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험을전하는남자 Mar 11. 2022

우리는 그림을 통해'라이프스타일의 축적'을 볼수 있다.

그림에는 라이프스타일의 파편들이 모여있다.


예술은 우리가 누리는 라이프스타일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알려줍니다. 뭐하고 해야 할까? 그림을 통해 인류가 ‘축적’한 라이프스타일을 볼 수 있다고 해야 할까요?. 저는 미술작품을 통해 인류가 쌓아온 라이프스타일의 ‘축적’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하죠.

우리가 매일 겪는 일상에 대한 기록은 그림 속에 조금씩 담겨있죠.

일단 우리가 일상적으로 즐기는 브런치와 카페 문화는 대항해시대가 만들어낸 산물이라고 볼 수 있어요. 무역을 통해 전해진 중국 자기와 커피가 만나 시작되었다고 볼 수도 있으니까요. 유럽 사회에 도자기 그릇이 전반적으로 퍼진 시점은 300년 정도 되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제가 기준으로 삼은 건 마이센 자기죠. 유럽에서는 마이센이 처음으로 자체적으로 도자 기를 생산했으니까요. 나중에는 산업혁명도 대량 생산을 도았죠.

레스토랑의 식사예절은 도자기를 비롯한 오랜 문화들이 서로 합쳐져서 만들어진 산물이죠.

우리가 흔히 아는 유럽의 식사예절은 100년이 이제 막 넘은  문화라고 해도 될 겁니다. 레스토랑에서 볼 수 있는 식기 배치는 사람들의 일상에 정착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으니까요. 오히려 유럽은 그 이전까지 제대로 된 식기 문화를 가졌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림은 그 시대 사람들이 사용한 물건들을 여실 없이 보여줍니다. 이 같은 모습은 1300년대 그림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어요. 이와 다르게, 신문은 글자로 통해 사람들의 삶을 기록하죠. 그렇다면? 어느 시대의 그림을 기준으로 삼아 ‘유럽 식문화의 변화를 찾아볼 수 있을까요?

1308년 두치오 디 부오닌세다가 그린 ‘가나안 혼인잔치’ 잔치에 사용된 그릇은 나무.

저는  1308년 두치오 디 부오닌세다가 그린 ‘가나안 혼인잔치’를 기준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부오닌세다의 그림을 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자세히 관찰해보죠. ‘혼인잔치’에 사용된 그릇들이 모두 ‘나무’ 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14세기 초반의 사람들은 나무 식기로 식사를 했음을 유추할 수 있죠.

후안 후아네스가 1560년에 그린 ‘최후의 만찬’. 금속 접시와 칼이 전부죠.
1568년 대 피터 브리겔이 그린 ‘농부의 결혼식’. 그릇이 모두 나무죠.

다음은 후안 후아네스가 1560년에 그린 ‘최후의 만찬’입니다. 이 그림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제자들이 만찬에

서 사용한 그릇들은 전부 금속이에요. 토기 혹은 사기그릇은 없어요. 빵도 테이블보 위에서 잘랐죠. 다음은 1568년 대 피터 브리겔이 그린 ‘농부의 결혼식’입니다. 이 그림에서도 결혼식 잔치에 사용된 그릇들은 전부 나무예요. 그릇을 옮기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기구도 나무죠.

최후의 만찬에서는 청화백자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그림을 주문한 루도비코 스포르자의 경제력을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죠.

하지만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은 조금 달라요.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제자들은 식사를 위해 청화백자 그릇을 사용하고 있으니까요. [최후의 만찬]은 '1495-1498'시기에 그려졌다는 걸 생각하면 말이죠. 청화백자가 그림 속에 그려졌다는 사실은 크게 문제가 없어요. 또한 이 그림이 다빈치의 후원자였던 루도비코 스포르차 공의 요청으로 그려졌다는 점을 고려해도 큰 문제가 없죠. 당시 이탈리아의 공작들은 청화백자를 사용할만한 경제력이 있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최후의 만찬'에서 우리는 체계적인 식사예절을 찾아볼 수는 없죠. 

다음은 바톨로메우스 반 데어 할 스트가 1684년에 그린 ‘야간순찰대의 식사’입니다. 이 그림에서 사람들은 음식을 손에 들고 먹고 있어요. 어떤 사람은 한 손에 칼을 들고 음식을 자르면서 먹고 있어요.. 금속 그릇 위에 놓인 음식을 손으로 뜯어먹는 사람도 찾아볼 수 있어요.

이 그림에서 그 당시 플랑드르 지역에는 지금같은 식문화가 거의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볼 수 있죠,  

다음은 천재화가로 불리는 요하네스 반 베르메르가 그림’ 부엌의 하녀’에요. [1658-60]년에 그려진 이 그림에서 하녀가 사용하는 그릇은 토기에 가깝습니다. 물론 하녀 옆에 채색된 그릇이 있죠. 하지만 그 그릇이 ‘자기’ 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백자인지를 알 수 없지만 청자 같기도 해요. 또한 빵을 담은 나무 바구니도 볼 수 있어요.

베르메르 그림에서는 토기와 자기를 확인할 수 있죠.

다음은 디틀레우 블룬크가 1837년에 그린 ‘로마의 콘 솔라 여관에 있는 덴마크 화가들’입니다. 슬슬 그림에서 백자가 보이기 시작하죠. 또한 음식 일부는 백자에 담겨 나오고 있죠. 하지만 여전히 테이블보에 음식을 놓고 칼로 베어 먹는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어요. 음식을 개인 자기 그릇으로 가져가 포크와 나이프로 자리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죠. 하지만 이 그림을 통해 우리가 아는 유럽의 식사예절이 보편적으로 정착되었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 없어요.

주세페데 니티스가 1894년에 그린 ‘정원에서 아침식사’ 우리에게 친숙한 커트러리가 보이기 시작하죠.
백자,청화백자, 커트러리, 유리잔등. 지금의 커트러리 형태를 그림에서 볼 수 있죠.

다음 그림은 주세페데 니티스가 1894년에 그린 ‘정원에서 아침식사’에요. 이 그림 안에서 우리는 레스토랑, 드라마,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커트러리 세팅을 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식사예절이 부르주아 계층에 충분히 스며들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죠.

르누아르의 그림인 ‘식사를 하는 사람들 풍경

르누아르의 그림인 ‘식사를 하는 사람들 풍경’도 살펴보죠. 그림 안에서 사람들은 편안하게 식사하고 있어요. 식기들 살펴볼게요. 일단 과일은 백자에 가득 남겨있어요. 청화백자 그릇도 보이죠. 사람들이 다양한 유리잔을 통해 다양한 음료를 마시고 있는 점도 발견할 수 있다. 오른쪽 유리잔을 들고 있는 남자 근처를 볼까요? 유리잔이 청화백자 그릇 위에 놓여있어요. 그 옆에 수저가 놓여있다. 이를 통해 커트러리 세트와 이에 기반한 식사예절이 어느 정도 자리 잡았음을 알 수 있어요.


이번 정물화를 살펴보죠. 정물화에서도 시간에 따라 청화백자에서부터 오색 백자까지 발견할 수 있어요. 특히 정물화가 들어온 연도들을 살펴보면, 백자가 유럽 사회에 들어오는 과정에서 식기와 도구를 통한 식문화가 만들어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7세기에 그려진 정물화를 먼저 살펴볼게요.

가장 먼저 1633년 프란시스코 수르바란이 그린 [레몬, 오렌지, 장미가 있는 정물]을 보죠. 그림을 보면 금속 접시 위에 백자 컵이 있죠. 백자에는 음료가 담겨있습니다. 금속 접시 위 백자 컵. 우리가 카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죠.

독일 화가인 게오르그 플레겔이 그린 [후식 정물]과 얀 브뤼겔이 1607년에 그린 ‘토기 화병 속의 꽃다발

그 다음은 독일 화가인 게오르그 플레겔이 그린 [후식 정물]입니다. 그림을 살펴보면 청화 백 자안에 음식이 담겨있죠. 그 옆에는 유리잔이 있습니다. 다음은 얀 브뤼겔이 1607년에 그린 ‘토기 화병 속의 꽃다발’인데요. 제목처럼 그 당시에는 ‘토기’를 꽃병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죠.

장 바티스트 시메옹의‘파이프와 물주전자’

다음은 정물화의 대가로 알려진 장 바티스트 시메옹의 그림입니다. 그가 그린 그림을 살펴보면 18세기 사람들이 어떤 식문화를 가지고 있었는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가 1737년경에 그린 ‘파이프와 물주전자’를 보죠. 물 주전자는 청화백자. 컵은 오색 백자에요.

1728년에 그려진 ‘물주전자와 자두’를 보도록 하죠. 이 그림에서 물주전자는 오색 백자예요. 1760년에 그려진 올리브유병이 있는 정물화도 보죠. 이 그림에서도 오색 백자가 있습니다. 화가에게 정물화를 주문할 만한 경제력을 가진 사람들은 부르주아 계층이었는데요. 대략 18세기 부르주아 계층은 청화와 오색 백자를 사용하고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죠.

루이스 에우헤니오 벨렌데즈가 그린 정물화. 그 당시 음식을 담는 모습과 도자기 제품을 확인할 수 있죠.

루이스 에우헤니오 벨렌데즈가 그린 정물화를 봅시다. 그의 그림도 방 바티스트 시메옹과 마찬가지로 18세기에 주로 그려졌는데요. 청화백자와 철화백자를 그림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1772년에 그려진 [오렌지와 정물]에서는 토기가 도자기와 같이 사용되고 있다는 점도 알 수 있죠.

지금까지 말한 여러 그림에서 말하고 싶은 건 간단합니다. 그림 안에는 식문화를 포함한 그 시대 사람들의 초상이 담겨있다는 겁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당시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유추할 수 있어요. 이를 기반으로 우리 삶에 스며든 라이프스타일 요소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생각보다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이 ‘기대보다’ 급변하지 않았다는 점도 발견할 수 있죠. 단지 먹는 음식 종류만 다양해졌을 뿐이다. 

광주요의 미각 시리즈. 100년전과 지금을 비교하면 생각보다 달라진게 크게 없다는 걸 발견 할 수 있죠.

오히려 음식을 먹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 변화는 매우 미미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거예요. 오히려 우리가 그걸 표현하는 도구. 스마트폰같이 정보기술들이 발전했다는 점을 볼 수 있어요. 이런 면에서 미술은 우리에게 ’ 시대를 살아가는 감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죠. 우리가 새롭다고 느끼는 기술들이 ‘생각보다 새로운 게 아니다’라는 걸 종종 발견하기도 하죠.

우리는 미술을 통해 ‘축적’을 발견할 수 있어요. 나만의 감각을 쌓는 일만이 ‘축적’이 아님을 알 수 있죠. 역사와 미술을 비교해보면 ‘축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미술은 단순히 추상적인 감각을 깨우지 않아요. 우리가 살아간 아무 미세한 삶 속 디테일들. 라이프스타일 변화를 관점을 제시합니다. 이 관점이 어떤 면에서 ‘새로움’은 없다는 것일 수도 있죠. 동시에 기술전이 모든 것을 이끌고 있다는 ‘확신’을 다시 되돌아보는 계기를 말해주기도 합니다.  르누아르의 그림만 보아도, 그 풍경은 우리가 사람들과 밥을 먹는 일과 크게 다를 게 없다는 걸 알 수 있으니까요. 단지 거기에 스마트폰과 SNS만 더 있을 뿐이에요. 이런 면에서 미술은 오히려 매우 실제적이라는 걸 알 수 있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