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적 생태계를 만드는 애플과
애플은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콘텐츠를 유기적으로 엮어 생태계를 만들었다.
사람들이 애플스토어에 가는 이유도 애플의 세계관을 경험하기 위함이다.
애플스토어에서는 오로지 애플과 관련된 제품만 존재하기 때문에,
만일 애플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굉장히 낯설다.
애플이 매년 비슷한 시기에 신제품을 발표와
WWDC 같은 개발자 포럼을 개최하는 이유는 생태계 변화를 알려주기 위함이다.
애플은 지난 신제품 발표회에서 혈중 산소농도 측정이 포함된
애플 워치, 피트니스 멤버십 등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콘텐츠를 추가했다.
뿐만 아니라, 애플원이라는 애플 전체 통합서비스도 내놓았다.
애플이 근간이 된 라이프스타일을 애플원으로 누리라는 거다.
애플은 모든 제품을 ‘애플’로 연결 셈이다.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곧 출시할 아이폰 12와의 연동을 위해
새로 발매하는 아이패드에 A14바이오닉 칩을 탑재했다.
이 역시도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더 긴밀히 연결해
사용자 경험의 질을 더 끌어올리기 위함이다.
참고로 두 기기에 탑재된 A14칩은 세계 최초 5 나노공정이 적용된 칩이다.
향후 5 나노 공정이 적용된 ARM 기반 맥북이 출시되면
아이폰, 아이패드, 맥북은 지금보다 더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iOS, OSX에 iPadOS가 추가된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해가 거듭할수록 애플은 자사의 생태계 영역을 조금씩 넓히며 있다.
점진적으로 개선하는 애플 제품은 애플이 구축한 생태계를 더욱 끈끈하게 만들고 있다.
반면에 삼성의 세계관은 상당히 모호하다. 존재하는지 조차 확실하지 않다.
삼성은 세계관이 있기는 하나? 만약 애플과 같은 관점에서 삼성을 본다면?
삼성은 세계관이 없다. 이 세상에 똑같은 사람이 없듯이 똑같은 기업도 없다.
삼성전자는 애플과는 다르다. 애플과 삼성을 같은 기준으로 비교하면 안 된다.
삼성전자는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전장(하만카돈), 메모리 반도체,
반도체 설계, 시스템반도체, 가전, 5G 네트워크(텔레 월드), 이미지센서,
디스플레이, 모바일 기기 등 중구난방이다. 뭔가 '구심점'이 없다.
'갤릭시'가 구심점일까? 애매하다.
갤럭시노트2 0의 AP는 퀄컴 스냅드래건 865+다.
스마트폰의 두뇌인 AP가 삼성제품이 아니다.
갤럭시를 '구심점'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다.
흥미롭게도 삼성이 가진 유일한 세계관은
이렇게 중구난방 한 사업들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다.
애플과 다르게, 삼성은 많은 '기업'들이
자사 제품을 구현을 돕는 기술 인프라 생태계를 만든다.
만일 당신이 삼성제품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도,
어딘가에는 삼성이 만든 부품을 사용해 만든 확률이 높다.
아이폰? 아이폰 11프로와 프로맥스에는
삼성디스플레이가 만든 OLED가 들어간다.
애플은 폐쇄적인 생태계를 구축했고, 동시에 그 자체로 제안이자
삶을 변화시킬 ‘무언가’다. 그렇기에 브랜드 가치 1위다.
시가총액도 1위다. 삼성은 아니다.
애플과 다르게 삼성은
‘누군가의 라이프스타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기술 인프라’에 집중한다.
삼성은 ‘삶을 변화시키는 기술 인프라’ 그 자체를 만들기에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삼성이 지향하는 방향은 ‘고객 라이프스타일을 지탱하는 기술’이다.
애플 키노트는 매번 멋지지만,
삼성 키노트가 멋지지 않은 이유는 이 때문이다.
삼성전자 매장은 애플스토어와는 다르게 ‘기쁨’보다는
기술 ‘경험’. 삼성이 구현한 기술이 어떻게 일상에 스며들어가는지를 우선순위로 삼는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삼성의 시도는 삼성을 더욱 삼성스럽게 만든다.
[브랜드 제안은 기업 정체성에서 시작한다]
‘제안이 없는 제안’이 있는 공간.
삼성 디지털 프라가 강남본점은 매우 흥미로운 공간이다.
라이프스타일 '제안'보다는
‘삼성은 당신이 꿈꾸는 공간에 이런 역할을 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동시에 ‘삼성 생활가전을 통해 당신 취향과 생활을 맞도록 설계하는 건 어떤가요?’라는 질문도 더한다.
다른 건 몰라도 삼성 생활가전의 ‘기능’은 확실하다.
삼성이 전하고자 하는 건 ‘안도’와 ‘신뢰’다.
이를 통해 삼성은 ‘기능 제안’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라이프스타일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원하는 ‘기능’을 분류하고 묶고 엮어야 한다.
여기에서 기능은 ‘의’,’식’, '주’ 내 요소를 말한다.
의식주 각 요소들을 자신의 취향으로 먼저 선별한다.
'의'를 예로 들어보자. 운동할 때는 언더아머 혹은 안다르,
신발은 조던, 이지 350, 스탠 스미스같이 나눌 수 있다.
마트에 가서 과자 고르듯이 말이다. 선별과정은 단순히 물건을 고르는 과정이 아니다.
'어떻게 가전제품과 가구를 조화롭게 매치할 것인가?’
‘어떻게 내 취향이 고스란히 담긴 일상생활을 만들까?’
‘이 물건 나에게 왜 필요한가?’에 같은 자기 자신을 복기하는 일에 가깝다.
이러한 질문을 거치고 나면,
자신이 가장 중시하는 기능, 디자인, 색깔 등이
질문 전보다 더 자세하게 정돈된다.
수많은 상품 후보들이 이 과정을 거치고 나면
물건은 대략 3,4가지 정도로 추려진다.
추려진 정보들을 가지고 자연스럽게 맞추면 된다.
퍼즐 맞추듯이 말이다. 이렇게 맞춰진 조각들은
자신에게 맞는 라이프스타일로 변한다.
나는 이걸 ‘의식주도’라고 부른다.
‘의’’식’’주’가 합쳐져서 자신이 지향하는 삶의 방향 ‘도’을 만들기 때문이다.
삼성이 만든 비스포크 냉장고, 갤럭시, 그랑데 세탁기는 쉽사리 하나로 연결되지 않는다.
소비자는 자신의 취향에 맞게 삼성제품을 고를 뿐이다.
그렇지만 선별해서 고른 제품은 철저히 그 사람 취향에 들어가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다.
프로젝트 프리즘에 있는 플라잉 요가와 필라테스 쇼룸에 삼성가전이 돋보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삼성가전은 각 사람들 취향 안에서 중요한 기능을 한다.
그 자체가 제안은 아니다. 비스포크 냉장고는 맥북과 같이 사용할 수 있다.
(비스포크라는 단어 자체가 맞춤 생산이라는 말이다.)
그랑데 세탁기는 이케아 가구와 함께 사용할 수 있다.
심지어 냉장고는 비스포크, 티브이는 LG일수도 있다.
이 모든 선택권은 소비자에게 있다.
프로젝트 프리즘 안에는 세탁 카페도 있다.
하지만 이곳의 세탁 카페는 내가 일전에 포스팅한
론드리 프로젝트와 워시 타운같이 '세탁'이 가진 사회적 기능과 정서에 초점을 두지 않는다.
당연히 커뮤니티도 지향하지 않는다. 이곳에서 말하고자 하는 세탁은 ‘기능’이다.
삼성은 프로젝트 프리즘에서 라이프스타일 구현을 위한
제품을 직접 체험해보고 구매까지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삼성은 애플처럼 ‘제안’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지 않는다.
그보다는 삼성은 이 공간에서 '누군가의 라이프스타일 최적화'를 돕는 파트너가 되고 싶어 한다.
프로젝트 프리즘에는 카페, 독서, 음악 감상이 가능한 공간도 마련해두었지만,
이는 소비자들이 라이프스타일을 생각할 시간을 돕기 위함이다.
이는 미디어가 하는 일과도 크게 다를 게 없다.
삼성이 추구하는 방향은 '미디어' 혹은 '파트너'로 가고 있다.
이는 반도체사업부로 넘어가면 더욱 분명해진다.
삼성전자의 주력사업인 반도체 사업을 면밀히 보면 삼성은 ‘제안’하는 기업이 아니다.
그보다는 중요한 ‘기능’을 제공하는 ‘인프라’ 기업이다.
삼성이 만드는 메모리, 낸드, ssd, 이미지센서,
5G 네트워크 플랫폼, 파운더리, 반도체 설계(엑시노스)를 면밀히 살펴보자.
전 세계 반도체 회사 중 삼성처럼 복합적으로 생산하는 회사는 없다.
반도체 설계, 생산을 같이하면서 만드는 회사는 삼성전자와 인텔 정도다.
이제는 한가족이 된 엔비디아 ARM. 두 회사는 엄연히 반도체 설계회사에 가깝다.
ARM은 기본 설계도면을 제공하고 엔비디아는 삼성과 TSMC에 생산을 맡긴다.
애플, 퀄컴도 마찬가지다.
삼성은 위에서 말한 모든 걸 연결한 '갤럭시'라는 스마트폰도 만든다.
아이폰과 다르게 갤럭시는 '지금 시대 모바일 기술발전의 절정'을 알려주는 역할에 더 집중한다.
지난 갤럭시 언팩에서도 엑시노스가 아닌 퀄컴칩을 사용한 이유도,
갤럭시 북에서 마이크로소프트와의 협업을 강조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삼성이 지향하는 세계관 자체가 '생활 제안까지도 가능한 기술 파트너'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