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표지판

by 밍기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제 다 끝났다. 어디서나 볼 수 있었던 표지판이 없어졌다. 더 이상 목적지를 찾아 헤맬 일이 없으니, 길었던 순례길을 걷는 모든 순간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던 표지판도 그 필요를 다 한 것이다. 뭔가 허탈했다. 지금까지 길을 잃어도 표지판만 찾으면 모든 게 괜찮았는데, 이제는 그 표지판이 없어진 것이다.


지금 순례길을 걷는 수많은 사람들 모두 그 이전에는 각자 고유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수천 명의 사람이 있다면 수천 가지의 다른 길을 있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을 같은 길로 인도한 것이 표지판이었다. 표지판은 수만 가지의 길을 엮어 하나의 길을 만들었다. 덕분에 순례자들은 모두 한 곳을 바라보며 걸어올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표지판이 없다. 표지판을 잃은 우리들은 다시 각자의 인생으로 돌아가 예전처럼 수천 가지의 삶을 살며 수천 가지의 길을 걸을 것이다.


다시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는 순례자들에게 더 이상 표지판은 없다. 우리의 길 위에 당연히 있던 표지판이 없어지는 순간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각자가 정해야 할 일이다. 순례길은 끝났어도 내 삶이 곧 순례길이자 인생길이니, 비록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순간이 오더라도 지금까지 걸었던 것처럼 묵묵히 걸어야 할 일이다. 순례하는 마음으로.


표지판이 없는 앞으로의 길은 끊임없이 사색하고 질문하고 방황하고 헤매면서 걸어갈 것이다. 방황의 과정에서 가끔은 정도를 벗어나는 순간도 올 것이다. 나는 이게 가장 두렵다. 하지만 지금처럼 뚜렷하게 보이지 않더라도 계속해서 이어질 삶의 여정에 나를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는 표지판이 있음을 믿으니, 나는 나의 하나님이 내 길을 안내하시리라 굳게 믿는다.


끝에 도착했다. 더 이상 표지판은 없다. 그래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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