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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험을전하는남자 Oct 05. 2020

창덕궁 후원은 최고의 호사다

한국미학은 자연을 그 자체로 느끼는데 집중한다.

창덕궁 후원, 최고의 호사.

왕실 가족들은 궁궐 밖을 나갈 수없었기 때문에

답답함을 느꼈고, 후원을 통해 이를 해소했다.

후원은 궁중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소였다.

후원은’ 대개 침전 뒤편애 울창한 숲,

아름다운 정자와 맑은 샘물이 어우러진 공간으로 꾸몄다.

창덕궁 후원을 한 바퀴 돌면,

산을 한 바퀴 돌았다는 느낌이 강할 뿐만 아니라,

가슴이 상쾌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창덕궁 후원은 웅봉 아래 산자락이 만든 언덕과 골짜기.

그 사이를 흐르는 물줄기가 이루어내는

천연 숲 속에 자리하고 있다.

후원은 인공을 최소화했으며,

자연이 선사하는 숲과 바위와 언덕이 연출하는

아름다운 경관을 오롯이 느끼도록 조성했다.

https://youtu.be/qKayen7PcYE

창덕궁은 산 자체를 정원으로 만들었다.

창덕궁 후원은 태종이 가장 먼저 만들었고,

그 이후 다른 왕들이 후원을 점차 확장시켰다.

애초부터 크게 만든 장소가 아니었다.

단순히 왕만의 공간이 아닌 신화들과 사적이면서도

공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공간. 후원은 정치의 연장선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후원은 정무에 집중한 경복궁과 다르게,

왕과 신하 간 인간적인 접점이 많았다.

 

창덕궁 후원은 최고의 호사다.

가쓰라 리큐와 비교하면 창덕궁 후원은

그보다 차원이 높을 뿐만 아니라 격조까지 있다.

가쓰라 리큐는 개인이 취향이 가득 담긴 자연을 묘사한 회화에 가깝다.

그 안에서 인간은 편집된 자연을 거대하게 확장한 후 자연을 철학한다.

자연을 소유하고자 하는 평면적인 관점이 강하다.

반면에 창덕궁 후원은 자연. 그 자체에 집중한다.

자연에 감싸있기에 철학할 필요가 없다.

그 자체를 느끼면 된다.

이 같은 방향성 때문에 후원 모든 건물들은 자연에 맞추어 들어간다.

자연을 손질하거나 깎아내지 않는다.

손질하지 않은 자연스러움.

자연을 애써 편집해 철학할 필요도 없다.

자연에 대한 진정한 철학은 자연을 그 자체로 느끼는 일이다.

가쓰라 리큐 자체와 비교가 불가능하다.

자연을 보는 관점이 다른데 어찌 공간을 비교하는가?


창덕궁 후원은 산속 길목,

자연이 인간에게 내준 세세한 부분을 조심스럽게 건드린다.

아름다움을 편집하지 않는다.

그 자체에 들어가 인간이 어떻게 아름다움을 느낄지를 탐구하며,

어떻게 인간과 자연이 조화점을 찾을지를 고민한다.

건물 배치도 자연을 건드리지 않는다.

건물 안에 균형과 규칙이 있기보다는

건축을 자연 그 자체를 바라보는 용도로만 사용한다.

‘왕의 정원’이라는 화려함이 아닌,

누군가 방해 없이 자연 그 자체를 즐기는 최고 호사다.

 그렇다고 후원이 왕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현재 영화당 명패는 영조의 글씨다.

연산군은 후원에 멧돼지와 노루를 풀어 사냥을 즐겼다.

광해군은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창덕궁을 다시 지었고,

후원에는 어수당을 지었다.

왕과 신하 간 관계를 물과 물고기로 비유한 어수당은

춘당대와 함께 후원을 대표하는 장소였다.

어수당은 현재 사라졌지만, 춘당대는 현재 창경궁 쪽에 있다.

과거 시험 합격자들을 만난 영화당.

숙종은 춘당대에서 자주 과거시험을 치렀다.

애련정, 애련지를 지으며 후원을 후원을 확장했다.

영화당을 지어 과거시험 합격자를 만났고,

지금은 창경궁으로 분류된 춘당대에서는

종종 신하들에게 활쏘기를 시키고 좋은 성적을 낸 관리들에게 상을 내렸다

정조는 후원이 갖고 있던 성격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 누구보다도 후원을 정치적으로 유연하게 사용했다.

는 즉위하자마자, 숙종 때 설치했지만 유명무실한 규장각을 재정비했다.

중국과 조선 내 귀중한 서책을 보관한 건물을 규장각 인근에 지었다.

또한 학자들이 이곳을 관리하고 학문을 탐구하도록 했다.

이는 조선왕실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높이고,

통치 당위성을 바로 세우려는 의지였다.

그는 신하들과 후원에 대동해 부용정과 부용지를 구경시키고,

부용정에서 신하들과 연회를 열고 시를 짓게 해

왕실의 존엄을 노래하도록 했다.

후원은 왕의 공간이지만,  그곳에서 신하들은

왕실 권위와 위엄을 자연스럽게 인식할 수 있었다.


[후원 안의 미학: 자연 그 자체를 체득한다.]

한국인은 자연을 자신에게 가져오기보다는

직접 자연을 찾아가고자 하는 성격이 강하다.

이규보는 '사륜 정기'에서 집 근처 삶 기슭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사방 여섯 자의 수레반 바퀴가 달린 정자를 묘사한다.

움직이는 정자를 설계해 그 안에서 자연경관을 바라보며 가야금을 타고 싶다는 꿈을 꾼다.

도심 속에서 이 같은 자연을 맛볼 수 있다는 건, 우리에게 너무나도 큰 기쁨이다.


한국문인, 묵객을 포함한 선승들은 모두 이규보처럼

자연을 자기 집으로 가지고 오려고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자신이 자연으로 들어가 자연을 느끼려고 노력했다.

필요한 건 수레바퀴 정자처럼 자연을

더욱 풍성하게 즐길 수 있는 도구 혹은 생각뿐이었다.

한국 선비들은 집안 정원이 아닌 누각과 정자를 통해 자연을 바라보았다.

한국과 일본 모두 분재문화가 있지만,

한국보다는 일본에서 분재가 발전한 이유도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 차이 때문이다.

 

킹덤 시즌1에서 나온 '시체기 쌓인 호수'가 바로 이곳. 관람정이다.

직접 자연에 들어가 자연 그 자체를 뜰로 삼는

한국 정자문화는 창덕궁 후원 내의 흐름을 만든다.

자연을 집안으로  끌어 들어 축소된 자연 연을 통해

자연과 우주, 마음을 다스리려는 일본 정원과 다르다.

정원을 만들더라도 자연을 가져다 집안에 들여놓는 게 아니다.

창덕궁 후원 안에 부용정, 관람정, 소요정 등 여럿 정자들이

모두 자연을 잘 관망할 수 있는 지점에 배치되어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자연 관망해야 하기에 자연 그 자체에 집을 지은 듯한,

진짜 깊은 산속에 남자를 지은 느낌이 들도록 건물을 지었다.

후원에는 견고한 구조로 지은 건물들도 있었지만

대체로 작은 규모에 간략하고 소박한 구조가 많았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정조는 옥류천 물소리를 통해 자연 그 자체를 느꼈다.

우리가 자연을 받아들이는 관점은

‘자연을 보고 느끼며 이를 자신에게 체화하며 조화로움 추구한다.’다.

정조가 옥류천 물소리를 들으며

 ‘높은 누각에 앉아서 샘물 소리를

듣노라니 샘물 소리가 마음과 더불어 오농 맑아라’란 말도

이 같은 자연을 대하는 자세 때문이다.

가쓰리리큐는 일본정원이 돌을 얼마나 다양하게 사용하는지 알수 있다. 특히 가쓰라리큐의 스하마는 돌만으로 바닷가를 재현했다.


일본 정원에서 자연을 축소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건 나무와 돌이다.

나무와 물에 운동감과 공간감을 부여하는 게 돌이기 때문이다.

일본 정원 술책인 ‘사쿠 데이키’는 정원 조성에

중심을 이루는 건 돌을 세우는 법이라고 적어놓았다.

돌을 중심으로 자연을 묘사하는 일이 일본 정원이 가진 핵심이다.

돌 배치를 통해 자연을 간소화하고 자신이 추구하는 취향과 맥을 같이하는 일.

이게 일본 정원이자 편집력중 하나다.

이는 일본 라이프스타일 제안에서 디테일을 구축하는 방법이다.

자연 숲 그대로, 자연을 느끼는데 집중한 창덕궁 후원.

창덕궁 후원은 낮은 언덕에 신록과 나무들이 알맞게 무성하다.

자연스러운 언덕. 자연숲 그대로다.

어떠한 손도 대지 않았다. 후원이라는 명칭은 있지만,

특정할 수 있는 공간도 아니다.

그보다는 산 그 자체다.

후원은 분명히 정원이지만,

정원 느낌이 없다는 게 핵심이다.

창덕궁 후원은 자연이 그 자체를 약간 손질해 동선을 만들고 자연 흐름을 최대한 살리는 데 집중한다.
창덕궁후원과 다르게 가쓰라리큐(일본왕실별장정원)는 돌이 공간의 중심축과 규칙을 만든다.

창덕궁 후원은 자연이 그 자체를 약간 손질해 동선을 만든다.

길을 깎아내지 않고 산속 길들을 파이프처럼 차곡차곡 연결한다.

빽빽한 설계도 없다.  느슨하고 차분한 리듬감만이 있을 뿐이다,

새와 물소리 그리고 햇빛은 후원이라는 공간에 더 몰입하게 도울뿐이다.

이것이 자연 그대로를 있는 그래도 조화를 찾아내는 한국인의 조화력이다.  

묶고 엮은 후 이를 사람들과 조화를  찾아내는 편집력이다.

자연을 그 자체에 집중한다.산행을 하는지 정원을 보는지 가늠이 되지 않는 이유는 자연과 조화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자연을 다루지만 홀로 혹은 여럿이

 자연이 가진 분위기를 받아들이며,

이를 인간의 의지와 디자안으로 승화시킨다.

이것이야 말로 한국인이 추구하는 가장 이상적인 정원이다.

그 안에는 자연을 자신만의 관점으로 잘라내고

편집하는 파괴적인 모습은 없다.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

사물이 가진 본연의 모습을 나와의 조화롭게 묶고 엮는 일에 초점을 둔다.

자연과 직접 대면함으로써 조화를 찾는다.  

자연 그대로라는 느낌을 갖게 하는 일.

창덕궁 후원 속 디자인은 철저히

자연과 조화를 위해 철저하 덜어낸다.

미니멀리즘에서 추구하는 본질을 찾는 덜어냄이 아니다
     

[균형을 지향하는 디자인]


창덕궁 후원은 시작에서 끝까지

화려함을 보지 않는다. 자연 그 자체를 본다.

후원에서 가장 먼저 당도하는

부용지와 부용정만 보아도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부용정은 부용지 구석에서 숲 전체를 보고자 한다.

창덕궁 후원은 ‘멋’을 위한 디자인을 지양한다.

색, 정보, 형태를 맞춘 목적 분명한 디자인이 아니다,

그 보다는 ‘디자인의 기반이 되는 정보’ 그 자체를 지향한다.

부용정을 받치고 있는 돌만 보아도 자연 흐름을 해치지 않으려는 세심함이 보인다.


한국인이 지향하는 디자인 미학은

내력과 외력의 산술적 균형을 넘어

미적 균형까지 언제나 고려한다.

예를 들어 청자상감 문학 매병은

직선과 곡선, 청자 기술, 상감기법을 조화롭게 연결해

한국인의 시각으로 외부와 내부 간 조화를 꾀한 작품이다.

애련정은 연꽃의 유무에 따라 다른 풍경을 만든다. 동시에 주변 자연과도 긴밀하게 관계를 맺으며 정취가 변한다.

창덕궁 후원에서 숙종이 만든

애련지와 애련정을 보자.

애련지  그 자체로도 잔잔한 멋이 있지만,

애련지는 주변 미관을 해치도 않는다.

애련정 건물은 사방 한편 크기를 가진 작은 규모지만,

작게 느껴지지 않는 당당한 품격을 갖추고 있다.


[의도적인 디테일이 아닌

자연이 가진 디테일을 돋보이게에 조화롭게 나아가게 한다.]


창덕궁 후원은 언제나 자연 그대로의 숲과 바위와 샘과

흐르는 물이 전하는 정취를 최대한 살린다.

자연에 피해를 주지 않는 장소이자,

자연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주변에

작은 정자와 누각을 지어 자연과 건축이 조화를 이루도록 한다.

자연에 맞추었기에, 계절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자연경관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여기에서 창덕궁 후원만의 세심한 디테일이 나온다.

의도적인 디테일이 아닌 발견하는 디테일이다.

자연스러운 변화 그 자체에서 디테일을 끌어오기에

디테일을 생각보다 눈에 보이지 않고,

정서와 분위기를 통해 디테일을 만든다.

 

창덕궁 후원에 산발적으로 흩어진 작은 전각들은 사계절 변화.

즉, 디테일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도록 배치했다.

작고 정교한 정자와 누각들은 자연 지형을

그대로 살리며 있는 없는 듯 자리 잡았다.

이렇게 자리 잡은 정자와 누각들은

'창덕궁 후원 경치'.'이상적인 자연'을 느끼도록 돕는다.

후원에 들어간 후 다시 나오면

자연 속에는 듯하지만 더욱 없는 듯한 조화.

마치 등산을 하고 난 듯 자연으로 온몸이 샤워한듯한 느낌이 드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한국인이 지향하는 미학과 디자인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자연 속에는 듯하지만 더욱 없는 듯한 조화.   마치 등산을 하고 난 듯 자연으로 온몸이 샤워한듯한 느낌이 드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후원 건물들은 시대 흐름에 따라 새로 건물이 지어지고 또 사라졌다.

지금 우리가 보는 창덕궁 후원에는 사라진 건물도 있다.

예를 들어 부용지로 가는 길에 서 총대라는 건물이 과거에는 있었다.

시대에 따라 사라지고 다시 건물이 지어졌다.

 후원에서의 원칙. 자연이 가진 흐름을 깨는 일은 결코 없었다.

이 사실이 더 중요하다.

우리를 궁궐을 통해 , 자신의 유래와 근원에 대해서

끊임없이 수양하고 성찰해야 한다.

궁궐을 보며 조선왕조만 보아서는 안된다.

조선왕조. 그 너머에 담긴 정취. 그 안의 담긴 세계를 보아야 한다.

우리는 그 세계를 이해하고 이를 뽑아내 자신이 추구하는

정서와 세계와 확장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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