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도 이제 100km밖에 남지 않았다. 하루에 20~25km 정도 걸으니 나흘에서 닷새면 이 길의 끝에 다다를 수 있다. 단지 이번 주 토요일까지는 교회에 가야 해서 하루 정도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한 번 더 버스를 타야 할 것 같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그만이라 하였으니, 이러나저러나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순례길을 걷기 전 나는 순례길을 하나의 인생길에 비유하며 나의 탄생과 삶, 그리고 죽음을 기리며 걷겠다고 다짐했다. 오로지 걷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는 제한적인 길에 내 삶을 대입하여 지금까지 놓친 것과 앞으로 놓치게 될 것을 미리 느껴보고 싶었다. 만에 하나 놓칠 뻔 한 무엇인가를 지금 다시 잡을 수 있다면, 삶을 살아가는 길 위에서 후회를 조금이라도 덜어낼 수 있으리라.
막연히 길게만 보였던 길이 끝을 계산할 수 있는 범위 내로 들어왔을 때, 덤덤하게 기뻤다. 의외였다. 조금 더 감성적이게 되거나 조금 더 슬프거나 조금 더 후련할 줄 알았는데, 그저 기분이 좋았다. 힘든 길을 끝낼 수 있다는 기쁨은 아니었다. 발은 아프고 무릎도 욱신거리며 온몸이 비명을 지르지만, 이 정도는 충분히 견딜 수 있는 수준이다. 순례길에 올라 목적지로 향하는 길에 내가 가진 에너지를 모두 쥐어짜고 있다. 끝을 향해 나아가며 내가 해야 할 의무를 충실히 다하는 셈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을 책임감 있게 해내고 있기 때문에, 끝이 가까워지는 길에 한 점 후회도 없다.
아침에 일어나 채비를 서두르고 옳은 방향으로 종일 걷다가 지쳐 쓰러질듯한 몸을 이끌고 숙소에 간신히 도착한다. 뜨거운 물로 씻고 비에 젖은 옷을 말린다. 따뜻한 수프로 끼니를 해결하고 글을 쓰며 오늘을 기록한 뒤 기절하듯 잠에 들어 다시 나아갈 힘을 충전한다. 나를 전부 쏟아내고 다시 나를 채우는 매일을 반복하면 어떤 아쉬움도 남지 않았다.
다시 되돌아가더라도 더 잘할 자신이 없을 만큼 힘껏 걸어왔다면, 죽음 앞에서도 덤덤히 기쁠 수 있다는 걸 느낀다. 죽음으로 향하는 길을 가볍게 걸어갈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을, 순례길 위에서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