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자기 편 되기

아기 고양이를 대하는 다정함으로

by 몽돌

회사에서 종일 소모된 날은 내가 닯고 닯아 작아지고 또 작아진 비누조각이 된 것 같다. 이제 거품도 잘 나지 않을 정도로 쪼그매진 비누조각이 된 기분으로 퇴근길 버스에 오른다.

한숨을 크게 쉴 힘도 없는 날에는 멍하니 가이드 명상 앱을 듣는다. 듣다가 자야지, 하는 마음으로 틀었던 자애명상이었다. "지금 여기 있는 나에게 마음속으로 말해봅니다." 차분하고 따뜻한 목소리가 말을 이었다.


"내가 행복하기를."
"내가 온전히 행복하기를."

버스 안에서 울지 않기 위해 흡 하고 숨을 참았다. 그 별 것도 아닌 말이 왜 나를 그렇게 울컥하게 했을까? 이렇게 다정한 목소리로 내가 나의 행복과 자유를 빌어줬던 적이 있었나. 이거 하게 해 주세요, 이거 잘 되게 해 주세요, 라는 기도가 아니라 내가 온전히 행복하기를 빌어준 적이 있었나. 항상 잘하라고 다그치기만 했다. 누구보다 가장 모질고 성난 목소리로 나를 질책하기만 했다.




나는 나의 가장 좋은 친구인가


누군가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준다는 것은 어떤 일일까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이렇게 물어보세요. 나는 나 자신에게 좋은 친구인가?


오늘 회사에서는 계속 지연되고 있는 업무 때문에 마음이 꽉 막힌 것처럼 답답했다. 여러 부서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상황이라 어떻게 정리해서 메일을 써야 할지 골치가 아팠다. 그냥 메일 하나 쓰면 되는 일인데 왜 이렇게 지지부진 끌고 있지? 이 상황을 빨리 수습하지 못하는 나에게 조금 짜증이 났다. 그러다 이번주 과제인 <자기 편 되기>를 떠올렸다. 지금 나는 내 편인가.


아니, 지금 난 내 편이 아니야.

그럼 만약 내가 지금 내 편이라면 어떻게 할까.

신기하게도 그 순간 진통제를 맞은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 지금 내가 내 편이 아니어서 힘들었구나. 나를 힘들게 하는 건 상황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던 것이다. 확인해야 할 사항도 많고, 어떻게 회신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데, 그래도 어떻게든 답을 찾아보려 애쓰고 있는데 내가 나를 가장 먼저 몰아세웠다.


내가 내 편이 된다는 감각은 새로운 외국어를 배우는 것만큼이나 낯설다. 처음 스페인어를 배우며 '성수일치'의 개념을 배울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아니 형용사를 쓸 때도 남성/여성, 단수/복수를 신경써야 한다고?")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살아갈 수 있다니! 내가 내 편이 되는 순간 몸에서 느껴지는 생경한 감각을 잘 기억해 두고, 새로운 외국어를 익히듯이 계속해서 몸에 익혀야 한다. 하와유? 아임 파인 땡큐. 앤유? 를 눈 감고도 말할 수 있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이 말을 많이 듣고 말했나. 자기를 인정하는 언어를 익히는 일에도 그만한 연습이 필요할 것이다.




아기 고양이를 돌보는 마음으로 나를 보는 일

내가 나의 편이 되는 게 아직 낯선 사람들에게, <붓다처럼 살기> 책은 자신의 어릴 적 사진이라던가, 애완동물이나 아기의 이미지를 상상하면서 그 존재를 보호하고 아끼는 기분을 느껴보라고 한다. 그리고 그 감각을 자기 자신에게도 적용해 보라고 이야기한다.

아기 고양이 라바가 우리 집에 처음 왔을 때를 생각한다. 친구가 짧은 여행을 가게 되어 며칠간 맡게 된 고양이였다. 태어난 지 몇 개월이 되지 않은 아기 고양이가 든 가방을 받아 들었을 때, 그 안에서 떨고 있는 작은 생명의 무게감과 긴장이 느껴졌다.


처음 우리 집에 오고 나서 녀석은 한동안 이동장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않았다. 한 시간 뒤에 가 보니 서재의 책 더미 사이에 조심스레 숨어 있었다. 마치 거기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인 것처럼.


KakaoTalk_20200120_204804034.jpg 책장 사이에서 도무지 나오지 않던 라바


라바는 아주 조금씩, 말 그대로 '행동반경'을 넓혀 갔다. 자기 은신처를 중심으로 포복자세로 날름날름 걸어 원 하나를 그렸다. 그러다 우리와 눈이 마주치면 도도도 빠른 걸음으로 걸어 다시 책장으로 들어갔다. 또 얼마 있다 다시 삐죽삐죽 걸어 나와 아까보다 조금 큰 원을 그리며 돌다가, 또다시 호닥닥 자기 은신처로 뛰어갔다. 낯선 곳이 어색하고 무섭지만 호기심이 그 이상으로 큰 것 같았다. 호기심이 두려움을 이기는 광경을 우리는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라바는 몇 시간만에 낯선 집에 완벽하게 적응해서 TV 뒷면이며 냉장고 뒤며 탐색을 하고 다녔다. 정작 나는 그가 온 첫날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만에 하나 밤 사이에 이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열심히 청소를 해 두긴 했지만, 혹시 바닥에 굴러다니던 병뚜껑을 삼키면 어떡하지? 전선을 갖고 놀다 감전되면 어떡하지? 아침에 일어나 그가 반갑게 달려와 골골송을 부르며 몸을 비빌 때 무엇보다 큰 안도감을 느꼈다. 간밤에 별 일 없었구나.

신생아를 돌보는 부모의 마음을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첫날은 긴장해 잘 먹지를 못하던 아이가 고양이용 참치를 주자 야금야금 먹는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웠지 모른다. 다리나 팔을 꼬리로 살짝 휘감고 지나가 주면 우리는 은혜를 입은 것처럼 황홀해했다. 부리나케 퇴근 후 달려갔는데 소파에 곱게 몸을 말고 자던 라바가 잠이 덜 깬 채 딸랑딸랑 마중 나오는 모습을 보면 마음에 따뜻한 기쁨이 차올랐다.

그를 보내는 날, 묵직한 이동장을 친구에게 넘기며 마음으로 기원했다. 호기심 많은 아기 고양이야, 부디 무럭무럭 자라라. 엔간한 일엔 콧방귀도 뀌지 않는 무심한 할머니 고양이가 될 때까지, 내내 건강해야 해.




그 시절 엄마 아빠의 마음으로 나를 대하기
생일에 엄마가 보내준 내 신생아 시절의 사진을 본다. 딱 라바처럼 세상에 나온 지 몇 개월밖에 안 된 아기다. 80년대풍 알록달록한 벽지가 발라진 방, 모빌 아래 아기옷을 입고 누워있는 나. 그리고 그 아이의 볼에 아주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살짝 갖다 대어 보는 젊은 엄마.


갑자기 뚝 하고 떨어진 어리고 낯선 손님을 맞이하는 부모의 마음을 생각한다. 눈도 제대로 못 뜨고 누워있던 나에게, 젊은 엄마와 아빠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감히 짐작할 수도 없지만 내가 라바를 대하는 마음의 몇 배로 애틋하고 다정했을 것이다. 잘 자고 잘 먹는 것만으로도 대견하고 뿌듯한 마음. 가끔 눈을 맞춰 줄 때의 감격과 사랑스러움. 부디 별 탈 없이 무럭무럭 자라 다오, 하고 기원하는 마음.


아기 고양이에게 주었던 다정한 시선과 따뜻한 응원을 나 자신에게 줄 수 있을까? 내가 아주 오래전 받았던 무한한 사랑과 보살핌을 내가 나 자신에게 허락할 수 있을까? 그럴 수만 있다면 앞으로 찾아올 52번의 월요일도 두렵지 않을 것 같다.


이 책을 끝까지 다 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이 말만은 자주 연습해 보려고 한다. 마음이 쩍쩍 갈라진 논바닥 같이 가물어 외로운 날에, 나를 채워주는 샘물 같은 말.


지금 나는 내 편이야?
지금 내가 내 편이라면 어떻게 할까?



나는 아직 나의 팬까진 될 수 없지만 나의 편은 되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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