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연애가 궁했던 적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목숨을 걸고 잘나지고자 노력했던 건 연애를 위해서는 아니다. 연애는 어쩌다 보니 따라온 부상 같은 느낌이랄까.
결핍이 있었고 그걸 극복하는 과정에서 서사가 있었다. 스스로 떨어지기 직전까지 몰아세운 절벽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을 탔다. 가끔 금을 잘못 밟으면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고 한 번만 발을 헛디뎌도 추락할 것 같았다. 기름칠도 제대로 하지 않고 기계를 무작정 돌린 덕분에 내 안에 있는 수많은 부품이 마모되고 고장 났지만 기계를 멈추면 죽는 줄 알았다. 간혹 가다가 한숨 고르는 순간도 있었지만 다시 일어나 못난 나로부터 힘껏 도망쳤다.
적당한 직업과 적당한 외모와 적당한 개념과 적당한 경제력. 어느 순간 내 손에 쥐어진 게 많았다. 비록 내 노력으로 성취했다기보다, 내 노력에 적절한 운이 따라준 덕분에 얻은 것들이지만 결과만 두고 판단하는 세상에서 과정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내 손에 쥐고 있는 것들이다.
사람들을 처음 만날 때 첫인상을 포함한 외적인 요소, 쉽게 말하면 조건 때문에 거절을 당했던 건 꽤 오래전 일이다. 연애를 위해 잘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 건 아니었지만 강박에 가까운 자기계발 덕분에 연애가 퍽 쉬워졌다. 연애는 전체적으로 보면 감정소모가 많이 드는 행위였지만 동시에 상대방이 나에게 표하는 호감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고, 그런 과정에서 인정욕구를 채우는 것도 내겐 필요했다.
연애초반 상대방에게 인정받는 경험은 짜릿했지만 연애를 사랑으로 발전시키는 건 어려웠다. 사랑을 유지하긴 어렵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긴 쉬우니 짧은 시간에 수많은 사람을 갈아치우며 연애를 했었다. 이런 과정이 결국 나에게 독이 될 수 있다는 걸 아직 어렸던 난 알지 못했다.
연애를 시작할 때 얻을 수 있는 건 상대방의 인정 하나였지만, 이별의 사유는 모두 달랐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온갖 인간군상의 사람들과 이별하며 별 일을 다 겪었다. 덕분에 연애와 사랑에 대해 다소 질리기도 했다. 좋아서 죽겠다는 감정으로 연애를 한 건 열 번이 넘어가는 연애횟수 중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 연애에 대해 환멸을 느끼기 시작한 건 결국 내 탓이다.
그럼에도 연애는 꼭 해야 하는 결혼의 선행과정과 같아서 반쯤 의무적으로 연애를 반복했다. 연애를 싫어하면서 연애를 하니 잘 될 리가 있나. 내 연애의 시작은 재밌었지만 과정은 지루했고 결말은 정해져 있었다.
사랑을 주고받는데 내 조건이 물론 중요하지만 그게 절대적인 건 아니란 걸 최근에 와서야 깨달았다. 밖으로 보이는 조건도 중요하지만 내 본질의 어떠함까지 합산하여 나온 총점이 중요한 것인데, 아니 애초에 뭐가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해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게 아닐 것인데, 너무 단편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 잘나지 않아 보이는 무던한 사람이 그리 애쓰지 않아도 좋은 사람을 만나 함께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는 걸 최근 깨달았다. 결국 사랑에 조건이 전부는 아니였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 조건을 보지 않고 과분한 사랑을 준 사람들이 있었다.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더 잘나져야 한다는 강박을 조금만 버리고 그 사람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을 수 있었다면 좀 더 좋은 관계로 남았을 인연도 제법 많았다. 사랑이란 건 어렸던 나에게도, 지금의 나에게도 정말로 어렵다.
단지, 진정한 사랑에 관해서는 내겐 사랑의 하나님이 있으니 신의 사랑이 내 삶에 충만하기를 기도한다. 비록 눈으로 볼 수 없고 손으로 만질 수 없는 게 신이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매 순간 느끼는 건 힘들다. 가장 완전하고 진실된 사랑이지만 그만큼 이해하고 느끼기도 어렵다. 그 사랑을 좀 더 알고 닮아가기 위해, 내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통해 사랑을 묵상한다. 순례길을 걸으며 내리는 비와 흘러가는 먹구름과 파랗게 개인 하늘과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내게 보여주기 위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묵상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그래, 사랑을 위해서는 굳이 인위적인 행동이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내가 있는 모습 그대로 존재할 수 있을 때, 어쩌면 '여유를 가져야겠다.'라는 인위적인 생각마저 버리고 그냥 존재할 수 있을 때, 오히려 더 괜찮은 연애가 가능할 것 같기도 하다. 외적인 조건은 그냥 지금 이대로도 충분하니, 내게 기대를 가져주는 사람에게 내어줄 수 있는 내 본질을 가꾸는 건 어떨까?
그렇다면 가꿔야 할 내 본질은 뭘까.
돌고 돌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질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