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제품 매장은 편집권과 추천이 공존하는 밀도 있는 공간이 돼야 한다.
삼성 디지털플라자 강남본점에 자리한 프로젝트 프리즘.
그 안에 자리한 쇼룸 공간 자체는 유기적 ‘느낌’이 부족하다.
‘쇼룸’ 안에서 삼성제품만 부각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바닥을 살펴보자.
바닥은 작가들이 만든 공간 사이. 경계 선명하게 나눈다. 바닥 타일은 같은 색깔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 덕에 공간은 공통된 흐름을 가지고 있지 않다.
개별 공간이 나눠져 있다고 자연스럽게 느끼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마치 박물관 안에 전시된 유물을 보는 느낌과 유사하다.
어느 곳에서도 사람 정서가 들어갈 틈이 없다. 모든 공간에서 삼성가전이 가진 ‘기능’만 강조하고 있다.
사람들이 들어갈 틈을 주지 않았다. 특히 ‘눈으로만 보세요’라는 문구는 쇼룸 공간 특징을 보여준다.
그 안에서 삼성가전제품은 오직 ‘오브제’로만 존재한다.
프로젝트 프리즘에 설치된 작품 안에 정서는 없다. 오직 기능만 표현한다.
전시물과 쇼룸은 철저히 삼성가전제품이 가진 기능만을 묘사한다.
‘세탁’ 혹은 '냉장'이라는 기능만 전하는 게 아니다. 세탁기와 냉장고가 인테리어 소품으로써,
이용자가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디자인 기능에 대해서만 집중한다.
누군가는 이를 보고 삼성가전이 공간을 ‘창조’하는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말할지 모른다.
맞다. 정확한 지적이다. 삼성이 이 곳에서 추구한 방향은 공간 창조가 아니다.
그보다는 삼성제품이 공간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지에만 집중한다.
이제 기업을 소비자에게 선택받는 입장으로 변했다.
고객이 가진 편집권을 존중하고 그 편집권을 자극하는 방향으로 매장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기에 프로젝트 프리즘 공간은 오히려 ‘제안’을 ‘지양’한다.
앞선 글들에서 말한 프로젝트 프리즘 내 공간들은 쇼룸에서 멈춘다.
제안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하지만 공간이 소비자를 가르치지 않는다.
편집과 조화를 어떻게 이용자에게 맡긴다.
이곳에서 삼성은 자신들이 만든 가전제품 ‘기능’을 강조한다.
‘삼성가전제품 기능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제안과 구현은 소비지에게 몫이에요.
우리는 소비자의 편집권을 존중합니다 ‘이 말이 프로젝트 프리즘 공간을 관통하는 메시지다.
애플처럼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콘텐츠를 최적화해 애플이 기반이 된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하지 않는다.
‘삼성제품의 기능은 좋다. 하지만 스타일은 부족하다’. 삼성은 자신들이 가진 이 같은 평을 매우 잘 안다.
오히려 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평가를 과감하게 외부에 노출시킨다.
동시에 이 약점을 소비자가 자신의 취향으로 보완하게 만드는 매우 독특한 접근을 취한다.
비스포크 냉장고만 해도 소비자들이 직접 디자인을 할 수도 있다.
색감도 고를 수 있다. 만약 소비자를 자극한 새로운 영감이 필요하다면?
협업을 한다. 슈퍼 픽션과 협업으로 만든 비스포크 냉장고가 대표적이다.
이케아 쇼룸과 비슷한 면도 적지 않다.
하지만 쇼룸에 있는 모든 제품을 다 제작하는 이케야와는 조금 다르다.
이곳에서는 삼성이 만든 제품이 다른 가구들과 함께 있기 때문이다.
시보네 아오야마 혹은 츠타야 같은 간결한 ‘제안’도 없다.
당연히 제안을 위한 로직도 없다. 목적이 확실하기 때문에 중심과 색깔을 잃지 않는다.
쇼룸을 통해 삼성가전이 공간 속에서 어떻게 ‘기능’하는지만 보여준다.
여전히 상품은 너무 많다. 어디서부터 무엇을 골라야 할지 몰라 헤매기 쉽다.
비록 편집권은 이제 고객에게 있지만, 고객은 자신이 그린 이미지를 실제로 구체화하기에
여전히 어려움을 느낀다. 정보를 검색하고 저장하는 일과 실제로 고르는 일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물건을 고르는 일은 한정된 돈을 사용하는 일이니까.
그렇기에 사람들은 참고할만한 무언가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무엇이 나에게 맞는지, 어디서 구입해야 좋은지를 모른다.
물론 이커머스로 구입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가구 같은 건 이커머스로 구입하기 전에 직접 보는 게 좀 더 좋다.
편리한 시대다. 하나 막상 구하려고 하면 불편하다. 이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기업이 존재한다.
편집권은 개인에게 넘어갔지만 추천권이 기업에게 없는 건 아니다.
오히려 기업에게 필요한 건 고객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콕 집어 추천 능력이다.
개인과 다르게 기업은 개인에게 추천할 수 있는 수많은 데이터와 능력이 있다.
이걸 기업이 가진 편집력이라고 할 수 도 있다.
요즘에는 이걸 큐레이션이라고 한다.
고객 생활 속에서 필요한 것을 절묘하게 추천할 수 있는 능력 말이다. 이
게 없으면 도태된다. 동시에 물건도 좋아야 한다.
삼성이 취하는 방식은 이 같은 방식이다. 삼성전자는 고객이 가진 ‘편집권’을 건드리지 않는다.
오히려 고객들이 묶고 엮는 과정에 ‘삼성은 이런 부분에 유용하다.’라는 말을 던지며 ‘추천’으로 다가간다.
프로젝트 프리즘이 분명 무엇인가 ‘제안’하려고 함에도 기능만 보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삼성전자 뉴스룸에서는 비스포크 냉장고가 가진 특징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다음은 삼성전자 뉴스룸에 있는 내용이다. “퇴근 후, 저녁에 함께 앉아 영화나 스포츠를 시청하며
맥주를 즐기는 시간을 좋아한다. 이들은 평소 보관할 식재료가 많지 않기 때문에
냉장·냉동으로만 이뤄진 2 도어 냉장고를 선택했다. 여기에 냉장·냉동·김치 냉장고로
변온 하여 사용할 수 있는 1 도어 변온 냉장고를 추가해 김치냉장고로 사용하고 있다.
김치와의 식재료 간 냄새가 섞이는 것은 원치 않았기 때문.
작은 공간에서 김치 냉장고와 냉장·냉동고 기능을 모두 누릴 수 있다.”
여기에서 삼성전자의 제안은 하나도 없다. 결혼한 신혼부부는 평소 자신들 생활에 맞게 냉장고 기능을 선별했고. 그에 맞게 냉장고를 선택했다. 그 선택에 가장 부합한 게 비스포크 냉장고였다. 여기서 핵심은 선별과 설계다. 이 과정에서 편집권은 부부에게 있다. 이 편집권에 맞게 삼성전자는 자사 냉장고를 추천할 뿐이다. 선택은 오직 부부 몫이다. [자세한 인테리어 사진은 삼성전자 뉴스룸에서 확인 가능.https://news.samsung.com/kr/%EC%82%BC%EC%84%B1%EC%A0%84%EC%9E%90-%EB%89%B4%EC%8A%A4%EB%A3%B8-%EC%BD%98%ED%85%90%EC%B8%A0-%EC%9D%B4%EC%9A%A9%EC%97%90-%EB%8C%80%ED%95%9C-%EC%95%88%EB%82%B4]
한 가지 사례를 또 알아보자. 이 사례도 삼성전자 뉴스룸에서 가져왔다.
“주말이면 강원도 양양으로 서핑을 떠나는 B 씨는 화려한 ‘혼사남(혼자 사는 남자)’다. 그는 인테리어에도 관심이 많아 다양한 그림과 액자, 소품으로 집을 꾸몄다. 요리에는 크게 관심이 없어 작은 냉장 고면 충분하지만, 아끼는 서핑보드로 완성한 블루톤의 인테리어를 해지지 않을 고급스러운 제품을 갖고 싶었다. 그런 그의 거실을 차지한 냉장고는 바로 코타 민트 색상의 2 도어 냉장고.”
여기에서도 삼성전자는 특별히 제안하지 않는다. B 씨의 취향에 대해서 뭐라고 하지 않는다.
삼성전자는 B 씨에게 가장 부합한 상품을 추천할 뿐이다. 선택은 역시나 B 씨 몫이다.
삼성전자가 프로젝트 프리즘을 통해 말하고 싶은 건
‘삼성 생활가전이 여러분이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에 어떻게 스며들 수 있을까요?’
‘ 우리는 당신의 취향에 부합하는 부품이죠. 자 이 쇼룸을 보세요!’다.
프로젝트 프리즘이라는 공간은 고객에게 완전무결한 추천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고객 생활과 취향에 꼭 들어맞는 추천을 하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이러한 삼성전자의 노력은 고객을 ‘확보’하고자 하는 시도는 아니다.
오히려 고객을 키우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매장에서는 브랜드 세계관을 전달하면서도 새로운 고객가치를 창조해야 한다.
그 창조는 막연한 게 아니다. 고객 취향. 예를 들어 인테리어 취향에 매우 적합한 제품을 만드는 일이다.
실제 매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편안함을 추구하며,
책으로 보는 인테리어가 아닌 실생활에 유용한 인테리어 감각을 전달해야 한다.
인스타그램이나 잡지로 보는 인테리어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제공할지 모르나, '편안함'을 제공하지 않는다.
인스타그램은 연출된 이미지다. 최근 이케아가 CG로 만들어진 버츄얼 모델 'imma'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IMMA가 선보이는 이케아 공간은 실제 이미지와 거의 같다.
하지만 온라인은 말 그대로 ‘망’이다. 상하수도망 같은 인프라다.‘편안함’이라는 감각과 거리가 있다.
사람들은 이미 인터넷과 실제 매장을 적절하게 구분하며 이용하고 있다.
기업 중에서 온라인과 실제 매장 간 공존 혹은 실제 매장만이 가진 의미를 만들기 위해 공간을 만들고 있다.
지금은 실제 매장이 가진 의미를 적극적으로 제안해야 하는 시대다.
코로나 때문에 당분간 사람들은 밖에 나가기를 주저하고 있고,
설령 바깥으로 나간다고 해도 굉장히 조심스럽다. 그렇기에 더더욱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매장을 찾을 것이다.
그렇기에 실제 매장만이 가진 매력. 그 매력은 가전제품을 사용할 때 내 공간에서 어떤 ‘위치’에 있을지,
가전제품 그 이상을 넘게 전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이곳에서 느낀 점은 이 같은 생각의 연장선이었다.
프로젝트 프리즘에서는 삼성가전을 가구와 어떻게 진열할지 충분히 가늠할 수 있었다.
비스포크 냉장고를 캔버스로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할 수 있었다.
세탁기는 배수가 중요하기에 베란다에 넣기도 하지만, 주방에 같이 있어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했다.
삼성가전은 ‘기본 이상’ 기능을 하기에, 자사 제품을 자신 있게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자신감도 보였다.
취향을 다를지라도 삼성가전은 충분히 인정할 수 있으니까.
정서를 담은 공간과 ‘가능’을 강조하는 공간 사이 우열은 없다.
중요한 건 공간을 만드는 사람의 선택권이다. 이제 사람들은 스스로 정보를 검색한다.
자신의 취향에 맞게 편집한다. 사람들은 상품도 매장도 선택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