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의 선호와 감정에 예민해지려고 노력했던 휴직 생활에서 둔감이라는 두꺼운 등딱지가 필요한 회사 생활의 리듬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일 년만큼 더 노련해진 동료들 사이에서 나는 혼자 신생아가 된 것처럼 느껴졌다. 몇 달 새에 나는 '굴러온 돌'로서 내 자리를 만들기 위해 여러 선택을 해야 했고 그때마다 나는 주판알을 굴려 최선의 선택을 내렸는데 이상하게도 전혀 예상치도 원치도 않았던 곳에 도달해 버린 것 같았다. 나는 그때그때 내가 선택을 했다고 굳게 믿었기에 나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려고 노력했다. 네가 원해서 돌아온 거잖아. 네가 선택했잖아.
어느 날 출근 버스에서 굳이 안전벨트를 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사는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답답함과 무력감 속에 한동안 깊은 물속에 잠겨 버린 사람처럼 살았다. 어느 드물게 공기 좋은 날, 잠시 수면 위로 나와 오래 참았던 숨을 들이키며 알았다. 실은 그 선택지라는 것들 역시 남들이 내 손에 쥐어준 것일 뿐이었다는 것을. 내가 원해야만 한다고 남들이 믿는 것들, 그 몇 가지 선택지 속에서 나는 사려깊게 답안을 고르는 모범생이었다.
휴직기간 동안 평일 오후의 햇살을 받으면서, 한적한 주중의 거리를 걸으면서 나는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좀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복직 후에 더 아팠던 것 같다. 나는 이제 아픈데 괜찮다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 더 이상 나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다. 왜인진 모르겠지만 이건 내가 원했던 삶이 아니었다.
인정받고 칭찬받는 삶을 넘어
여러 사람에게 묻고 또 물었다. 네 인생에서 일과 회사 생활은 몇 퍼센트니? 놀랍게도 십 퍼센트밖에 안 된다는 사람도 있었고 70퍼센트가 된다는 사람도 있었고 평균은 4,50퍼센트였다. 놀라웠다. 나에게 있어서 일이란 거의 90퍼센트였기 때문이다. 나라는 사람은 주어진 본업 job과 본분 duty을 다하는 것이 90프로를 차지하는 순진하고 건조한 인간이었다. 실은 취미도 워라밸도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맡은 일을 재밌게 하고 아주 잘 하고 그 일로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인정받으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는 인간이었다. 그러니까 그 90퍼센트가 만족스럽지 못했을 때, 그냥 이 돈 안 받겠다- 하고 휴직을 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나의 90프로를 차지했던 그 욕망의 대부분은 인정 욕구였다. 사실 무슨 일을 하느냐도 크게 중요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남들에게 착하고 유능하고 신뢰할만하고 매력적인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지금 해저 구만리처럼 느껴지는 내 현재 상황이 A라고 치자. 거기서 토씨 하나도 틀리지 않은 상황 B를 설정하되 그 환경에선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하고, 인정하고, 내가 최고고 모두가 이 조직은 너 없이 안 돌아간다고 굳게 믿는다고 가정해 보자. 나는 B에서 분명 뽕 맞은 듯이 행복할 것이다. 그걸 깨닫는 순간 웃음이 나왔다. 뭐야, 결국 그거였어? 내가 원했던 자아실현이, 결국 그거였구나.
내가 생각한 자아실현은 세상에 '잘 쓰이는' 것이었다. 그 욕망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 '기준'이 남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나의 목표는, 나의 기준은 남에게 나쁜 피드백을 듣지 않는 것과 좋은 피드백을 받는 것이었다. 휴직기간 동안 아무도 나에게 뭐라고 하지 않았기에 나는 평화로웠지만 동시에 아무도 내게 흡족할 정도의 칭찬을 하지 않았기에 어딘지 모르게 맹숭맹숭했다. 나는 일을 해야만 하고 그 일을 잘 함으로써 활기를 얻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복직 후에는 그동안 받지 못한 인정을 얻기 위해 A를 만나면 A에 맞추고 B를 만나면 B에 맞추면서 나의 충전된 '싹싹함'에 감탄하며,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A, B, C, D,.... Z 까지 모든 사람을 맞출 수는 없었기에 이내 관계 자체가 부담스럽고 힘들어졌다. 타인이 내게 원하는 Must와 Should-be를 먼저 하다 보니 쉬면서 자랑스럽게 정리해서 들고 간 나의 아이덴티티며 욕망들은 후순위로 밀리고 말았다.
내가 하고 싶은 걸 먼저 하는 삶
이젠 더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가 않고 이렇게 살아서도 안 될 것 같다. 타인의 평가가 아니라 내가 기준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 그런 삶을 위해 반드시 퇴사를 하고 장기여행을 가고 스타트업을 차리는 것과 같은 선택들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회사를 바꾸고 직업을 바꾼다고 해도 늘 평가의 기준이 타인에게 있다면, 늘 남에게 '좋아요' 도장을 받길 원한다면 달라진 삶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구체적인 직장, 직업과 직무(what)보다 사는 방식(how)과 가치관(why)이 더 중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초등학교 때였나, 어항이나 화분을 채우려면 가장 무겁고 큰 것, 예를 들어 큰 돌 같은 걸 먼저 놓아야 한다고 배웠다. 그다음에 큰 자갈과 가벼운 자갈, 무거운 흙과 가벼운 모래 순으로 채워 나가는 거라고. 그래야 한정된 공간에 필요한 것들을 다 담을 수 있다고.
그동안 나에게 가장 무겁고 큰 것은 타인의 인정이었고 내가 수행해야 할 의무였고 사회에서 권하는 '하면 좋다'는 것들이었다. 그것들을 먼저 담다 보니 충분한 휴식, 자기 돌봄, 내가 원하는 것, 설레는 것, 쓸모없는데 재밌어 보이는 것들의 자리가 없어졌다. 나는 이제 그 어항의 배치를 조금씩 바꿔 보려고 한다. 그래, 그들의 말대로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 수는 없겠지. 하지만 인생이란 어항에 가장 먼저 놓는 돌이 '남이 내게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것'이었으면 좋겠다.
Must와 Should be가 먼저였던 기존의 인생어항
자기돌봄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먼저 배치하는 새로운 인생어항
나 자신과 내 욕망을 깊이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욕망을 현실 속에서 구현하고 밀고 나가는 힘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배워 나가고 있다. 내 인생 어항의 디스플레이는 내가 정한다. 나 자신에게 가장 묵직하고 큰 것을 먼저 놓을 수 있는 용기와 뻔뻔함으로 매일을 살고 싶다.
<붓다처럼 살기> 제 3장 '자기 자신에게 연민 갖기'를 할 차례다. 저자는 인생에서 어쩔 수 없이 마주하게 되는 고통 앞에서, 힘들어하는 자기 자신에게 연민의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 특히 어린 시절에 행복하게 자란 사람들은 자기 연민이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 이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특히나 자기비판적이거나, 지나치게 목표 지향적이거나, 금욕적이거나, 자신을 너무 챙기는 것은 허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자기 연민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나를 정말 아끼는 사람과 함께 있다는 느낌'을 떠올려 보며 그가 나에 대해 선의로 가득 찬 연민의 마음을 갖는 모습을 떠올려 보라고 권한다.
아니면 어린 아이나 가족 구성원 등 자연스럽게 연민의 마음이 생기는 대상을 떠올려 보세요 지금 내가 겪는 어려운 문제를 놓고 그 사람이 씨름하는 모습을 보면 어떤 기분일지 상상해 보세요. 연민의 감정으로 몸과 마음을 가득 채우세요. (...) 자, 이제 바로 그 연민의 느낌을 나 자신에게로 향해 보세요. 이때 마음속으로 이렇게 속삭이는 것도 좋습니다. ' 이 고통이 사라지기를, 상황이 나아지기를, 시간이 가면 속상한 기분이 좀 나아지기를......' 나 자신에게 따뜻한 마음을 보내고, 어려움과 고통이 존재함을 인정하고, 상황이 호전되기를 기원하세요.
안전벨트를 매고 싶지 않았던 나,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물었던 나에 대해 연민의 마음을 보낸다. 잘 해 보려고 했는데 생각과 달라서 얼마나 속상할까. 그동안 쌓아 온 삶의 방식을 바꾸려고 하니 얼마나 힘이 들까. 늘 Yes만 하다가 남들에게 No라고 말하려고 하니 그게 얼마나 잘 안 될까. 힘들고 고통스럽고 잘 안 되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고. 하지만 계속 이렇지만은 않을 거라고.
내가 곧 괜찮아지기를, 편안해지기를, 조금씩 길을 찾아가기를 바라며 따뜻한 찻물 같은 연민의 마음을 오래오래 머금고 있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