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바조, 램브란트. 그리고 스트리트 패션.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인 카라바조. 그와 비슷하게 빛 대비를 역동적으로 사용한 화가가 한 명 더 있다. 렘브란트다. 카라바조와 다르게 렘브란트는 뭔가 다르다. 그 또한 빛 대비를 역동적으로 사용했다. 하지만 카라바조와는 결이 다르다. 렘브란트의 빛은 산란된 느낌이 강하다. 포근하고 아련하다. 카라바조와 다르게 검은색이 다르다.
카라바조의 그림에서 검은색은 빛을 강조하고, 인물 표정을 두드러지게 만드는 데 사용된다. 반면에 렘브란트의 그림에서 검은색은 세밀하게 작품에 스며든다. 그의 그림에서 검은색은 분위기를 고조시키거나, 그림 속 인물의 정서를 표현하는 데 사용된다. 렘브란트의 이러한 빛 사용은 그의 유년시절 경험에서 비롯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풍차에서 내려오는 빛. 아늑하고 편안하게 퍼지는 빛. 렘브란트는 그러한 빛에 빠졌다.
렘브란트가 그린 그림에서 사람들의 얼굴 역시 빛에 산란되어 아늑하게 드러난다. 카라바조와 다르게 드라마틱하지 않다. 오히려 부드럽다. 두 화가 모두 빛을 그림도구로 사용했음에도, 그림에 반영된 사람 얼굴은 극과 극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현재 무엇으로 우리의 얼굴을 남기고 있을까? 인터넷이다. 인스타그램을 보면 수많은 이들이 자신만의 영감을 표현한다. 그것을 하나로 모으면 거대한 패션, 건축, 요리잡지로 변한다.\
지금은 누구나 인스타그램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올린다. 경계가 없다. 여러 가지 계정을 만들어 주제별로 올리기도 한다. 예를 들어 패션 같은 경우, 어느 순간부터 패션 포스팅들이 거대한 온라인 패션잡지가 되었다. 특히 인스타그램 자체가 거대한 패션 화보가 되면서 스트리트 패션에서 '패션'은 사라졌다. 그 안에는 스트리트 패션과 럭셔리 패션 하우스 옷을 입은 ‘사람’만 남기 시작했다.
만일 우리가 길거리에서 ‘오뜨 꾸뛰르’를 입으면 스트리트 패션이 된다. 장롱 속에 쌓인 부모님의 바지를 입거나, 어린 시절 입던 옷을 리폼해서 입는다면? 그것도 스트리트 패션이 된다. 어떤 면에서 장롱과 빈티지 상점에는 멋진 옷이 더 많다. 우리가 매일 거리에서 영감을 얻는다면? 지식과 경험을 합쳐 자신만의 결을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 이러한 흐름은 이미 패션산업에도 반영되고 있다.
리바이스는 2018년에 Levi's Authorized Vintage 사업을 시작했다. 리바이스는 매장에서 100% 변형되지 않은 상품과 리바이스 자체 재단사가 조금 수정한 스타일을 선보이고 있다. 타미 힐 피거는 뉴욕에 기반을 둔 빈티지 소매업체인 '프로셀(Procell)과 협력하여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스타일에 중점을 둔 빈티지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도 커스(Dockers)는 업사이클링 의류 브랜드 아틀레에 앤 리페어(Atelier & Repairs)를 통해 클래식 치노 팬츠를 카고 팬츠처럼 바꾸었다. 아틀레에 앤 리페어(Atelier & Repairs)는 브랜드 50주년을 기념하는 한정판 컬렉션을 위해 500개에 가까운 갭의 제품을 리폼하기도 했다.
중요한 건 빈티지 의류와 리폼의류가 떠오르고 있다는 게 아니다. 사람들이 스트리트 , 빈티지 , 하이앤드 패션 자체를 다양하게 조합해 길거리에서 자유롭게 선보인다는 점. '아이템'이 아니라. '감각'이 주도하는 시대로 변했다는 게 중요하다. 마치 카라바조가 길거리 사람들의 감각들을 그림에 반영한 것처럼 말이다.
지금은 모든 게 온라인에서 실시간으로 퍼진다. 이 관점에서 모든 패션은 순식간에 ‘빈티지’ 패션이다. 하지만 ‘빈티지’가 된 패션도 내일이 되면 갑자기 트렌드 한 패션이 될 수가 있다. 그게 지금 시대다. 어떤 면에서 패션 트렌드는 시간 개념을 넘어선 '멀티버스' 개념으로 변했다. 앞으로 우리가 바라볼 패션은 ‘패션’이 아니다.'사람'을 담아낼 수 있는 디자인 플랫폼 성격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건 개인과 브랜드 모두에게 해당되는 일이다.
로블록스에서 선보인 구찌의 디오니소스 백. 로블록스 내 디오니소스 팩은 발매 이후 리셀가가 실제 구찌 오프라인 매장의 디오니소스 백 가격까지 올랐다. 이것은 리셀같은 스트리트 패션 문화중 일부가 로블록스로 옮겨갔다고도 볼 수 있다. 나이키는 어떨까? 나이키는 로블록스 안에 나이키 월드를 만들었다. 로블록스 내 구찌 디오니소스 팩과 나이키 월드는 길거리도 아니다. 가상공간이다. 우리는 이걸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개인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문화는 이제 패션을 넘어 가상공간으로 그 경계를 넓히고 있다. 카라바조가 캔버스에 그린 거리의 사람들. 그 거리는 이제 가상으로 옮겨간 셈이다. 어떤 면에서 카라바조와 렘브란트가 사용한 캔버스가 메타버스일지도 모른다. 이제 모든 중심에는 자신의 감각을 표현하는 개인이 중요해졌다. 이런 관점에서 패션은 더 이상 ‘옷’이 아니다. 이런 시각에서 패션은 서서히 죽고 있다. 그 대신 패션은 개인 감각을 표현하는 '플랫폼'이 된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