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지만 재밌다, 재밌지만 힘들다
"좋아해."
"이건 별로야."
"난 이게 좋아."
평소 나는 호불호가 명확하다.
특히나 그날 그날의 기분에 따라서 하고 싶은 것도, 원하는 것도
꽤 명확하다.
"오늘은 따뜻한 오트라떼가 마시고 싶어."
"오늘은 차가운 딸기라떼가 생각나.
"오늘은 붕어빵을 꼭 살거야."
"오늘은 저쪽으로 산책하고 싶어."
"오늘은 계란후라이에 케찹을 뿌려먹을거야."
"오늘은 샤워를 하면서 노래를 듣고 싶어."
"오늘은 너구리 이야기를 쓸거야."
매일 매일 하고 싶은 것이 명확하다보니
(대부분 먹을 것이다. 그렇지만 먹을 것은 나의 깊은 욕구와 관련된 중요한 요소다! 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당연히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매일 매일 작은 그런 선택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짜장 vs 짬뽕, 당연히 짬뽕이지.
산책 vs 등산, 난 산책파.
긴생머리 vs 단발, 단발히피 가자.
소설 vs 동화책, 동화 너무 좋아.
무언가 고를 때 잠깐의 고민을 하지만
그것도 뭐가 좋을까 때문에 고민하는 것일뿐.
그런 내가 어느 날, 망설였다.
'나는 정말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잘 알고 있을까' 라는 질문에
망설이고 있었다.
어느 날, 아마도 밤이겠지.
유독 피곤한 날, 남편은 그럼에도 글을 썼다.
나는 피곤해서 글을 쓰지 않았다.
남편은 글을 쓰는 게 힘들지만 재밌다고 했다.
나는 글을 쓰는 게 재밌지만 힘들다고 했다.
같은 문장이지만 달랐다.
힘들지만 재밌다, 재밌지만 힘들다.
그는 힘들지만 재밌어서 그 일을 계속했고,
나는 재밌지만 힘들어서 그 일을 머뭇거리고 있었다.
내가 물었다.
"피곤한데 어떻게 글을 썼어?"
"그래도 재밌으니까."
그리고 그가 말했다.
"재미있는 일을 하면 평소보다 더 오래 할 수 있는 것 같아."
나는 그의 말의 끄덕였지만 생각했다.
나도, 그도 글쓰기를 좋아하는데 왜 우리는 다를까?
어쩌면, 나는 정말 글쓰기를 좋아할까?
입으로는 좋아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마음속으로 정말 좋아하는 것일까?
그가 내 생각을 눈치챘는지 말했다.
"자기도 글쓰는 거 좋아하잖아."
"맞아. 그런데 진짜 좋아하는걸까?"
요즘들어 글쓰는 게 점점 힘들어졌다.
왜 이렇게 꾸준히 지속하는 게 어려울까.
그는 나에게 글쓰는 게 왜 좋은지 물었다.
나는 내가 상상하는 것을 눈에 보이는 것으로 나타내는 게 좋았다.
"내 상상이 현실이 되는 거 멋있잖아."
"멋있는 거 말고, 재밌고 좋아하는 건 뭐야?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일."
나는 한참을 머리를 굴렸다.
누구보다 가장 좋아하는 것을 잘 아는 나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김치'라고 말할 순 없으니 말이다)
내 머릿속에 떠오른 답들은, 그럴듯해 보이는 것일까, 진짜 좋아하는 것일까.
혼란스러웠다.
나는 좋아하는 글쓰기를 하고 있던 게 아니라
그럴듯해 보이는, 멋있어 보이는 글쓰기를 하고 있었다.
어쩌면 내가 매일의 감각에 솔직했던 건,
어제와 오늘이 계속 달랐던 건,
오늘과 내일이 이어질 꾸준한 무언가가 없었던 것은 아닐까.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을 했다기보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을 못찾아서,
여기저기서 발견하는 호기심에 이끌려 다닌 것은 아닌 것인지 말이다.
좋게 말하면, 때때로 내 기분과 하루에 따라 달라지는 선택이
나쁘게 말하면, 중심이 없는 상황에서 이리저리 바람에 따라 흔들린 것은 아닐까.
이날은 오른쪽으로, 저날은 왼쪽으로 가면서
잘 가고 있다고 생각한 건 아닌가 말이다.
돌아보면 결국 반경 10M도 벗어나지 못한 채 여기저기서 움직이지만
결국 어디도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 말이다.
걸음은 만보나 걸었지만, 어디에도 도착하지 못하는 이유.
무지 바쁘지만 바쁘기만한 내 하루가
정말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아직 찾지 못해서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지속하지 못하는 이유는,
게으르기도,
시간이 없어서도,
피곤해서도 아니고
그것을 좋아하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그가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는 말처럼
우리가 그것에 반하지 않은 것이다.
만약 무언가에 정말로 빠진다면,
저절로 부지런해지고,
없는 시간도 만들고,
피곤해도 어떻게든 하게 되어있다.
지금 내가 사랑니를 뽑고, 볼이 퉁퉁 부은 밤에도 글을 써보겠다고 앉아 있는 것처럼 말이다.
(붕어빵이 먹고 싶으면, 우리 어떻게 해서든 찾아낸다. 지금 내가 그렇다.)
무언가 꾸준히 하고 싶다면, 좋아하는 것을 찾아보자.
좋아하는 것이 나를 꾸준하게 만들 테니 말이다.
"좋아해. 그래서 힘들지만 계속 하게 돼."
무언가를 꾸준히 오랫동안 해온 사람은 알거다.
꾸준함의 비결이 생각보다 간단하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