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취를 담은 공간은 언제나 포근하다.
블루보틀은 자신들의 공간을 만들 때 브랜드 ’ 결’을 유지하면서 지역특성을 반영한다. 파란 병 로고와 커피에만 집중하게 만든 간결한 공간은 모든 매장을 ‘블루보틀’이라는 하나의 브랜드로 인식하게 만든다. 획일적인 인테리어를 통한 ‘통일감’에 집중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블루보틀 교토점은 백 년이 넘은 일본 전통건축양식인 마치야를 그대로 활용해 교토 정서에 스며들었다. 역삼점 같은 경우, 역삼역과 강남대로의 직장인들이 보다 쾌적하게 쉴 수 있도록 노력했다. 이와 다르게 블루보틀 더 현대 서울은 더 현대 서울의 사운드 포레스트에 스며들어간 모습이다.
미니멀리즘을 바탕으로 입점지역에 따라 유연하게 브랜드를 변주하는 블루보틀의 브랜딩. 이것은 제주도의 풍부한 자연과 문화를 만나 빛난다. 그 빛은 화려하지 않다. 잔잔하다. 한라산 동쪽에 위치한 송당리. 이곳은 제주도의 중산간 지역이 가진 특색이 드러나는 곳이다. 이곳 주변에는 아부오름, 안돌 오름, 백약이오름 등 수십여 개 오름이 분포되어 있으며, 능선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천미천을 낀 외딴 숲길. 이 숲길은 신비로움을 더한다. 오름으로 둘러싸인 한적한 동네. 주변 정취와 여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커피 한 잔을 누리기 위한 최적 장소다.
블루보틀 제주는 블루보틀이 국내 아홉 번째로 문을 연 매장이다. 서울이 아닌 지역에 들어선 첫 번째 블루보틀 공간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블루보틀은 제주 매장을 단순히 ‘서울 외의 다른 지역에 세우는 매장’이라는 콘셉트로 접근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블루보틀의 가치와 제주도를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이를 위해 블루보틀은 제주도 출신인 문승지 디자이너가 이끄는 팀 바이럴스와 함께 제주도와 블루보틀의 결을 블루보틀 제주에 담고자 노력했다. 특히 팀 바이널스는 제주도 특성을 반영한 ‘정낭’과 ‘퐁낭’을 공간 디자인에 반영해 블루보틀이 중시하는 ‘환대’와 제주도만의 ‘만남’을 공간에 담아냈다. 여기서 '퐁낭'은 제주 사람들 간 ‘만남의 광장’을 이르는 말이다.
제주도에서 가장 흔한 나무는 소나무와 '퐁낭'이다. ['퐁낭'은 팽나무의 제주도 방언] 이러한 특징을 가진 퐁낭은 지역주민들이 쉬는 공간으로 이용되는 곳이자, 마을 내 다양한 일들을 논의하던 소통창구도 겸한다. 블루보틀 제주는 이러한 ‘퐁낭’을 지향한다. 블루보틀의 브랜드 철학과 퐁낭의 가치가 일맥상통한다.
블루보틀 제주가 들어선 송당리는 오름이 많다. 또한 작은 골목길로 이뤄진 동네다. 제주의 골목길 중앙에는 커다란 팽나무가 있는 ‘퐁낭’이라는 공간이 있다.’ 퐁낭’은 팽나무의 제주도 방언이다. 제주도 팽나무는 매끈하게 뻗은 육지 나무와 다르다. 오히려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쓸린 모습을 하고 있다. 이는 제주도 바람이 강하기 때문이다. 바람이 많이 부는 지역일수록 더 휘었다. 동쪽으로는 조천읍, 구좌읍. 서쪽으로는 애월읍, 한경면이 대표적이다.
과거 제주도에서는 ‘퐁낭’이 마을의 골목길 중심에 위치하면서 커뮤니티 역할을 했다. 마을 사람들은 퐁낭에서 쉬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대화를 나누었다. 퐁낭은 혈연관계를 넘어 지역 공동체를 의미하는 공간이었다. 공동체를 연상시키는 공간 디자인은 무엇일까? 팀 바이 널스는 그것을 ‘공간 동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퐁낭이 가진 의미를 블루보틀 제주의 내부 공간 동선에 방영했다. 일단 블루보틀 제주는 직원들이 일하는 공간과 카페 공간이 완전히 나누어져 있다. 하지만 공간 중앙에서는 커피를 내리는 바리스타들과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다. 입구에 들어서서 커피를 받는 과정도 간결하다.
내부 공간 구조도 간결하다. 커피 주문을 한 영수증을 받은 후, 곧바로 자리를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좌석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는 좋은 순환 구조를 가고 있는 제주도 거리에서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퐁낭’을 중심으로 한 방향이 아닌 갈래길로 나눠져 있다. 이러한 발상이 카페 공간에 적용된 결과다. 고객들이 자연스럽게 분산된다. 또한 동시에 어디에 앉아도 주변 오름과 삼나무 풍경을 볼 수 있다.
제주 골목길의 또 하나의 포인트는 ‘정낭’이다. 정낭’은 무엇일까? 정낭은 제주도 전통 가옥에서 입구다.‘정낭’은 [대문, 도둑, 거지]가 없다는 옛 제주인의 삼무 정신을 상징한다. 정낭은 그 자체로 ‘혼저옵서예’[누구나 환영한다]라는 의미를 품고 있다.
정낭은 집 입구의 양쪽에 구멍을 뚫은 돌(정주석) 혹은 나무를 세운다. 여기에 나무(정낭)를 가로로 걸쳐 놓은 걸 말한다. 정낭은 나무 개수로 집에 사람이 있고 없음을 알렸다. 동시에 소와 말의 출입을 막기 위함도 있었다. 정낭에 걸친 나무 개수에 따라 의미도 달랐다. 정낭이 하나만 걸쳐있으면 주인이 잠깐 외출한 것이었다. 두 개가 걸쳐있으면 좀 긴 시간을 외출했다는 말이었다. 세 개가 다 걸쳐있으면 하루 종일 외출 중이라는 의미였다.
제주도에서 정낭은 ‘의심 없이 이웃과 가깝게 소통’한다는 걸 의미한다. 동시에 이는 언제나 사람을 환대한다는 말로 생각할 수 있다. 이 같은 부분이 블루보틀의 브랜드 정신과도 맞닿아 있다. 팀 바이널스는 ‘정낭’ 원기둥 구조를 활용해 MD 공간을 만들었다. 블루보틀이 사람들과 만나는 매개체는 결국 물건이 아닌가? 이는 오아시스를 형상화하기 위해 원기둥을 사용한 역삼점과는 사뭇 다르다. 게다가 창문 너머로 제주도 자연과 오름을 감상하는데 집중할 수 있도록 창문 주변의 불필요한 요소들을 전부 감추었다.
이러한 정낭 구조는 손님을 맞이하는 출입구부터 작은 의자. 벽채 마감까지 블루보틀 제주 공간에 세밀하게 스며들어가 있다. 팀 바이 널스는 이를 위해 정낭의 특징인 ‘원기둥’을 디자인으로 풀어냈다. 그들은 벽면 가구부터 의자를 지탱하는 부분, 작은 집기까지 전부 원기둥의 구조를 활용했죠. 공간과 가구가 일관성을 가지도록 했다.
‘퐁낭’[팽나무]과 정낭이 갖고 있는 다양한 구조는 블루보틀 제주 공간, 가구, 동선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물론 블루보틀 입구 자체에도 정낭이 있다. 일단 블루보틀 제주 외관은 제주 자연과 어울리는 무채색 톤이다. 공간 맥락은 블루보틀 제주가 들어선 코사이어티와 흐름이 같다.
친환경은 이상 선택이 아니다. 특히 제주도에서 친환경과 지속가능성은 ‘기본값’이라고 말할 수 있다. 블루보틀 제주와 팀 바이널스는 친환경 소재인 테록시를 다양한 골재로 조합해 만들어 제주점의 바닥으로 사용했다. 테록시는 애플 스토어에서도 바닥재로 많이 사용한 친환경 재료다.
무엇보다 테록시는 다양한 골재를 결합해 커스터마이징 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색상도 다채롭게 표현할 수 있다. 여기에 팀 바이 널스는 제주도에 버려진 유리를 직접 수거해서 잘게 부순 뒤 돌맹이, 자갈, 버려진 소라 껍데기를 섞어서 사용했다. 게다가 직접 조색한 제주의 화산송이 색상도 활용했다. 팀 바이널스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테록시를 바닥과 가구에 적용해 공간 속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흐름을 구현했다. 블루보틀 제주 공간 안에서 편안함과 통일성을 느낄 수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물론 사람들은 이러한 부분을 직접 말해주지 전까지는 블루보틀 제주의 소재가 친환경이라는 걸 모를 수도 있다. 어떤 면에서 이는 디자이너의 보이지 않는 배려다. 이처럼 제주도가 가진 ‘지속가능성’ 이야기를 담은 공간과 가구, 환경을 생각한 소재로 사람들이 머물며 쉴 수 있는 공간을 조성했다.
블루보틀 제주는 창문 너머로 보이는 제주 소나무 숲과 오름의 풍경을 담기 위해 시야를 방해하는 모든 요소를 숨기거나 덜어냈다. 이렇게 보이는 풍경은 우리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전한다. ‘제주도는 여행 가는 곳. 소비를 하기 위한 곳이 아니다. 자연과 문화를 느끼는 곳이다.’
블루보틀 제주가 사람들에게 전하는 공간감은 ‘명료’하다. 블루보틀에 들어오는 순간, 방문객들이 오롯이 ‘제주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블루보틀 제주는 히에이 산 풍경과 고요한 정취를 느끼는 블루보틀 교토와 얼추 비슷하다. 하지만 블루보틀 제주가 교토보다 더 공간감이 풍성한 이유는 블루보틀 제주까지 가는 ‘과정’. 그 과정에서 제주 풍경에 몰입한다는 점이다.
블루보틀 제주 카페는 삼나무 군락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제주 카페 건축 설계 당시 주변은 허허벌판이었다도 한다. 삼나무 군락이 열주와 같이 존재할 뿐이었다. 특히 삼나무같이 수직으로 곧은 나무는 공간 축을 만들어낸다. 대성목장 역에서 블루보틀 제주까지 이어지는 길목이 아늑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품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삼나무는 블루보틀 제주와 제주 오름이라는 자연. 이 자연과 건축의 관계를 만들어낸다. 이 나무들이 오름과 블루보틀 너머로 보이는 풍경을 조화롭도록 만든다.
차를 빌려서 블루보틀 제주에 찾아가는 사람들은 블루보틀 제주로 들어가는 길목에 펼쳐진 삼나무들과 오름을 보면서 제주 자연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자동차’ 안’에서 본다는 점에서 경험은 상대적이다. 반면에 대성목장 버스정류장에서 내려서 걸어가는 경우 나무들과 오름을 보면서 블루보틀 제주까지 다다르게 된다. 이 과정에서 대성목장 주변, 오름과 녹음들을 풍성히 느낄 수 있다. 만일 자동차를 타고 간다면? 자동차를 잠시 세워두고 블루보틀 제주로 들어가는 초입을 걸어보기를 권한다.
서울에서는 아무리 훌륭한 공간도 하나의 ‘선택지’에 불과하다. 개인에게 있어서, 카페는 ‘개인 쉼터’라는 공간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하나 제주도는 이야기가 다르다. 제주도라는 특성상 ‘카페’ 공간은 제주도를 담아야 한다. 제주도의 카페가 ‘서울에 있는 카페’와 그 모습이 ‘같을’ 이유가 없다.
‘블루보틀은 얼마나 유효할까?’ 스페셜티 커피의 흐름을 주도하는 글로벌 브랜드 블루보틀. 물론 여전히 블루보틀은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블루보틀이 주도했던 커피 제3의 물결도 이제는 자리 잡았다. 블루보틀 외에도 좋은 커피 브랜드들이 서울에도 이미 많이 생겼다
이제 블루보틀 매장에 1시간 넘게 줄을 서는 일도, 오픈런을 해야 하는 일도 없다. 이러한 면에서 본다면, 블루보틀의 지점 확장은 ‘블루보틀 매장이 한 개 더 생겼네?’라고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블루보틀은 제주점을 통해 블루보틀 브랜딩에 다시 집중한다. 그렇기에 제주도 구좌읍 송당리에 자리한 블루보틀 제주는 블루보틀이라는 브랜드가 전하는 ‘환대’. 커피와 지역이 추구하는 방향을 가장 잘 표현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제주 로컬을 담은 블루보틀 제주]
블루보틀 제주 카페는 지역의 고유한 특색을 공간에 반영했다. 커피의 기저. ‘사람과 사람과의 만남’ 이것을 브랜드로 확장해 브랜드와 브랜드 간 만남으로 한 단계 나아갔다. 지역 크리에이터와의 협업이 그 결과물이다.
블루보틀은 계절감을 넣기 위해 반드시 꽃을 공간 안에 넣는다. 이는 블루보틀 도쿄, 교토, 서울 지점에서 모두 발견할 수 있다. 블루보틀 제주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만 기존 블루보틀 매장과 차이가 조금 있다. 제주 매장은 제주도에 기반을 둔 플라워 아뜰리에인 ‘로만티카 플라워’에서 제주 매장을 위한 꽃꽂이를 만들었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제주도의 해양 쓰레기를 수거해 작품을 만드는 아티스트인 보홀 리카와 상품을 개발했다. 플리츠 마마와는 폐페트병을 활용한 재생 원사로 카페 유니폼과 판매용 티셔츠를 제작했다. 제주도의 유명한 로컬 수제 푸딩 브랜드 우무와 함께 커피 푸딩을 만들었다. 제주맥주와는 협업 맥주도 만들어 판매한다. 블루보틀 제주 매장을 나가면 조그마하게 마련된 제주맥주 매장에서 블루보틀과 협업 맥주인 ‘커피 골든 에일’을 포함한 제주맥주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
기존 블루보틀 매장들은 대부분 핫플레이스 근처. 혹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입점했다. 예를 들어 더 현대 서울의 블루보틀은 블루보틀만의 개성을 찾기 어렵다. 블루보틀 더현대 서울점은 더현대 서울 안에 입점한 브랜드 중 하나다.
하지만 블루보틀 제주는 그 자체로 제주 송광리를 고스란히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렇기에 블루보틀 제주는 다양한 협업으로 지역과 소통하고 상생하는 공간을 만들 수 있었다. 오히려 서울에 위치한 블루보틀 매장보다 블루보틀 제주에서 블루보틀이 지향하는 ‘환대’와 ‘브랜드 철학’을 느낄 수 있다. 그렇기에 블루보틀 제주의 공간은 ‘견고하면서도 그 속에 부드러움’이 있으며, 다양하며 자유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