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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험을전하는남자 Sep 24. 2021

시청자로서 배우를 어떻게 보아야할까?

시청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배우.

저는 언제나 배우를 기획력, 표현력, 편집력이라는  세 가지 관점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중에서도 편집력을 가장 중요시합니다. '편집'이라는 단어를 생각해봅시다. 편집의 사전적 정의는 '묶고 엮는다. 영화 필름이나 녹음테이프, 문서 따위를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을 던질 수 있겠죠. '묶고 엮는다.'는 무엇을 뜻할까요?’ 묶고 엮는다는 건 묶고 엮는 후에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대략 알 수 있다는 말일 겁니다 즉, 구조에 대한 이해가 이미 머릿속에 있다는 말이죠.

미켈란젤로는 대리석 덩어리를 보며 ‘나는 그 안에서 이미 완성된 조각을 보았다’라고 말했죠. 이는 미켈란젤로의 머릿속에 조각을 위한 '표현과 기획'이 머릿속에 이미 있다는 걸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배우에게 '구조를 이해한다'는 말은 단순히 시나리오 속 인물을 묘사하는 것만 의미할까요? 아닐 겁니다. 배우에게  편집력이란? 시나리오 안에서 자신이 맡을 '인물 그 자체'로 빠져들어가 그 인물처럼 살아가면서 세상 속 모든 면들을 완전히 이해했음을 말합니다. 더불어 그 이해 속에는 자신이 연기할 모습들이 어떠한 화면, 색상, 공간에 담길지에 관한 게 모두 담겨 있죠. 또한  그 안에는 컷, 샷, 디자인같이 세세한 요소들까지도 다 보고 있다는 걸 말합니다. 편집력은 배우에게 구조를 이해하는 혜안을 가져다주죠. 이는 배우뿐만 아닌 우리 모두에게 해당됩니다.

최근 마블 영화 ‘상치, 텐 링즈의 전설’에 참여한 영화배우 양조위는 촬영 기간 동안 촬영장에 의자에 앉아 모든 걸 지켜보았다고 합니다. 그는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촬영팀이 촬영하는 모습을 그저 지켜보았다고 합니다. 상치의 감독인 데스틴 다니엘 크레톤은 양조위가 촬영할 차례가 되자, 그에게 다가가 "저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냐면요.”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양조위는 예의 바르게 "아, 맞아요 알아요. 이때까지 보고 있었어요”라고 말했다고 하죠. 그는 촬영팀의 모습을 보면서, 작품이 추구하는 방향, 의도, 그에 맞는 자신의 연기까지 모두 생각하고 있었던 거죠. 이는 양조위 스스로 자신이 가진 편집력에 기반해 '영화 구조'를 이해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같은 이정재배우다. 하지만 관상과 오징어게임의 시나리오 구조안에서 수양대군과 기훈을 연기한다.

배우의 편집력이 괘도에 오르면 점차 구조를 이해하게 됩니다. 어느 순간 감정을 편집하고 그걸 기획하고 표현하는 선을 넘어 감정 그 자체. 이를 조각해 이야기의 인물과 그 세계를 묘사하죠. 이 같은 관점에서 배우는 감정을 조각하는 감정 조각가라고도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놀랍게도 시청자들은 배우의 이러한 편집력을 본능적으로 잡아냅니다.


이 글에서는 '배우, 감정을 조각하는 사람들. 이슈 1'처럼 배우 한 명을 '세 가지' 원칙으로 다루지 않습니다.

[여기서 이 글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이유는 현재 매거 진안에 있는 글들을 브런치 북으로 엮을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 그보다 제가 세운 세 가지 원칙과 이로 발현되는 영상의 내력과 외력, 그리고 배우 그 자체에 대해 살펴봅니다. 하지만 여전히 한계가 존재합니다. 제 자신이 시청자 혹은 관객의 범주에서 멈춘다는 겁니다. 오히려 이 글은 관객 입장에서 보는 배우.'관객' 입장에서 유추한 ‘배우’에 대한 생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한계점을 적어둔 글이라고 할 수 있죠.

그렇기에 이 매거진 구성은 크게 4가지입니다. [매거진이라는 표현은 브런치 북으로 옮긴후에는 '브런치 북'으로 표현을 바꾸려고 합니다.]첫 번째는 영상 내력에 대해서 다룹니다. 영상 그 자체. 기술적인 면을 다룹니다. 두 번째는 배우의 내력과 외력에 다룹니다. 세 번째는 영상에 공간감을 넣는 요소들을 살펴봅니다. 네 번째는 이 세 가지를 적용한 사례들이죠. 이미 정돈만 되지 않았을 뿐, 위에서 말한 4가지 내용은 이미 '매거진'안에 모두 있습니다.


다시 질문을 던져봅시다. 우리는 왜 이야기를 원할까요? 누구나 한 번쯤 프레젠테이션을 하면서 대본을 쓴 적이 있을 겁니다. 프레젠테이션의 내용을 잘 전달하기 위해서죠. 우리가 기억할 것은 발표도 이야기입니다. 다만, 소설과 다르게 프레젠테이션 내용은 사실과 논리에 근거한 이야기죠. 동시에 프레젠테이션을 듣는 이들을 발표자의 발표를 들으며 발표 내용을 이해하고 무언가 깨닫죠.

지금시대의 영화와 드라마는 철저히 데이터로 정리된다.

 그렇다면 드라마, 영화 같은 이야기를 보는 이들 입장에서 배우란 무엇인가요? 배우를 판단하는 관객을 배우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요? 관객은 연극, 영화, 드라마를 즐기는 소비자이자 주체이죠. 연극, 영화, 드라마가 발전하고 싶어도 관객이 없다면? 배우는 존재하지 어렵죠. 무엇보다 이용자 중심이 된 사회. 이용자가 크리티에터가 되는 인프라가  충분한 시대에 우리는 배우에 대한 정의가 필요합니다. 넷플릭스, 웨이브, 티빙, 왓챠, 디즈니 플러스 등 플랫폼에서 영화, 드라마가 유통되면서 웹툰같이 소비자와 소통하는 작품들이 드라마회 되기 시작했죠. 인기 웹툰 '유미의 세포들'같은 경우도 최근 티빙 오리지널로 방영을 시작했죠. 저는 모든 플랫폼, 정보기술이 이용자 중심으로 바뀌는 추세일수록, 우리가 배우를 정의함에 따라서 배우에 관한 접근은 언제나 달라질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가 배우를 정의할수록 '배우'를 대하는 자세는 달라질 테니까요.

플랫폼에서 영화,드라마가 유통되면서 웹툰같이 소비자와 소통하는 작품들이 드라마회 되기도 한다. 인기 웹툰 '유미의세포들'도 최근 티빙오리지널로 방영을 시작했다.

그렇기에 이 매거진은 '배우. 감정을 조각하는 사람들'의 기반이 되는 글입니다. 이 글을 통해서 저는 콘텐츠를 소비하는 이들 입장에서 배우를 어떻게 견지하고 접근할지 생각합니다. 물론 배우에 대한 정의는 사전에 있습니다. 하지만 배우에 대한 정의는 실제 배우마다 다릅니다. 저는 배우도 아니고, 관련업에 종사한 경험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드라마, 영화를 소비하는 관객 입장에서 배우를 이야기합니다. 만일 실제 배우가 이 글을 본다면? 전혀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도 저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또한 제 글에서 다루는 접근이 제 개인적 '의견'과 '한계'라는 점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플랫폼의 대두는 사람들이 배우를 정의하는 환경을 만들어냈다.

소비자는 소비로만 끝내는 게 아니라. 그 환경이 계속 좋게 흘러 나갈 수 있도록 해자를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만일 배우 스스로가 배우를 정의하지 못한다면? 배우 연기를 보는 관객들이 배우가 더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도전할 수 있는 인프라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우리가 배우를 휘발성이 강한 도구로 보면? 배우는 그 이상 이하도 아닐 겁니다. 그냥 한번 즐기고 마는 유흥거리에 불과하겠죠. 누군가는 배우 같은 연예인을 걱정하는 건 인생에 도움이 안 된다고 하죠. 물론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환경이 된다면, 배우들도 그에 맞춰 따라올 겁니다. 연예인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연예인의 정의를 관객들이 만들면 되는 거죠. 관격들이 더 솔직하고, 정직하게 실력으로 승부하는 자체와 소양을 관객들이 배우에게 요구한다면 배우는 그걸 그렇게 인지하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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