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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다 Oct 07. 2022

엄마는 그냥 되는 게 아니었다


 매일 아침 5살 아이와 어린이집 등원을 두고 작은 전쟁이 일어난다. 패턴은 매번 같다. 좋은 말로 살살 달래다, 어린이집을 안 가면 엄마는 절대 너와 같이 놀아줄 수 없다는 협박을 하다가, 엄마는 공부하러 밖에 나가야 하니 혼자 집에 있으라 하고는 밖으로 나가는 시늉을 하면 울며불며 바짓가랑이를 붙잡는다. 울음 속에는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주지 않는 엄마에 대한 ‘화’가 내재되어 있다. 그러다 얼마 전부터 울음에 ‘서러움’이 묻어나기 시작했다. 으아아앙~! 하며 악을 쓰듯 우는 것에서, 숨을 꺽꺽 들이켜며 흐느끼는 것으로 바뀌었다. 무엇이 아이를 이렇게 서럽게 했나. 막상 어린이집에 가면 잘 논다는데, 왜 이리 가는 길이 힘든지 모르겠다.




 오늘 아침, 아이가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눈이 떴다. 시간적 여유로움이 있으니 아이와 침대에 누워 팔다리를 주무르며 쭉쭉이도 해주고, 볼 뽀뽀도 쪽쪽하고, 같이 노래를 부르며 30분 정도를 뒹굴뒹굴했다. 그리곤 거실로 나오자마자 아이는 공룡과 자동차 장난감을 내밀며 “이거 해.”라고 했다. 같이 놀자는 뜻이다. 이럴 경우 나는 대부분 같이 놀지 못하고 주방을 분주히 오가지만, 오늘은 어떤가. 일찍 일어나니 시간이 많다. 아이는 자기 옆자리를 탁탁 치며 “옆에 앉아서~ 놀자아~”한다. 나는 털썩 자리에 앉아 '개구쟁이 자동차' 역할 목소리로 변조하기 시작했다.


- 아…. 친구들이 어디 갔지? 어? 저기 있네! 안녕? 나 배고픈데 같이 먹을 거 찾으러 가지 않을래?


그러자 아이도 '시크하지만 여린 악당' 자동차 목소리로 변신했다. (아이는 악당 역할을 좋아한다.)


- 아니. 난 안 갈 건데.

- 같이 가자아~

- 시러! 너희들을 가두겠다! 잡아라!! 으하하하~!


맥락 없는 전개에 당황하지 않고, 나는 총을 쐈다.


- 가만두지 않겠다! 모두 출동이얏! 거기 서! 쫑쫑쫑!

- 끄아아아악~~~~!


우리가 만든 세계에는 자동차 감옥이 등장했다가, 절대 무너지지 않는 손바닥 방어벽도 나오고, 잠꾸러기 피카추에 엄마 공룡도 등장한다. 놀이하며 중간중간 밥을 먹이는 것도 잊지 않는다. “친구야! 넌 정말 밥을 잘 먹는구나! 넌 정말 멋있어!!!”라고 카봇에 나오는 로봇 목소리를 흉내 내어 말하면, 아이는 밥을 넙죽넙죽 잘 받아먹는다. 그러기를 한 시간. 이제 슬슬 어린이집에 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 친구야! 이제 어린이집에 갈 시간이야! 준비됐어?

- 그래! 좋아!

- 출동이야!

- 출동이다! 쫑쫑!


아이는 어느새 로봇 전사 카봇에 빙의한 듯 옷을 척척 입고는 날쌘돌이처럼 문 앞으로 간다. 아, 이게 얼마만의 평화로운 등원 길인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이제 마지막 관문이다. 어린이집에 도착하기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잘 걸어가다 갑자기 안 가겠다 주저앉을 수도 있으니. 아이와 달리기 경주도 하고, 누가누가 늦게 걷나 시합도 하고, 공원에서 바둑을 두는 할아버지를 향해 “저 사람은 뭐야아~?”하고 묻는 아이에게 설명도 하고, 누군가 땅에 떨어트린 목장갑과 공사 중인 인도를 보며 하는 질문들에 성실히 답해주면서. 


드디어 어린이집 문 앞에 도착했다. 손을 과장되게 흔들며 “이따 봐~”라고 인사하는 나를 보지도 않고, 아이는 선생님과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교실로 쏙 들어갔다. 그 뒷모습을 보며 지금껏 아이가 등원 거부를 했던 이유가 ‘나’ 때문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는 ‘엄마가 충분히 놀아주지 않아서’. 정말 그랬던 거니? 그런 거니? 하지만 약간의 오르막만 걸어도 숨이 차오르는 나의 저질 체력으로는 매일 이렇게 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이미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진이 다 빠져 영혼이 반쯤 털린 기분을 느끼던 참이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아니면 내가 체력을 기르던가. 


역시 엄마는 그냥 되는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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