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을 볼 때 경계를 잡을 필요는 없다.

거리의 날것을 그림에 담아낸 카라바조.part1

by 경험을전하는남자

'거리'의 날것을 그림에 담아낸 카라바조.


카라바조는 바로크 미술에 획을 그은 화가다. 그는 바로크 미술이 추구하는 드라마틱한 묘사. 이것을 매우 잘한 화가였다. 그 당시 로마 가톨릭은 '루터의 95개 조 반박문'으로서 시작된 종교개혁으로 인해 중대한 기로에 서있었다. 트렌트 공의회[1545-1563]에 모인 교부들은 로마 가톨릭의 전략을 바꿀 필요를 느꼈다. 그들의 결정은 간단했다. " 가톨릭 교리를 사람들에게 더 드라마틱하게, 더 역동적으로 전합시다. 미술을 통해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손상된 교회 권위를 회복시킵시다!" 이것이 바로크 미술의 시작이었다.

이 같은 공의회의 결정을 시작으로, 17세기 로마 가톨릭은 조각, 회화, 건축 등 미술을 통해 신자들이 가진 신앙의 맥락을 촘촘하게 엮어나갔다. 바로크 미술은 이탈리아, 프랑스, 플랑드르, 스페인 등 지역마다 성격이 조금은 달랐다. 그중에서도 이탈리아 바로크 미술은 '가톨릭 교리 안정'에 초점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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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스의 그림은 바로크미술이 지향하는 방향성을 매우 잘 보여주었다. 출처: 위키디피아.

이러한 그림을 잘 그렸던 이는 단연코 루벤스였다. 루벤스는 그림을 너무나 잘 그려서, 주문이 폭발했다. 그는 마치 지금의 에이전시처럼 수많은 화가들을 거느리고, 그들에게 그림을 그리게 했다. 구상과 디자인은 본인이 했다. 물론 마무리는 그가 했다. 그 당시 로마 카롤릭은 더 이상 막강한 영향력이 없었다. 유럽 국가의 왕실들은 더 이상 교황의 눈치를 보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왕권을 더 강화하고 있었다. 그 당시 유럽 내 가톨릭 국가들은 정치적으로 종종 대립했다. 하지만 다들 루벤스의 그림을 원했다. 루벤스는 종교화뿐만 아니라, 왕을 강하게 묘사하는 그림도 무척이나 잘 그렸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 때문에 루벤스는 화가와 외교관을 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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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스는 그 당시 피렌체의 권력 그 자체였던 메디치가문. 그 일원인 마리드 메디치를 '여신'에 가깝다록 그려준다. 왕과 귀족들은 이러한 루벤스 그림을 좋아할수밖에 없었다.

17세기경만 해도 여전히 성당은 사람들에게 미디어와 같은 존재였다. 그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예배를 하고 스테인드 글라스에서 들어오는 찬란한 빛과 장엄하고 화려하고 드라마틱한 바로크 미술을 보고 성가와 성경말씀을 듣고 죄를 회개하며 그들의 정체성을 회복했다.


바로크 미술에서 제일 유명한 화가 3명을 뽑아본다면? 나는 렘브란트, 루벤스, 카라바조다. 사실 더 많다. 이 세 사람은 바로크 미술이 낳은 정말로 천재적인 화가들이다. 특히 그중에서도 카라바조는 단순히 그림만을 잘 그린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그림은 '거리'에서 시작했다. 카라바조가 다른 화가들과 전혀 다른 점이었다. 그 당시, 대부분 화가들은 ‘상상력‘에 기반해서 성경 이야기와 교리를 그렸다. 카라바조는 이 같은 흐름을 따르지 않았다. 그는 성경 속 인물들의 얼굴을 상상력으로 그리지 않았다. 이러한 그의 작품은 그 당시 화가들에게 신선했다. 그의 작품은 곧 유럽에 퍼졌고, 유사한 작품들도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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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스와 다르게, 카라바조는 모든 그림을 일상생활. 거리에서 가져왔다.

그는 길거리에서 자신이 '본' 사람들 얼굴을 자신의 그림에 그렸다. 그림 소재도 거리에서 찾았다. 그의 그림은 언제나 일상에서 시작했다. 그는 그 당시에는 찾아보기 어려운 거리의 감성을 시적으로 묘사한 사실주의자였다. 하지만 처음에 가톨릭 교회는 이 같은 그의 그림이 교리에 어긋난다고 불순하게 여겼다. 또한 실제 삶에 너무 가깝다고 느꼈기에 처음에는 그의 그림을 거부했다. 하지만 카라바조 입장에서 창가에서 비치는 햇빛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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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그린 종교화는 그 당시 종교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로마 가톨릭은 처음에는 이러한 그의 그림을 거부했지만, 나중에는 새로운 미술흐름을 받아들이면서, 그의 그림도 받아드렸다.

그는 오히려 종교적인 주제를 이상적으로 표현하는 '전통'에서 벗어났다. 카라바조에게 '거리'는 수많은 영감을 제시하는 공간이었다. 당연히 그가 그린 그림들은 다른 화가들보다 사실적일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더해진 빛과 그림자의 강한 대비는 성경 교리를 드라마틱하게 그렸다. 물론 빛과 대비로는 카라바조 말고도 렘브란트가 있다. 하지만 렘브란트는 유년시절 풍차에서 비치는 세밀한 빛. 그 빛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 같은 빛이라도 카라바조는 강렬했고, 렘브란트는 은은했다.


'우리의 취향은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예술가로 향하기 마련이다.'

버질 아블로는 거리에서 영감을 받은 카라바조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출처:deezen

자신의 철학과 취향은 분명하게 자신을 특정 예술가로 이끈다. 오프 화이트의 설립자이자, 전 루이뷔통 아티스틱 디렉터였던 고 버질 아블로 같은 경우, 카라바조가 그 대상이었다. 버질 아블로는 토목공학을 배우던 시기, 미술사 수업에서 카라바조를 알았다. 동시에 단숨에 그에게 빠졌다. 아마도 시카고의 거리문화를 기반으로 자라온 그에게 '거리'에서 영감을 얻어 그림을 그린 카라바조는 무척이나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카라바조가 영감은 받은 곳은 거리였다. '거리'에서 받은 영감은 그의 그림은 다른 어떤 화가들보다 역동적이었다. 그의 그림은 거리에서 영감을 받은 스트리트 패션과 맥락이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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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는 버질아블로에서 영감을 주는 뮤즈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자신의 첫 패션 작업인 파이렉스 비전에서 오프 화이트까지 카라바조의 그림을 티셔츠에 넣었다. '영감은 거리에서 온다'라고 말했던 버질. '패션'을 통해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던 그에게 거리는 영감을 주는 창구였다. 시키고에서 미슐랭 3 스타 레스토랑인 '알 리니아'를 운영하는 그랜트 아카츠도 마찬가지다. 그는 수시로 시카고 미술관에 들러 많은 예술 작품을 본다. 그림을 보면서 떠오르는 영감. 그랜트는 그것을 요리를 통해 표현하고 싶었다. 이청아 배우 역시 뮤지엄 에이 로그를 통해, 자신의 관점을 사람들에게 전한다. 그녀는 '한 편의 에세이'같은 구조로 예술을 바라본다. 그곳에서 배우 이청아는 없다. 예술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의 이청아만 있다. 이처럼 그림은 누군가에게 '자신'을 표현할 무언가를 제시하거나, 브랜드를 구체화하는 영감을 주기도 한다. 나는 이것을 미술이 나에게 '톡톡'라고 두드리는 순간이라고 말한다. 영감의 순간은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그건 그 누구도 모른다.

미술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괜찮다. 내가 느낀 '무언가' 거기에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조각상의 구조를 몰라도 조각을 보는데 큰 지장은 없다. 출처:unsplash

우리는 미술작품을 볼 때 경계를 잡을 필요가 없다. 오히려 미술작품이 내 경계선과 지평을 어떤 범위까지 키워줄지를 고민해야 한다. 미술작품에 대한 '지식'으로 나를 가두려고 할 필요는 없다. 지식을 모른다고 미술작품을 못 보는 일은 없다. 무언가 알아야만 미술작품을 본다는 건 편견이다. 모르면 모르는 대료 알아가면 된다. 그 가운데서 서서히 알아가는 작은 기쁨을 맛보면 된다. 그 작은 기쁨이 쌓이면서, 서로 간의 합을 맞추는 순간! 미술작품을 보는 즐거움이 커진다. 그것이 미술이 가진 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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