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좋은 점 보기

날카로운 운문사 새벽 예불의 추억

by 몽돌


작년에 <자기자비 프로젝트>를 4회까지만 하다 멈췄던 것은, 5회 차 챕터의 제목이 <자신의 좋은 점 보기> 였던 탓이 크다. 나의 장점에 대해서 쓰고 그걸 발행까지 해야 한다니, 너무 민망하지 않은가! 그렇게 이 프로젝트는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그래서 올해는 큰 용기를 내어, 나의 '용기있음'에 대해 써 보려고 한다.





인생을 살면서 품위, 인내심, 따뜻함 등 자신의 장점이 드러났던 사례를 찾아보세요. 이런 장점을 확인하고 스스로에 대한 좋은 느낌을 마음 깊이 받아들이세요.


내가 가장 근사했던 순간은 몇 년 전 혼자 청도 운문사의 새벽예불을 들으러 갔을 때다. 운문사는 비구니 스님들이 공부하는 절이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운문사는 새벽예불이 유럽 유명 성당의 그레고리안 성가 뺨치게 멋있는 절로 소개되어 있다고 한다. 물론 책을 보진 않았고 네이버 블로그에서 그렇게 봤다. 블로그에는 저 '그레고리안 성가' 비유에 홀려 운문사 새벽예불을 다녀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나 역시도 그들 중 한 사람이 되어,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청도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인터넷을 검색해서 알아낸 숙소에 혼자 묵을 참이었다. 절이랑 10분 거리인 '후레쉬모텔'. 새벽예불을 들으러 가는 사람에게 추천한다고 했다. 숙소에 도착하여 혼자 묵겠다고 하자 주인아주머니는 친절하게도 숙박요금을 조금 깎아 주었다.


오후 네 시쯤, 겨울 해가 일찍 져 버리기 전에 오후의 운문사에 한번 다녀와 보기로 했다. 숙소에서 나와 절을 향해 걷기 시작했는데 10분이 지나도 절 초입도 보이지 않았다.


지도를 본 나는 깨달았다.

숙소에서 절까지는 '차로' 10분이었던 것이다.


열심히 걸아 절에 도착해 경내 구경도 하고, 종 치는 소리도 들었다. 운문사는 듣던 대로 단정하고 깨끗한 절이었다. 절을 구경하면서도 내 맘속엔 한 가지 걱정밖에 없었다. 내일 새벽에 어떻게 여길 혼자 오지? 걸어서 30분은 족히 걸릴 것 같은데 위험하진 않을까? 하필 그날 날씨는 모질게 춥고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절에 댕댕 울리는 풍경 소리에 마음이 심히 흔들렸다.


다시 마을에 도착하자 해가 깜깜하게 져 있었다. 절에서 내려오는 길에 찬 바람을 잔뜩 맞아 콧물을 훌쩍거리면서 동네 초입에 있는 술집 겸 밥집에 들렀다. 손님이 없어 저녁 6시밖에 안 되었는데도 거의 파장 분위기인 집이었다. 아니 새벽예불이 그렇게 유명하다면서 왜 손님이 없는 걸까. 난로 위에 놓인 황동색 주전자가 다 식어 있는 것을 보면서, 나는 먹고 가려던 마음을 접고 해물파전 하나를 포장해 숙소로 돌아왔다.


얼어붙은 몸을 뜨거운 물로 녹이며 폭풍 같은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걸터앉아 티비를 틀었다. 삼 분 거리를 걸어오다 이미 차게 식어버린 해물파전을 먹으면서 연말 연예대상을 보았다.


신인상을 시상할 때쯤 생각했다.

가지 말까 그냥?


최우수상을 시상할 때쯤 생각이 바뀌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새벽예불 들으러 왔는데 어떻게 그냥 가?


지금의 나라면, 숙소 주인에게 내일 새벽예불 가는 손님이 있느냐, 혹시 같이 차를 타고 갈 수 있겠느냐를 물었을 것이다. 아니면 혼자서 걸어 올라가도 위험하지 않은 길인지 확인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내 머릿속엔 오로지 '꾸역꾸역 혼자 가기'와 '안 가고 푹 자기' 두 가지밖에 없었다.


눈이 계속 감기고 도저히 대상 수상까지 다 볼 자신이 없어, 일단 알람을 3시에 맞춰두고 잠이 들었다. 일어나면 가고, 안 일어나면 못 가는 거야,라고 결정을 내일의 나에게 미루며.







다음날 새벽, 낯선 잠자리라 그런지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반짝 떠졌다. 일어난 것이 아까워 일단 가 보기로 했다. 길이 너무 깜깜하면 가다가 다시 되돌아오자는 마음이었다.


마을을 나와 절로 들어가는 솔숲길로 들어섰다. 어두운 길은 아니었지만, 인적이 없었다. 사람이 있으면 더 무서울 것 같기도 했다. 바스락바스락 마른 솔잎을 밟으며, 가끔 누가 따라오고 있진 않은지 뒤를 돌아보았다. 산 초입이 시작될 때 약간 긴장했다. 차도 다닐 수 있는 넓은 길이었는데 올라가는 차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다행히 가로등이 잘 되어 있어 대로가 하얗게 빛날 지경이었다. 산의 새벽 공기는 겨울밤 내내 밖에 내놓은 사이다같이 차고 달았다. 산속에는 나무와 짐승과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내 숨소리와 내 팔이 패딩을 스치는 소리만을 들으면서 걸었다. 가끔 산속에서 바스락, 하는 소리가 들리면 깜짝 놀랐다. 가끔 소쩍새 같은 새가 구성지게 우는 소리가 들렸다. 걷다가 멈춰서면 나무가 속삭이는 소리까지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엔 무서워서 노래를 부르며 걷다가, 두어 소절을 부르고 멈췄다. 새벽 산의 호젓한 아름다움을 깨고 싶지 않았다. 이 산에서는 긴장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몸으로 느꼈다. 나는 내가 안전할 거라는 걸 알았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올라가자 절 주변에 여러 대의 차가 주차된 곳이 보였다. 나보다 먼저 올라와 예불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비로소 문명세계에 도착한 것 같은 안도감을 느꼈다.


막상 고대하던 새벽예불이 그레고리안 성가를 뺨쳤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것은 절 앞에 신발을 벗고 들어가 바닥에 디뎠을 때, 나무 바닥의 선듯한 촉감. 옆에 계신 보살님의 고갯짓으로 방석을 찾아 앉았을 때, 도톰하고 무거운 절 방석의 감촉. 그리고 스님들이 들어오시기 전, 겨울 절의 덜 데워진 공기와 그 공기 속에 은은하게 섞여 있던 절 특유의 향 냄새.


불교 의식을 잘 몰라 우물쭈물하던 나와, 방석에 앉기 전 누구보다 곡진한 자세로 삼배를 올리던 아주머니들. 그들의 삼배를 올리는 손 끝이 미세하게 떨리던 것. '아이고 손 시려'하는 얼굴로 손마디를 잡으며 방석 위에 가장 낮은 자세로 앉던 사람들.


윽고 들어와 서열에 따라 앉던 스님들과, 자비롭다기보단 잔뜩 굳어 보이던 그들의 표정.(내가 새벽 출근할 때 짓는 표정) 깜짝 놀랄 정도로 앳되어 보이던 몇몇 비구니 스님들과, 그들을 보며 몇 살쯤 되었을까 헤아려 보다 멈추던 나의 마음. 청아하다기보단 힘 있게 자기중심을 잡고 가던 독송. 단정하고 반듯하게 앉아 예불을 진행하던 모든 사람들.


예불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예불이 끝나고 열을 맞추어 숙소로 돌아가는 스님들의 모습이었다. 스님들은 떨어진 무궁화 꽃잎처럼 반듯하게 옷을 여미고, 철새의 군무처럼 근사하게 열을 맞추어 돌아갔다.


그 모든 것은 그날 산을 오르지 않았더라면 보지 못했을 것이다. 다음에 유튜브로 보면 되지 뭐, 하고 그냥 늦잠을 잤으면 보지 못했을 것이다.


내려오는 길은 훨씬 덜 무서웠다. 몇몇 차들이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시커먼 산속, 불 켜진 하얀 길을 따라 걸으면서 종종 노래를 흥얼거렸다. 무사히 원래의 솔숲길로 다시 돌아와, 여전히 깜깜한 마을을 가로질러 숙소에 도착했다. 내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 신발을 벗을 때, 나를 기다리고 있던 침대에게 내가 오늘 본 것들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후 나는 <그것이 알고 싶다>의 애청자가 되었고 다시는 그런 모험을 꿈꾸지 못했다. 산을 새벽에 여자 혼자 걸어서 올라가? 그러다가 변사체로 발견되는 거야!


사실 그 산길은 걱정할 필요가 없이 안전한 길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아무리 절 주변일지라도 혼자 걷는 건 권하지 않는 길일지도 모른다. 그런 아무런 정보도 없이, 나는 낯선 마을의 산길을 혼자 걸어 올라가 새벽예불을 듣고 왔다.


그래서 그해 연말 운문사 새벽예불은 내가 힘없게 느껴지는 날 꺼내어 돌이켜보는 기억이 되었다. 난 낯선 마을에서 새벽 산을 혼자 걸어올라 간 사람이야. 무서워 죽을 것 같았는데 그래도 씩씩하게 걸었다고.


이번 주는 <자신의 좋은 점 보기> 과제를 위해 그날 새벽 절을 향해 걷던 내 모습을 자주 떠올렸다. 그리고 나의 용감함에 대해 생각했다. 비록 지금은 사무실 모니터 앞에 붙박이장처럼 앉아, 상사의 지시에 일희일비하는 미어캣 모드로 일을 하지만... 사실 나는 용기있는 사람이라고! 이 생각을 할 때마다 키보드에 힘이 들어갔고 부숴버릴 듯이 타자를 치는 나를 동료가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이번 주에 내가 발휘한 용기들에 대해 생각한다.


정말 회신하기 어려운 메일이 있었는데, 이리저리 말을 고른 끝에 용감하게 메일을 회신했다.

나는 용감하게 도톰한 극세사 이불을 박차고 주말 아침 요가를 다녀왔다.

나는 용감하게 두려운 사람과의 미팅 일정을 잡았다.

나는 용감하게 웃기는 농담에 웃지 않았다. (대화에 마가 뜨는 순간을 견디기 위해 큰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용감하게 이번 주에 꼭 하지 않아도 될 일들을 다음 주로 미뤘다.


그리고 나는 용감하게, 이 글을 더이상 수정하지 않고 발행 버튼을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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