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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험을전하는남자 Sep 28. 2021

배우의 밑바탕은 편집력.

배우의 뿌리와 밑바탕이 되는 기초는 편집력이다.

배우는 2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사라지지 않고 살아남은 유서 깊은 직업이다. 하지만 많은 매체에서 다루는 배우는 작품을 위한 소모적인 도구. 그 이상을 뛰어넘지 못한다. 작품은 흥행해야 하고, 배우들이 그 목표를 위한 소모되는 건 당연하다고 여길 수도 있다. 실제로 작품이 방영되는 기간 동안 배우들에게 관심이 집중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 같은 흐름 때문에 배우는 여전히 휘발성이 강한 존재다. 게다가 관객들은 방영이 끝나고 나면, 사람들은 그 자리를 떠나버린다. 그 이전까지 존재한 수많은 이슈들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사라진다.

드라마 괴물에서 여진구, 신하균 배우는 작품을 끌어가는 단단한 기둥이다.

만일 배우를 극 안에서 역할만 담당하는 소품이라고 생각해보자. 누군가는 배우가 작품 안에서 맡은 배역은 단순한 소품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길수 있다. 그렇다면 그 소품은 작품 안에서 가장 중요한 도구다. 동시애 작품을 유연하고, 살아있게 만드는 요소라고 바라볼 수 있다. 그렇기에 배우가 가진 편집력이 '도구'로서 유효하다고 말할 수 있다. 혹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만일 배우가 온전히 극에서 필요한 인물, 감정을 포함해 각 장면마다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명료하게 이해하고, 연출가가 미처 생각지 못하는 디테일을 잡아낸다면? 연출자가 말도 표현하지 못한 의도를 배우가 명료하게 표현한다면? 배우가 각 장면마다 내리는 판단들. 어떤 장면에서는 '도구'로서, 어떤 장면에서는 온전히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으로서 '위치'를 인지하는 일. 그걸 훌륭하게 해내는 역량이 배우의 편집력이다.


어떤 배우는 각 장면에서 종이장처럼 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배우는 대사가 없는 장면, 혹은 한 가지 대사 장면에서도 '이야기'를 '촉발'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가령 밀정에서 송강호 배우게 뺨을 맞은 부하역을 맡았던 허성태 배우를 보자. 그는 괴물에서 "우리 지화~"같이 오글거리는 말투와 "야후엘 [미쳤나]"같은 거치면서도 찰진 러시아어를 구사하며 악역이자, 이야기 전개에 매우 중요한 이창진을 연기한다. 

드라마 '괴물'에서 허성태 배우의 찰진 '러시아어'는 드라마 상황에 맞는 표현을 시청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한다.

이 같은 허성태 배우가 오징어 게임에 등장하는 순간, 우리는 "분명히 허성태 배우를 통해 뭔가 거칠고 잔혹한 이야기가 나올 거야"라는 걸 유추할 수 있다. 허성태 배우처럼 배우 본인이 극에서 단순히 인물을 묘사하는 '도구'가 될지 혹은 '도구'를 넘어 살아있는 생명체가 될지 그 여부는 배우 스스로의 선택에 달렸다. 시청자들은 이를 분명하게 알고 있다. 매우 기민하게 말이다.

오징어 게임의 허성태 배우. 허성태 배우를 통해 우리는 이 드라마의 수위가 상당히 강할 것을 유추할 수 있다.

배우에게 브랜딩이 필요한 이유는 배우야말로 눈에 보이지 않은 '감정'을 조각하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많은 브랜드들이 눈에 '보이는' 물건으로 사람들에게 가치를 전한다. 테슬라 차량 운전자들은 그들의 차를 자동차 그 이상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테슬라 차량을 소유하는 일에서 그치지 않고, 테슬라 주식까지 소유하면서 테슬라의 장기적인 파트너가 되고자 한다. 이는 친환경, 정보기술, 모빌리티가 집약된 삶을 테슬라를 통해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브랜드들은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고스란히 담은 제품들을 가지고 있다. 제품 혹은 서비스를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다한다. 브랜드가 지향하는 취향. 그 취향을 전하기 위해 브랜드 스토리, 컬러, 용기, 그래픽 디자인, 언어까지 세밀하게 다듬는다. 그러나 직업으로서 배우는 매 작품마다 텍스트에 적힌 인물을 스스로 창조해야 한다. 자신이 겪어보지 못한, 창조된 삶을 살아가는 가상인물을 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배우들은 작품 속 인물이 가진 스토리에서 모든 걸 구현해야 한다. 이것은 마치 브랜드가 브랜드 가치를 전하기 위해서 이야기에서부터 비롯해 컬러, 용기, 그래픽 디자이너, 언어까지 만드는 과정과 비슷하다. 하지만 배우는 이를 혼자서 해야 한다. 동시에 그 대상은 자기 자신이다.

배우는 자신을 캔버스 삼아 작품의 인물을 묘사한다.

배우는 그 자신을 캔버스 삼아, 작품 속 인물을 묘사한다. 컬러는 머리카락 색에서부터 옷으로 표현한다. 말투와 톤으로 언어습관을 조절한다. 표정과 눈빛으로 인물 겉면을 조각한다. 즉, 배우가 자신의 편집력을 동원해 인물을 창조하는 과정은 브랜드가 브랜딩 하는 작업과 비교하면 크게 다를 게 없다. 물론 이는 배우가 아닌 시청자인 내 관점에서 본 것이다. 충분히 틀릴 수도 있다. 하지만 배우 스스로가 그 자신부터 브랜딩 하지 못한다면? 이야기 속 캐릭터를 브랜딩 하기는 어렵다고 봐야 한다. 그렇기에 시청자들은 극 안에서 배우가 직업으로서 '배우'와는 전혀 다른 걸 이해해야 한다. 실제로 시청자들은 그걸 본능적으로 알아챈다.

시청자는 드라마, 영화를 통해 배우를 소비한다. 동시에 배우들을 통해 감동도 느낀다.

우리는 작품을 통해 배우를 소비한다. 배우는 작품을 위한 장기말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우리가 배우들 소비 적으오 대할 권리는 없다. 동시에 배우도 관객들이 있기에 그들이 있음을 언제나 인지해야 한다. 관객 없이 배우도 없다. 이러한 모습은 이미 한국 프로야구가 보여주고 있다. 관객들과 시청자들은 결코 멍청하지 않다. 자격미달인 배우는 사람들이 알아서 하차를 요구할 정도로 시청자들은 성숙해가고 있다. 요즘에는 SNS와 유튜브를 통해 배우들이 작품 속 배역을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따로 콘텐츠를 만들기도 한다. 블로그에서 유튜브까지 사람들은 배우의 연기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내놓는다.

우리가 보는 건 말 그대로 배우의 아우라. 하지만 그 아우라는 철저히 연출된 이미지에 불과하다.

관객 혹은 시청자 입장에서 배우를 들여다보자. 시청자 입장에서 바라보는 [직업으로서 배우]는 논리적이다. 동시에 과학적이다. 하지만 그 과정의 끝인 영상에 모든 것이 다 녹아들어 '이미지'만 남아있다. 사람이 배우을 느끼는 원리가 굉장히 복잡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 결과적으로는 정서적이다. 배우가 이야기에 얼마나 충실하게 인물을 묘사하는지 시청자들은 매우 기민하게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배우가 연기를 통해 작품이 요구하는 인물을 만드는 과정은 논리적이지만 최종 결과물은 사람들에게 감정적으로 전달된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배우는 감성과 이성이 완벽히 조화를 이룬 사람이 유리하다고 볼 수 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면 힘들다. 두 가지 모두를 가지고 있으면 무한대의 창의력이 나오기 때문이다. 배우는 자신이 묘사할 인물을 실제 있을법한 '인물'로 묘사해야 한다. 배우는 이 과정에서 그 인물이 할만한 감성과 이성을 모두 설계하고 조절해야 한다. 배우 스스로 자신이 맡을 배우를 면밀하게 '분석'해야 한다. 그 '분석'이 끝나면 그 분석들을 '감성적'으로 다시 조각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배우는 감성과 이성 간의 균형을 통해 인물을 조각해야 한다.

남궁민 배우는 검은 태양에서 한지혁을 묘사하기 위해 몸부터 만들었다. 그렇다고 그냥 몸도 아니다. 특수부대 대원에 맞는 몸이어야 한다.

스타일링에서부터 비롯해 인격, 감성, 어투, 어휘, 표정, 습관 등 모든 것을 배우가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 그 분석한 결과물을 자신에게 투영하면서도 '이것은 구현하는 인물이다. 특히 배우가 인물을 위해 만드는 말투와 억양은 반복적으로 연습해서 나온 결과물이다. 연기의 기본인 딕션은 촬영 시  결코 뭉개지면 안 된다. 인물을 만들기 위한 자료조사와 캐릭터를 세세하게 만드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지는 반복 작업이다. 이 과정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크리에이티브한 일이 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극한직업의 이동휘 배우는 형사라는 직업과 인물 설정에 맞게 자신의 '몸' 그 자체를 편집했다. 응답하라 1988에서의 이동휘 배우는 어떠한가? 80년대 말 학생 이미지에 맞도록 자신의 '몸'을 편집했다. 독창적인 캐릭터를 만드는 건 '창의적인' 작업이 아니다. 작품을 위해 매일 반복하는 일을 더 체계화하려 노력하고 그 안에서 생기는 미세한 변수를 제어하려 힘쓰는 일이 배우에게 요구되는 '편집력'의 본질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나 스스로가 배우가 아니기에 배우가 인물을 창조하는 프로세스. 배우 개개인마다 가진 프로세스는 전혀 모른다.


홈타운에서의 유재명 배우.

배우는 시놉시스와 설정으로 만들어진 인물. 그저 뼈만 있는 인물에 배우가 살을 붙어야 한다. 하지만 배우가 맡은 배역은 진짜 '배우' 본인이 아니기에, 배우는 언제나 자신이 맡은 인물과 정서적인 거리감도 두어야 한다. 배우는 이러한 거리감을 위해 '자기 객관화'를 필요로 한다. 이는 전체를 볼 수 있는 시야 때문이다. 

를 들어 유재명 배우는 드라마 '자백'과 '홈타운'에서 모두 형사 역할을 맡았다. 물론 '자백'과 '홈타운'에서 유재명 배우의 헤어스타일은 비슷하다. 하지만 같은 형사라고 해도 '자백'과 '홈타운'은 내용이 완전히 다르기 유재명 배우의 연기도 같지 않다.

자백에서의 유재명 배우. 유재명 배우는 두 드라마에서 모두 형사 역할을 맡았다.

배우는 작품을 연출하지 않는다. 작품 구조를 완전히 파악하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작품 연출에서 과하게 벗어나면 안 된다. 배우는 작품의 내력이지, 하중을 가하는 외력이 결코 아니다. 하지만 배우는 작품 외에도 대외적으로 집중 관심을 받기에 작품을 넘어서 홍보와 유통까지로 봐야 한다. 영화 및 드라마 사업장의 관점에서 보면 전체를 구성하는 요인이 너무나 많다. OTT 서비스와 기업이 촉발한 경쟁 때문에 '드라마'와 '영화'는 '흥행'과 '시청자 확보'를 위한 콘텐츠로 바뀌었다. 여기에 아마존, 쿠팡, 네이버는 멤버십 서비스에 드라마와 영화 구독을 집어넣어 경쟁을 더욱 가속 해시 켰다. 그 덕분에 더 이상 드라마와 영화는 광고에 지나치게 의지하지 않는다. 오히려 유저들이 내는 요금과 가입자수가 더 중요해졌다.


이제 배우에게 연기와 캐릭터 디자인만으로는 부족하다. 오히려 배우들은 드라마와 영화를 '예술'로만 바라보면 안 된다. 수많은 콘텐츠가 데이터화 되면서 예술성보다는 '회전율', '가성비'를 생각하는 작품이 많아지는 시장이 열렸다. 물론 인터넷 환경을 통해 배우의 다양한 관점들을 다양하게 전하는 방법들도 많이 생겼다. 그러나 작품을 찍으면 무조건 흥행이 되는 시대는 끝났다. 오히려 배우들이 기술기업들이 만들어낸 생태계를 이해해야 한다.

카카오만 해도 카카오 엔터테인먼트 산하에 매니지먼트 회사를 거느리고 있으며, 이를 통해 카카오TV 를 포함한 각종 OTT에 납품한다. 무엇보다 카카오 전체 마케팅 전략에 카카오 엔터테인먼트 혹은 계열사에 속한 이들을 적극 활용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카카오 웹툰 광고모델인 아이유다.

이야기, 이야기를 구현하는 디자인. 드라마에서 기획이 가장 중요해진 게 지금이다.

모든 이들이 기획자가 된 시대다. 우리 모두 우리 스스로 실현한 아이디어의 품질을 고민해야 한다. 이는 배우에게도 동일하다. 배우에게  공간을 만드는 일은 자신이 참여한 '작품 속 인물의 묘사'다. 작품은 카메라를 통해 '영상'이라는 가상의 공간 안에 담는다. 작품 안에 포함한 모든 디자인은 항상 심사숙고에서 시작해야 한다. 가령 드라마와 영화의 미술감독들은 작품이 원하는 방향에 맞게 세트를 구상하고 만든다. 예를 들어 '오징어 게임'의 미술감독인 채경신 감독은 '구슬치기 '게임이 이루어지는 세트에서 무척 공을 들였다고 말했다.

구슬치기를 잔인한 게임으로 만드는 요소중 하나는 바로 골목길이다. 

‘구슬치기’ 게임이 벌어지는 하는 공간은 옛날 뒷골목길이다. 우리가 살던 대문 앞 같은 느낌. 향수와 함께 오는 이상한 긴장감. 이 긴장감은 순수한 구슬치기 놀이는 매우 잔인한 놀이로 만들어 버린다. 이렇게 만들어진 세트. 석양마저도 진짜를 닮은 ‘가짜’다. 진짜와 가까의 경계선에 있는 공간. 그 안에서는 오징어 게임에 참가한 이들이 겪는 삶과 죽음. 가짜와 진짜가 공존한다. 또한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은 '배우들이 오징어 게임의 세트 속에서 직접 게임을 경험하면서 연기하기를 원했다'라고 말했다. 


작품과 작품에 관한 다양한 콘텐츠가 만들어지면서, 시청자들은 그 작품들이 의도한 이야기를 배우, 감독, 촬영감독, 미술감독들에게 직접 들을 수 있다. 이를 통해 성장하는 건 스텝들이 아닌 시청자들이다. 이렇게 시청자들 수준이 올라가면, 시장을 계속해서 그 반응에 응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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