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원래 이동은 걸어서 하는 거야.

by 밍기

하루에 순례길을 6시간 정도 열심히 걸으면 23km 내외를 걸을 수 있다. 물론 7kg 정도 하는 짐을 메고 가는 길이며 한 시간이나 두 시간에 한 번씩 쉬어야 하니 실제로는 좀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처음 두어 시간은 씩씩하게 걸어 나가지만 세 시간쯤 걷다 보면 종아리와 발바닥이 아파오기 시작하고 네 시간쯤 되면 오른쪽 무릎과 발목이 욱신 거린다. 비라도 와서 신발이 모두 젖는 날엔 인간 미역이 되어서 진흙길을 터덜터덜 걷는다. 마지막 한 시간은 ‘내가 왜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거지’ 라며 여기까지 나를 보낸 과거의 나를 원망하면서 걷는다.


숙소에 도착하기 전부턴 퇴근시간을 기다리는 직장인처럼 10분에 한 번씩 목적지까지 얼마나 더 걸어야 하는지 구글지도로 검색한다. 이때 또 한 번 더 허탈해진다. 죽은 미역처럼 터덜터덜 한 시간을 더 걸어가야 하는 이 길을 차로는 5분이면 갈 수 있다며, 걷는 길이나 알려주지 꼭 차를 타는 방법도 있다고 알려주는 구글지도 때문이다. 문득 궁금해서 오늘 내가 걸은 거리는 차로 얼마 만에 올 수 있었던 거리인지 확인해 보니 무려 48분! 버스 타면 48분 만에 올 수 있는 거리를 온몸을 혹사시켜 6 시간 넘게 걸어온 거다.


옛날 사람들이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한양까지 갔다고 한다. 시골에서 한양까지 어떻게 걸어간 건지 새삼 대단하다고 느꼈다. 우리의 선조들이 걸었듯 세상이 만들어지고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선 걸어야 했다. 현대인들은 자동차나 비행기, 배와 같은 탈 것들에 익숙해졌지만 불과 200년 전만 해도 다 걸어 다녔다. 기계가 충분히 발달하기 전에도 이동을 위해 말이나 낙타와 같은 짐승을 타긴 했지만 그것도 인류 전체의 역사에 비교하면 찰나와 같이 짧은 시간이다. 결론은 오랜 시간 내가 있는 장소를 옮기기 위해선 걷는 게 아주 당연한 것이었다.


지금은 불편하다고 느끼는 여러 것들이 사실은 당연한 것인 게 많다. 해가 뜨기 전 가로등이 없는 길은 어두운 게 당연한 것이고, 겨울이면 먹을 걸 구하기 힘든 게 당연한 것이다. 날이 추우면 추위에 떨어야 하는 게 당연한 것이고 발이 아파도 목적지에 닿기 위해서 걸어야 하는 게 당연하다. 문명의 이기에 절어 당연하지 않은 것이 당연하게 되어버려 이제는 조그만 불편에도 앓는 소리를 하지만.


아, 그래도 무거운 배낭을 메고 빗길을 걷는 건 힘들다.

당연한 것이지만, 걷는 건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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