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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험을전하는남자 Oct 06. 2020

한국의 아름다움은 기획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

창덕궁 후원에 담긴 아름다움은  어떻게 디자인으로 발현되는가

본 정원은 들어가자마자 정해진 규칙에 따라 자연을 관람하게 된다.

언제나 정갈하게 돌이 깔려있다. 돌을 따라 걷다 보면 발걸음이 자신도 모르게 조절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정도다. 특히 가쓰라 리큐는 자연을 보는 패턴이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반복된다.

이런 구조 때문에 가쓰라 리큐가 묘사하는 자연에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다른 일본 정원들도 비슷하다. 일본 정원은 자연보다 사람을 더 우선시한다. 

자연과 인간 간의 조화보다는 인간이 자연을 소유하고자 하는 의지가 더 강하다.

일본정원에는 정취보다는 '철학과 소유를 위한 자연'만이 존재한다. 일본과 한국은 자연을 인식하는 태도가 상당히 다르다.


반면에 창덕궁 후원은 ‘인간과 자연 간 호흡’을 중시한다.

창덕궁 후원은 해설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후원의 정취를 어떻게 봐야 할지 스스로 찾아야 한다.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후원 속 자연 흐름, 정취, 감성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후원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자신만의 관점에서 후원의 모습을 판단하고 덜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부용지와 애련지 모두 연꽃이 피치만 그 아름다움은 주변자연때문에 많이 다르다.

자연을 대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안목에 아주 민감하고 세밀한 변화가 일어난다.

가령 부용지와 애련지를 보고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같은 연꽃이 있는 연못이다. 정자도 연못 한 구석에 있음에도 왜 이리 두 곳은 느낌이 완전히 다를까?'

'후원에 담긴 건물 배치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을 어떻게 느끼게 하는가?'

이것은 지식에 의지하지 않는다. 지식은 후원 안에서 자연을 바라보는 방향만 만들어줄 뿐이다.

후원은 언제나 인간과 자연의 균형과 조화를 생각한다.

후원이 추구하는  방향은 인간과 자연 간 균형이다.

그 안에서 나의 지식은 덜 이내며 자연을 느껴야 한다.

특히 종로 도심 한복판에서 마주하는 몰입감이 강한 자연은 

우리에게 '자연은 인간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라는 생각을 더욱 도전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창덕궁 후원은 정원을 넘어,

‘자연과 사람이 어떻게 해야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공간이다

창덕궁 후원이 정원인지 산인지 구분이 어려운 이유도 답이 아닌 '질문'을 던지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일본 정원은 언제나 자연을 보고 철학하기를 권하지만 창덕궁 후원 같은 한국정원은 자연을 통해

어떤 정서를 추구해야 할지를 권한다.

정취를 느끼는 자연과 철학하고 소유라는 자연. 한국과 일본은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이 상이하다. 그러나 이는 우열의 대상이 아님을 명심하자.

공간을 마주하는 태도는 지식을 얼마나 습득하느냐보다 중요하다.

공간을 통해 우리도 모르게 '깊은 정서를 자아내는 흥취'인 정취가 생긴다. 

정취는 문화적 차이를 만들고 정취는 우리 일상으로 파고들어 일상에서 아름다움을 차곡차곡 구축한다.


한국식 화장이 추구하는 방향은 자연스러움에 기반한 ‘세련미’다. 

단순히 인공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다.

한국식 화장은 ‘인위와 자연스러움이 조화를 이루는 최대한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데 집중하며,‘화장품’ 통해 개인이 가진 최상의 아름다움을 끌어내고자 한다.  

자연스러움과 조화를 ‘최고의 세련됨’으로 끌어올리는 일은 한국인이 추구하는 디자인과 미학의 방향이다.

화려할 때는 화려하지만 간결할 때는 또 간결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러한 부분은 가장 ‘상업적인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돌 그룹’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BTS의 ‘’idol’과 ‘FAKE LOVE’를 좋아한다. 

뮤직비디오 속 영상 흐름이 매우 유기적이며 색상 선택도 무척 세련되기 때문이다.

이번에 발표한 ‘다이너마이트’는 BTS가 지금까지 흡수하지 못한 언어. 

영미권 음악이 원하는 세련미를 BTS관점에서 잘 다듬었다. 

BTS가 지금까지 구축한 ‘톤 앤 매너’를 더 글로벌하게 이끌어 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별도로 아미들 사이에서도 최고의 퍼포먼스는  MAMA에서 보여준 ‘idol’ 무대다.

BTS는 이 무대에서 부채춤, 사자춤, 탈춤 등은 한국 전통춤을 어떤 방향으로 

현대음악에 접목해 어느 선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지 보여준다.

BTS의 퍼포먼스는 언제나 '뿌리'. 즉 정체성에 시작한다.
무대 뒤 디지털 아트도 bts가 퍼포먼스만으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아우라를 같이 만든다. 출처: 빅히트, 방탄 유튜브

BTS가 보여준 사자춤이나 춤은 ‘왕이 된 남자’에서 여진구가 보여주는 탈춤과 크게 다를 건 없다. 

그럼에도 BTS가 유독 세련된 이유는 그들이  한국문화를 ‘가장 현대적인 비주얼’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또한 'IDOL' 무대 뒤의 디지털 아트 역시 한국 전통문화를 이미지로 강렬하게 표현한다.

디지털 아트와 음악이 전체 분위기를 만들고, 그 세밀한 디테일은 BTS 멤버들이 퍼포먼스로 채운다. 

이런 면에서 빅히트가 ‘미’를 다루는 방식은 매우 뛰어나다


트와이스 잇지(또는 있지), 니쥬의 퍼포먼스는 그룹이 지향하는 이미지와 미를 형상화한다. 출처:JYP 유튜브



이와 다르게 JYP는 아이돌 그룹 멤버들의 
개별 아름다움을 조화롭게 편집하는데 능숙하다. 

JYP는 트와이스를 비롯한 아이돌이 가진 룩. ‘톤 앤 매너’를 ‘조화’를 중심으로 극한까지 끌어올린다.

트와이스, ITZY, 니쥬를 보면 '걸 크러쉬'에서 '우아함'까지 여성만이 가진 다채로운 ‘미’를 풍성하게 연출한다.

트와이스는 한국, 일본, 대만 출신 멤버가 있다. 국적이 다른 몇몇 멤버들의 아우라는 한국 멤버들과 확연히 다르다. JYP는 이 같은 멤버들 간 차이를 트와이스라는 ‘하나의 미학’으로 묶는다. 이걸 요즘은 브랜딩이라고도 한다. ITZY와 니쥬도 마찬가지다. 니쥬는 모든 멤버가 일본인이지만 일본에서 통할 미학을 한국 관점으로 재해석한다. 뮤직비디오만 보아도, 각 영상 장면 설계는 일본과 확연히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트와이스가 일본에서 발표한 Fake &True는 한국보다 조금은 간결하면서도 채도를 올렸다. 출처:JYP 유투브

이를 더 구체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건  트와이스 일본 뮤직비디오인 ‘Fake& True’다.

노래 자체도 일본어다. 메이크업도 한국보다 채도가 조금 더 진하다. 이와는 다르게 선미와 JYP의 ‘DISCO’는

 박진영과 선미라는 두 인물. 디스코 음악과 비 주열로 두 사람을 잘 버무려 개개인의 ‘톤 앤 매너’에 집중한다.


Disco에서는 JYP와 선미. 두 사람을 어떻게 조화롭게 표현할지 집중한다. 중요한 건 조화와 균형이다. 출처: jyp 유튜브

아이돌 그룹은 공장에서 찍어낸 상품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이걸 부정하지 않는다.

‘Idol’이라는 말 자체가 ‘우상시하다’라는 뜻이 있기 때문에,

아이돌 그룹은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확실한 아름다움을 전해야 한다.

아이돌 그룹 내 멤버들은 각자마다 포지션이 있다. 마치 축구팀 빌드업하듯 멤버들은 각자 역할에 충실하면서 그룹이 추구하는 가치관을 표현한다. 출처: The Pudding.com

아이돌 그룹은 랩, 보컬, 퍼포먼스, 비주얼 담당 등 멤버들마다 역할이 분명하다.

마치 축구경기에서 각 팀들이 전술에 맞추어 빌드업을 하듯 

아이돌 그룹 멤버들은 각자 역할에 충실하면서 그룹이 추구하는 가치관을 표현한다.

특히, 칼 군무와 이를 조화롭게 연결하는 비주얼은 개성이 다른 그룹 멤버들을 하나로 묶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조화’다. 우리가 지금 보는 '아이돌 그룹'은 

오랜 시간 ‘아이돌 그룹'을 정의하고 시대에 맞게 

가장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찾는 과정에서 나온 결과다.

단지 그 방향을 ‘상업성’에 두었기 때문이다.

 

‘애플은 감성으로 사는 거예요’라고 적지 않은 이들이 비아냥대지만,

애플 제품이 어떤 상황에 있어도 개인과 조화를 이루며

멋있는 건 부정할 수 없는 건 사실이다.

가장 상품성이 높은 디자인일수록 조화미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는 법이다.

아름다움을 조화롭게 최적화한다는 면에서 

아이폰과 트와이스는 별반 다른 게 없다.

서정적인 영상과 흥을 통해 한국인이 지향하는 아름다움과 조화미가 무엇인지 잘 보여준 한국관광공사 홍보영상. 출처: 한국관광공사 유튜브

한국관광공사는 한국만이 가진 정취와 조화미가 '상업성'을 

충분히 넘어설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최근 유튜브에서 화제인 이 날치 밴드와  엠비규어댄스 컴퍼니의 한국관광공사 영상을 보자.

세련된 색감과 정적이면서도 깔끔한 영상 컷. 서정적인 풍경에 조화롭게 들어가는 국악 비트와 춤.

서울, 전주, 부산 등 한국공간을 매우 잘 풀어낸다. 

중요한 건 조화미다. 판소리와 현대음악, 흥, 영상이 상업성을 충분히 얻을 수 있다는 걸 몸소 증명한 엠비규어댄스 컴퍼니. 출처: 한국관광공사 유튜브.

외국인을 위한 홍보영상임에도 한국인들이 먼저 빠져든다는 영상.

이 영상을 세밀하게 보아도 한국인이 추구하는 디자인은 ‘조화’라는 걸 알 수 있다. 

또한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품절 대란이 난 청자 상감 문학 매병을 본뜬 스마트폰 케이스도 마찬가지다.

스마트폰을 유려하게 만드는 케이스. 그 누구보다는 한국인들이 사랑하는 디자인이다.

기술로 인해 세상이 더 빨라지고 이미지가 더 빠르게 확산되면서, 

사람들은 점차 한국이 추구하는 ‘조화’라는 걸  지속적으로 익혀나가고 있다.

 

인싸템이 되기까지는 때로는 시간이 걸린다. 청자상감문학매병이 아름답게 재탄생할지 누가 알았을까? 출처: 국립중앙박물관문화상품 홈페이지.

보통 ‘한국적인 게 세계적인 것’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한국인은 자연을 조화롭게 대할 대상으로 바라보기에 외부와 조화를 언제나 추구했다.

한국은 언제나 조화로운 관점을 만드는 것에 집중한다. 


한국은 ‘외부의 무언가’를 누구나 아름답게 느낄 수 있는 

다양한 면을 고려하는 '조화미'로 재창출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렇기에 결과물이 나오는 시간이 느리다. 

또한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한국미 자체가 일본 미학에  거의 소화가 되었기에, 

그동안 우리가 가진  이 ‘조화미’를 잘 보지 못한 것뿐이다. 

애플은 일본의 선사상. ‘젠’을 애플은 서양 미니멀리즘과 결합시켜 

이를 아이폰, 맥북이라는 극한의 아름다움을 가진 오브제로 만들었다. 

애플이 만든 제품은 일본 선사상을’ 자르고 분석해 핵심을 추출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디자인은 사람들이 즉각적으로 반응해야만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와 다르게 디자인 사고, 미학을 구축하는 일은 시간이 걸린다.


이제 우리가 더 누군가를 모방만 하던 시기는 이제 지나갔다. 

도쿄가 서울의 가까운 미래라도 도쿄 콘텐츠를 

무조건 서울로 가져올 이유도 없다.

설령 도쿄에 있던 콘텐츠들이 한국에 오더라도, 

한국인 정서 맞도록 우리 스스로가 바꾼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건 ‘어떻게 변화할까?’다. 우월과 열등이 아니다.

우리는 더더욱 한국인으로서 어떤 디자인 미학을 

가지고 있는지 우리 주변을 보아야 한다. 코로나 19 때문에 밖에 나가지도 

못하는 지금이야 말로 한국인만이 가진 미학과 디자인을 사유할 최고의 시간이다. 

동시에 창덕궁 후원을 이를 생각할 방향을 제시하는 

매우 귀중한 장소이자선조들이 우리에게 남겨준 소중한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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