 왔다면 게이오전철을 타고 신주쿠역으로 가라.




시모키타자와. 이곳은 오랜만에 열어본 서랍장이다.

서랍장 속에 담긴 물건을 하나씩 만지다 보면 그 물건에 대한 기억들이 다시 떠오른다.

 그리도 그때는 이 물건이 소중했을까? 스스로에게 물어보며 지금 내 모습을 돌아본다.

젊은 시절 나와 지금의 내가 마주한 느낌. 시모키타자와는 그런 공간이다. 

갑자기 떠오른 나의 20살 청춘이 생각나서 한동안 거리에 서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에 마음이 울적였다.

기치조지가 새로움과 그리움을 품은 곳이라면, 시모키타자와는 그리움과 청춘을 만나는 자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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