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 시간은 흘러간다. 매 순간 변하는 시간 속에서 나도 변해간다. 이런 변화는 내가 부자연스럽게 방향을 틀지 않으면 늘 걷는 길을 통해 발생한다. 운동을 하고 책을 쓰고 공부를 하고 악기를 연습하는 등, 내 길의 방향은 오래전부터 내가 바라보던 곳을 따라 이어졌다. 그리고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걸어가는 방향대로 변화해 왔다.
그렇다면 내가 바라보며 골어온 길은 옳은 방향을 향하고 있었던가.
내 길은 애매하게 엇나가 있었다. 물론 엇나간 길일지라도 열심히 걸어왔으니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며 많은 성장을 이루었다.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 방향으로 걸어가는 게 옳은지 생각해 보면, 내가 바라보는 길은 약간의 수정은 필요한 길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옳기보다 이득이 되는 길을 선택해 걸어왔다. 내게 이득이 되는 게 곧 정의인 세상에서 내 길은 꽤 옳은 길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길에서 가끔씩 괴리감을 느끼기도 했다. 내게 이득이 되는 길이 항상 옳은 길을 아니었단 걸, 잠시 멈춰 뒤돌아보니 알 수 있었다.
내 길은 내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이어지고, 내가 바라보는 곳은 지향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이 길이 옳은 목적지를 향해 이어지길 바란다면 나는 옳은 곳을 바라보아야 한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내 바람의 선악을 생각해보지 않았으니 과연 내가 바라는 게 옳은 것인지 판단하는 건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를 올바르게 정리하고자 한다. 가능하다면 이 길이 끝나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전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리고 싶었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나를 다시 정립할 시간이 없을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결과는 단순했다. 나는 정도(正道)를 걷는 사람이고 싶다. 우직하고 요령 없이 옳은 길을 곧게 걷는 사람이고 싶다. 때에 따라선 답답하고 손해 보는 사람이고 싶다. 그렇게 내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공리를 추구하는 사람이고 싶다.
적당한 여유, 끈질긴 인내, 무거운 책임을 지녀야 걸을 수 있는 길이었다. 뻔히 보이는 아스팔트 샛길을 두고 표지판이 이끄는 진흙탕 길을 걸어야 한다. 이 길을 걷다 보면 신발은 젖고 내 몸은 더 무거워진다. 몇 배로 더 힘들지만 아무런 득이 없고 아무도 보지 않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도를 걸어야 한다. 그런 사람도 있어야 우리 사회에 균형을 맞출 수 있을 테니, 손해 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게 스스로 재정립한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