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쓰는 중이다. 스페인을 전초기지로 지난 1년 반동안 여행한 나라만 스무 개가 넘으며, 각 나라 각 도시에 들릴 때마다 꾸준히 쓴 일기만 200 페이지를 훌쩍 넘기고 찍은 사진은 만장에 가깝다. 이렇게 열심히 써놓은 글과 사진들을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하다가 간단하게 책으로 엮어서 내면 되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게 책을 쓰기 시작한 지 1달. 유럽여행 총 3권과 스페인여행 1권 등 총 4권의 책을 집필하려고 했는데 이제 겨우 1권 끝냈다. 혼자서 책을 집필한다는 게 쉽지가 않다.
책을 쓰며 그때 쓴 일기를 읽거나 찍은 사진들을 보면 그 순간 어디서 어떤 기분으로 그곳을 누볐는지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 순간의 풍경, 날씨, 기분, 컨디션이 그대로 살아나 현재보다 더욱 생생한 과거를 떠올리곤 한다. 쉽지 않은 집필이지만, 그 덕분에 다시 한번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과거로 돌아가 즐거운 여행을 하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순례길을 걷고 있으니 지난 여행을 회상하는 것에 끝나지 않는다. 시간이 남을 때마다 필사적으로 이 길에 대한 글도 쓰는 중이다. 지금의 내가 여행을 하며 남기는 글을 시간이 지난 뒤의 내가 읽는다면 미래의 나도 지금의 나와 함께 걷는 것이니, 글을 통해 과거를 불러오고 글을 통해 현재를 남기며 글을 통해 미래를 남긴다. 지금 이 순간 용감했던 과거의 나를 품듯 더 멋져 있을 미래의 나도 품는다. 이 글 속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나를 엮어낸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이 정도면 순례길의 원래 취지와 딱 맞아떨어지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