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 풀기

가장 어려운 과제, 릴랙스

by 몽돌

복직한 지 백일도 넘었다. 복직 백일이라며 셀프 백일 축하 선물을 사줬던 것도 몇 주 전의 기억이 되었다.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간다는 진부한 표현이 얼마나 정확한 말이었는지 감탄하게 된다. 쏜 화살은 멈출 수가 없다. 하루하루는 정신없이 살다가 한 뭉텅이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5월도 다 지났네, 하며 아쉬워한다. 흘러가는 시간을 놓치는 게 아쉬워 매일의 소소한 일상, 소소한 실패, 소소한 성장을 기록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 다짐을 작심삼일로 반복한다. 그래서 일기를 삼일에 한 번은 쓰게 되니 다행이라면 다행이겠다.


잠시 휴가를 내고 멈춰서 복직 이후의 시간을 돌이켜 보았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일을 너무 쓸데없이 열심히 했다는 것이다. 나는 사실 열심히 사는 것을 좋아한다. YOLO를 실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성실과 몰입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열심히 일했다'는 것에 '너무/쓸데없이'를 붙인 건 내가 지나치게 긴장 상태였기 때문이다. 달라지고 싶은 마음, 잘해보고 싶다는 욕심에 늘 어깨에 힘을 주었다. 안 되는 걸 되게 하려 애썼다. 아마 마음속 깊은 곳에는 여전히, 이만큼 쉬었으니 00해야 한다는 본전 의식과 스스로에 대한 엄격함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 목덜미를 꽉 붙잡고 있었던 건 다름 아닌 나였다.


어느 날 이를 닦다 올려다본 화장실 거울 속의 내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는 다시 번아웃이야, 라는 마음의 소리가 들렸다. 주변의 다정한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괜찮아, 힘을 빼'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그리고 바랐던 것을 지금, 여기에서 다 이루지 못한다 해도 그게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세상 일은 원래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일개 서퍼 Surfer일 뿐 파도를 만들어 낼 수는 없다. 그저 그때그때 닥쳐오는 파도에 맞춰 최대한 내가 가고 싶은 방향대로 가 볼 뿐이다.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파도 앞에서 좌절감과 무력감을 느낄 것이 아니라 아, 이래서 인생이 재미있구나!라고 느낄 수 있다면 나도 제법 성숙한 서퍼가 되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유연함의 힘. 릴랙스의 힘. 당장 어려우면 돌아서 가도 괜찮다는 마음. 인생은 속도보다 방향이라고, 방향만 맞게 있다면 남들 속도와 비교하며 초조해할 필요가 없다고. 매일매일 나 자신에게 말해주고 있다.


<붓다처럼 살기> 4장 '긴장 풀기'에는 일상생활 속에서 긴장을 풀 수 있는 방법들이 나온다. 다 싸워서 죽여버릴 듯한 전투 모드의 교감신경 말고 나른 나른 이완된 부교감신경을 불러오는 방법들이다. 가장 빠른 방법은 혀와 턱 근육을 이완시키는 것이다. 직장인들이 가장 경직된 근육이 의외로 어깨나 허리가 아닌 턱근육이라고 한다. 자기도 모르게 이를 악물고 일하는 것이다. 출퇴근길만이라도 입을 살짝 벌리고 턱 근육에 힘을 빼는 연습을 한다. 자기 전에 손가락 관절 부분을 입술에 갖다 대는 것도 긴장 완화에 도움을 준다.


업무 중 긴장 상황에 몰리면 나만의 안전지대 Safety Zone로 들어간다. 외부 자극에 보이지 않는 방어막을 치는 상상을 하고 혼자 호흡을 지켜본다. 다섯을 세면서 들숨을, 또 다섯을 세면서 날숨을 쉰다. 고성이 오가는 정신없는 회의실에서도 이 방법이면 나 혼자 평화로워질 수 있다. 와, 이 방에서 나 혼자 편안한 것 같아,라고 느끼다 이미 득도의 경지에 오르신 만년 부장님과 눈이 마주치곤 한다. 부장님은 릴랙스 하다 못해 거의 졸음의 단계다. 아, 부장님도 힘을 빼고 계셨구나. 이게 20년 근속의 비결이었군요 부장님. 나는 이제 전력투구하며 열심히 사는 사람들보다 적시에 힘을 뺄 수 있는 사람을 더 존경하게 되었다.


명상을 하면서 배웠던 '자극과 반응 사이에 공간이 있다'는 말을 떠올린다. 세상은 나에게 끊임없이 자극을 주고 긴장상태로 몰아가지만, 나는 그에 바로 반응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 그게 호흡에 기반한 명상이든, 아니면 머릿속으로 아이돌 노래를 부르며 딴청을 피우는 것이든.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가상의 안전지대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숨을 쉰다. 이 순간 여기에서는 안심할 수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안전지대에 들렀다 나오며 마음의 근육을 키운다. 목표를 찍고 달리는 것만이 다라고 믿었던 예전의 나보다 숨을 고를 줄 아는 지금의 내가 더 좋다.






최근에 읽은 책 <앉는 법, 서는 법, 걷는 법>(곽세라)에서는 이런 시간을 '시간의 포켓에 들어간다'라고 해서 포켓 타임이라고 불렀다.


"안심하는 근육이 없어서 그래요."

쥘은 나의 만성적인 어깨 결림에 이렇게 깔끔하게 진단을 내렸다.

"릴랙스 하는데도 근육이 필요해요. 복근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듯이 이 릴랙스하는 근육도 꾸준히 갈고닦아야 만들 수가 있고 몸에 붙일 수가 있어요. '틈나면 쉬지 뭐.'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쉬어야 해요. 시간을 정해놓고, 작정하고 릴랙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시간만은 힘을 풀겠다는 강한 의지가 필요하지요."

삶에 대한 열의로 가득하고 열심히 사는 노력가일수록 포켓 타임을 놓치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마치 한 장면도 놓치지 않으려고 스크린에 얼굴을 바싹 대고 영화를 보는 것과 같다. (중략) 조금 떨어져서, 거리를 두고 보아야 감독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어 했던 장면이 눈에 들어오듯이 움직임으로, 상황 속으로 돌진하기 전에 한 발짝 물러서서 내가 어떻게 움직이려 하는가를 훑어보아야 한다. 그 작은 틈에서 꾸물거리지 못하면 큰 그림을 놓치게 된다. 그 순간이 우리에게 주려는 메시지를 읽을 수가 없다. 움직임의 사이사이에 그 틈을 자주 끼워 넣을수록 우리는 그것을 느긋하고 여유로운 순간으로 바꾸어 경험할 수 있다.

- 곽세라, <앉는 법, 서는 법, 걷는 법> p.138-9


'작정하고 릴랙스'

'적극적으로 쉬기'

그렇다. 이 정신없는 세상에서 릴랙스하기 위해서는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 다들 열심히 살라고만 했지 잘 쉬어야 한다고는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우리가 아는 쉬는 법은 오직 어디 휴가지가 좋고, 어디는 뭐가 맛있고, 어디가 뭐가 싸더라, 이런 것들이다.) 이렇게 교감신경만 쓰면서 살면 얼마 안 가 번아웃이 오고 몸과 마음의 병을 얻는다. 몸과 마음을 잔뜩 쓰는 방법이 아니라 내려놓는 법을 배워야 한다. 더 달려가야 하지 않냐고 불안해하는 사람들 손을 붙잡고, 우리 '작정하고 릴랙스'하면서 살자고 도원결의라도 하고 싶다.



- 사진 출처: Photo by Jared Ric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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