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용서하기

나는 나를 용서하기 위해 이곳에 왔어

by 몽돌

자기자비 프로젝트의 이번 주 주제는 <스스로를 용서하기>이다. 제목을 보자마자 생각나는 한 사람이 있었다.


하이디 할머니.


그녀는 몇 년 전 휴직하고 떠난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처음으로 사귄 말동무였다. 작고 마른 체격에 하얗게 샌 머리의 70이 다 된 할머니. 첫인상은 알프스 산맥 어드매에서 전통 복식을 입고 하얀 시트를 깐 저녁식사를 차릴 것 같은 고전적 할머니상이었다.


순례길에서 사람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감탄파(아, 정말 아름답고 영적인 길이야…!). 무념무상파(길이 있으니 그저 걷는다). 시니컬파(아니 나는 지금 왜 이 짓을 하고 있는 거지?). 나는 전형적인 감탄파 할머니처럼 생긴 하이디 할머니가 시니컬파여서 너무 좋았다.


그녀는 신을 믿지 않았다. 그녀가 믿는 신은 무릎신이라고, 이 길이 끝나도 자기 관절이 무사하길 무릎에게 빌면서 걷는다고 했다. 우리는 순례자들을 빼면 사람 한 명 없는 죽은 도시들을 걸으면서 스페인 북부의 지역경제는 다 순례자들이 먹여 살리고 있다며 낄낄거렸다. 비가 오고 날씨가 궂은 날이면 우리는 대체 왜 우린 이런 중세시대 코스프레를 하며 미련하게 걷는가, 내일은 꼭 걷지 말고 버스를 타자며 로컬 버스 사이트에 들어가 시간표를 캡처하곤 했다. 나는 사노 요코가 미국에 태어났다면 그녀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하이디는 공용 부엌이 있는 저렴한 숙소에 묵으면서 저녁으로 파스타를 주로 해 먹었다. 그녀는 시판 파스타소스로 만든 파스타를 꼭꼭 씹으며 말했다. “누들을 많이 먹어야 돼. 탄수화물 안 먹고 많이 걸으면 살이 볼품없이 빠져.” 같이 누들을 나눠먹으며 그녀는 자기의 인생에 대해 들려주었다.


그녀는 교사로 일하면서 아들 셋을 키워냈는데, 성장기에 어찌나 먹어대던지 말 그대로 밤마다 냉장고 문을 잠궜어야 했다고 한다. 아들들이 다 독립하고, 하나 둘 손자 손녀가 태어났다. 대가족을 일군 그녀는 이제 자기가 해야 할 일은 거진 다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활한 자연이 보고 싶어 애팔래치아 트래킹 길에 가서 자원봉사를 시작한다. 곰과 야생동물이 출몰하는 트래킹 길에서의 생활에도 익숙해질 무렵, 스페인 순례길 이야기를 듣고 이곳에 오게 되었다고 했다.


한동안 숙소가 겹치지 않아 못 만났던 그녀를 순례길 중반 까리온이라는 도시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까리온의 산타마리아 알베르게는 수녀님들이 직접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러주는 커뮤니티 시간으로 유명했다. 수녀님들의 노래 사이사이, 각자 순례길을 걷게 된 이유를 공유하는 시간이 있었다. 하이디의 순서가 되자 그녀는 잠시 침묵하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녀가 “뭐, 이젠 나도 내가 여기 왜 있는지 모르겠네!” 같은 말을 하리라 기대했다. 뜻밖에도 그녀는 감정이 올라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나를 용서하고 싶었어.
그래서 이 길을 걸으러 왔어.


세상 시니컬하던 그녀가 갑자기 내비친 감정 앞에서, 나는 본의 아니게 남의 일기장을 본 기분이 되어 고개를 떨구었다. 모든 노래가 끝난 뒤에도 그녀가 남긴 '포기브 마이셀프'라는 말이 마음속에 계속 울렸다. 그녀는 자신의 무엇을 용서하고 싶었을까. 자기 삶의 어떤 조각이 유리조각처럼 마음에 아프게 남아, 70이 다 된 무신론자 할머니가 절뚝이는 걸음을 걷게 했을까.


그녀는 그날 저녁에도 "내일 비가 오면 반드시 버스를 탄다!”하고 별렀지만 얄궂게도 날씨는 내내 화창했다. 그녀는 순수한 본인의 걸음으로 자신을 용서하기 위한 여정을 이어갔다. 그렇게 힘들게 걸어간 걸음만큼 바라는 바를 이루었기를. 무릎신이 그녀의 기도를 들어주었기를.


그날 산타마리아에서 들은 '포기브 마이셀프'를 떠올릴 때마다, 자신을 용서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물어보게 된다. 나 자신을 용서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내 삶의 어떤 장면을 용서하고 싶을까.








자기 용서는 가장 많이 자책했던 일을 향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랬어야 했는데 하지 않았다.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했다. 좀 더 잘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이런 자책은 마음에 오래 남아 사람을 상하게 한다.


인정하기 힘든 사실이 있는지 찾아보세요. 아이에게 소리를 질렀을 때 아이의 눈에 떠오른 표정 같은 것 말입니다. 그리고 마주하기 힘든 사실에 특별히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세요. 이러한 것들이 내 마음을 옭아매는 것들이니까요. 항상 진실이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기다릴 필요도 없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어떤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로 많이 힘들어했던 날들.


사람들은 그가 일을 잘한다고 했다. 사람들은 힘을 숭배하니까. 그가 사람들을 앞에 주르르 세워놓고 유려한 질책으로 남의 영혼을 남김없이 탈탈 털어갈 때, 사람들은 그가 혀로 내두르는 힘에 압도당했다. 내가 그 대상이 아니기만 하다면, 그건 보는 재미가 있는 구경이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그 까임의 대상이 될 때, 세상은 지옥이 된다.


그는 상대를 가렸다. 그는 가장 약한 사람, 그가 야! 하고 소리를 지르면 헉 하고 놀랄 만한 사람만을 노렸다. 그가 야! 해도 속으로 "뭐래..." 할 사람들에게 그는 그렇게까지 심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자책하게 되었다. 그의 타겟이 된 건 내가 문제라고.


내가 부족해서.

내가 너무 물러서.

내가 너무 유해 보여서.

내가 너무 만만해서.

내가 힘이 없어서.


내가 무르지 않고 단단했더라면, 누가 손톱으로 꾹 눌러도 눌러지지 않는 조화 같은 존재였다면 덜 다쳤을까? 하지만 나는 살아있는 사람이어서 그가 내는 스크래치 하나하나가 아팠다.


한동안 나는 온통 그에 대한 생각밖에 하지 않았다. 그의 질책이 무서워 밤마다 미리 일을 하는 꿈을 꾸었다. 새벽에 깨서 다시 잠에 들지 못했다. 죽상을 하고 몸을 가장 작게 쭈그린 채 회사를 다녔다. 의기소침해졌고 내 능력에 대해 자신이 없어졌다. 꿈의 크기가 작아졌다. 안분지족만을 꿈꾸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 여러 기회들을 잃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그를 더 이상 보지 않게 되었는데도, 여전히 마음속엔 그때의 일이 차가운 얼음조각처럼 박혀 있다. 스스로도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때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에 대한 미움은 희미해졌는데 그때 속절없이 그에게 휘둘렸던 나에 대한 자책은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때 그에 대한 스트레스 속에 허덕거리느라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한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느낀다. 내가 맘을 더 굳게 먹었더라면, 그래서 좀더 무던하게 반응했더라면 좀 다르지 않았을까? 하고 나를 탓하게 된다.


왜 우리는 상처를 받았을 때 상처를 준 사람만을 원망하지 않고 상처를 받은 나를 탓하게 되는 걸까.

나를 힘들게 하는 상황을 미워해야 하는데 왜 그 상황 때문에 힘들어하는 나를 더 미워하는가.


이때 우리 내면의 비판자가 내뱉는 모진 말은 이런 것들이다.


저 사람은 저럴 수 있어,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저 사람 행동을 그렇게 받아들이는 네가 잘못이야.
비슷한 일을 겪은 모두가 너처럼 굴지는 않잖아.
이걸 갖고 흔들리다니, 다 네가 예민해서 그래.
네가 너무 약한 거 아니야?
너무 만만하게 보인 거 아니야?


친구 A는 회의 중에 다른 부서의 간부에게 절대 회사에서 들을 거라고 생각지 못한 욕설을 듣게 되었다. 원래도 감정조절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었는데, 회의석상에서 가장 어린 여자였던 A에게 감정의 배설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였다. (그렇다. 분노조절장애 따윈 없다. 선택적 분노조절장애만이 있을 뿐이다) 사내 폭언으로 그 사람에 대한 인사조치가 취해진 뒤, A는 말했다.


“그 사람이 백번 잘못한 거 아는데, 혹시 내가 잘못한 거 없나 이런 생각이 계속 드는 게 너무 짜증이 나... 내가 회의 중에 너무 정색했나? 표정관리를 못했나? 내가 너무 만만해 보였나? 그래서 그 사람이 나한테 그런 말을 한 건가… “


왜 우리는 가장 아픈 순간에 내 편이 아니라 남의 편에 서서, 나를 찌르는 사람의 행동을 이해하려 애쓸까.

왜 우리의 이해는 상처받은 나 자신이 아니라 나에게 상처 준 그 사람을 향하게 되는가.







진안의 명상센터에서 2주간 명상코스를 했을 때, 자애명상 시간에 나의 용서는 사실 나 자신보다 그를 향해 있었다. 나는 그를 이해하기 위해 마음을 썼다. 그래, 그 사람도 악의는 없었을 거야. 자기도 실적 압박에 힘들어서 그랬겠지. 상황상 어쩔 수 없었을 거야.


하지만 이제는 그때 그에게 쏟았던 용서의 에너지를, 나 자신을 향해 쓰고 싶다.


그때 혼자 아프고 힘들어했던 나. 내 인생에서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그 사람에게 휘둘려서 많은 중요한 것들- 건강, 관계, 생기, 꿈- 을 잃었던 나를 용서하고 싶다. 안아주고 토닥여주고 싶다. 무엇보다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람이, 처음 만나보는 빌런 앞에서 당황했던 것은 잘못이 아니다. 미숙했던 것은 내 잘못이 아니다. 찌른다고 아파했던 것도 내 잘못이 아니다. 나는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잘 버텼다.


하지만 당신, 나를 아프게 한 당신 말이야.

당신은 나에게 그렇게 해서는 안되었다.

그때 내가 힘들었던 건, 내가 유약해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당신 잘못이다.


다시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나는 최선을 다해 나를 보호할 것이다.

두 눈을 뜨고 당신의 눈을 바라보면서 말할 것이다.

여기 사람이 있다고,

당신이 휘두르는 칼 같은 말에 아파하고 잠 못 드는 사람이 있다고.

당신은 나에게 이러면 안 된다고.


이제 나는 당신을 이해하고 용서할 힘을 모두 모아, 나를 이해하고 용서하는데 쓸 것이다.

용서는 셀프.

당신 자신을 용서하는 건, 당신을 이해하는 건 당신 스스로 해라.

아마도 그럴 것 같지만, 당신이 부디 당신 자신에겐 그렇게 모질지 않기를 바란다.










P.S. 다시 하이디 할머니 이야기를 하자면, '포기브 마이셀프' 이후로 나는 그녀를 보지 못하다가 최종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다시 마주쳤다. 산티아고는 순례를 마친 자들의 떠들썩한 흥분으로 가득한 도시였다. 그녀는 “이 도시는 온통 술 취한 대학생만 사는 것 같아.”라며 예의 삐딱한 모습을 보여주어서 나는 내심 안심했다. 나는 그녀에게 벼르던 버스를 탔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우리는 연락처 교환도 하지 않은 채 서로의 평안을 기원하며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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